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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삼아 남영동 집 근처를 배회했다. 갈아탄 갤놋나인 카메라 성능도 실험할 겸 이런저런 풍광과 경물景物을 듬성듬성 담가봤다.


길을 나서자마자 마주한 오동나무는 이파리가 쭈구렁이라, 저러고선 무슨 계전오엽이추성階前梧葉已秋聲이겠는가 싶으니, 누르딩딩한 기운도 없진 않으나, 시퍼렇게 멍든 채 거꾸러지고 말리니, 저래선 어찌 가을 소리를 내겠는가? 


미군 부대 담장에 기댄 산딸나무는 시뻘건 열매가 영롱하기는 한데 볼수록 저 열매는 식용인가 아닌가가 의뭉스럽다. 하이마트에 저 비스무리한 농산물은 본 적 없으므로 혹 독을 품지 않았나 모르겠다. 하긴 버섯은 화려할수록 독성이 강하다는데, 뭐 그러고 보면 수박 역시 속이 시뻘겋기는 저보다 심하지 아니한가?


아들놈 다닌 삼광초등학교엔 그 무성한 담쟁이 덩쿨이 화장기 완연해 단풍 전령으로는 가장 빠른 선발주자 중 하나일 것이로대, 그 위로 펼친 장대한 창공과 뚜렷한 원색 대비를 이룬다.


그 아래론 구절초 한창이고


수세미는 성낸 말 거시기마냥 축축 늘어지고, 박은 오뉴월 소불알 같다.


모과는 간밤 비에 떨어졌는지 아니면 벌레가 먹어 일찌감치 그랬는지, 몇몇이 바닥에 썩기 시작한 채 나뒹구는가 하면, 개중 튼실한 놈들은 섣달도 넘길 태세로 튼실하게만 붙었다.


화단엔 무슨 콩인지 그 족보를 나는야 알 수 없는 어떤 놈이 자줏빛 페로몬을 분출하며, 


블록 담벼락 용마름 따라 담쟁이 덩굴 가녀리게 애면글면 한다. 


전깃줄 따라 칭칭 몸뚱아리 동여맨 호박은 계속 철봉 매달리기 중이고, 


텃밭 담벼락으로 석양이 스며든 호박 이파리 황달이 들기 시작한다.


꼬린내 완연한 은행이야 코를 막을진 모르나 너 없이 어찌 가을이 왔다 하리오? 


문득 미군 부대 철조망 너머로 해가 걸리고, 그 너머로 측백나무 몇 그루 우뚝 하니 섰는데, 묻건대 측백아 무삼 일로 너는 무덤 떠나 용산으로 왔던고?


옴팡한 측백 속을 살모시 들췄더니 미늘 같은 열매 네 개 무리지어 수줍게 인사하며 말을 걸기를 

너는 어떠냐

하기에 내가 대답했다. 

지난 여름은 서럽기만 했고, 이번 가을은 천불만 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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