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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가 끝날 무렵, 해외특례입학 동기놈이 말하기를, 긴 연휴 삼식이 생활 눈치 보이니 어디론가 데려가 달란다. 그래 나 역시 가을이라 그런지, 아니면 그냥 이래저래 싱숭생숭 드글드글 머리나 식히자 하고는 이럴 때면 언제나 그랬듯 임진강변 남안을 경주하는 자유로를 따라 서울과 임진각까지 왕복했더랬다.

이 즈음 임진강은 가을 교향악을 빚어내거니와, 비낀 역광으로 비치는 갈대와 뻘빛은 경이 그 자체다. 오가며 이런저런 감수성이 언제나 예민한 특례입학더러 내가 그랬다..그래도 넌 복받은 놈이다. 아버지 잘 만나 이만큼이라도 살지 않냐? 뭐 매양 듣는 소리라 소 귓구멍에 틀어대는 워낭 소리라 여기는지, 듣는둥마는둥 카톡질만 일삼는다. 

올라 내려다 보니, 임진각 아래로는 온통 황금 물결이다. 아마도 단군조선 이래 가장 무더웠을 이번 여름, 그 핫한 애트머스피어랑 그 속에서 키운 푸르름을 함께한 나락은 어느새 조락을 앞두고 황달이다. 그래 듣자니 설악산은 이미 단풍이 들었다는데 이 평지 나락이 그에 뒤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서울로 돌아오는 시간은 부러 일몰 즈음으로 맞췄다. 강바람 바닷바람 부닥치는 곳이라선지 임진 한 두 강 합류하는 지점 야산에 자리한 오두산전망대는 바람이 무척이나 차다. 반바지 입고 나타난 특례입학은 춥다고 전망대 안으로 스스르 사라진다.

강인지 바다인지 구분이 쉽지 않은 이 광활한 물 건너 저편, 이리저리 연무 피어나는 북녁 산하를 바라보랴 하며 연신 셔터 눌러대다 보니 이윽고 하루 반나절 넘게 그 무거운 불덩이 지고 버틴 햇덩어리가 마침내 제풀에 지쳐 나락으로 급전직하 추락한다.

내일 이 자리 반대편에서 내 너를 맞을 순 없겠지만 혹 모를 일이다. 남산 너머로 너를 맞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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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계절의 노래(101)


낙유원에 올라(登樂遊原)


 당 이상은(李商隱) / 김영문 選譯評 


저녁 무렵 마음이

울적하여


수레 몰아 낙유원에

올라가네


석양은 무한히

아름다우나


다만 황혼이

가까워오네


向晩意不適, 驅車登古原. 夕陽無限好, 只是近黃昏.


낙유원은 중국 당나라 장안성(長安城) 남쪽 8리 지점에 있던 유명 관광지다. 한나라 때 조성되었고 그 일대에서 가장 전망이 좋아 도성 남녀가 즐겨 찾는 산보 코스였다. 우리 서울로 치면 딱 남산에 해당한다. 만당(晩唐) 대표 시인 이상은은 저녁이 가까워올 무렵 마음이 울적하여 수레를 타고 이 유서 깊은 전망대에 올랐다. 지는 해는 마지막 햇살로 서편 하늘을 찬란하게 물들였다. 그는 울적한 마음을 풀고자 낙유원에 올랐지만 찬란한 노을을 바라보며 오히려 황혼의 비애에 젖는다. 붉게 물든 황혼이 지나면 캄캄한 암흑이 다가온다. 암흑은 죽음이나 멸망을 비유한다. 이상은은 대체로 45세 무렵에 세상을 떠났으므로 노년에 이르러 죽음을 예감한 것이 아니다. 그럼 이 시에서 드러나는 비애감은 무엇일까? 불우하게 말단 관직을 전전하며 청춘을 허비한 자신에 대해 슬픔을 느꼈을 수 있다. 또 장엄한 대자연을 마주한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허무감일 수도 있다. 이뿐일까? 《예기(禮記)》 악기(樂記)에서는 “망국의 음악은 슬프고도 시름 겨워서, 그 백성이 곤궁하다(亡國之音哀以思, 其民困)”고 했다. 이상은이 세상을 떠난 후 겨우 50년만에 당나라는 멸망한다. 이상은의 시에는 만당의 비애롭고 유미적인 기풍이 배어 있다. 시인은 개인의 감정을 토로하지만 그 감정에는 시대의 풍상과 기미가 스며들기 마련이다. 시인이 시대의 풍향계란 말은 이상은에게도 잘 들어맞는다 할 수 있다.


한반도 중심부를 관통하는 두 젖줄 한강과 임진강이 각기 다른 굴곡한 삶을 살다 마침내 합류하고는 손잡고 서해로 흘러가는 두물머리 남안에 위치하는 파주 오두산 전망대 중에서도 서울에서 파주로 뻗은 자유로 방면을 쳐다본 장면이다. 저 뒤쪽에서 흘러내린 임진강이 왼편 사진 뒤로 감돌아 한강 물길과 마주친다. 자유로가 달리는 화면 오른편이 남한이요, 그 반대편 강 너머가 북한이다. 불과 그저께 풍광이나, 그새 또 달라져, 아마 저 사쿠라는 비듬 같은 꽃잎을 흩날리고 있으리라. 



현무암 협곡과 단애를 뒤지며 연천을 헤집고 다니다가 자유로를 따라 서울로 귀환하면서 문득 오두산 전망대에 서고 싶어, 차를 몰았다. 확실히 해는 길어져, 다섯시 무렵인데도 저 서쪽 하늘 중앙쯤에 해가 걸터앉았다. 왼편 허리춤에서 감싸고 나온 한강이 오른편 화면 뒤로 숨은 임진강물과 합류해 이제는 강이 아니라 거대한 육지 호수를 연상케 하는 굵은 물줄기 되어 서해로 흘러간다. 


이 전망대에는 두어번 정상에 섰거니와, 그때마다 그 화면 중앙 왼편을 튀어나온 곶 끝터머리 저 나무 한 그루인지 두 그루가 무척이나 궁금했으니, 이젠 그 정체를 따지지 않고, 저것이 주는 묘한 풍광만 잔서리로 남았다. 왼편이 남한이요, 오른편 강너머가 북한일 터. 요즘 이곳은 남북관계 진정에 따라 풍광이 달라져, 그것이 한껏 대결로 치달을 무렵이면 어김없이 체제를 선전하는 확성기 소리 요란하다. 



아마 국방부나 혹은 그 비스무리한 기관에서 설치했을 법한 망원경 서다섯 대가 강 너머 북한을 조준한다. 이곳이 군사 접경지대임을 보여주고자 부러 저 망원경을 포착한 장면을 담아봤다. 확실히 해는 서쪽으로 진다는 금언은 오늘도 어김이 없어, 저편이 분명 강화도 인근 서해임을 직감하거니와, 그러다 문득 이곳에서 일몰을 지켜본 적 없음을 한탄하고는 오늘은 기필코 그 장면을 담아보리라 작심한다. 


강바람인지 바닷바람인지 혹은 산바람인지 분간이 쉽지 않은 바람이 조금은 거세진다. 솜털 같은 바람이 서서히 찬기를 뿜는다. 얇은 잠바 죽지 하나 걸쳤을 뿐인데, 이럴 줄 알았더라면, 좀 툭진 잠바 하나 여분으로 장만할 걸 그랬다는 후회가 밀려든다. 한시간 혹은 한시간 반가량이 지나 6시30분이 되니 전망대가 문을 닫는다. 마지막 관람객들이 나오고, 이곳에서 일하는 민간인들도 하나둘 주차장에서 차를 빼고는 사라지더니, 돌아보니 나와 내가 몰고다니는 똥차만 홀로 남았더라. 저 밑 강변을 따라 늘어선 군 감시초소가 눈에 더 잘 들어오기 시작하는 무렵이다. 쫓아내지는 않으려나? 다행히 인기척이 없다. 기다리자. 낙조를. 



확실히 낙조다. 렌즈가 빨아들인 사진빨이 불그레죽죽해지기 시작한다. 아마 해가 지는 저쪽은 북녘일 듯. 셔터 속도가 연신 빨라져, 심장병 환자 심장 띄듯 한다. 



300미리 렌즈로 바꿔 끼웠다. 부러 저 나무를 한쪽 귀퉁이에 담은 장면을 포착해 본다. 따로 당겨 찍지는 않았으되, 확실히 저 나무는 두 그루이며, 군 초소다. 


낙조는 지구 아니 태양계 아니 우주가 탄생한 이래 그랬을 것이듯이 언제나 장관을 선물한다. 그것이 장관인 이유는 하루 중 아주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벌건 대낮과 같다면 저 장면을 보고 어느 누가 찬탄하며, 저 장면을 보고 어느 누가 날 버리고 도망친 30년 전 여인을 떠올리며, 저 장면을 보고는 어느 누가 지구를 불질러 버리고 싶겠으며, 저 장면을 보고는 나도 월경하고 싶다고 외치겠는가?



마침내 헐떡이던 소 혓바닥 모양, 해가 반토막 난다. 어둠이 눈에 띄게 깔리기 시작한다. 북녘이 맞긴 하나보다. 게스츠레한 능선들이 뚜렷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순간, 저 산하엔 나무 흔적이 쉽사리 드러나지 않으니 말이다. 



저쪽엔 접근이 되려나? 그냥 궁금증을 물리고 말았지만, 언젠간 저 곳에 서 보고 싶다. 



발길을 돌리고 나서려는데 문득 아쉬어 뒤를 쳐다봤다. 조만식이 손짓한다. 잘 가그레이, 또 보제이. 나도 화답했다. 또 봅시다 영감. 한데 어찌하여 영감이 예 섰소? 아직 못다한 건준의 꿈이 있소? 영감이 꿈꾸며 '준비'한 '건국'은 무엇이었소?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었소? 그나저나 영감 요새 남한에 나타나면 환영은 썩 받지는 못할 듯 하오. 건국이 아니라 정부수립이라 하니 말이오. 캬캬캬. 


영감한테 손짓하고는 돌아서 차를 몰아 전망대를 내려오는데, 중턱 산길에 턱하니 바리케이트가 쳐졌다. 아까는 보이지 않던 젊은 군인 두 마리가 초소에서 지킨다. 나도 황당하고 지도 황당한 모양이다. 넌 뭐냐? 아마 같은 생각을 했으리라. 아마도 저짝에서는 이 놈 뭐하다 지금에서야 끄질러 내려 오느냐 하는 표정이다. 그 옛날 같으면 나는 붙잡혀 가서 취조 당하곤 카메라 압수당했을지도 모른다. 


차를 몰아 나오면서 내내 이젠 갈 때가 되었나 하고 생각해 본다. 저 강너머 땅을 헤집고 나아가 평안도며 함경도로, 그리고 내가 그토록 만나고 싶은 마운령 황초령에 서고 싶은 욕망이 스멀스멀 젊은날 성욕처럼 솟구치기 시작했다. 아마 이 생활 마지막 현장은 북녘 산하가 되지 않을까 상상하면서.... 


 


 


 

Sunset over Tumuli, Gyeongju, Korea
Photo by Seyun 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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