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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권 제48(열전 제8) 설씨녀 열전 : 설씨녀(薛氏女)는 [경주] 율리(栗里)의 평민 집의 여자였다. 비록 빈한하고 외로운 집안이었으나 용모가 단정하고 뜻과 행실이 잘 닦아졌다. 보는 사람들이 그 고움을 흠모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나 감히 가까이 하지 못하였다. 진평왕 때 그 아버지는 나이가 많았으나 정곡(正谷)으로 국방을 지키는 수자리 당번을 가야 하였는데 그 딸은 아버지가 병으로 쇠약하여졌으므로 차마 멀리 보낼 수 없었고 또 자신은 여자의 몸이라서 아버지 대신 갈 수도 없었으므로 한갓 근심과 고민을 하고 있었다. 사량부 소년 가실(嘉實)은 비록 집이 대단히 가난하였으나 뜻을 키움이 곧은 남자였다. 일찍이 설씨를 좋아하였으나 감히 말을 하지 못하다가 아버지가 늙은 나이에 군대에 나가야 함을 설씨가 걱정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드디어 설씨에게 청하여 말하였다.“저는 비록 나약한 사람이지만 일찍이 뜻과 기개를 자부하였습니다. 원컨대 이 몸으로 아버지의 일을 대신케 하여 주시오!”설씨가 대단히 기뻐하여 들어가 아버지에게 이를 고하니 아버지가 그를 불러 보고 말하였다.“듣건대 이 늙은이가 가야 할 일을 그대가 대신하여 주겠다 하니 기쁘면서도 두려움을 금할 수 없소! 보답할 바를 생각하여 보니, 만약 그대가 우리 딸이 어리석고 가난하다고 버리지 않는다면 어린 딸자식을 주어 그대의 수발을 받들도록 하겠소.”가실이 두 번 절을 하고 말하기를 “감히 바랄 수는 없었어도 이는 저의 소원입니다.” 하였다. 이에 가실이 물러가 혼인 날을 청하니 설씨가 말하였다.“혼인은 인간의 큰 일인데 갑작스럽게 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이미 마음으로 허락하였으니 이는 죽어도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바라건대 그대가 수자리에 나갔다가 교대하여 돌아온 후에 날을 잡아 예를 올려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이에 거울을 둘로 쪼개어 각각 한 쪽씩 갖고 “이는 신표로 삼는 것이니 후일 합쳐 봅시다!” 하였다. 가실이 말 한 필을 가지고 있었는데 설씨에게 말하였다.“이는 천하의 좋은 말이니 후에 반드시 쓰임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 내가 떠나면 이를 기를 사람이 없으니 청컨대 이를 두고 쓰시오!”드디어 작별을 하고 떠났다. 그런데 마침 나라에 변고가 있어 다른 사람으로 교대를 시키지 못하여 어언 6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못하였다. 아버지가 딸에게 말하기를 “처음에 3년으로 기약을 하였는데 지금 이미 그 기한이 넘었으니 다른 집에 시집을 가야 하겠다.” 하니 설씨가 말하였다. “지난 번에 아버지를 편안히 하여 드리기 위해 가실과 굳게 약속하였습니다. 가실이 이를 믿고 군대에 나가 몇 년동안 굶주림과 추위에 고생이 심할 것이고, 더구나 적지에 가까이 근무함에 손에서 무기를 놓지 못하여 마치 호랑이 입 앞에 가까이 있는 것 같아 항상 물릴까 걱정할 것인데 신의를 버리고 한 말을 지키지 않는다면 어찌 인정이리요? 끝내 아버지 명을 좇을 수 없으니 청컨대 다시는 그런 말을 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그 아버지는 늙고 늙어 그 딸이 장성하였는데도 짝을 짓지 못하였다 하여 억지로 시집을 보내려고 동네 사람과 몰래 혼인을 약속하였다. 결혼 날이 되자 그 사람을 끌어들이니 설씨가 굳게 거절하여 몰래 도망을 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마구간에 가서 가실이 남겨두고 간 말을 쳐다보면서 크게 탄식하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때 마침 가실이 교대되어 왔다. 모습이 마른 나무처럼 야위었고 옷이 남루하여 집안 사람이 알아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라고 하였다. 가실이 앞에 나아가 깨진 거울 한 쪽을 던지니 설씨가 이를 주워 들고 흐느껴 울었다. 아버지와 집안 사람이 기뻐하여 어쩔 줄 몰랐다. 드디어 후일 서로 함께 결혼을 언약하여 해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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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 권 제48(열전 제8) 도미 열전 : 도미(都彌)는 백제 사람이다. 비록 호적에 편입[編戶]된 하찮은 백성이었지만 자못 의리를 알았다. 그의 아내는 아름답고 예뻤으며 또한 절조있는 행실을 하여 당시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다. 개루왕(蓋婁王)이 이를 듣고 도미를 불러 더불어 말하기를 “대저 부인의 덕은 비록 지조를 지킴을 앞세우지만 만약 그윽하고 어두우며 사람이 없는 곳에서 교묘한 말로 유혹하면 능히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 드물다.” 하니, 대답하였다.“무릇 사람의 정이란 헤아리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아내와 같은 사람은 비록 죽더라도 두 마음을 갖지 않을 것입니다.”왕이 이를 시험하여 보기 위하여 도미에게 일을 시켜 잡아두고는 한 명의 가까운 신하로 하여금 거짓으로 왕의 의복을 입고 말을 타고 밤에 그 집에 가게 하였다. 사람을 시켜 왕이 오셨다고 먼저 알렸다. 그 부인에게 말하였다.“나는 오래 전부터 네가 예쁘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도미와 내기를 걸어서 이겼다. 내일 너를 들여 궁인(宮人)으로 삼기로 하였다. 지금부터 네 몸은 내것이다.”드디어 난행을 하려 하자 부인이 말하였다.“국왕께서는 헛말을 하지 않으실 것이니 제가 어찌 따르지 않으리요! 청컨대 대왕께서는 먼저 방에 들어가소서. 제가 옷을 갈아 입고 들어오겠습니다.”물러나 계집 종을 번거롭게 치장시켜 바쳤다. 왕이 후에 속임을 당한 것을 알고는 크게 노하여 도미를 왕을 속인 죄로 처벌하여 두 눈알을 빼고 사람을 시켜 끌어내 작은 배에 태워 강에 띄웠다. 그리고 나서 그 아내를 끌어다가 강제로 음행을 하고자 하니, 부인이 말하였다.“지금 낭군을 이미 잃었으니 홀로 남은 이 한 몸을 스스로 지킬 수가 없습니다. 하물며 왕을 모시는 일이라면 어찌 감히 어길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월경 중이라서 온 몸이 더러우니 청컨대 다음 날 목욕을 하고 오겠습니다.”왕이 이를 믿고 허락하였다. 부인이 곧바로 도망쳐 강어귀에 갔으나 건널 수가 없었다. 하늘을 부르며 통곡하니 문득 외로운 배가 물결을 따라 이르렀으므로 이를 타고 천성도(泉城島)에 다달아 남편을 만났는데 아직 죽지 않았었다. 풀뿌리를 캐 씹어 먹으며 함께 배를 타고 고구려의 산산(山) 아래에 이르니 고구려 사람들이 불쌍히 여겼다. 옷과 음식을 구걸하며 구차히 살아 나그네로 일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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