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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난고13

이재난고頤齋亂藁, 난고에서 출판으로 《이재난고頤齋亂藁》는 황윤석 사후 순조 연간 《이재유고頤齋遺藁》를 편찬할 때 1차 정리가 되었다. 문집은 난고에서 일부를 뽑아 간행한 것이다. 빠진 게 너무 많아 이후 《이재속고頤齋續藁》로 간행하였으며 《이재난고》에 탈고한 원고 형태로 들어 있는《이수신편理數新編》도 이후 간행되었다. 당시 후손들이 정리한 《이재난고》는 모두 60책이었다. 이후 황윤석의 수고본 일부가 더 발견되어 현재는 62책이다. 《난고》에 포함되지 않은 그의 서간이나 저작까지 포함하면 600만 자는 너끈히 넘는다. 다른 이 저작이 다수 포함된 《여유당전서》가 500만 자 정도이니 그 방대함은 짐작할 수 있으리라. 그 가운데 53년의 일기는 47책 400만 자 정도이다. 그간 알려지지 않은 자료 가운데 흥미로운 것은 4책이나 되는 그의 .. 2021. 4. 29.
이재난고頤齋亂藁, 530만자에 쑤셔박은 잡학집성 '조선시대 타임캡슐' 이재난고(頤齋亂藁) 250년만에 고창군 귀향 김진방 / 기사승인 : 2021-04-26 16:12:09 현존하는 조선시대 일기류 기록 중 최대·최다 사료…530만자 분량 고창군 "보물 지정 승격, 국가 중요 과학기술자료 등록 추진" ′조선시대 타임캡슐′ 이재난고(頤齋亂藁) 250년만에 고창군 귀향 (고창=연합뉴스) 김진방 기자 = 조선 후기 실학자 이재 황윤석(1729~1791년)이 평생에 걸쳐 기록한 백과전서 ′이재난고′(頤齋亂藁) 일부가 황윤석의 고향인 고창군으로 돌아온다.고창군은 황윤석 k-odyssey.com 이 이재난고와 관련해서는 내가 자주 언급한 듯하고, 무엇보다 장성 독거노인이 틈만 나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고자 툭하면 끌어다 대는 문헌이라, 무엇보다 그가 나고 자란.. 2021. 4. 27.
폐허가 된 경복궁의 돌거북 이재 황윤석의《이재난고(頥齋亂藁)》 18卷 영조 47년(1771, 신묘) 4월 11일 辛巳 기사에는 중건 이전 경복궁을 알려주는 기록이 적지 않게 있습니다. 그 가운데 광화문 안쪽 금천교, 지금은 영제교 옆 물가에 있던 돌거북 2좌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늘날 남은 하나가 그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남별궁 담장 안으로 옮겼다는 것은 오늘날 조선호텔 인근에 있는지요?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경복궁 광화문 안에 금천석교가 있는데 다리 옆 물가에 큰 돌거북 2좌가 있었다. 조각이 대단히 정교하여 지금은 그렇게 잘 만들 사람이 드물다. 임진왜란에 그중 하나를 남별궁 뒤 담장 안에 옮겼는데 민간에서 왕왕 복을 빌고, 다른 하나는 여전히 완연한 모습으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하늘에서 큰비가 내리.. 2020. 11. 4.
점칠 때 쓴 일본 동전 관영통보寬永通寶 전에 고고학자들께서 일본 관영통보寬永通寶가 더러 발굴되는데 그 용도가 무엇인지 물으시곤 하였다. 그 용도를 알 기록이 있어 소개하니 알아서들 전파하여 쓰시기를.....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1729~ 1791)의 《이재난고頤齋亂藁》 29卷 정조 3년(1779, 기해) 6월 5일 기사에 이날 윤군(윤광세尹光世)이 점치는 동전으로 쓸 3매의 일본 관영통보라는 것을 주었다.[是日 尹君以占錢三枚 日本之寬永通寶者見贈] 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관영통보에 다른 용도가 없지는 않았겠으나, 일단 점치는 데 사용했다는 사실 하나는 알 수 있습니다. 2020. 11. 4.
조선후기 지도에 보이는 장성 아치실 하남정사河南精舍 장성군長城郡 황룡면黃龍面 아곡리鵝谷里로 《세조실록》에 보이는 소곡小谷이 원래 이름이다. 계속 소곡만 사용하다가 영조 때 집 당호에 하남정사河南南精舍가 쓰이면서 하남리河南里라는 이름이 새로이 만들어졌다. 소곡은 작은 마을이라는 뜻으로 우리말로 아치실이다.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1729~1791)은 그의 백과사전식 일기 《이재난고頤齋亂藁》에서 小谷=鵝谷=아찬곡阿餐谷=제곡弟谷이라 적었으니, 소곡은 뜻으로 표기한 것이고, 나머지는 우리말 아치실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첫번째 사진인 1872년 《장성부지도》부터 하남河南이라는 명칭이 보인다. 장성군이 홍길동테마파크를 조성해 놓은 곳이 아곡이고 그곳에 있는 사창社倉이 지금 홍길동테마파그 주차장이 된 곳이다. 이 사창은 1900년 무렵 학교로 사용되었는데, 학교 이.. 2020. 3. 31.
황윤석黃胤錫이 말하는 전라도 장성땅 아치실 이야기 by 황윤석(黃胤錫, 1729~1791) 〈아곡鵝谷〉 - 소곡(小谷), 아차실이라고도 하고 제곡(弟谷)이라고도 하며 어떤 이는 아찬곡(阿餐谷)이라 부른다.-鵝谷【亦曰‘小谷、아차실’, 亦曰‘弟谷’, 或云‘阿餐谷’。】 조상님들 거치셨던 이곳 아치실은 吾祖經行地깊은 산속 골짜기로 마을 아늑하네 山深里巷幽기수의 대나무엔 옛 그리움 남았고 淇竿留舊戀마당의 눈에는 유학한 자국 쓰였네 庭雪記曾游쓸쓸히 잔약한 손자가 여기 있나니 寥落孱孫在멀고도 아득하니 너무도 오랜 세월 蒼茫小劫悠해는 뉘엿뉘엿 말을 몰아 떠나면서 斜陽駈馬去가는 걸음걸음 자꾸자꾸 돌아본다 臨路更回頭 - 첨정부군(僉正府君)께서는 이씨(李氏) 집에 장가들었고, 취은부군(醉隱府君)과 구암부군(龜巖府君)께서는 기씨(奇氏) 집에서 배우셨으니 3세의 유적이 모두 .. 2019.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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