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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흘해니사금 36년(354) 이벌창에 임명되고, 이듬해 금성까지 침입한 왜국 군대를 침입하자 물리쳤다.  

삼국사기 권 제2(신라본기 제2)  흘해니사금 : 36년(345) 봄 정월에 강세(康世)를 이벌찬으로 삼았다.…37년(346) 왜의 군사가 갑자기 풍도(風島)에 이르러 변방 민가를 노략질했다. 또 진군해 금성을 에워싸고 급하게 공격하였다. 왕이 군사를 내어 상대하여 싸우고자 하였으나 이벌찬 강세(康世)가 말했다. 적은 멀리서 왔으므로 그 칼날을 당해낼 수가 없으니, 그것을 늦추었다가 그 군사가 피로해지기를 기다리는 것만 못합니다. 왕이 그렇다고 여겨 문을 닫고 나가지 않으니 적은 식량이 떨어져 장차 물러가려 하였다. 강세에게 명하여 날쌘 기병을 이끌고 추격하여 쫓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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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해니사금 2년(311), 아찬에 임명되어 국내 정치와 군사를 총괄했다. 그의 딸이 왜국 왕한테 시집갔으며 몇 년 뒤 아찬으로 승진했다.  

삼국사기 권 제2(신라본기 제2)  흘해니사금 : 2년(311) 봄 정월에 급리(急利)를 아찬으로 삼아 정치의 중요한 일을 맡기고 중앙과 지방의 군사 일을 겸하여 맡게 하였다. …3년(312) 봄 3월에 왜국 왕이 사신을 보내 [자신의] 아들을 위해 혼인을 청하였으므로 아찬 급리(急利)의 딸을 보냈다. 5년(314) 봄 정월에 아찬 급리를 이찬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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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제16대 흘해니사금의 어머니이자 조분니사금의 딸. 각간 우로와의 사이에 흘해니사금을 낳았다. 

삼국사기 권 제2(신라본기 제2)  흘해니사금 : 흘해니사금(訖解尼師今)이 왕위에 올랐다. 나해왕의 손자로, 아버지는 각간 우로(于老)이고 어머니는 명원부인(命元夫人)인데 조분왕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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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제16대 임금(재위 310~356)인 걸해니사금의 다른 명칭.


삼국유사 권3 흥법 3 원종흥법(原宗興法) 염촉멸신(염촉滅身) : 김용행金用行이 지은 아도비阿道碑를 상고해 보면, 사인(舍人.이차돈-편자 주)은 그때 나이 26세였고, 아버지는 길승吉升, 조부는 공한功漢, 증조曾祖는 걸해대왕乞解大王이다.


☞걸해니사금 ☞흘해니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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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해니사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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