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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불알..지증왕은 이 황소보다 거시기가 컸다>


오늘 이 자리에 선 나는 당돌하지만, 이 《화랑세기》 진위 논쟁 한 축이다. 1989년과 1995년에 두 종류가 알려진 《화랑세기》가 김대문의 그 《화랑세기》를 베낀 데 토대를 둔 것이라는 이른바 진본론에 나는 섰다. 그런 점에서 오늘 이 자리에서 나는 이 《화랑세기》 진위 논쟁을 공정하게 평가할 만한 인물은 되지 못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 둔다. 그에 따라 내가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이와 관련되는 언급은 자연히 위서론僞書論의 논리적 근거를 옥쇄玉碎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내가 웹상에서 주로 사용하는 이름은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지도로 1자5치’이며 다른 하나는 ‘모란씨 서되’다. 전자는 《삼국유사》가 전하는 신라 지증왕의 陰莖 길이를 말한다. 이 자(尺)라는 개념이 주척周尺이니 당척唐尺이니 영조척營造尺이니 해서 시대와 공간을 따라 다르지만, 그 근본은 남자 성인 한 뼘이 기준이라는 점이다. 대체로 22~33센티미터 정도로 보아 대과가 없을 것이며, 대략 30센티미터로 잡아도 지증왕은 음경이 무려 45센티미터에 달하는 셈이다. 이 정도면 사람이 아니라 말이라 해야 한다. 그렇다고 지증왕의 실제 음경이 이만했느냐 하면, 나는 그렇지 않았다고 본다.  


우리에게 홀연히 주어진 《화랑세기》는 화랑 중의 화랑, 대표화랑인 풍월주風月主 역대 32명에 대한 전기다. 하지만 단순히 이들 풍월주 전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둘러싼 당대 新羅사회의 다양한 양상을 노출한다. 이것이 김대문의 《화랑세기》를 이은 이른바 진본으로 판정난다면(물론 나는 결판났다고 생각하지만) 신라사는 물론이려니와 한국 고대사 전반은 수술이 불가피하다. 그만큼 우리의 상식을 뛰어넘는 내용으로 가득 찼다. 


그 중 하나가 지증왕 음경 얘기가 나온 김에 이와 관련한 《화랑세기》의 언급 하나를 소개하기로 한다. 이에 의하면 11번째 풍월주는 하종夏宗이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도 새주璽主인 미실美室과 세종世宗 사이에서 난 아들로 나오는 그 인물이다. 이 夏宗 傳에 의하면 묘도妙道라는 법흥왕 후궁 이야기가 엿보인다. 이 妙道라는 이름이 벌써 심상치 않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妙道가 점점 자라매 “帝(법흥제. 법흥왕)가 약속한 대로 (묘도를 후궁으로 맞아들여) 섹스[幸]를 했지만, 협착불능칭(幺窄不能稱)한 데다, 帝는 또한 太陽이라 故로 妙道는 당석(當夕)할 때마다 그것을 괴로워하니 帝가 그다지 아끼지 않았다”고 했다. 


<모든 남자는 대물을 꿈꾼다> 


이 기술의 묘미는 ‘요착불능칭’(幺窄不能稱)에 있으니, 이를 이종욱은 “작고 좁아 맞을 수 없었고”라고 옮겼거니와, 비루鄙陋하다고 생각했음인지, 무엇이 작고 좁은지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妙道의 陰莖이 작고 좁았다는 뜻이니, 이 경우 칭(稱)은 《이아爾雅》 석고釋詁에 보이는 “稱, 好也”로 보아 사랑하다고 보거나, 《주례周禮》 동관고공기冬官考工記 중 여인輿人에 대한 기술 “爲車輪崇車廣衡長, 參如一謂之參稱”에 대한 註인 “稱, 猶等也”로 보아, 묘도를 좋아하지 않았다거나, 아니면 법흥왕의 陰莖 크기에 상응하는 만큼 妙道의 陰莖이 크지 않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화랑세기》는 밤마다 자신을 견디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妙道에 실증이 나서는 왕 자신이 아끼는 신하 미진부未珍夫에게 내려주어 아내를 삼게 했다고 한다. 《화랑세기》를 계속 따라가면 이렇게 해서 같이 살게 된 妙道와 未珍夫는 알콩달콩 잘 살았다 하며, 이 사이에서 貴女를 낳으니 그가 바로 요물 美室이라고 한다. 


이런 기술을 볼 때마다 나는 妙道가 의아스럽지 않을 수 없다. 분명 《화랑세기》에서는 妙道가 幺窄(요착)하여 밤이면 밤마다 괴로워했다고 하지만, 그 고통의 원인이 妙道의 구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은 법흥왕의 지나치게 비대한 陰莖에 있었던 것이다. 아니라면, 법흥왕과는 그렇게 괴로워 죽겠다고 아우성치던 妙道가 어찌 未珍夫와는 그리도 금슬 좋은 알콩달콩한 삶을 끌어갔겠는가? 아니, 그렇지도 않다면, 未珍夫는 당시 신라 성인 남성보다 陰莖이 작았을 수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이에다가 그다지 혐의를 주고픈 생각은 없다. 


내가 처음에 《화랑세기》 이 대목을 접하고는 퍼뜩 지증왕을 떠올렸다. 법흥왕은 지증왕의 元子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아닌가 생각한 것이다. 이에 비뇨기과 전문은 아니지만, 평소 친분이 있는 어떤 서울대 의대 교수에게 “아버지 ○지가 크면 그 아들 ○지도 클까요?”라고 물은 기억이 있다. 한데 이 교수의 답변이 걸작이었다. 


<대물을 향하여!!!>


“아버지가 큰 데 아들이 작다면 그거야말로 기네스북 감입니다.” 


이것이 내가 본 《화랑세기》가 폭로한 新羅史像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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