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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

八자가 되어 버린 入, 기절초풍할 백운거사 팔폭 병풍 초상의 탄생

by taeshik.kim 2023.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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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감校勘의 중요성>

<동국이상국집> 후집 권11을 보면, 우리 이규보 선생님이 누가 그려온 초상화를 보고 자찬自贊한 글이 하나 실려있다. 그 중 이런 대목이 있다.


오십 년 오르락내리락 五紀升沈
구구하게 산 이 한 몸이 區區一身
여덟 폭 비단 가운데 八幅素中
엄연히 비슷한 사람일세 儼然似人


- <동국이상국집> 후집 권11, 찬, "정이안이 나의 초상화를 그렸기에 스스로 찬을 지어 이르기를[丁而安寫予眞。自作贊曰]" 중에서


그런데....8폭이나 되는 비단에 초상화를 그렸다는 게 과연 정말일까?

어지간한 불화 크기 바탕에 그렸단 이야기인데, 뭐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아무래도 어색하다.

설마 8폭 병풍에다 그렸다는 말일까?

같은 글이 조선 초기에 편집된 <동문선>에도 실렸는데, 거기선 이렇게 나온다.


오십 년 오르락내리락 五紀升沈
구구하게 산 이 한 몸이 區區一身
한 폭 비단 안에 들어가니 入幅素中
엄연히 비슷한 사람일세 儼然似人

- <동문선> 권50, 찬, "정이안이 나의 초상화를 그렸기에 스스로 찬을 지어 이르기를" 중에서


여덟 팔八자가 들 입入자로 되어있다.

그렇게 해놓고 보니, 훨씬 번역이 자연스럽다.

이런 경우가 적지 않으리라 본다(일일이 다 찾아보지는 못했지만).

우선 <동문선>을 참고하여 이 대목에 주석을 달아두는 일이 필요하겠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여러 판본과 <동문선>, <청구풍아> 같은 선집 등을 모두 모아놓고 정본定本 <동국이상국집>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문학, 역사학, 서지학 분야에서 모두 함께 도전한다면(<여유당전서>처럼) 그래도 너무 늦지 않게 제대로 된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 하는 생각이 든다.


*** Editor's Note ***


八과 入은 실상 구분이 쉽지 않다.

이는 원전 판목 혹은 그것을 찍은 판본을 확인해야는데 판독을 잘못했을 가능성도 오십프로다.

두 글자는 모양으로 구별이 쉽지 않기에 어느 쪽을 결정하는 키는 결국 문맥이다.

***

이런 의문 제기에 강군이 판본을 들춰봤으니 첨부 사진이다.




앞이 동국이상국집이고 뒤가 동문선이라 후자는 入이 확실하나 전자는 실은 八인지 入이리 아리까리하다.

결국 문맥으로 결정할 수밖에 없으니 이 문맥 검토가 없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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