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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시사IN》 2016년 08월 10일 수요일 제463호


광화문 현판이 ‘박정희 글씨’였다고?

광화문 한글 현판 교체를 두고 정국이 뜨거웠던 적이 있다. 그 현판 글씨의 주인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박정희는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문화재 현장 곳곳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문화재 전문 언론인) 2016년 08월 10일 수요일 제463호

광화문은 조선왕조 법궁(法宮:임금이 사는 궁궐)인 경복궁의 정문이자 남문이다. 지금 시민들이 보는 광화문은 1395년(태조 4년)에 창건된 그 모습이 아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흥선대원군이 재건했으나,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에 의해 다시 해체·이전되는 수난을 겪었다. 1968년에 복원되긴 했으나 옛 모습과 상이한 철근 콘크리트 구조인 데다 위치도 달랐다. 결국 2006년 12월 광화문 복원 및 이전 공사가 착수되어 2010년 광복절에 문을 열었다. 참여정부가 착공해서 이명박 정부 당시 완공된 것이다.

이 광화문은 2층 문루 상단 중앙에 ‘光化門(광화문)’이라는 한자 현판을 달았다. 이 대문 하나를 만들어 세우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논란이 발생했다. 개중 굵직한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는데, 모두 현판 문제로 직결된다. 하나는, 현판을 한글과 한자 중 어느 것으로 할 것인지를 둘러싼 쟁투였다. 다른 하나는, 우여곡절 끝에 내건 한자 현판(光化門)이 이내 갈라지는 바람에 일어난 부실 복원 논란이었다.

문화재 복원 원칙에 따른다면,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달아서는 안 된다. 광화문의 ‘복원’을 표방한 이상, 처음 모습 그대로 한자 현판을 걸어야 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한글 사랑과 한글 전용을 내세우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광화문’이라는 한글 현판을 달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문화재청 역시 중심을 잃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른 문화재 복원 현장에서는 나오지도 않는 한글 현판 문제가 왜 유독 광화문에만 불거졌을까? 문화재 담당 기자로서 그 논쟁을 목도한 나로서도 이 점이 미스터리였다. 하지만 그럴 만한 곡절이 아주 없지는 않았으니, 복원 이전 엉뚱한 자리에 임시 콘크리트 건물로 세워둔 광화문의 현판에 하필 박정희 친필이 한글로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2010년 복원된 광화문 현판(왼쪽). 이전까지 그 자리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글로 쓴 현판이 걸려 있었다(오른쪽). 
2010년 복원된 광화문 현판(왼쪽). 이전까지 그 자리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글로 쓴 현판이 걸려 있었다(오른쪽).


광화문은 조선 말 고종 당시 재건되었지만, 한국전쟁 때 석조 기단 상부의 목조건물인 문루(門樓)가 불타버리고 말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1968년에는 기단을 그대로 사용하는 대신 상부의 문루를 철근 콘크리트로 만들어 복원했다. 속된 말로 ‘짝퉁 광화문’이다. 하지만 광화문의 상징성 때문인지, 현판 글씨는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한글로 썼다. 당시 한글 전용 바람이 퍽 거셌는데, 이런 시대 분위기와 한글 현판이 무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2010년에 복원된 광화문과 관련해서도, ‘사대주의 청산’이라는 슬로건 아래 한자 현판을 떼어버리고 그 자리에 한글 간판을 달아야 한다는 운동이 전개된 빌미 역시 박정희의 한글 현판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글씨가 하필 박정희 친필이라는 점 역시 ‘논쟁’을 엉뚱한 국면으로 몰아넣는 데 한몫했다. 노무현 정부(참여정부) 시절이었다.

이 논쟁에는, 걸출한 문화재 이야기꾼인 미술사학자 유홍준 당시 문화재청장이 등장한다. 유 청장은 광화문의 한글 현판, 더욱 세심하게는 아마도 박정희 친필 한글 현판의 존속을 주장하는 당시 야당(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의원들과 일전을 벌였다. 그 논쟁 파트너는 공교롭게도 유 청장과 서울대 67학번 동기로 40년 지기라는 김형오 한나라당 의원이었다. 김 의원은 나중에 국회의장까지 지냈다.

 <div align=right><font color=blue>ⓒ연합뉴스</font></div>1974년 4월2일 충남 아산시 현충사를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 부부. 이곳에도 박 전 대통령의 한글 현판이 걸렸다. 
ⓒ연합뉴스
1974년 4월2일 충남 아산시 현충사를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 부부. 이곳에도 박 전 대통령의 한글 현판이 걸렸다.

2005년 1월, 문화재위원회는 조선 22대 임금 정조의 글씨를 집자(集字:정조가 쓴 문헌에서 필요한 글자를 찾아 모음)해서 광화문 현판에 사용하기로 결정한다. 같은 달 27일, 김형오 당시 의원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유홍준 청장에 대한 공개서한을 게시하면서 두 사람의 논쟁이 개시된다.

김형오 의원은 이날 서한에서 “어떠한 경우에도 승자에 의한 역사 파괴는 막아야 한다”라면서 박정희 한글 친필을 정조의 글씨로 교체할 방침을 재고해달라고 요청했다. “광화문을 새로 축조한 것도 아니고 원형대로 복구한 것도 아닌데 유독 현판을 왜 바꾸려 하는지 국민들은 선뜻 이해를 못하는 것 같다. (…) 대한민국 서울의 중심 대로 중앙의 랜드마크나 다름없는 광화문 현판을 갑작스럽게 바꿔치기하려는 의도에 대해 모두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다.” 나아가 김형오 의원은 교체되는 한자가 하필 정조의 글씨라는 사실에서도 문제를 찾아냈다. “유 청장이 노무현 대통령을 정조에 비유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일부의 주장에 동조하고 싶지 않다.” 김 의원은 사실상 광화문 현판 교체에 대해 ‘참여정부의 박정희 유산 청산 운동의 일환’이라는 의구심을 표현한 것이었다. 덧붙이건대 유홍준 청장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정조에 비유했던 것은 사실이다. 내가 분명히 들었다.

“왜 하필 정조 글씨여야 하느냐”

이에 대해 유홍준 청장은 곧바로 낸 공개 답신에서 “광화문 현판 교체는 이미 1997년에 경복궁 복원 수립 과정에서 결정된 일이며 2003년에는 공청회까지 거친 사안이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광화문이 경복궁의 얼굴임을 상기시키면서 “올 8·15 광복 60주년 행사가 광화문과 근정전 사이에서 열리게 될 예정이어서 (현판 교체를) 불가피하게 시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라고도 했다. ‘교체 대상 현판 글씨가 왜 정조의 것이어야 하느냐’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여러 안 중 하나”라고 답변했다. 문화재청은 고궁의 품격에 적합한 현판을 위해 현역 대표 서예가로부터 글씨를 받거나, 조선왕조의 대표적 서예가의 글씨 혹은 어필(御筆:임금의 글씨)에서 집자하는 세 가지 방법을 놓고 고심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현판을 둘러싼 두 사람의 이런 공방이 진행되는 와중에 유홍준 청장은 또 한 번 설화를 입게 된다. 김형오 의원에 대한 답신 가운데 현충사가 있는 충남 아산 지역사회를 격노시킬 구절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이 관리하고 있는 아산 현충사, 이곳은 이순신 장군 사당이라기보다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 같은 곳(이기 때문에)… 저는 이곳을 손보거나 (박 전 대통령 친필인) 현판을 떼내는 일을 절대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산을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일어났다. 특히 아산이 지역구인 집권 열린우리당 소속 복기왕 의원이 이튿날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에서 현충사는 박정희 기념관이 아니라는 반론을 펴기도 했다. 사태가 커지자 유 청장은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현충사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애국충정과 멸사봉공의 넋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소중한 역사적 공간”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이전 발언에 대해 “부적절한 표현”이자 “오류”였다며 사과도 했다.

이처럼 박정희는 세상을 떠난 지 37년이 지난 지금도 한국 사회 곳곳에, 나아가 광화문이나 현충사 같은 문화재 현장 곳곳에서도 살아 있는 신(神)으로 강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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