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한시, 계절의 노래(71)


을축년 생일 아침(乙丑生朝) 


 송(宋) 이광(李光) / 김영문 選譯評



오늘 아침 생일을

어찌 크게 떠벌리랴


늙어가도 부모 은혜

보답하기 어렵네


오로지 해남향

한 조각 남아 있어


곧 바로 피워 올려

향기 가득 차게 하네


今朝生日豈須論, 老去難酬父母恩. 惟有海南香一瓣, 直敎薰炙遍乾坤.


요즘은 온갖 방식으로 생일을 기념한다. 내 어릴 적에는 꿈도 꾸지 못한 화려한 파티도 열린다. 내 고향은 가까운 곳에 사진관이 없는 궁벽한 시골이라 첫돌 사진조차 찍지 못한 형편이었으니 생일 케잌이나 치킨 파티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생일날이면 어머니께서 고봉 쌀밥에다 미역국을 차려주셨다. 게다가 평소에는 귀하기 이를 데 없던 계란찜에다 간고등어 구이까지 반찬으로 얹어주셨다. 객지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부터는 이런 호사조차 누릴 수 없었다. 생일이 언제 지나갔는지 몰랐다. 생일은 물론 내가 태어난 날이긴 하지만 기실 부모님을 기억해야 하는 날이다. 내 생명의 원천이며 내 삶의 바탕이기 때문이다. 이 시에 나오는 해남향은 매우 향기가 좋은 침향이다. 부모님을 위해 해남향을 피워 장수를 축원하고, 그 향기를 천지에 가득 넘치게 하고 있다. 청정하고 향기로운 생일 파티다. 



'漢詩 & 漢文&漢文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잎을 헤집는 물오리  (0) 2018.06.11
비류직하 삼천척  (0) 2018.06.11
내 생일에 떠올리는 엄마 아부지  (0) 2018.06.11
진흙 문 제비  (0) 2018.06.11
낭군 싣고 사라지는 저 강물이 싫어  (0) 2018.06.10
꽃봄 다 갔다 하지 말라  (1) 2018.06.09

삼국사기 신라 문무왕본기에 의하면 그 재위 4년(664)

"봄 정월에 김유신이 나이가 많음을 이유로 벼슬에서 물러날 것을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고 안석과 지팡이를 내려주었다"

고 하거니와, 이때 김유신은 70세가 되는 해였다.

예기 왕제王制편에 70세가 되면 치정致政한다 했거니와, 이는 정확히 그 예법이 문무왕 당시에 통용함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이 시대 신라는 예기가 대표하는 예법이 그대로 법률 혹은 관습으로 강제되고 있음을 본다.

한데 이에서 주목할 점이 있거니와 하필 김유신이 치정을 요청한 때가 그해 시작

시점인 정월인가 하는 대목이다.

고래로 70 치정에 관련해서는 70세가 되는 시점을 어디로 잡을 것이냐가 문제로 대두했다.

70세가 되는 그해 첫날인가 아니면 70세를 꽉 채운 그해 마지막인가 하는 논쟁이 그것이었다.

후자를 따르면 71세가 되기 전날이 퇴직 시점이 된다.

김유신을 볼 때 70세에 도달한 그 해 첫날에 치정을 결행하고자 했으니 당시 신라 사회 공무원 정년 퇴직은 69세였다.

또 하나 유의할 대목은 이때 신라 사회엔 아직 생일이 없다는 사실을 유추한다는 점이다.

김유신은 생일을 기점으로 따지지 않았다.

생일은 훨씬 후대에 생긴 통과의례다.

하기야 중국에서 생일은 당 현종 이륭기 때 비로소 생겼다.

허심한 기술 하나로도 역사는 이리 풍부해진다.

한데 막상 역사학계엔 헛소리만이 난무한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