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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곡농경8

잡곡과 도작이 합쳐져 혼합농경이 탄생한 한반도 서북부 한반도 서북부는 전혀 별개의 전통이었던 잡곡농경과 도작농경의 전통이 합쳐져 혼합농경으로 거듭난 지역에 해당한다. 도작은 지금보다 평균기온이 높던 시절에도 만주일대까지 북상했을 리가 없었다고 본다. 세형동검문화권과 통일신라의 북쪽 경계선은당시의 도작을 포함한 혼합농경의 한계선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보다 북쪽은? 도작없는 잡곡농경지대 아니었을까. 그렇게 보면 발해만을 건넌 도작과 발해만을 따라 우회한 잡곡 농경이 만나 합쳐진 곳이 한반도 서북부 일대가 아닐수 없다. 이 지역에서는 도작이 다른 농경에 비해 압도적 우세를 누리지 못하고 수전이 있었어도 그 비율은 그다지 높지 않았을 것이다. *** previous article ***  한국과 일본의 진령회하선 2024. 5. 20.
중국의 농경 양식을 거울처럼 비추는 요하 이동 위 그림을 보자. 근간 2019년인가 중국 쪽 고고학자들이 보고한 도작, 혼합, 잡곡 문명 유적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대략 초록색과 빨간색 점선 사이 지역이 도작과 잡곡이 함께 일어나는 혼합농경 유적지에 해당한다.  요하유역 인근을 보면, 북쪽은 모두 시뻘건 잡곡농경유적이되 요동반도 남쪽에 혼합농경과 도작 농경의 유적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이 유적들이 산동반도 쪽에서 건너온 혼합 농경과 도작농경 유적들로서 이 흐름이 한반도로 들어와 평양 인근과 한강 유역 일대에서 북쪽에서 내려와 있던 잡곡 농경과 만나 한반도의 혼합농경이 탄생한 다음이 혼합농경이 한반도 남부와 일본열도까지 들어갔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서 쌀과 잡곡은 별개의 기원으로 이 둘이 만나 완성된 혼합농경이 된 곳은 한반도 북부와 중부.. 2024. 4. 30.
한국사와 중국 남북조 중국사에서 강남으로 이주가 본격 시작된 것은 동진 때부터로 안다. 그리고 강남의 경제력이 화북을 압도하기 시작한 것은 남송 때부터로 알고 있다. 이 과정에서 많은 화북지역 사람이 남쪽으로 이주했을 것이다. 잘 알다시피 화북은 잡곡농경, 화남은 도작농경 지역이며 그 사이인 회하 유역이 혼합농경지대에 해당한다. 동진과 남송이 강남으로 옮겨 간 후 다시는 화북과 통합되지 않고 동진과 남송이 계속 유지되고, 그 후 동진과 남송이 북벌과 고토회복을 계속 꿈꾸며 살았다고 치자. 그게 한국사다. 무슨 말인고 하니, 원래 한국사는 잡곡농경지역과 혼합농경지역이 병존하고 있었는데 삼국통일 과정에서 잡곡농경지역이 이민족에게 함몰되어 버린 상태가 되었다 이거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다시는 두 지역은 합쳐지지 않고남쪽 혼합농경.. 2024. 4. 30.
부여 고구려 문명의 기초로서의 잡곡 농경 우리는 한국사에서 도작 이전의 잡곡농경을 매우 저평가하면서도부여와 고구려 문명이 한반도 남부보다 빨리 일어났다는 점에는 이의를 달지 않는다. 이것 모순이 아닌가? 부여 고구려 문명은 고구려의 남천 이전에는 도작에 기반한 적이 없으며남천 이후에도 한강유역을 획득하기 전에는도작이라는 것의 맛을 제대로 보았을까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 그렇다면-. 결국 부여 고구려 문명은 남만주-한반도 북부 일대의 잡곡농경에 기반한 문명일진대, 이는 사실 쌀만 제대로 된 곡식으로 보는 우리 입장에서는 생산성에 의문을 가질지 모르나, 사실 찬란한 황하문명도 바로 조, 수수, 기장에 기반한 잡곡문명이었다는 점을 하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 본다. 여기 여러 번 쓴 것 같지만, 도작문명과는 별개의 잡곡문명권을 도작문명사 만큼이나.. 2024. 4. 29.
잡곡농경에 기운 불어 넣기 한국사에서 잡곡농경을 무슨 화전민 농경처럼 보게된 것은 일본 탓이 크다. 일본에서는 대륙으로부터 도작과 잡곡이 거의 동시에 전해졌고, 위도가 우리보다 낮은 탓에 도작 비중도 우리보다 훨씬 높았다. 따라서 마치 청동기와 철기가 비슷한 시기에 전해져 청동기라는 구분이 일본사에서는 쉽지 않았듯이잡곡 농경 역시 도작과 비슷한 시기에 한꺼번에 전해져 별도 잡곡농경문명을 설정하기 곤란한 것이 일본사다. 물론 최근에 초보적 식물재배가 조몽시대에 이미 있었다는 것이 일본 측 주장이지만, 우리가 말하는 잡곡농경이란 그런 초보적 수준이 아니라황하문명을 낳은 것과 같은 본격적인 것으로서의 잡곡농경을 말한다. 한국도 이러한 일본 시각 영향을 받아 도작 이전 잡곡농경을 원시적이고 초보적인 수준으로 시각이 있는데, 최근 나오는 .. 2024. 4. 29.
잡곡은 조, 피, 수수? 흔히 고등학교 국사교과서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잡곡 하면 조, 피, 수수라고 외운 기억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도작 농경 이전 잡곡 농경이라고 하면 우선 보리는 빼야 한다. 보리를 잡곡에 자꾸 집어 넣는데 보리는 도작 농경 이전 잡곡 농경에서 주류로 부상한 적이 없는 곡물이다. 다음으로 조, 피, 수수라고 하는 부분.밥 해서 먹어는 보셨는지? 잡곡농경을 해서 먹고 산 조상님들이라고 해서 아무거나 줏어 먹었다고 생각하면 천만의 말씀이다. 먹을 만하고 맛이 있어야 먹을 거 아닌가? 예를 들어 귀리. 이거는 줘도 안 먹었을 가능성이 크다. 고려시대인가 처음 들어왔다는 귀리가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사라지다시피 한 이유는 딱 하나다.맛이 없어서. 조, 피, 수수할 때 피? 이걸 많이 먹었을 리가 없다.지금도 몸에 좋.. 2024. 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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