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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규와 흥화진, 겸직을 허용한 고려사회 고려사절요 현종원문대왕顯宗元文大王 원년(1010) 11월에 이르기를 신묘일에 거란 군주가 스스로 보병과 기병 40만 명을 거느리고 의군천병義軍天兵이라 호명하며 압록강을 건너와 흥화진興化鎭을 포위하였다. 순검사巡檢使인 형부낭중刑部郞中 양규楊規가 진사鎭使인 호부낭중戶部郞中 정성鄭成, 부사副使인 장작주부將作注簿 이수화李守和, 판관判官인 늠희령廩犧令 장호張顥와 더불어 성문을 닫고 굳게 지켰다. 이 흥화진은 둔전이 기반인 최전방 기지라, 제2차 고려거란전쟁 당시 성종이 친정하고, 소배압이 총사령관을 맡은 가운데 고려 경내로 들어와 첫번째로 들이친 곳이다. 한데 이곳을 방비하는 고려군 수뇌진이 죽 나열되었거니와, 이 흥화진은 행정구역이면서 군단인 까닭에 이곳에는 본래 그 우두머리가 있어 이를 진사鎭使라 했으니, 使.. 2024. 2. 8.
[제3차 고려 막부정권] (3) 강조의 실패를 새긴 쿠데타 주역들 이 3차 막부정권 수립 전야 군사 쿠데타 수뇌진이 누군지는 같은 고려사절요 해당 사건 기술에 명확히 드러나는데 상장군 김훈과 최질, 그리고 박성朴成·이협李恊·이상李翔·이섬李暹·석방현石邦賢·최가정崔可貞·공문恭文·임맹林猛이 그들이라 저에 의하면 이들은 땅(영업전)을 빼앗은 일을 가지고 여러 사람의 분노를 격화시켰으며, 여러 위衛의 군사들을 꾀어내어 북을 치면서 소란스럽게 궁궐[禁中]로 난입하고서는 장연우張延祐와 황보유의皇甫兪義를 포박하고 매질하여 거의 다 죽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장연우와 황보유의가 표적이었을까? 이어지는 기술. (이들이) 합문閤門 안으로 들어가 면전에서 호소하기를, “황보유의 등이 우리의 토지를 점탈한 한 것은 실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고자 한 것이지 조정[公家]의 이익을 위한 것.. 2024. 2. 8.
시리도록 서해가 아름다운 서산 부석사 한국 산사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전면이 장관인 곳 둘째, 뒷산이 장관인 곳 물론 복합유산도 있어 전면 뒷산 모두가 아름다운 곳이 있다. 요즘 뉴스메이커인 서산 부석사는 압도적으로 전면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다.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아름다움을 보고 두 가지 상념이 든다 했다. 첫째, 사랑 둘째, 자살 (2017. 2. 8) ***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서산 부석사는 한국 도둑님들이 대마도로 쳐들어가서 훔쳐 국내로 반입한 고려시대 청동불상을 일본에 돌려주느냐 마느냐로 시끄럽기 짝이 없었다. 본래 이 불상은 복장유물에서 그것이 고려 말에 지금의 서산 부석사에서 만들어 봉안했다는 기록이 발견됨으로써 부석사는 해당 불상이 왜구들한테 침탈된 것이니 돌려보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아니했다. 결국 이 .. 2024. 2. 8.
숭배해야 할 똥배보살 중국 서안 비림박물관碑林博館이 소장 전시 중인 당대唐代 불교조각이라 중년 여성들이야 친근함을 느낄 것이로대 그래 보살님도 저러한데 하물며 나야? 하는 안도감 혹은 동질감이 있지 아니하겠는가? 2018년 2월 8일 서안 여행 때 찍어 소개하기도 했다. 과거의 오늘에 보여 다시 전재한다. 2024. 2. 8.
2018년 겨울 중국 장안長安에서 너무나 여유가 없는 현지답사였다. 느긋하고 싶었다. 한 고조 유방 무덤 정상에서는 툭진 옷 걸치고는 하염없이 지는 해를 감상만 하고 싶었다. 그가 죽은 지 2천200년 동안 해는 줄기차게 졌으리라. 그보다 대략 30년 정도 앞서 간 시황제는 말 뼉다귀 몇 개 남겼다. (2018. 2. 8) *** 그러고 보면 항상 서안西安 답사는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급했다. 누가 날 죽이겠다 달라드는 것도 아닌데, 번번이 바빴다. 진짜로 느긋하고 싶다. 느긋이 완상하며 돌고 싶다. 따듯한 봄날 그런 날을 기약해 본다. 2024. 2. 8.
고려사 백관지百官志에서 얻을 건 없다 이건 내가 일찍이 고려시대 후비后妃 책봉제도를 들여다 볼 적에 절감한 것으로, 내 결론은 백관지에서 얻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였으니 왜 그런가? 전연 체계적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고려사 찬자들은 고려시대 관직 제도에 대해 똥인지 된장인지도 구별 못한 데가 천지라, 궁주宮主만 해도, 이것이 이른바 몽골 간섭기를 계기로 그 위상이 급속도로 변함에도 이걸 전연 알아채지 못했으며, 기타 원주院主니 뭐니 하는 등급도 말할 나위가 없었다.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철저히 사례 중심으로 파고 들어 그를 통해 그 작동 원리를 도출할 수밖에 없다. 고려사 백관에 대한 기존 연구성과란 것도 저 백관지 축약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기는 고려사 찬자나 마찬가지다. 이것이 내 결론이었고, 그래서 나는.. 2024.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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