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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장물로 사용한 사경(寫經)>


일전에 비스무리하게 한 말이지만 그때 확실히 정리하지 못한 듯해서 다시 손을 든다. 우리는 해당 문화권 밖에서 유래하는 어떤 사상이나 사조가 어떤 땅에 상륙한 지표로써 그러한 내용을 담은 책자가 수입되거나 상륙한 시점을 출발점으로 설정하곤 한다. 그 일환으로 번역을 특히 중시해서 그런 책자가 해당 언어로 번역되고 출판된 시점이야말로 그런 사상이나 사조가 수입된 시점과 등치하는 경향이 너무나 짙다. 이런 경향은 현대와는 거리가 먼 고대로 올라갈수록 특히 강하거니와, 중국 문화와 교류가 남달랐던 한국문화를 보건대 이런 성향이 너무나 짙어 작금 상황은 아주 상식으로 자리잡았다. 


이런 성향이 유난히 짙은 곳으로 불교학이 있다. 익히 알려졌듯이 불교 사상에는 수많은 갈래가 있고, 그마다 그것을 선전하는 불교학 저술이 따로 있다. 예컨대 밀교의 한반도 상륙을 논할 적에 항용 밀교의 어떤 경전이 당에서 어느 시대 누구에 의해 한문으로 번역이 되고, 그런 저술이 신라로 언제 상륙했는지를 기점으로 삼아 신라 밀교의 등장을 설명하곤 한다. 하지만 번역은 그것이 담은 사조 혹은 사상이 유행이 지나기 시작하는 끝물에 일어나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그런 저술이 번역되는 시점은 이미 유행이 지난 시점이다. 


한데 이 점을 너무 쉽사리 망각한다. 현대 번역을 보라! 그것은 번역을 부르는 풍토를 상상하면 이해가 쉽다. 


현대를 봐도, 어떤 새로운 사조는 해당 사조를 잘 정리하거나 선언한 원전이 한글로 번역되고 나서야 수용되는 것이 아니고, 그런 번역이 일어나기 이미 훨씬 이전에 그 사조가 들어온다. 이런 경향이 고대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이땅에 기독교가 상륙할 때, 성서는 번역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성서가 담은 기독교는 한반도에 상륙해 요원의 불길처럼 번졌다. 이 점을 망각하면 결코 아니된다.


** 이 포스팅 페이스북 공유에 외우 신동훈 교수는 "대한민국에서 막스 원전 번역이 언제 됐는지 보면 알죠"라는 댓글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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