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의자왕 아들로 백제 멸망 이후 당이 백제왕으로 책봉한 부여륭의 아들로, 즉천무후에 의해 백제왕에 책봉되긴 했지만, 허울뿐이었다.  


삼국사기 권 제28(백제본기 제6) 백제부흥운동 : 의봉(儀鳳) 연간에 (부여)륭을 웅진도독(熊津都督) 대방군왕(帶方郡王)으로 삼아 귀국하게 하여 남은 무리들을 안정시키게 하고, 곧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를 신성(新城)으로 옮겨 통할하게 하였다. 이때 신라가 강성하므로 융은 감히 고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고구려에 의탁하여 다스리다가 죽었다. 무후(武后)가 그의 손자 경(敬)으로 왕위를 잇게 하였으나 그 땅은 이미 신라ㆍ발해말갈(渤海靺鞨)에게 분할되어 나라의 계통이 드디어 끊기고 말았다.



'고대한국인명지명사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인선(薛因宣)  (0) 2018.03.06
경(敬)  (0) 2018.03.06
부여경(扶餘敬/夫餘敬)  (0) 2018.03.06
지수신(遲受信)  (0) 2018.03.06
사타상여(沙陁相如)  (0) 2018.03.06
김흠(金欽)  (0) 2018.03.06

☞부여륭(扶餘隆)

'고대한국인명지명사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오(沙烏)  (0) 2018.03.05
인우(因友)  (0) 2018.03.05
여륭(餘隆)  (0) 2018.03.05
부여륭(扶餘隆)  (0) 2018.03.05
부여융(扶餘隆)  (0) 2018.03.05
고로(高老)  (0) 2018.03.05

☞부여륭(扶餘隆) 



'고대한국인명지명사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륭(餘隆)  (0) 2018.03.05
부여륭(扶餘隆)  (0) 2018.03.05
부여융(扶餘隆)  (0) 2018.03.05
고로(高老)  (0) 2018.03.05
해명(解明)  (0) 2018.03.05
백가(苩加)  (0) 2018.03.0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