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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고마비(天高馬肥). 말 그대로 가을은 청명한 날씨와 함께 오곡백과가 풍성한 수확의 계절임을 압축시켜 전한다. 하지만 원래 이 말 속에는 말을 타고 중국을 끊임없이 노략질했던 북방 유목민, 특히 흉노(匈奴)의 음산한 바람이 분다. 


몽골고원


이 말이 등장하는 가장 오랜 문헌은 한(漢)나라 반고(班固.AD 32∼92년)가 당대 역사를 기록한 《한서(漢書)》의 흉노전(匈奴傳)과 같은 책 조충국전(趙充國傳). 이곳에서 반고는 '천(天)'자 대신에 가을 추(秋)를 사용해 추고마비(秋高馬肥)라는 말을 쓰거니와 글자 그대로 가을 하늘은 높아지고 말은 살찐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흉노는 가을이  되고 말이 살찌며 활이 팽팽해지기 시작하면 (중국) 변방에 (쳐)들어왔다"고 한다. 즉, 천고마비 원형인 추고마비는 가을이 깊어감에 따라 흉노가 중국을 대상으로 노략질을 일삼는 시기라는 게 원 뜻인 것이다.


유목민족이 떠돌이 생활을 하던 몽골고원이나 고비사막 등지에는 초목이  빨리 시들 뿐 아니라 겨울도 일찍 찾아왔다. 따라서 양식과 말먹이가 부족한 유목민들이 가을에 접어들 무렵부터의 생존수단은 약탈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오랑캐라 불리던 유목민 중에서도 중국인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존재는 우리나라 고대 역사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흉노였다. 나아가 북방의 말 역시 계절 변화에 무척이나 민감해, 겨울철을 버티기 위해서는 그 문턱인 가을에 엄청난 여물을 먹어 살을 찌워 놓아야 했다. 그 찌운 살로 혹독한 겨울을 나야했기 때문이다. 


이동과 전쟁 수단으로 말을 쓰는 유목민 침입을 막기 위해 중국 역대왕조는 가을이면 백성들을  군인으로 징발, 변방에 내보냈고 또한 군대를 먹여살리기 위해 인민한테 무거운 세금을 물렸다. 때문에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은 백성은 고통스럽고 말 또한 비참한  천고마비(賤苦馬悲)의 시기였던 셈이다. 그런 사정이 꼭 한나라 때가 더 극심한 것은 아니었으니, 시대를 통털어 중국 전사에 걸친 고역 중 하나이기도 했다. 기라성을 방불하는 시인이 쏟아져 나온 당(唐)나라 때도 마찬가지였다. 


몽골고원의 아이들



이태백(李太白)과 함께 당시(唐詩)를 대표하는 인물이 두보(杜甫). 그의 조부는 두심언(杜審言.648?~708)인데, 이 할애비 또한 문명이 높아 이교(李嶠)·최융(崔融)·소미도(蘇味道)와 함께 '문장4우'(文章四友)로 일컫기도 했다. 그가 남긴 시로 현존하는 43편 중 다음 '소미도에게'(贈蘇味道)가 특히 유명하다.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에 혜성 떨어지고 

가을하늘 높아지며 변방 말은 살 오르네 

힘차게 말 달리며 날랜 칼 휘두르며 

붓 놀려 격문을 날리리라 


雲淨妖星落

秋高塞馬肥 

據鞍雄劍動 

搖筆羽書飛 


이 시가 바로 가을철을 묘사하는 천고마비(天高馬肥), 그 원류인 추고마비 출전 중 하나다. 주의할 것은 두심언은 '추천색마비'(秋高塞馬肥)라고 해서 '추고마비'(秋高馬肥)로 썼다는 사실이다. 이에서 물론 '추(秋)'는 '추천(秋天)', 즉 가을 하늘을 뜻한다. 


가을 하늘이 지닌 푸르름과 높음의 상징은 대한민국 애국가 제3절 첫  소절이 '가을하늘 공활(空豁)한데'인 데서도 확인한다. 이런  '추고마비'(秋高馬肥)가 어느 새인가 천고마비(天高馬肥)로 바뀐 것이다. 


소미도는 왜 변방으로 떠나야 했을까? 두심언 시 어디에도 가을철 낭만은 털끝만큼도 찾을 수 없다. 불길함의 대명사인 혜성이 떨어지고 변방과 칼이 등장하며, 전장의 긴박한 상황을 알리기 위한 격문이 소재로 활용된다. 두심언은 전쟁이 벌어지고 있거나 전운이 감도는 변방으로  떠나는 친구 소미도에게 무사귀환하기를 바라는 뜻을 시에 담아 보낸 것이다. 


사실 '추고마비'는 당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북쪽 유목국가, 예컨대 돌궐의  침략을 알리는 전령과도 같은 불길한 징조였다. 말은 풀 먹이가 떨어지기 시작하는 가을철이 가까워지면 본능적으로 살을 찌운다. 마찬가지로 돌궐 사람 또한 겨울철을 대비해 약탈을 감행하게 된다. 


이런 음산한 천고마비가 어느 새 가을 낭만을 묘사하는 대명사와도 같은 지위를 점하니, 격세지감일까? 이 가을 몽골 고원으로 말을 타러 가고 싶다. 


*** 이 글 역시 지난날 내가 쓴 글 두어 종을 버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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