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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에 《손자병법》이라면 수십 종이 나와 있다. 해방 이후를 기준으로 해서 절판된 것까지 합치면 족히 백종은 넘으리라. 이 정도로 시대를 막론하고 줄곧 스테디셀러 위치를 양보하지 않은 고전은 드물다. 동양고전 중에선 《논어》나 《노자》보다 외려 번역 종수가 많을지도 모르겠다. 읽는 재미야 《장자》가 쏠쏠하나, 분량이 방대한 까닭에 생각보다 번역 종수가 많지는 않다.

 《손자병법》이 《논어》와 《노자》에 비견하는 고전 반열에 오른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분량 문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그리 도탑지 않은 단행본 혹은 문고본 1권 분량으로도 너끈한 까닭이다. 

단군조선 이래 이런 책은 없었다. 《손자병법》은 전통적으로 군사학, 혹은 전쟁학 고전이라 해서 군인 혹은 그와 비슷한 직업에 종사하는 자들에게는 필독서로 꼽히는 데다, 나아가 이에서 말하는 군사전략은 실은 인간관계 복사판이라 처세 경영술의 고전으로 모습을 바꾸니, 이런 고전은 없다. 고전의 자양분은 텍스트 변화의 다양성이다. 물론 그것이 얼마나 제대로 읽히느냐 하는 소위 열독율과는 다른 차원이다. 

이에서 우리는 선택의 고민을 마주한다. 저 많은 《손자병법》 번역본 중 어떤 것을 골라야는가 골이 지끈지끈 한다. 선택은 고민을 동반하나, 순간의 문제다. 하지만 막상 시중에 유통하는 역본 중 상당수는 족보 불명이라 번역 원전에 대한 소개도 없고 더구나 원문은 교감할 생각도 안한 일이 많다. 

그런 역본 중에서도 사진으로 첨부하는 홍원식 역 《손자병법대전》(일중사, 2000)을 추천하고 싶다. 보다시피 이 역본은 하드카바인데다가, 편집 역시 2000년대 책답지 않게 시대에 아주 동떨어진 구닥다리 모습을 보인다. 그에 더해 소위 학술성을 매우 강조하는 바람에 한문 원전이 난무하고, 소위 일반에는 필요치 않을지도 모르는 설명이 지나치리만치 번다함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까닭에 이 역본이야말로 시중에 선보인 《손자병법》 중에서는 가장 믿을 만한 판본이라고 본다. 역자 서문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치고 《孫子兵法》 글귀 하나 돌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孫子兵法》에 대한 연구서가 거의 없는 형편"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던 차에 중국군사과학출판사(中國軍事科學出版社)에서 《손자교석(孫子校釋)》이라는 좋은 책을 出版한 것을 보고, 이것을 잘 번역하여 한의계(韓醫界·한의학-인용자)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은 물론, 일반인에게도 손자의 깊은 사상을 접할 수 있게 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이 번역본 출판을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에 걸맞게 첨부사진 본문에서 보듯이 우선 원문과 해당 한글 번역을 제시한 다음, 역대 판본별 차이점과 그 타당성 여부를 판단한 교감기인 교기(校記)를 하고, 이어 원문 이해에 보탬 혹은 보강자료를 주석(注釋)에서 풍부히 제공한다. 

《손자병법》 역사에서 지난 세기 1972년 4월, 山東省 임기현(臨沂県) 은작산(銀雀山) 한묘군(漢墓群)에서 발굴한 전한(前漢)시대 무덤이 출토한 죽간본(竹簡本) 《손자병법》 은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이를 통해 적어도 전한시대에 통용한 손자 판본을 알게 되었으며, 나아가 현재 전하는 판본과의 여러 차이점도 파악하게 되었다. 

홍원식의 이 역본은 은작산 한간본을 포함한 역대 거의 모든 판본을 비교하고, 이를 통해 소위 정본화를 시도한다. 

이 역본은 이런 장점에도, 보다시피 디자인과 판본 등이 시대 분위기에 맞지 않아 시중에선 밀려났을 것이다. 

학구성을 띠고 《손자병법》을 공부하려는 사람들은 이 판본이 필수교재다. 그거 아니라 해도, 이를 좀 더 깊이 파고들고자 하는 사람들한테도 강력히 추천한다. 

한데 그 역자가 왜 한의사인가? 역자 소개에 의하면 본관 풍산인 홍원식은 1938년 원주 출생으로 윈주고와 경희대학교 한의과를 나와 1971년 이래 경희대 한의학과 교수로 봉직했으며, 각종 한의학 고전을 번역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왜 병법까지 손을 댔을까? "이것을 잘 번역하여 한의계(韓醫界)에 적을 두고 있는 사람"들한테 보탬이 되고자 했다는 서문 언급에서 보듯이 손자병법은 한의학 고전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는 훗날 별도 글을 탈초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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