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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1482

개 식육은 중국에서 시작되었는가 개 식육은 사실 인류 보편적 식습관은 아니다. 개 사육이 시작된 초기 유적부터 개는 음식으로 섭취한 흔적이 많지 않다. 오히려 선사시대부터 사람과 함께 묻히거나 별도의 구역에 제대로 매장된 경우가 많아 다른 동물과 비교해서 좀 특이하게 대접한 측면이 있다. 우리나 일본의 경우에도 농사가 제대로 정착하기 이전부터 개를 키웠는데 초창기의 개는 먹기 위해 키운 것이 아닌 것 같은 징후가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개 식육의 전통이 시작된 것은 농경이 본격화한 이후로 일본은 야요이시대 이후 개 식육의 징후가 매우 뚜렷해진다. 따지고 보면 한국이나 일본이나 농사가 모두 중국의 영향에서 시작된 것이 많다는 점을 생각할 때, 개 식육은 오히려 중원 쪽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잘 알다시피 초한지 번쾌는.. 2024. 5. 8.
돼지 사육은 중국 역사의 자랑 고대문명에 있어 농작물이나 가축을 세계 최초로 키우기 시작했다는 것은 재미있지만 민족주의적 경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무한한 긍지를 주는 모양으로, 이런 경향은 일본에서도 보여서 조몽시대에 이미 개는 물론 돼지를 키웠다던가 팥을 재배하고 있었다던가 하는 류의 연구를 심심찮게 본다. 일본의 경우에는 그래 봐야 농경의 수준이 낮아 그러려니 하는데 중국의 경우는 불과 십여년 전만 해도 거의 모든 농작물과 가축의 기원을 중국땅에서 찾는 판이었다. 하지만 DNA 연구의 발전으로 농작물과 가축의 기원에 대해 점점 분명히 밝혀지고 있는 바, 소와 말은 이미 중국땅 바깥에서 그 기원을 찾고, 쌀과 닭은 양자강보다 훨신 남쪽의 동남아나 광동성 주변, 개는 시베리아 벌판, 등지로 중국 땅에서 기원을 찾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 2024. 5. 7.
과전법은 이것이 왜 부활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흔히 과전법은 고려말의 겸병과 사전, 대농장을 종식시키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신진사대부들과 긴밀한 관련을 갖고 성립했다고 보지만, 과전법이 성립하는 당시 신진사대부들의 주장, 예를 들어 사전私田 혁파, 공전公田 성립, 척불론 등등의 논리는 유학에서 잊을만 하면 나오는 이야기들이라 전혀 이것을 그 배경이나 동기로 가지고 와서는 안된다. 우리가 과전법을 보고 고민해야 할 것은 조선의 사대부들이 고려말의 사전을 어떻게 개혁했는가 하는 그 개혁정신을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수백년전에 관짝에 넣어 못질까지 해버린 공전제가 느닷없이 왜 다시 부활하여 사전을 몽땅 태워버리고 조선땅에 다시 성립했는가, 과전법 부활의 미스테리를 고민해야 옳다. 과전법은 연구의 포커스 자체가 잘못되어 있다. 과전법은 혁명이 .. 2024. 5. 7.
미군이 해체한 일본의 지주-소작제 우리는 식민지 조선의 전근대적 지주-소작제가 미군정-이승만 정권 당시의 토지개혁으로 비로소 종식되었다고 본다. 이 사실 자체는 부정할 생각이 없다. 남한의 경우 이 토지개혁으로 사실상 그 후의 발전과 도약의 기틀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이 있다. 남한에서 토지개혁이 진행되고 있던 당시, 미군정이 일본에서 똑같은 토지개혁을 진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미군정은 일본 전국의 지주들로부터 토지를 유상 매입하여 이를 일본 내 소작인들에게 유상으로 분배하여 오랫동안 자행된 일본의 소작농 관행에 사실상의 종지부를 찍었다. 일본은 20세기 전반 제국주의를 경과하는 동안에도 조선과 다름없이 전근대적인 토지 소유구조-지주와 소작인 관계가 전국적으로 유지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2024. 5. 7.
땅만 나눠주면 근대화인가 경자유전耕者有田[Land to the Tiller] 사전私田 혁파 장원폐지령 여전제閭田制 한전제限田論制 균전론均田論 심지어는 반전수수제班田収授制에 율령제 전시과田柴科 과전법科田法에 이르기까지 이 뒤에 깔린 생각은 모두 한 가지로 고대의 공전제公田制로 돌아가지는 생각이 깔려 있다. 이러한 사상은 한국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일본 중국 모두 있었고 실제로 이것이 구현된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중세 이후 이 시스템은 붕괴했고 한국을 제외하면 어느 나라도 이 제도가 부활한 적이 없다. 실학의 소위 개혁론은 이러한 공전제 사상의 기초 위에 있다. 실학자들 주장대로 사전을 부정하고 땅을 나눠준다 해도 그것 자체가 근대화의 시작이 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실학의 개혁론을 긍정하고 근대화의 단초로 보는 것은 우리사회가 .. 2024. 5. 6.
세계사에서 번지수도 찾기 어려운 실학의 개혁론 조선후기 실학의 개혁론을 들어 이것을 근대화의 선구 혹은 앙샹레짐의 붕괴의 징조로 간주하는 주장이 목하 대한민국 한국사의 주장이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엔 우리나라 실학의 개혁론, 특히 토지개혁론 같은 이런 것은 세계사에서 소위 말하는 중세의 붕괴와 근세의 출발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족보도 없고 번지수도 있는 얼토당토 않은 주장이 대부분이다. 전통적인 유교적 세계관을 한편에서 따오고, 실현가능한지 아닌지도 확신없는 이야기를 가지고 여전제니 한전제니 떠들고 있는 것을 도대체 세계사 어느 동네에서 이런 공상같은 이야기를 근대의 출발이라고 본다는 말인가? 한국의 실학론은 전혀 근대와는 무관하며, 굳이 세계사에서 찾는 다면 헤이안시대로 돌아가자는 딱 일본의 장원정리령 수준의 언설이다. 그나마 실학을 빼고 나면 .. 2024.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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