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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지리산 쇠말뚝의 난동[2005]

by taeshik.kim 2024.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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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일제잔재라고 선전한 지리산 쇠말뚝. 저게 일제 시대 철물로 보이니?



정다산 묘에서 철심이 발견된 데 대한 우리 언론의 보도행태와 그것을 가능케 한 밑도 끝도 없는 일제에의 저주를 ‘저주’한 블로그 글을 내가 올린 것이 불과 두 달 전인 2005년 4월30일이었다. 

철심만 발견되기만 하면,
쇠말뚝만 발견되기만 하면 

우리는 자동 빵으로 그것이 일제의 소행이라 하며, 그런 짓거리가 우리의 민족혼을 말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철심은, 그러니 쇠말뚝은 우리가 회복해야 할 순수 민족혼의 저 고향을 상정케 하는 절대 도덕률이며, 우리가 그것을 뽑아냄으로써 우리의 민족혼을 되살린다는 정언적 정당성을 담보하는 제1의 기제로 작동하고 있다. 

그런 일이 며칠 전 지리산에서도 발생했다. 

2005년 6월 26일자 우리 연합뉴스 경남 산청발로 보도된 기사는 이렇다. 

한배달 민족정기선양위원회(위원장 소윤하)는 지난 25일 경남 산청군 지리산 법계사 뒤편 옥녀봉에서 회원 10여명과 함께 혈침(穴針)을 제거했다고 26일 밝혔다. 

선양위원회 관계자는 “이 혈침은 지름 11cm, 길이 110cm의 순동으로 무게가 무려 80kg이나 됐으며 지리산의 주맥이 동남쪽으로 흘러내리는 해발 1천600m 옥녀봉 정혈 자리에 박혀 있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지금까지 전국에서 모두 88개의 혈침을 제거했지만 이날 캐낸 옥녀봉의 혈침이 가장 컸다”며 “일제가 명산에서 발원한 지기(地氣)의 흐름을 방해하거나 끊기 위해 혈맥에 박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선양위원회는 혈침을 제거한 뒤 낮 12시께 지리산 지기를 이어받아 큰 인물이 많이 나고 모든 이들에게 좋은 일이 생길 것을 기원하는 산신제를 올렸다. 

수년 전 지리산 천왕봉에서도 비슷한 크기의 혈침(놋쇠말뚝) 두개가 발견됐다.   

이 단체가 주도한 쇠말뚝 뽑기 행사를 마치 현장 중계방송하듯 한 곳도 있었다. 그 보도 내용 중 이런 구절이 발견된다.(특정 언론을 비방하기 위한 것이 아니므로 출처는 밝히지 않는다)  

“누군가가 한민족을 시기하고 민족혼을 말살하기 위한 주술적 의미로 명산 지리산에 박았던 철심이 제거되는 것을 본 많은 사람들은 앞으로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이 기사는 몇 달 전 정약용 철심 사건 당시 우리의 언론 보도행태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을 이룩했다고 할 수 있다.  

그때였으면 거의 자동 빵으로 저 ‘누군가가’가 ‘일제가’였을 것이다. 우리 회사 산청발 기사에 인용되어 있는 쇠말뚝 뽑기 단체 관련자의 예상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 기사가 내심 그 쇠말뚝을 박은 주체로 일제를 설정하고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민족혼을 말살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말할 것도 없이 그것이 전제하고 있는 절대 악은 일제다.  

나는 저 광풍처럼 불어닥치는 소위 과거사 청산 운동, 특히 일제 잔재 청산 운동이 지닌 문제점을 다각도로 지적하고 있다. 그런 과정에서 심지어 어떤 곳에서는 나를 친일파 잔당처럼 지목하는 작태도 보았다.  

나는 일제의 잔재 청산운동이라는 大義에 추호도 딴지를 걸 생각이 없다. 하지만 大義가 大義가 되기 위해서는 그런 잔재 청산운동의 객체 혹은 대상이 되는 것들이 정말로 우리에게는 없어져야만 하는 암적인 존재여야 한다는 당위가 있다.

나아가 그러한 당위가 성립한다고 해도 그런 당위의 절대 기반인 그런 잔재가 정말로 일제의 소산 혹은 유산인가도 검증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내가 검토하는 허다한 사례에서 불충분한 자료 조사와 그에 따른 논리적 귀결성의 불합리하기 짝이 없는 경우가 너무나 자주 발견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들이 소위 일제 잔재 지명 추방운동이다.  

남대문이며 동대문이며 하는 조선 궁성의 건축물들 명칭이 일제의 잔재라는 망발에 가까운 주장들이 어떠한 사료적 뒷받침도 없이 횡행하는가 하면, 인왕산의 仁旺山이 日王에서 유래한다는 코미디를 방불하는 어거지도 있다. 

조선시대 각종 지리지와 읍지와 고지도를 갖다 놓고 전국 지명을 검출하면 旺자를 응용한 지명이 허다하게 발견됨에도 내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불가능한 대목은 어찌하여 旺=日王이라는 등식이 성립하게 되었는지, 그 유래가 어디이며, 그 설을 제창한 자는 또 누구인지 알 수조차 없게 되어 버렸다는 사실이다.  

창덕궁 뒤켠 왕을 위한 전용 위락공간을 지칭하는 이름 중에서도 後苑이 원래 이름이고 秘苑은 일제의 잔재라는 자다가 봉창을 두들겨 팰 만하고, 마른 하늘 날벼락 치는 어거지 또한 유래가 어디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秘苑이란 말이 이미 1700년 전 혹은 그보다 앞선 시기에 이미 궁성 안 위락공간을 가르키는 '일반명사'요 고유명사라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자기가 모르는 것은 유래가 모두 일제에 있다고 한다.  

저 지리산 쇠말뚝 뽑기는 그 행위 자체를 적어도 탓할 곳이 어디에 있겠는가? 다른 무엇보다 그에 따른 산행 안전사고를 예방한다는 측면에서 그것을 발견하고 뽑은 행위는 분명 나무랄 곳이 없다.   

하지만 그 쇠말뚝이 일제가 박았다는 직간접적인 우리의 일반 통념 혹은 인식은 일대 망발이라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첫째, 저 지리산 쇠말뚝은 그것을 박은 者가 누구이며 그것이 언제 박혔는지 어떠한 증거도 지금은 확보되지 않았다. 사정이 이럼에도 그것을 일제의 잔재 혹은 일제의 소행으로 간주하는 행태는 폭력이며 폭거다. 

설혹 저 쇠말뚝이 일제가 박은 것이라고 해도 그러한 확정적 혹은 그에 준하는 증거가 나올 때까지 그것이 일제의 잔학상을 말해주는 증거라는 주장은 망발에 지나지 않는다. 

쇠말뚝이 일제의 잔재 혹은 소행이 되지 않는다 해서 일제의 폭압성이 덜해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뒤받침하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음에도 그것을 일제의 잔재로 지레로 간주한다. 

둘째, 그것은 이미 지난 4월에도 내가 지적했듯이 쇠말뚝 박기는 일본적인 전통과는 하등 관계가 없다. 

셋째, 쇠말뚝이나 철심은 우리의 전통이며 유산이다. 특히 무속사회에서는 이런 전통이 아직도 온존하고 있다. 그 전통이 좋고 그름을 떠나, 그런 전통을 계발하고 발전케 하고 그것을 지금까지 온존케 한 주체는 분명 우리다.   

넷째, 이번 지리산 쇠말뚝 또한 적어도 사진자료만으로 검토한 결과에 의할 지면, 결코 일제시대 유산이 될 수가 없다. 오래돼 봐야 10년 남짓한 것으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다섯째, 설혹 저 쇠말뚝이 박힌 시기가 일제시대로 밝혀진다 해서 그것이 일제의 잔재라는 등식을 성립시킬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조선총독부 혹은 대일본제국 정부의 공권력이 개입돼 있음을 입증해야 하며, 나아가 그런 박기 행위가 한민족의 혼을 말살하기 위한 차원에서 진행됐다는 증거도 있어야 한다. 

혹자는 저런 쇠말뚝이 토지 측량 등을 위해 일제시대에 박은 것이라 주장하기도 하는데, 설혹 이런 논리가 타당성이 입증된다면 그것은 민족혼 말살과는 하등 관계가 없음이 백일하게 드러나게 된다. 

일제시대에 일어난 일이라 하여 그것을 일제의 소행과 연결시킬 수는 없다. 

그런 식으로라도 우리의 일본 혹은 일제에 대한 분노를 풀고자 한다면야 나는 할 말이 없거니와, 혹여 그렇다면 그것은 마스터베이션일 뿐이다. 

그런 마스터베이션이 우리에게 순간의 쾌락을 가져다 줄 지언정, 그 궁극적인 지향점은 개망신에 있을 뿐이다. 일본이 역사를 왜곡한다고 난리법석을 피우면서 정작 우리는 그보다 더한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말도 안되는 행태들이 왜 말이 되지 않는지도 지적하기가 이젠 나도 쪽 팔려서 죽겠다.

그럼에도 내가 줄곧 이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아무런 증거도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며, 외려 허다한 경우에 그 철거 대상으로 지목된 전통들이 대부분 실은 나의 어머니 아버지, 그 어머니 아버지의 어머니 아버지, 당신들의 이룩해온 전통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주장들에 기반한 인식이나 통념이 단순히 그러한 인식이나 통념을 넘어 사회에 대한 폭력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로서는 그런 무지막지한 폭력을 알고서도 용인하고픈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 과정에서 다른 순수한 많은 시민운동이 애꿎은 피해를 보지도 않을까 하는 우려감도 있다. 일제 잔재 추방 운동, 특히 지명 개정운동을 벌이는 주체들이 대체로 환경 관련 운동 단체나 운동가들인데 그 때문에 그들이 주도하는 다른 '좋은' 운동들조차도 소위 그에 적대적인 단체나 개인들에 의해 공격받는 빌미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 운동을 주창하는 사람들의 철저한 증거주의 정신 무장이 필요하다.

증거도 없이, 혹은 증거에 대한 충분한 조사도 없이 덮어놓고 내질러 버리기만 해서야 되겠는가?   

어느 때보다 역사주의 정신을 되새겨 볼 때다. (2005.07.02 09:3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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