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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제16대 흘해니사금의 어머니이자 조분니사금의 딸. 각간 우로와의 사이에 흘해니사금을 낳았다. 

삼국사기 권 제2(신라본기 제2)  흘해니사금 : 흘해니사금(訖解尼師今)이 왕위에 올랐다. 나해왕의 손자로, 아버지는 각간 우로(于老)이고 어머니는 명원부인(命元夫人)인데 조분왕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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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왕 16년(211) 일길찬이 된 신라 관료. 


삼국사기 권 제2(신라본기 제2) 나해니사금(奈解尼師今) : 16년(211) 봄 정월에 훤견(萱堅)을 이찬으로 삼고 윤종(允宗)을 일길찬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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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신라 나해니사금 아들로 관료이자 장군. 동왕 12년(207) 이벌찬이 되고 이듬해 변경을 침범한 왜군을 막았으며, 14년(209) 포상팔국의 난을 진압했다. 19년(214) 서쪽 변경을 침략한 백제군을 토벌하고 사현성을 빼았다가 25년(220) 3월에 사망했다. 


삼국사기 권 제2(신라본기 제2) 나해니사금(奈解尼師今) : 12년(207) 봄 정월에 왕자 리음(利音)<혹은 나음(奈音)이라고도 한다>을 이벌찬으로 삼고 중앙과 지방의 군사 일을 겸하여 맡아보게 했다. 13년(208)…여름 4월에 왜인이 변경을 침범하므로 이벌찬 이음을 보내 군사를 거느리고 막게 했다. 14년(209) 가을 7월에 포상(浦上)의 여덟 나라가 가라(加羅)를 침범하므로 가라 왕자가 와서 구원을 청했다. 왕이 태자 우로(于老)와 이벌찬 리음(利音)에게 명하여 6부의 군사를 이끌고 가서 구원하여, 여덟 나라의 장군을 공격하여 죽이고 포로가 되었던 6천 명을 빼앗아 돌려주었다. 19년(214) 가을 7월에 백제가 나라 서쪽 요거성(腰車城)을 공격해 와서 성주 설부(薛夫)를 죽였다. 왕이 이벌찬 리음(利音)에게 명하여 정예군사 6천 명을 이끌고 백제를 치게 하고 사현성(沙峴城)을 함락했다. 25년(220) 봄 3월에 이벌찬 리음이 죽으니 충훤(忠萱)을 이벌찬으로 삼고 군사의 일을 겸하여 맡아보게 했다. 


삼국사기 권 제24 백제본기 제2 초고왕본기 : 39년(204) 가을 7월에 군사를 내어 신라의 요거성(腰車城)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성주 설부(薛夫)를 죽였다. 신라 왕 나해(奈解)가 노하여 이벌찬(伊伐湌) 리음(利音)을 장수로 삼아 6부의 정예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우리의 사현성(沙峴城)을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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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제9대 벌휴니사금 둘째아들이며, 골정 태자 동생이다. 내례부인과의 사이에서 아들 나해니사금을 두었다. 


삼국사기 권 제2(신라본기 제2) 나해니사금(奈解尼師今) : 나해니사금(奈解尼師今)이 왕위에 올랐다. 벌휴왕 손자로 어머니는 내례부인(內禮夫人)이고 왕비는 석씨이며 조분왕의 누이 동생이다. 용모가 웅장하고 뛰어난 재주가 있었다. 앞 왕의 태자 골정(骨正)과 둘째 아들 이매(伊買)는 먼저 죽었고 맏손자[大孫]는 아직 어렸기에 이매의 아들을 왕위에 세웠으니, 이가 곧 나해니사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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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권 제48(열전 제8) 물계자 열전 : 물계자(勿稽子)는 나해니사금 때 사람이다. 집이 대대로 미미하였으나 사람됨이 기개가 커서 어려서부터 장대한 뜻을 가졌다. 그때 포상(浦上)의 여덟 나라가 아라국(阿羅國)을 치기로 함께 꾀하자 아라국에서 사신을 보내와 구원을 청하였다. 이사금이 왕손 날음(捺音)으로 하여금 이웃의 군과 6부의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해주게 하여 드디어 8국의 군대를 패배시켰다. 이 싸움에서 물계자는 큰 공을 세웠으나 왕손에게 미움을 샀으므로 그 공은 기록되지 않았다. 어느 사람이 물계자에게 말하기를 “자네의 공이 대단히 컸는데 기록되지 못하였으니 원망하는가?” 하였더니 말하기를 “어찌 원망하리요?” 하였다. 어느 사람이 말하기를 “어찌 왕에게 아뢰지 않는가?” 하니 물계자가 말하기를 “공을 자랑하고 이름을 구하는 것은 뜻있는 선비의 할 바가 아니다. 단지 마땅히 뜻을 힘써 연마하며 후일을 기다릴 뿐이다.” 하였다. 그 후 삼년이 지나 골포(骨浦), 칠포(柒浦), 고사포(古史浦)의 세 나라 사람이 갈화성(竭火城)을 공격하여오자 왕이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하여 세 나라의 군사를 대패시켰다. 물계자는 수십 명을 목베었으나 공을 논함에 이르어서는 또 얻는 바가 없었다. 이에 자기 부인에게 말하였다. “일찍이 들으니 신하된 도리는 위험을 보면 목숨을 바치고, 어려움을 만나면 몸을 돌보지 않는 것이라 하였는데 전날의 포상(浦上), 갈화의 싸움은 위험하고 어려운 것이었다. 그런데도 목숨을 바치지 못하고, 자신을 버리지 못한다고 사람에게 소문이 났으니 장차 무슨 면목으로 저자와 조정에 나가겠는가?” 드디어 머리를 풀고 거문고를 들고 사체산(師彘山)으로 들어가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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