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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이세민 성군 만들기, 메뚜기를 씹어먹는 황제

by taeshik.kim 2018.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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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떼루 하는 메뚜기. 연합뉴스


《자치통감資治通鑑》 권 제192 당기唐紀8 고조신요대성광효황제지하高祖神堯大聖光孝皇帝下之下 정관貞觀 2년 무자(戊子·628) 여름 4월 조가 수록한 황제 이세민李世民에 얽힌 일화다. 


畿內有蝗。辛卯,上入苑中,見蝗,掇數枚,祝之曰:「民以谷為命,而汝食之,寧食吾之肺腸。」 舉手欲吞之,左右諫曰:「惡物或成疾。」 上曰:「朕為民受災,何疾之避!」 遂吞之。是歲,蝗不為災。

수도권에 메뚜기 떼가 나타났다. 이달 신묘일에 황상이 금원으로 들어갔다가 메뚜기를 보고는 몇 마리 잡아 저주하기를 “백성은 곡식을 목숨으로 여기지만 네 놈들이 그걸 먹어치우는구나. 차라리 내 폐장을 먹을지어다”고 하고는 손을 들어 그것을 삼키려 하니 좌우 신하들이 간했다. “더러운 요물이라 몸에 탈이 날까 두렵습니다”. 황상이 말하기를 “짐은 백성을 위해서는 재앙도 마다 않으리니 어찌 질병을 피하겠는가?” 라고 하면서 마침내 그것을 삼켰다. 이해에 메뚜기가 재앙을 만들지 않았다.


말할 것도 없이 새빨간 거짓말이다. 이세민을 성군(聖君)으로 주물(鑄物)하고자 하는 상징조작 일환이다. 마침 궁궐 후원에 메뚜기 몇 마리가 보여서 그걸 황제라는 자가 우거적우거적 씹으면서 다시는 농작물에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저주하니, 그해에 메뚜기떼 피해가 없었다는 말이어니와, 그래서 없었겠는가? 


2014년 8월 전남 해남에 출현한 메뚜기떼. 연합뉴스


유독 당 태종 이세민에 대해서만 언뜻 봐도 이런 말도 되지 않는 상징 조작이 그득그득하거니와, 왜 이세민인가? 이는 집권과정에서 유래하는 필연적인 반작용이다. 이세민은 태자인 형을 죽이는 이른바 현무문의 반란이라는 군사 쿠데타를 통해 집권했다. 형들을 죽이고 아버지의 공신들을 처단했으며, 이를 통해 다름 아닌 아버지 이연(李淵)을 식물인간으로 만들어 실상 강제 퇴위케 하고는 권좌에 올랐다. 

아버지를 향해 칼을 빼어들어 집권했으니, 그 집권과정의 부당성이야 새삼 일러 무엇하겠는가? 집권과정이 불법 탈법이었기에 그의 재위 기간 그의 치적은 그런 흠결들을 밀어엎어야했다. 철저히 성군이어야 했다. 이 성군화 작업에 동원된 인물이 위징魏徵이었다. 각종 흔적에 의하면 위징은 이세민 사람이 아니었다. 반대편이었다. 그런 사람을 이세민이 갖다 썼다 한다. 단순히 쓰는 정도가 아니라 재상으로 발탁하고, 간관의 우두머리로 앉혀 항상 자신을 향해 쓴소리를 하게 했다 하거니와, 이 역시 나는 조작으로 본다. 관중과 포숙아 고사를 빌린 조작이다. 

요컨대 위징은 성군 이세민 만들기라는 제단에 받친 희생이었다. 



2014년 8월 전남 해남에 출현한 메뚜기떼. 연합뉴스


당 태종 혹은 그의 사후 당조唐朝에서 편찬한 이세민 관련 기록들은 철저히 이세민 성군만들기를 위한 변주곡에 지나지 않았다. 그 정점이 그의 언행록이라는 《정관정요貞觀政要》다. 이를 보면 이세민은 이토록 위대한 성군일 수는 없다. 

한데 그래서 《정관정요》는 조작이며, 그래서 버려야 할 텍스트일까? 그것이 정작 중요한 까닭은 조작과 상징으로 얼룩진 이 텍스트가 후대에는 모름지기 제왕이라면 이러해야 한다는 이상, 혹은 모범의 절대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가르침대로 하지 않아 패가망신한 제왕이 한둘이 아니거니와, 그럴 때도 《정관정요》는 심지어 역성혁명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근거가 되기도 했다. 

조작된 성군 이세민 신화는 그래서 더 중요하다. 다만 실제의 이세민이 저러했다고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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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과정이 군사쿠데타에 의한 것이었고, 무엇보다 그 칼날은 아버지를 겨누었다는 점에서 당 태종 이세민은 치명적인 정당성 결함이 있었다. 따라서 집권 이후, 나아가 그 직계 후손들이 당 황실을 장악했으니, 이런 부끄러운 역사를 분식해야 했는데, 그 분식은 정관정요에서 정점을 이룬다. 

성군을 위해서는 죽음을 무릅쓰는 맹렬한 신하가 필요했다. 이 역할을 정관정요는 위징을 등장시킴으로써 해결했다. (2019. 12. 17 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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