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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28 16:29:45


제1차 일본우익교과서 사태가 한창이던 2001년 6월12에 송고한 연작 시리즈 중 하나이다. 4년이 흐른 지금, 물론 일부 구절에서 손 댈 곳이 없지는 않은 듯하나, 그 기본 논조를 나는 바꿀 생각이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하나도 없다. 


<역사이야기>-⑪가뭄과 역사교과서 왜곡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어느 한 쪽의 불행이 다른 쪽에는 기회나  도약의 발판이 되는 경우는 흔히 있다. 한국전쟁이 그랬다. 우리 민족에게는 최대의  비극이었으나 일본에는 전후 경제도약의 도화선이 됐다. 


    기상관측 이래 최악이라는 최근의 가뭄 사태를 보자. 가뭄때문에 겪는 농민들의 참상이야 말할 것도 없고 채소 값 등의 폭등으로 가계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하지만 가뭄 사태에 표정관리를 해야 할 곳도 있다. 양수기 보내기 운동이 펼쳐지면서 양수기 제조업체는 모르긴 해도 공장 돌리기에 정신이 없을 것이다.


    건설교통부와 수자원공사는 어떠할까. 이런 정부 부처 혹은 공기업은  댐  건설 같은 공사가 없으면 존재기반을 상실한다.


    환경보호운동이 우리 사회에서도 큰 시민운동 흐름을 형성하면서 이런 기관들은 나날이 그 활동공간이 위축되고 있다. 건설교통부와 수자원공사가 추진한 강원도 영월 동강댐 건설 계획 취소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의도성이 개입됐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이번 가뭄 사태를 계기로 이들 기관이 댐 건설 필요성을 부쩍 강조하기 시작했다. 덩달아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진 논과 저수지 바닥을 큼지막한 컬러 사진으로 싣고 있는 언론 또한 우리 나라가 유엔이 정한 물부족 국가임을 연일 상기시키고 있다.


    이런 것들을 보면 오직 댐 건설만이 가뭄 사태 해결을 위한 만병통치약인 것 같다. 이런 집요한 활동이 효과를 발휘했음인지 댐 건설에 대한 막연한 일반의 반대여론 또한 건설의 필요성 쪽으로 흘러가는 분위기가 뚜렷이 감지되고 있다. 


    이런 흐름을 알아챘음인지 환경보호운동에 밀려 수세를 면치 못하던 건설교통부는 전국에 용수공급 중심 중소형 댐 10여개를 건설하겠다고 나섰다. 여기에는  불황에 허덕이고 있는 건설업체도 당연히 가세하고 있다.


    어떤 사태를 계기로 위기 타개를 꾀하는 비슷한 현상을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사태에 대처하는 국내 역사학계에서 발견한다.


    이번 사태에 대해 국내 역사학계가 보이는 반응만을 보면 이들이 일제 식민강점에 저항하는 독립투사들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든다. 그만큼 격렬하다.


    여러 성명을 발표하고 학술대회를 개최하며 따로국밥처럼 따로 놀던 각종  역사관련 학회들이 한 자리에 모이기도 한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우리 역사교육이 엉망이 돼 버렸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빚어진  것이며  따라서 우리 일선 교육현장에서 역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국사를 모르면 뿌리가 없는  것이며 나라가 망한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대안을 내놓는다. 선택과목 전환을 앞둔 중.고교 국사를 필수화하며 대학에서도 국사를 다시 교양필수로 돌려야 한다.(물론  일본의  역사인식 전반에 대한 질타와 함께 국사교과서의 검인정 전환이라는 구호도 빠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일본 역사교과서는 차치하고 우리 국사교과서조차 무슨 내용이 어떻게 실려 있는지 쳐다보지도 않던 국내 역사학계는 왜 이런 주장들을 들고 나왔을까?


    우리 역사학계는 1973년 국사를 국정화하고 필수과목화한 박정희 유신정권 이래 80년대 중반 전두환 정권까지 국가의 비호 아래 호황을 누렸다. 이 기간에 비록  국사의 국정교과서화에 대한 비판이 없지는 않았으나 분명히 역사학은 이런  체제에서 다른 학문에 비해 눈에 띈 성장세를 이룩했다.


    40대 중반 이후 50대 중반에 걸친 현재 각 대학 역사학과 교수들을 보자.  이들의 경력을 살펴보면 아주 흥미로운 대목이 드러나는데 첫째 70년대부터 80년대 중반까지 강단에 진출했고, 둘째 석사학위 취득과 함께 전임이 된 경우가 아주 많다.


    유신 이래 전두환 정권 중반기까지 국사학 전공자들은 마치 입도선매되듯  석사학위를 받자마자 대학 강단에 나갔다. 이 무렵 20대 중.후반에 '교수님' 소리를  들은 역사학 전공자(고고학 포함)가 아주 많다. 


    하지만 이런 성장세도 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서서히 역사학 자체의 이상 비대성장에 따른 포화현상으로 한풀 꺾이더니 김영삼-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거세게 몰아친 학부제 열풍과 실용학문에 대한 수요폭발로 결정타를 맞게 된다.


    자기가 원하는 과목, 원하는 전공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학부제 아래서 '돈이 안되는' 국사학은 철학이나 수학, 물리, 화학 같은 다른 기초학문과 함께 학과의 존립기반마저 흔들리게 되는 처지로 전락했다.


    몇몇 대학에서는 지원자가 없어 과 자체가 없어지기도 했고 대학 당국에서도 구조조정의 칼날을 제일 먼저 사학과로 겨누고 있다. 이런 처참한 현실에서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사태가 재발했다. 


    우리 역사교육 강화와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은 실은 관계가 없다. 우리가  역사교육을 강화한다 해서 일본에서 역사교과서가 왜곡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번 사태에 우리 역사교육 강화라는 어울리지 않는 구호가 들어갔다.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사태가 본질을 넘어 우리 역사교육 강화라는 국내 역사학계의 이기주의라는 엉뚱한 곳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한 증거이다.


    역사학계가 말하는 역사학의 위기는 일각에서 지적하듯 실상 국가의 비호  아래 안주한 역사학자들의 위기일 뿐이다. 

    요즘 역사학은 학계의 자체 진단과는 아주 달리 어느 때보다 극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각 대형서점 인문과학 베스트셀러 목록에 역사학 관련 서적이 대종을  이루고 각종 TV 사극이 활개치는 현실이 역사학의 위기가 아님을 반증한다. 


    댐 건설이 가뭄의 만병통치약이 아니듯이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에 우리  역사교육 강화가 처방이 될 수 없다. 진단이 정확해야 바른 처방이 나온다.

    taeshi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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