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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비봉 진흥왕순수비(복제)>

냉수리비문 '此七王等'이 결코 '왕 7명들'이 아님을 직감으로 알아챈 고대사학도가 딱 한 사람 있었다. 실명 공개는 생략한다. 그가 저리 생각한 가장 큰 이유는 같은 비문에 등장하는 유사 구절, 유사 표현이었다. 다시 말해 같은 비문에 '前世二王'이며, '此七人'과 표현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저 구절은 왕 7명들이 아님을 직감했다. 하지만 예까지였다. 더 나아갔으니, 이것이 화근이었다. 

'此七王等'이 '이들 일곱 왕과 대등(大等)', 다시 말해 1명의 갈문왕과 6명의 대등을 지칭한다고 본 것이다. 그가 이런 논거를 내세운 나름의 이유는 있다. 신라 중고기에 이미 관직 혹은 관위로 이름을 드러내는 대등은 그 분파가 제법 있다. 상대등(上大等)이 있는가 하면, 전대등(典大等)이며, 사대등(仕大等) 등이 보인다. 

이들이 大等을 둘러싼 관직 혹은 관위임은 명백하다. 상대등은 간단히 말해 대등 중에서도 오야붕, 우두머리, 대표자를 말하니, 이는 대체로 늙다리 신하 중에서 골라 임명한다. 글자 그대로 풀어봐도 그렇다. 웃대가리[上] 대등인 까닭이다. 적어도 글자 그대로는 이런 뜻이며, 나는 이 글자가 말하는 개념을 상대등이 뛰어넘을 수 없다고 본다. 

전대등(典大等)과 사대등(仕大等)이 상대등과 적어도 구문론에서 다른 요소는, 상대등의 上이 대등을 수식하는 형용사, 다시 말해 우두머리 대등인데 견주어, 이 경우는 구문으로 보아 典과 仕는 동사라는 점이며, 뒤에 따르는 대등을 목적어로 삼는 타동사라는 사실이다. 이 경우 사대등(仕大等)은 大等을 仕하다는 뜻이니, 말할 것도 없이 보좌한다는 뜻이다. 세크레테리, 곧 비서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전대등은 무엇인가? 이는 대등을 典한다는 뜻이거니와, 동사로서 典은 말할 것도 없이 주관한다는 뜻이다. 《강희자전》을 보면,  《說文》을 인용해 이 글자를 오제의 책[五帝之書]이라 풀었으나, 이는 그 오제의 책이 영원한 도덕규범이 된다는 뜻에서 이리 전이되었을뿐, 그 본래 의미는 《爾雅·釋言》에서 말하듯이 "經也", 나아가 《廣韻》에서 말하듯이 "法也"이니, 명사로서는 법규 혹은 그것이 되는 기준을 의미하거니와, 이에서 말미암아 동사로서는 '주관한다[主也]'는 의미로 발전한다. 典大等의 典은 바로 주관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전대등'이라는 말은 '대등이 하는 일을 주관한다'는 뜻이니, 대등이 하는 일 전부 혹은 일부를 위임받아 처리한다는 뜻이다. 대등을 장관으로 본다면, 그런 대등을 典하는 자리는 차관이다. 

《삼국사기》 권 제38 잡지7 직관上에 의하면, 전대등에 대해 "두 사람이다. 진흥왕 26년에 설치했다. 경덕왕 6년에 시랑이라고 바꿨다(二人 眞興王二十六年置 景德王六年改爲侍郞)"고 했으니, 이는 전대등이라는 낱말 자체로 분석한 내 추측과도 딱 맞아 떨어진다. 시랑侍郞 자체가 차관을 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구절을 근거로 전대등이 동시기에 신라 사회에는 2명만 존재했다고 보아서는 결코 안 된다. 대등 1명당 그 밑에 그를 보좌하는 넘버2인 전대등이 2명이었다는 뜻이다. 

대등? 뭐 별거인 거 같은가? 장관이요 판서다. 장관 하나에 차관 둘인 시스템이다. 간단히 생각하면 될 것을 뭐가 그리 복잡하게 보는지 나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상대등이며 전대등이며 사대등이 모두 명칭으로 봐도 그렇고 실제로도 大等과 관련해 분파한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大等은 글자 그대로 푼다면, 동등한 권리를 지닌 고위 관료를 말한다. 조선시대 개념으로 보면 6판서 정도에 해당한다. 따라서 앞서 나는 대등을 관직 혹은 관위 두 가지 가능성을 다 염두에 두었지만, 관직인 것이다. 

한데, 영일 냉수리비 신라비가 발견되고, 그에서 '此七王等'이라는 구절이 보이자, 느닷없이 이 구절 等이 대등의 전신이라는 웃지못할 주장이 팽배하기 시작했다. 대등이 等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앞선 내 글에서 이미 충분히 증명했듯이 等은 '기타등등'이다. 기타등등이 大等으로 둔갑했으니, 이를 무엇이라 해야겠는가? 역사가 이리 뒤틀리고 비틀어져 이제는 어디에서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 지 알 수가 없는 지경이다. 요지경이다. 



<이 원초의 생명력에서 이끼 사나이 이사부가 태어났다>


신라사에 상대등(上大等)이 등장하는 시점은 법흥왕 18년(531)이니, 이해 《삼국사기》 신라 법흥왕본기에 이르기를 이해 "여름 4월에 이찬 철부(哲夫)를 상대등(上大等)으로 삼아 나라 일을 총괄케 했다. 상대등이라는 관직은 이때 처음 생겼으니, 지금의 재상(宰相)과 같다[夏四月 拜伊飡哲夫爲上大等 摠知國事 上大等官 始於此 如今之宰相]"라 한 대목이 그것이다. 


신라사에서 관직과 관위는 쉽사리 구분이 힘든 대목이 있어, 상대등 역시 마찬가지라, 이에서  《삼국사기》 찬자는 상대등을 '官'이라 하면서, 그 직능을 《삼국사기》 편찬 당시의 고려시대 '재상(宰相)'에 견주고 있음을 본다. 상대등 임명 직전 그 주인공 철부는 관위가 1등 이찬(伊飡)이었으니, 이로써 보면 철부는 1등에서 특등으로 진급한 셈이다. 


이런 일이 비단 신라사가 아니라 해도 다른 시대, 다른 왕조에서도 쉽사리 발견되니, 대체로 국가와 왕실에 공이 많은 원로한테, 기존 관직 관위 시스템으로는 그 공로를 포상하기 어렵다고 생각할 적에, 그 시스템을 존중하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변칙으로써 그 상위 자리를 증설하는 것이 통례거니와, 일통삼한 직후 그 일등 공신 김유신을 태대서발한으로 임명한 것이 대표라 할 만하다. 김유신은 더는 받을 것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문무왕은 외삼촌을 위해 太 혹은 大라는 글자 하나를 덧보태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고려 왕건 역시 신라 마지막 경순왕이 나라를 들어 귀부해오자, 그 대접이 곤혹스러움을 처했으니, 왕건에게 필요한 것은 경순왕이 아니라 그가 들고온 천년 왕국 신라였다. 이 천년 왕국을 접수함으로써 비로소 신왕조 고려의 정통성은 확고한 지위를 점하거니와, 갓난아기가 천년 역사를 접수한 일이 어찌 보통사리오? 왕건은 그 지위를 태자 위에다가 놓았다. 태자도 경순왕을 만나면 허리를 굽혀야 했다. 


철부 이래 상대등은  《삼국사기》에 더러 누락이 있기는 하나, 그 퇴임과 임명 사실이 원칙에서는 기록이 있다. 상대등이 그 위치상 신하 자리 중 1등 혹은 특등이라 해서, 이를 매우 중시하는 전통이 있거니와, 물론 시대 상황에 따라 상대등이 중대한 위치를 점하는 시기도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보아 이는 명예직이라는 특성이 아주 강해, 냉혹히 말하면 꿔다논 보릿자루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상대등은 대체로 국가 원로에 대한 대접에서 나온 발상이라, 교수로 치면 명예교수였으니, 명예교수 중에 권력의 끈을 놓지 못하는 이 더러 있기는 하나, 대체로 정년퇴직이 "더는 현장으로 돌아오지 말라"는 딱지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좋다고 나는 본다. 


초대 상대등 '哲夫'는 여로 모로 관심거리인데 첫째, 그가 당시 신라 조정에서 어떤 위치를 점했느냐 하는 점이 개중 하나이며, 둘째 그 이름이 어쩐지 요상하다는 의문이 그것이다. 첫째와 관련해서는 우리한테 주어진 정보가 워낙 적어 알 수가 없다. 후대 행적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다른 상대등을 비교할 적에, 이 무렵 철부는 신라조정에서 무시하지 못할 위상을 지녔을 것이라는 정도로 상상이 가능할 뿐이다. 이 철부는 《삼국사기》에도 이렇다 할 행적이 없다. 


<거친 사나이들....이 이미지에서 거칠부는 포말을 형성했다>


그렇다면 다음 의문점 철부는 대체 무슨 뜻인가로 옮겨가면, 다행히 우리는 그 편린을 건져내니, 그건 바로  《시경(詩經)》에서 온 말이라는 점을 해명한다. 철부란 무엇인가? 이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경국지색(傾國之色)이라는 말이 있다. 남자는, 특히 왕자王者라면 자고로 여자를 조심해야 한다는 경구로 흔히 등장하는 말이거니와, 흔이 이를 "나라를 기울게 하는 여자"로 옮기지만, 엄밀히 말해 이 경우 '國'은 나라가 아니라, 국도(國都), 혹은 도읍(都邑)을 말한다. 물론 후대에는 國이 나라 전체를 지칭하는 말로써 개념을 확대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등장하고 그것이 보편화하는 초기에는 수도 도읍을 말했다. 그런 까닭에 경국(傾國)은 여러 변종이 있거니와 개중 하나가 바로 경성(傾城)이었다. 이 경우 城은 말할 것도 없이 도성(都城)이다. 


한데 그 역사를 보면 경성(傾城)이 원조다. 《시경詩經·대아大雅·첨앙瞻卬》 편이 수록한 시가 중 한 구절에 이런 말이 보인다. 


"哲夫成城,哲婦傾城。"


哲夫는 城을 이루고, 哲婦는 城을 기울게 한다는 말이다. 요새는 철학이라는 새로운 말로 익숙한 이 '哲'자는 심오한 뜻이 여러 가지 있지만, 간단히 '똑똑하다' 혹은 '뛰어나다'는 형용사로 보면 대과가 없다. 그러니 저 구절은 "똑똑한 사내는 국가를 흥성케 하는 반면, 똑똑한 여자는 나라를 기울게(곧 망하게) 한다"는 뜻이다. 같은 '哲'이라는 글자인데 그 맥락이 달라, 바로 그 유명한 남존여비 사상, 암닭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는 언설의 거대한 출처가 바로  《시경》의 저 구절이다. 


본론으로 돌아가 신라 초대 상대등 '철부'는 바로 이 구절에서 따온 작명이다. 다시 말해  《시경》에서 습득한 이름이 철부다. 


내가 늘 말하듯이 순수 신라식 이름이건, 순한문식 이름이건 신라사에서 작명법을 보면 그 이름 자체가 뜻 뭉치라는 점이다. 그 자체 뜻이 없는 이름이 없다. 다만, 시간이 흘러 개중 상당수 이름 의미를 우리가 잃어버렸을 뿐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는 몇몇 사례를 통해 그 원초의 의미를 추적하거니와, 이 철부보다 한 세대 혹은 반세기 뒤지는 인물로써 이사부와 거칠부가 있거니와, 그에 대한 한문 표기가 태종(苔宗), 황종(荒宗)이라는 사실에서 저 이름이 이끼 사나이, 거친 사나이임을 추찰한다. 심산유곡 바위에서 자라나는 이끼를 본 적 있는가? 그 이끼의 강인성에 착목한 이름이 태종 혹은 이사부였던 것이다. 


철부가 상대등으로 활약한 시점의 신라 왕자 법흥은 본명이 원종(原宗)이거니와, 이 원종을 각종 기록에서 '모진(募秦)' 등으로 표기하는가 하면, 그의 당대에 건립한 울진 봉평 신라비를 보면 아마 모즉지(牟卽智)로 등장한다 기억하거니와, 이 경우 '原'은 근원, 밑바탕이라고 할 때의 '밑'에 해당하는 표기임을 추찰한다. 


모즉지 동생이 바로 그 유명한 진흥왕 아비 입종(立宗)이거니와, 이런 그를 신라 당대 금석문에서는 '사부지徙夫知' 등으로 표기하거니와, 모르겠다, 입종은 툭하면 발기를 잘 해서 입종이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서 있는 사나이라는 의미를 담은 표기였던 것이다. 


이로써 볼 적에 철부(哲夫) 역시 분명 그에 해당하는 신라식 이름이 있었음은 틀림없다. 다만, 그 본래의 신라 이름을 역사는 잃어버리고 그에 대한 순한문 뜻 표기인 철부만이 남은 것이다. 혹 모르겠다. 그에 대한 신라 이름이 '똑띠 사내'였는지는....


신라사를 볼 적에 철부 원종 입종 황종 태종처럼 순한문식 뜻 뭉치 이름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하는 시점은 법흥왕~진흥왕 시대 무렵이다. 진흥왕 시대 금석문을 보면 중앙 관료 중에 순한문식 이름이 더러 보이는 것이 그 증거다. 한데 놀라운 점은 점점 확산하는 한문식 이름이 지배권력 상층부보다 중하위직에서 먼저 시작한 흔적을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 명단을 보면 '舜' 같은 글자를 응용한 이름이 보이거니와,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요순 임금의 순 임금에서 나온 발상이다. 


중국 고전 열풍이 신라 사회에서 언제 일었는가? 혹자는 저런 현상이 드러나기 시작한 시점을 착목해 법흥왕~진흥왕시대를 지목하겠지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깍지다. 저런 발상이 나타나는 시점은 이미 그 열풍이 반석에 오른 시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늘 얘기하듯이 봉평비 냉수리비에 보이는 한문은 이미 신라 사회가 한문을 자기네 문자로 체득한 상태에서 나온 고도의 문자 체계이며, 나아가 그 후대에 등장하는 이두는 문자 생활 초창기 흔적이 아니라 그것이 다시 몇 단계 진화를 거듭한 상태의 결과다. 


마찬가지로 법흥왕~진흥왕 시대 서서히 보이는 순한문식 이름은 그것을 가능케 한 중국 고전 학습 열풍이 이미 반석에 오른 시점이다. 아무리 늦잡아도 신라에는 실성~눌지왕 무렵에는 중국 고전을 학습하는 학교를 국가에서 운영했다. 이미 냉수리비 봉평비를 보면 유가 도가 고전만이 아니라 상군서와 한비자가 대표하는 병가 고전이 학습되었으며, 더구나 이들을 뒷받침하는 거대한 국가 통치 철학의 뿌리가 《주례(周禮)》임이 확연히 드러난다. 


언뜻 허심하게 보이는 철부(哲夫) 이름 하나로 오늘도 신라사 단편 소설 하나를 抄한다. 

  1. 연건동거사 2018.06.13 09:59 신고

    잘 읽었습니다.

법흥왕 18년(531), 신라에 상대등 관직이 처음 생겼을 적에 처음으로 임명된 인물. 


삼국사기 권 제4 신라본기 제4 법흥왕  :  18년(531) 봄 3월에 담당 관청에 명하여 제방을 수리하게 하였다. 여름 4월에 이찬 철부(哲夫)를 상대등(上大等)으로 삼아 나라의 일을 총괄하게 하였다. 상대등의 관직은 이때 처음 생겼으니, 지금[고려]의 재상(宰相)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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