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벽돌무덤9

[무령왕릉과 쌍릉 사이, 백제 장인들의 눈물겨운 생존투쟁] 일신한 치석治石 기술, 전대미문하는 무덤 집을 만들다 그렇다 해서 하루아침에 없던 기술이 하늘에서 뚝 떨어질 수는 없는 법이다. 다만, 전축분을 이식·습득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무엇이 부족한지는 분명히 드러났다. 그 이전 우리는 명색이 치석治石이라 하지만 구석기 시대 그 기술을 벗어나지 아니해서 가공이라는 개념은 없었다. 돌맹이를 주어다가 새로 쌓았을 뿐이니 그건 치석이 아니라 실은 재배치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 문제는 바로 이거다. 말 그대로 돌을 가공하자! 이 정도는 공정이 하나 더 늘고 공사 단가가 높아지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어차피 우리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고 우리 가치를 스스로 높이는 것이기에 마다할 이유는 없다. 그렇게 해서 어느 순간 백제 엔지니어들이 돌을 가공하기 시작했다. 돌덩이는 애초 쓰임새를 염두에 두고 잘라내고, 그것은 다시금 .. 2023. 4. 13.
[무령왕릉과 쌍릉 사이, 백제 장인들의 눈물겨운 생존투쟁] 협잡과 혁신, 위기의 양 날개 전축분 도입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백제 장인들한테는 일대 위기였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들의 이런 좌절 분노을 딛고서 막상 모습을 드러낸 그 전축분 왕릉이었다. 어랏? 우리가 그렇게 전축분은 안 된다고 그렇게 집요하게 공격했는데 막상 완공에 즈음해 드러낸 그 모습을 보고는 또 한 번 좌절할 수밖에 없었으니, 그들한테는 주마등처럼 그네들이 이 전축분 이전에 그네들이 만든 다른 왕릉과 오버랩할 수밖에 없었다. 막상 모습을 드러낸 그 벽돌집 왕릉은 누가 봐도 그네들이 지금껏 만든 그것과는 도대체 비교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뽀대가 났다. 우리가 봐도 폼이 나기는 하네, 이런 감정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랬다. 겉으로는 중국 놈들이라 해서 별 다를 것도 없다 했지만, 그네들 무덤 만드는 기술은 분명 우리보다.. 2023. 4. 13.
[무령왕릉과 쌍릉 사이, 백제 장인들의 눈물겨운 생존투쟁] 수릉壽陵, 대권 잡은 군주가 맨 먼저 만든 자기 집 구미권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동아시아권 군주, 특히 중국의 경우 대권을 잡으면서 가장 먼저 착수한 일 중 하나가 자기가 죽어서 살 집, 곧 제 무덤을 만드는 일이었다. 이렇게 생전에 미리 만든 왕릉을 수릉壽陵이라 한다. 이런 전통이 한반도 문화권에서는 어떻게 발현되는지 모호한 측면들이 있다. 죽을 때를 대비해 미리 만든 무덤은 그 죽을 시점에 무덤 문을 따고 들어가야 하는데, 신라의 경우 중고기 이전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이 있으니, 경주분지를 장식하는 저 거대한 무덤들은 적석목곽분이라 해서, 개중 몇 기를 발굴하기는 했지만, 수릉 흔적이 확실히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문을 따고 들어가 시신을 나중에 안치하기 위한 시설은 아무래도 적석목곽분은 구조상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으며, 그런 전통은 중고.. 2023. 4. 13.
[무령왕릉과 쌍릉 사이, 백제 장인들의 눈물겨운 생존투쟁] 전대미문前代未聞, 하지만 국경을 벗어나면 유행이 되고 어떤 사회에서 새로움은 어떤 경로를 통해 등장하는가? 그 새로움은 일시로 끝날 수도 있고 장기 지속할 수도 있다. 이 새로움이 어느 정도 지지세를 확보하면 그것을 우리는 ‘유행’이라 부를 수 있겠으며, 그런 유행이 어느 정도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면 ‘전통’이라 부를 수 있겠다. 무덤이란 무엇인가? 아주 간단히 정의하면 ‘죽은 사람이 사는 집’이다. 이 집은 여타 다른 부문이 그런 것처럼, 산 사람이 사는 집이 그런 것처럼 시대별 유행 또한 아주 민감하다. 다만, 그 죽은 사람의 집이 변화하는 양상이 어떠한지를 견주려면, 비교 대상을 어떤 기준에 따라 범위를 좁혀야 한다. 그래야 비교의 의미가 있다. 같은 집이라 해서 오직 집이라는 이유로 아파트와 초가를 견줄 수 있겠는가? 물론 집이라는 전체 범위를 논할.. 2023. 4. 13.
[무령왕릉과 쌍릉 사이, 백제 장인들의 눈물겨운 생존투쟁] 우체통을 닮은 능산리 사리감舍利龕 얼마 전 국립부여박물관을 가서 보니 저 배치가 조금 바뀌어 이른바 백제금동대향로는 이 박물관을 대표하는 마스코트라 해서 상설전시실 가장 후미진 데 독립하고 고립한 안방을 차지한 데 견주어 저 사리감은 꼭 문지기처럼 그 전면에서 자리를 차지한다. 따라서 존재감은 말할 것도 없이 향로에 견주어 훨씬 미약해 그 모습을 보노라면 묘한 감정이 일기도 하니, 유물 역시 금칠을 해야 빛이 더 나는 법이며, 화강암 돌덩이는 제아무리 잘 갈아 만든다 해도 금덩이 견주어서는 빛이 덜 날 수밖에 없다 하겠다. 사비시대 백제유산을 대표하는 저 둘은 이전에는 저런 식으로 서로 마주보게, 그리고 그 간극에는 현재와 같은 그 어떠한 가림 장치가 없이 마치 세트를 방불하게끔 배치했지만, 그것이 출토한 지점이 같은 부여 능산리 절터이.. 2023. 4. 12.
날벼락 같은 명령, "무령왕릉은 중국식 벽돌무덤으로 만든다" 절규하는 엔지니어들 백제 조정에서 어느 시점에 무령왕과 그 부부가 묻힐 무덤을 만들라는 명령을 발동했는지는 그것이 수릉壽陵인지 아닌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아무튼 공포된 그 명령은 백제 엔지니어들을 일순 패닉 상태에 빠뜨리고 말았다. 그 명령을 보니 자기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백제 행정시스템이 어땠는지는 추적이 용이하지 아니해서 그 정확한 실상을 증언하는 기록이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니, 아무튼 성왕聖王 시대에 정비했다는 관부로는 내관內官 12부를 포함한 22부部가 알려졌으니, 이를 기준으로 할 때 왕릉 조성과 같은 일은 현재의 국토교통부 같은 데서 전담했을 법하지만, 이런 일을 정확히 어떤 부서에서 관장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조선시대처럼 왕이 .. 2023. 4. 11.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