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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sWho in Ancient Korea

강심(江深)

by taeshik.kim 2018.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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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 미상. 신라인. 신라가 당군과 연합해 고구려 정벌에 나선 문무왕 7년(667), 당군과 협력해 고구려 정벌에 나설 당시 이동혜 촌주이자 대나마로서 당군과 메신저 역할을 했다. 


삼국사기 권 제6(신라본기 제6) 문무왕 : 7년(667)…가을 8월에 왕이 대각간 김유신 등 30명의 장군을 거느리고 서울을 출발하였다. 9월에 한성정(漢城停)에 도착하여 영공(英公)을 기다렸다. 겨울 10월 2일에 영공이 평양성 북쪽 200리 되는 곳에 도착하여 이동혜(=同兮) 촌주 대나마 강심(江深)을 뽑아 보내었는데, 거란 기병 80여 명을 이끌고 아진함성(阿珍含城)을 거쳐 한성에 이르러 서신을 전하고 군사 동원 기일을 독려하니 왕이 그에 따랐다. 11월 11일에 장새(獐塞)에 이르러 영공이 돌아갔다는 말을 듣고 왕의 군사 또한 돌아왔다. 이에 강심에게 급찬의 관등을 주고 벼 500섬을 내려주었다. 


삼국사기 권 제7(신라본기 제7) 문무왕 하 : 11년(671)…가을 7월에 대왕이 답서에서 말했다. “…건봉(乾封) 2년(667)에 이르러 대총관 영국공(英國公)이 요동을 정벌한다는 말을 듣고 저는 한성주(漢城州)에 가서 군사를 국경으로 보내 모이게 하였습니다. 신라 군사가 단독으로 쳐들어가서는 안되겠기에 먼저 정탐을 세 번이나 보내고 배를 계속해서 띄워 대군의 동정을 살펴보게 하였습니다. 정탐이 돌아와 모두 말하기를 ‘대군이 아직 평양에 도착하지 않았다.’고 하였으므로, 우선 고구려 칠중성(七重城)을 쳐서 길을 뚫고 대군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을 막 깨뜨리려고 할 때 영공의 사인(使人) 강심(江深)이 와서 ‘대총관의 처분을 받들어 신라 군사는 성을 공격할 필요없이 빨리 평양으로 와 군량을 공급하고 와서 모이라.’고 말하였습니다. 행렬이 수곡성(水谷城)에 이르렀을 때 대군이 이미 돌아갔다는 말을 듣고 신라 군사도 역시 곧 빠져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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