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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세곡동 일대에 임대주택이 들어설 무렵이었다. 

재개발 예정지는 나중에 한강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조사를 벌였으며, 지금은 아마 아파트가 서 있을 것이다. 

한데 그 개발이 추진되는 와중에 인근 주민대표들들이 당시 문화재 담당 기자인 나를 찾아왔다.  이른바 좀 있는 사람들이다. 

그네들 이야기인즉, 세곡동 임대주택 개발 계획을 막아달란 얘기였다. 

이야기인즉, 이곳에는 문화재가 많으니 개발은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다녀간 뒤 다른 곳에 알아보니, 임대주택이 들어오면 인근 부동산 가격이 하락함을 염려한 데서 나온 도움 요청일 가능성이 컸다. 

내가 알기로 그네들이 그 개발을 막고자 마지막으로 찾아낸 것이 문화재였다. 

그때 내가 실감했다. 

"아, 시대가 변했다. 문화재가 방패막으로 나서는 시대가 되었구나"


비슷한 시기. 제주도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로 몸살을 앓았다. 

다 나가 떨어지고 마지막에 오직 문화재만이 남았다. 

난 문화재가 그리 힘이 있는 방패막이가 되는 줄 미쳐 몰랐다.


다시 비슷한 시기 

사대강 사업이 논란이었다. 

그것을 막고자 하는 방패막이 최전선에 문화재가 동원되는 장면을 목도했다.


그보다 좀 이른 시기

등록문화재가 도입된 초창기였다. 

지금은 제도도 바뀌고, 지원 방안도 좀 보강되었지만 초창기에는 그러지 않아 등록은 말 그대로 등록일 뿐이라, 소유주 꼴리는대로였다.

당시만 해도 문화재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킬 때라 등록문화재라고 하니, 예고된 그날 소유주는 포크레인 동원해서 그 건물을 부수어버렸다. 

이렇게 해서 서해안 소금창고는 일거에 사라졌고, 명동 어느 건물도 폭삭 폭파됐다.

이 등록문화재 초창기 시대가 내가 보는 문화재에 대한 반항의 마지막 발악시기다. 

이후 문화재를 바라보는 시각이 변해 급속도로 방패막이로 나서기 시작했으며, 심지어 투자대상으로 변했다. 


여전히 문화재를 향한 저항이 만만치는 않으나 전국에 걸쳐 이곳저곳 문화재 못만들어 환장하는 시대에 돌입했다. 내가 정확한 통계치는 없지만 지금 문화재위에 사적 지정해달라고 올라온 건수가 300건이 넘는다고 안다.

격세지감이다. 

문화재라는 말만 들어도 도망가던 시대가 불과 엇그제인데 이제는 너도 나도 문화재 만들어달라 아우성인 시대다. 


왜인가?

문화재는 그 자리에 있었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하고, 그에 덩달아 조금은 제도와 지원 방안도 좀 바뀌었기 때문이다.

설악산?

이거 세계유산 만들겠다 했더니 안된다 데모하고 지랄한게 1995년 1996년이다. 

요새는 세계유산 못만들어 환장한다.

부여 공주 익산은 세계유산되고 나서 지금 혁명이 일어났다. 

그 주변 가봐라. 

작년에 알던 그 부여 공주 익산은 선캄브리아 후기로 벌써 사라지고 없다. 

천지개벽이다.

문화재가 돈이 되는 시대다. 


나아가 문화재 지정되기만 하면 소유주는 손도 안대고 코푸는 시대가 돌입했다. 

이걸 이미 민감하게 알던 곳이 불교계가 대표하는 종교집단과 문중집단이었다. 

이들은 이미 알았다. 

문화재로 지정되기만 하면 불사 국가 돈으로 하고 문중 일 국가돈으로 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지자체 역시 마찬가지라. 일단 국가지정문화재가 되면 중앙정부 7, 지방정부 3 비율로 부담하되, 다시 지방정부 부담률은 광역자치단체 5, 기초자치단체 5 비율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안다. 

돈 거의 안들어간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안다.

내가 잊어먹기 전에 내 시대에 일어난 문화재의 드라마틱한 변모를 기록해둔다. 

그렇다고 내가 저런 변화를 부정적으로 평가한다거나 아니면 긍정으로 바라본다는 생각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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