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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12

다산이 당대 조선 최고의 지식인은 맞다 하지만.. 그가 가진 사상이 근대화와는 별 상관도 없고, 유학자로서 박학다식하여 이것 저것 모아 엮은 박학다식-백과전서파의 지식인었지만, 그조차도 같은 시기 중국과 일본의 당대 지식의 수준보다 떨어지는 것이었다면, 다산의 가치는 도대체 어디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다산신화"도 이제 "세계화"의 냉정한 평가의 대상이 되어야 할 때가 되었다. 다산은 지금 한국사에서는 "벌거벗은 임금님"이나 다름없다. 누구도 잘 모르면서 대단하다고 이야기 한다. 어디가 대단하냐고 물으면 대답을 못한다. 그러면 대단한 게 맞기는 맞는지 한 번은 의문을 가져야 옳지 않겠는가? 2023. 1. 14.
읽어보지도 않고 칭찬하는 다산 다산에 대한 평론서 태반은 재대로 읽어보지도 않았거나 읽어 봐도 다산이 쓴 책만 보고 쓴 내용이 태반이다. 쉽게 말해서 다산이 한 주장이 유학사 전체 줄기에서 얼마나 다른 것인지, 구체적으로 다산이 뭐라고 했는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쓴 글이 태반이라는 소리다. 다산에 대한 평가는 바닥부터 다시 해야 한다. 2023. 1. 14.
논어고금주論語古今註와 여전론閭田論 앞에서 쓴 바와 같이 필자는 《논어집주論語集註》를 읽을 때 《논어고금주》를 같이 놓고 읽는 방식으로 통독한 바 있다. 《논어고금주》에는 《논어집주》의 주자朱子 주註에 없는 내용이 많이 실려 있다. 제목 그대로 고금주古今註, 여러 사람의 주를 다 모아 놓은 것이라 주자집주集註보다는 내용이 풍부하다. 정다산의 논어고금주를 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소위 말하는 한당漢唐의 주석가들이 달아 놓은 주석에는 자유로이 자신의 생각을 펴고 반박하는데 주자 주에는 거의 이설을 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다산이 주자 주장을 논파하고 새로운 자신의 경학을 펴려고 헀다면 이를 위해 반박의 여지가 있는 주자의 주가 논어에는 수두룩하므로 여기서 주자의 주장에 거의 이설을 달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다른 경학이라는 것도 사실 비슷할 것이.. 2022. 12. 6.
다산 정약용이 구상한 여전제閭田制 아래는 국사편찬위 우리역사넷에 올라 있는 여전론閭田論에 대한 기술이다. 원문을 간략히 간추린다. 여전론은 정약용 토지개혁론 가운데 가장 먼저 마련된 것으로서, 그 구체적인 방법은 다음과 같다. 먼저 자연적인 지리와 경계를 고려하여 대략 30호 정도로 말단 행정조직인 여閭를 만들고, 여의 경계 안에 있는 토지는 여민이 공동 소유한다. 다음으로 여민은 가부장적 권위를 가진 지도자인 여장閭長의 지휘를 받아 이 토지를 공동 경작하고, 여장은 개개인의 노동량을 장부에 기록하였다가 가을에 수확한 생산물을 한 곳에 모아 놓고 기여한 노동량에 따라 분배한다. 이때 국가에 내는 10분의 1세와 여장의 봉급을 먼저 공제한다. 여전론 특징은 한마디로 모든 토지의 사유화를 인정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만 토지의 점유권과.. 2022. 12. 5.
양평 두물머리에서 만나는 실학박물관 저는 ‘실학’ 하면 ‘갑자기?’ 이런 느낌이 있습니다. 학교다닐때 한국사 수업을 들으면 조선시대 소용돌이 같았던 우당탕탕 조선시대 정치•사회•경제 파트가 끝나고, ‘그런데, 우리 안에서도 근대화를 위한 태동이 있었는데~~~’ 하면서 갑자기 등장하는 파트가 ‘조선후기 근대화의 태동’ 그 중 ‘실학’ 이었습니다. 당연히 갑자기 등장한 사상이 아닌데, 교과서에서는 저 한 줄로 요약해 버리니, 저는 갑자기 ‘실학’이 뿅! 하고 등장한 것 같았습니다. ‘실학’하니 갑자기 학교 다닐 때가 생각이 나서 서론이 너무 길었습니다. 과학관을 다니면서 실학박물관에도 다녀와야지 싶었는데, 드디어 다녀왔습니다! 전시장 유리에 반대편 모습이 비쳐 마치 증강현실처럼 사진이 나왔군요. 육면체로 된 유물이라 뒷면도 보고 싶었는데, 아.. 2021. 7. 28.
정다산의 중국환상 "중국은 문명이 발달해 아무리 외진 시골이나 먼 변두리 마을에 살더라도 성인이나 현인이 되기에 큰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우리는 서울 사대문에서 몇 리만 떨어져도 아득한 태고적처럼 원시사회다. 하물며 멀고먼 시골은 어떠하랴? 무릇 사대부 집안은 벼슬길에 오르면 서둘러 산기슭에 셋집을 얻어살면서 선비로서의 마음가짐을 잃지 않아야 한다. 혹시 벼슬에서 물러나더라도 재빨리 서울 근처에 살며 문화의 안목을 떨어뜨리지 말아야 하니 이것이 사대부 집안의 법도다." 유배지에서 다산 정약용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 한 구절이다. 원문을 대조하지 않고 누군가의 번역을 옮긴다. 원문이 없으니 대조가 불가능하다. 다산...요즘 태어났으면 재빨리 미국으로 날랐을듯.. 거기서 원정출산도 했을 듯 왜 중국이었을까? 그것이 단순한 환.. 2018.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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