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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法信) 대안사(大安寺) 광자대사비(廣慈大師碑․950․광종 1년) : 대사의 법휘는 윤다(允多)요, 자는 법신(法信)으로 경사(京師) 출신이다. 그의 조부모는 귀족으로서 고관(高官)을 역임하였으며, 효도와 의리를 소중히 여겨 충효의 본이 되었다. 이렇게 가문을 지켰지만, 난리가 나서 몰락하였다.☞윤다(允多) ☞광자대사(廣慈大師) 2018. 2. 13.
법장(法藏) 마운령신라진흥왕순수비(磨雲嶺新羅眞興王巡守碑. 568. 진흥왕 29) : 태창(太昌) 원년 세차(歲次) 무자(戊子) ▨▨ 21일 ▨▨ ▨흥대왕(▨興大王)이 ▨▨를 순수하여 돌에 새겨 기록한다. …수레를 타고 나가 10월2일 계해(癸亥)에 이르러 … 인하여 변계(邊堺)지역을 설유(說諭)하였다. …이 때 어가를 수행한 자로 사문(沙門) 도인(道人)은 법장(法藏)과 혜인(慧忍)이다. 황초령신라진흥왕순수비(黃草嶺新羅眞興王巡守碑. 568년. 진흥왕 29) : …8월21일 계미(癸未)에 진흥태왕(眞興太王)이 관경(管境)을 ▨▨하고 돌에 새겨 기록한다. …이에 무자년(戊子年) 가을 8월에 관경(管境)을 순수하고 민심을 살펴 노▨(勞▨)에 보답하고자 한다. ⋯이때 어가를 수행한 이는 다음과 같다. 사문도인(沙門道人)으로.. 2018. 2. 13.
혜인(慧忍) 마운령신라진흥왕순수비(磨雲嶺新羅眞興王巡守碑. 568. 진흥왕 29) : 태창(太昌) 원년 세차(歲次) 무자(戊子) ▨▨ 21일 ▨▨ ▨흥대왕(▨興大王)이 ▨▨를 순수하여 돌에 새겨 기록한다. …수레를 타고 나가 10월2일 계해(癸亥)에 이르러 … 인하여 변계(邊堺)지역을 설유(說諭)하였다. …이 때 어가를 수행한 자로 사문(沙門) 도인(道人)은 법장(法藏)과 혜인(慧忍)이다. 황초령신라진흥왕순수비(黃草嶺新羅眞興王巡守碑. 568년. 진흥왕 29) : …8월21일 계미(癸未)에 진흥태왕(眞興太王)이 관경(管境)을 ▨▨하고 돌에 새겨 기록한다. …이에 무자년(戊子年) 가을 8월에 관경(管境)을 순수하고 민심을 살펴 노▨(勞▨)에 보답하고자 한다. ⋯이때 어가를 수행한 이는 다음과 같다. 사문도인(沙門道人)으로.. 2018. 2. 13.
거칠부지(居朼夫智) 마운령신라진흥왕순수비(磨雲嶺新羅眞興王巡守碑. 568. 진흥왕 29년) : 태창(太昌) 원년 세차(歲次) 무자(戊子) ▨▨ 21일 ▨▨ ▨흥대왕(▨興大王)이 ▨▨를 순수하여 돌에 새겨 기록한다. …수레를 타고 나가 10월2일 계해(癸亥)에 이르러 … 인하여 변계(邊堺)지역을 설유(說諭)하였다. …이 때 어가를 수행한 자로 …대등(大等)은 탁부(喙部) 거칠부지(居朼夫智) 이간(伊干), 내부지(內夫智) 이간(伊干), 사탁부(沙喙部) 무력지(另力智) 잡간(迊干), 탁부(喙部) 복동지(服冬智) 대아간(大阿干), 비지부지(比知夫知) 급간(及干), 미지(未知) 대나마(大奈末), 급진부지(及珎夫知) 나말(奈末)이다. ☞거칠부(居柒夫) ☞황종(荒宗) 2018. 2. 13.
한문에 버벅거린 경연의 풍경들 아래 파란색 텍스트는 연려실기술 별집 제7권 / 관직전고(官職典故) ‘경연(經筵)’ 편 옮김 전문이다. 출전은 한국고전번역원이다. 이를 보면, 전통시대 글께나 한다는 지식인들 한문 수준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사극이라든가 혹은 정제되어 남은 문자자료들을 보면, 와, 이 사람들은 정말로 한문을 잘했구나, 하긴 어렸을 적부터 한문을 끼고 살았으니 잘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라고 찬탄하겠지만, 실상은 전연 달라, 그런 그들에게도 한문은 외국어였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동시대 중국 사대부들에게 한문은 어땠을까? 장담하지만 그 수준이 조선의 그들보다 나은 점도 없다. 그들에게도 한문은 외국어였다. 물론 기본 문법구조가 당시 그네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한 소위 백화문과 같기 때문에 조선사람들에 견주어.. 2018. 2. 13.
"네 놈 중국어가 나하추 중국어 같구나" 목은 이색은 외국어 습득 능력이 꽝이다. 비교적 어린 나이에 아버지 이곡이 벼슬살이를 하는 연경燕京으로 유학가서 그쪽에서 삼년 정도 생활을 하고는 외국인 특별전형에도 합격했지만 말이 도무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글은 좀 되고 외국생활이란 프리미엄이 붙으니 귀국 뒤에는 외교분야에서 맹활약하게 되고 이것이 그의 출세 수단이 된다. 원이 회복 불능으로 쇠미하고 남경에 기반을 둔 명 왕조가 개창하자 외교사절로 목은이 남경에 간다. 그를 면담한 무뢰배 출신 황제 주원장은 양다리 걸치기 하는 고려에 야마가 한껏 돌았다. 대뜸 욕찌꺼리 퍼붓고는 "네놈이 중국 유학을 했다니 중국말로 대답해 보라"니 목은이 몇 마디 떠듬거린 모양이다. 그걸 듣던 깡패 원장이가 목은을 다시 경멸한다. "네 놈 중국어는 나하추納哈出의 중국.. 2018.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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