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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志 권30 魏書 30 東夷傳 夫餘 : 尉仇台가 죽고 간위거(簡位居)가 王이 되었다. [簡位居에게는] 適子가 없고 庶子 마여(麻余)가 있었다. [簡]位居가 죽자, 諸加들이 함께 麻余를 옹립하여 王으로 삼았다. 牛加의 兄[벼슬에 있는 사람]의 아들도 이름이 位居였는데, 大使가 되어서 재물을 아끼지 않고 남에게 베풀어 주기를 좋아하니 國人들이 그를 따랐으며, 해마다 [魏나라] 서울에 사신을 보내어 貢物을 바쳤다. 正始 연간(A.D.240~248; 高句麗 東川王 14~中川王 1) 에 幽州刺史 毌丘儉이 [高]句麗를 토벌하면서 玄菟太守 王頎를 夫餘에 파견했다. 位居는 大加를 보내어 郊外에서 [王頎를] 맞이하게 하고 군량을 제공했다. [位居의] 季父인 牛加가 딴 마음을 품자, 位居는 季父 父子를 죽이고 [그들의] 재물을 적몰, 조사관을 파견하여 재산 목록(簿歛)을 만들어 官에 보내었다. 옛 부여의 풍속에는 가뭄이나 장마가 계속되어 五穀이 영글지 않으면, 그 허물을 王에게 돌려 ‘王을 마땅히 바꾸어야 한다’고 하거나 ‘죽여야 한다’고 했다. 麻余가 죽고, 그의 아들인 여섯 살짜리 依慮를 세워 王으로 삼았다.




三國志 권30 魏書 30 東夷傳 夫餘 : 마여(麻余)가 죽고, 그의 아들인 여섯 살짜리 의려(依慮)를 세워 王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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