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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진덕왕 원년, 무산성과 감물성, 그리고 동잠성 세 성 공략에 나선 백제군에 맞선 김유신 휘하에 배속되어 아들 거진, 가노 합진과 함께 장렬히 싸우다 전사했다. 

삼국사기 권제5(신라본기 제5) 진덕왕 : 원년(647) ...겨울 10월에 백제 군사가 무산성(茂山城), 감물성(甘勿城), 동잠성(桐岑城)의 세 성을 에워쌌으므로, 왕이 유신을 보내 보병과 기병 1만 명을 거느리고 가서 막게 하였다. 고전(苦戰)하여 기운이 다 빠졌는데, 유신의 부하 비녕자(丕寧子)와 그의 아들 거진(擧眞)이 적진에 들어가 급히 공격하다가 죽으니, 무리들이 모두 분발하여 쳐서 3천여 명을 목베었다.  

삼국사기 권제47(열전 제7) 비녕자 : 비녕자(丕寧子)는 출신 지역과 성씨를 알 수 없다. 진덕왕 원년 정미(647) 백제가 많은 군사로 무산성(茂山城).감물성(甘勿城).동잠성(桐岑城) 등지를 공격해 오자 유신이 보병과 기병 1만 명을 거느리고 막았으나, 백제 군사가 매우 날쌔어 고전하고 이기지 못하여 사기가 떨어지고 힘이 지쳤다. 유신은 비녕자가 힘써 싸우고 적진 깊이 들어갈 뜻이 있음을 알고 불러 말하기를 “날씨가 추워진 후에 소나무, 잣나무가 늦게 낙엽짐을 알 수 있는데 금일의 일이 급하다. 자네가 아니면 누가 능히 용기를 내고 기이함을 보여 뭇 사람의 마음을 격동시키겠는가?” 하고는 더불어 술잔을 나누면서 뜻의 간절함을 보이니 비령자가 두 번 절하고 말하기를 “지금 수 많은 사람 중에 일을 오직 저에게 맡기시니 자기를 알아준다고 할 수 있으니 진실로 마땅히 죽음으로써 보답하겠습니다”고 했다. 나가면서 종 합절(合節)에게 말했다.“나는 오늘 위로는 국가를 위하여, 아래로는 나를 알아주는 분을 위하여 죽을 것이다. 내 아들 거진(擧眞)은 비록 나이는 어리나 굳센 의지가 있으니 반드시 [나와] 함께 죽으려 할 것이니 만약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죽으면 집사람은 누구를 의지하겠는가? 너는 거진과 함께 나의 해골을 잘 수습하여 돌아가 어미의 마음을 위로하라!” 말을 마치고 곧장 말을 채찍질하여 창을 비껴들고 적진에 돌진하여 몇 사람을 쳐 죽이고 죽었다. 거진이 이를 바라보고 떠나려 하니 합절이 말했다.“어르신께서 말씀하시기를 ‘합절로 하여금 낭군과 함께 집에 돌아가 부인을 편안하게 위로하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자식이 아버지 명을 거역하고 어머님을 버리는 것이 어찌 효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는 말고삐를 잡고서 놓지 않았다. 거진이 말하기를 “아버지가 죽는 것을 보고 구차히 살면 어찌 효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고는 곧 칼로 합절의 팔을 쳐 끊고 적중으로 달려가 죽었다. 합절(合節)이 말하기를 “내 하늘이 무너졌으니, 죽지 않고 무엇을 하겠는가?” 하고는 또한 싸우다가 죽었다. 군사들이 세 사람의 죽음을 보고는 감격하여 다투어 나가니 향하는 곳마다 적의 칼날을 꺾고 진을 함락하여 적병을 대패시켜 3천여 명을 목베었다. 유신이 세 사람의 시신을 거두어 자신의 옷을 벗어 덮어주고 곡을 매우 슬퍼했다. 대왕이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예를 갖추어 반지산(反知山)에 세 사람을 합장하고 처자 9족에게 은혜로운 상을 풍부하게 내려주었다. 

삼국사기 권제41 (열전 제1) 김유신 : (선덕왕 16년<647>) 겨울 10월 백제 군사가 무산성(茂山城)[현재의 전북 무주군 무풍면], 감물성(甘勿城)[현재의 김천시 개령면], 동잠성(桐岑城)[현재의 경북 구미시] 등 세 성을 공격하여 포위하자 왕이 유신으로 하여금 보병과 기병 합 1만 명을 이끌고 막게 하였으나 고전하여 기세가 꺾이자 유신이 비녕자(丕寧子)에게 “오늘의 사세가 급박하다! 자네가 아니면 누가 뭇 사람의 마음을 격동시킬 수 있겠는가?” 하니 비녕자가 절을 하고는 “감히 명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는 적진에 나아갔다. 아들 거진(擧眞) 및 집종[家奴] 합절(合節)이 그를 따라서 창, 칼을 무릅쓰고 힘껏 싸우다 죽으니 군사들이 이를 바라다보고는 감동되고 격분되어 다투어 진격하여 적병을 크게 물리쳤다. 이 전투에서 3천여 명을 목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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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진덕왕 원년, 무산성과 감물성, 그리고 동잠성 세 성 공략에 나선 백제군에 맞선 김유신 휘하에 아버지 비녕자와 함께 배속되어 장렬히 싸우다 전사했다. 

삼국사기 권제5(신라본기 제5) 진덕왕 : 원년(647)...겨울 10월에 백제 군사가 무산성(茂山城), 감물성(甘勿城), 동잠성(桐岑城) 세 성을 에워쌌으므로, 왕이 유신을 보내 보병과 기병 1만 명을 거느리고 가서 막게 하였다. 고전(苦戰)하여 기운이 다 빠졌는데, 유신의 부하 비령자(丕寧子)와 그의 아들 거진(擧眞)이 적진에 들어가 급히 공격하다가 죽으니, 무리들이 모두 분발하여 쳐서 3천여 명을 목베었다. 

삼국사기 권제47 (열전 제7) 비녕자傳 : 비녕자(丕寧子)는 출신 지역과 성씨를 알 수 없다. 진덕왕 원년 정미(647) 백제가 많은 군사로 무산성(茂山城).감물성(甘勿城).동잠성(桐岑城) 등지를 공격해 오자 유신이 보병과 기병 1만 명을 거느리고 막았으나, 백제 군사가 매우 날쌔어 고전하고 이기지 못하여 사기가 떨어지고 힘이 지쳤다. 유신은 비령자가 힘써 싸우고 적진 깊이 들어갈 뜻이 있음을 알고 불러 말하기를 “날씨가 추워진 후에 소나무, 잣나무가 늦게 낙엽짐을 알 수 있는데 금일의 일이 급하다. 자네가 아니면 누가 능히 용기를 내고 기이함을 보여 뭇 사람의 마음을 격동시키겠는가?” 하고는 더불어 술잔을 나누면서 뜻의 간절함을 보이니 비령자가 두 번 절하고 말하기를 “지금 수 많은 사람 중에 일을 오직 저에게 맡기시니 자기를 알아준다고 할 수 있으니 진실로 마땅히 죽음으로써 보답하겠습니다”고 했다. 나가면서 종 합절(合節)에게 말했다.“나는 오늘 위로는 국가를 위하여, 아래로는 나를 알아주는 분을 위하여 죽을 것이다. 내 아들 거진(擧眞)은 비록 나이는 어리나 굳센 의지가 있으니 반드시 [나와] 함께 죽으려 할 것이니 만약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죽으면 집사람은 누구를 의지하겠는가? 너는 거진과 함께 나의 해골을 잘 수습하여 돌아가 어미의 마음을 위로하라!” 말을 마치고 곧장 말을 채찍질하여 창을 비껴들고 적진에 돌진하여 몇 사람을 쳐 죽이고 죽었다. 거진이 이를 바라보고 떠나려 하니 합절이 말했다.“어르신께서 말씀하시기를 ‘합절로 하여금 낭군과 함께 집에 돌아가 부인을 편안하게 위로하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자식이 아버지 명을 거역하고 어머님을 버리는 것이 어찌 효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는 말고삐를 잡고서 놓지 않았다. 거진이 말하기를 “아버지가 죽는 것을 보고 구차히 살면 어찌 효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고는 곧 칼로 합절의 팔을 쳐 끊고 적중으로 달려가 죽었다. 합절(合節)이 말하기를 “내 하늘이 무너졌으니, 죽지 않고 무엇을 하겠는가?” 하고는 또한 싸우다가 죽었다. 군사들이 세 사람의 죽음을 보고는 감격하여 다투어 나가니 향하는 곳마다 적의 칼날을 꺾고 진을 함락하여 적병을 대패시켜 3천여 명을 목베었다. 유신이 세 사람의 시신을 거두어 자신의 옷을 벗어 덮어주고 곡을 매우 슬퍼했다. 대왕이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예를 갖추어 반지산(反知山)에 세 사람을 합장하고 처자 9족에게 은혜로운 상을 풍부하게 내려주었다. 

삼국사기 권제41 (열전 제1) 김유신上 :  (선덕왕 16년<647>) 겨울 10월 백제 군사가 무산성(茂山城)[현재의 전북 무주군 무풍면], 감물성(甘勿城)[현재의 김천시 개령면], 동잠성(桐岑城)[현재의 경북 구미시] 등 세 성을 공격하여 포위하자 왕이 유신으로 하여금 보병과 기병 합 1만 명을 이끌고 막게 하였으나 고전하여 기세가 꺾이자 유신이 비령자(丕寧子)에게 “오늘의 사세가 급박하다! 자네가 아니면 누가 뭇 사람의 마음을 격동시킬 수 있겠는가?” 하니 비령자가 절을 하고는 “감히 명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는 적진에 나아갔다. 아들 거진(擧眞) 및 집종[家奴] 합절(合節)이 그를 따라서 창, 칼을 무릅쓰고 힘껏 싸우다 죽으니 군사들이 이를 바라다보고는 감동되고 격분되어 다투어 진격하여 적병을 크게 물리쳤다. 이 전투에서 3천여 명을 목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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