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2200 1920년대의 이병도 이병도 선생은 일전에 한 번 살펴 본 바 있으나 그 내용을 전제하고 좀 더 보강하여 자세히 적어본다. 선생 프로필은 다음과 같다.어려서 한학을 수학하고 서울로 올라와 중동학교(中東學校)를 졸업했다. 1912년 보성전문학교 법률학과에 입학해 3년 과정을 마쳤으며, 이어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에 진학, 고등예과(高等豫科)를 거쳐 1919년 문학부 사학급사회학과(史學及社會學科)를 졸업했다.요약하면: 한성보광보통학교-중동학교-보전 법률학과 (1915)-와세다대 고등예과-동 문학부 사학 및 사회학과 졸 (1919)이다. 중동학교는 고보 (중학) 졸업이니 보전 입학으로 이어졌을 것이고, 이어 와세다대 고등예과를 들어갔다고 한다. 선생은 보전 입학으로 고등학교 졸업과 같은 학력을 얻었기 때문에, 예과를 들어갈 .. 2025. 9. 13. 가뭄에 바닥 드러난 이라크 저수지서 2,000년 된 무덤 수십 곳 발견 CBS 뉴스에 따르면, 이라크 북부 모술 댐Mosul Dam 저수지에서 가뭄으로 이라크 최대 저수지 수위가 낮아지면서 40기 고대 무덤이 발굴되었다. 고고학자들은 2023년에 수위가 낮아진 시기에 이 지역을 조사했지만, 일부 무덤만 확인했다. 이번에 확인된 40개 무덤은 2,300년 이상 된 헬레니즘 또는 헬레니즘-셀레우코스 시대Hellenistic-Seleucid period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지역에서 발견된 수천 년 전 유적도 5년 연속 가뭄으로 최근 몇 년 동안 모습을 드러냈다.두호크Duhok 고고학부장이자 유적 고고학 작업 책임자인 베카스 브레프카니Bekas Brefkany는 "가뭄은 농업과 전기 등 여러 분야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우리 고고학자들에게는… 발굴 작업을 할 수 있는 .. 2025. 9. 13. 일제시대 나오는 조선인 업적은 모두 총독부 공인가 일제시대에 대한 우리의 역사학적 클리셰가 수탈이다 보니 일제시대 조선인이 만들어낸 업적에 대해서도 쉽게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 시대에 조선인들은 모두 수탈에 신음하고 있어야 한다는 선입견 때문일까. 그런데 그럴 필요 없다. 일제시대에는 당연히 조선인에 대한 차별이 있었다. 그것도 필자의 생각으로는 아주 조직적으로 있었다. 단순히 감정상의 차별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조선인들도 그냥 당하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런 차별에 대한 저항을 생각하자면 대개는 독립운동이나 동맹휴학등만을 생각하는데, 차별을 뚫고 놀라운 업적을 만든 사람도 많다. 우리는 흔히 이런 사례로 손기정만 생각하는데 각 분야에서 다 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일제시대에도 세계에 대한 소식은 충분치 않지만 조선인들에게 계.. 2025. 9. 13. 두계 이병도의 등장: 1923년 1923년에는 동아일보에 두계 이병도 선생의 "조선사개강"이 연재된다. 이것이 아마도 두계가 공식적으로 대중에게 자신의 사론을 발표한 첫 번째가 아닌가 하는데 (아닐 수도 있다)1923년 동아일보에서는 무려 1면 다단기사로 두계의 사론을 싣기 시작,총 60여 회를 연재했다. 두계가 1896년 생이니 이때 나이 서른도 안 되었던 셈이다. 1920년대 문단과 학계의 전면에서 활약한 이들은 대부분 그 정도 나이였다고 본다. 앞에서 예를 들었던 이광수도 1892년 생으로 두계보다 4살이 많다. 따지고 보면 구한말과 일제시대에 10대와 20대를 보낸 사람들인데, 그 앞에 이런 분야에서 신풍조를 받아 일할 이가 워낙 없다 보니 대략 1890년 생들이 1920년대에는 벌써 전면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2025. 9. 13. 도전의 시대 1920년대... 말로리와 에베레스트 에베레스트 등정은 힐라리와 텐징의 1953년 초등이 가장 유명하지만, 사실 이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에 대한 등정 시도는1920년대에 이미 본격화했다. 20년대 산악 등정의 대표 주자 격이었던 말로리는 1920년대 영국의 에베레스트 원정을 이끌었다. 1921년, 1922년, 1924년 세 번의 에베레스트 원정을 했는데모두 실패하고 마지막 원정인 1924년 조난하여 에베레스트에서 사망하였다. 말로리가 죽기 전 에베레스트 등정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등정하고 하산 길에 조난했다는 주장도 있고, 등정에 실패하고 조난했다는 설도 있다. 그의 시신은 2007년이 되어서야 발견되었다. 시신이 발견 된 후에도 그의 등정 여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는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 오른다"라는 말을 남긴 사람으로.. 2025. 9. 13. 송 황제릉 석장자石藏子 절강성 소흥서 발견 최근 절강 소흥 송 육릉 고고대浙江绍兴宋六陵考古团队가 송 육릉宋六陵 중 북릉北陵 지역에서 첫 번째 제후릉 '석장자石藏子'를 발견했으며, 이는 송육릉 고고학에서 발견된 일곱 번째 제후릉 '석장자'다."석장자"는 남송 시기에 제후의 능석陵石 구조 묘실을 지칭한 것으로, 문헌 기록에 따르면 송나라 육릉에는 "칠제칠후七帝七后"가 묻혔으며, 총 14개 제후릉 "석장자"가 있다.새로 발견된 제후릉 '석장자'는 무련산雾连山 산지에 위치하며, 7호 능원으로 표시되어 있다. 7호 능의 '석장자'는 1호 능과 같은 대형 '석장자'와 같은 규격으로, 현재까지 파악된 자료에 따르면 제릉의 '석장자'로 추정되며, 일부는 여전히 차밭에 숨겨져 있고, 그 뒤에는 헌전献殿, 귀두전龟头殿 건물이 있어야 한다.7호 능황릉은 구조와 규.. 2025. 9. 13. 이전 1 ··· 204 205 206 207 208 209 210 ··· 3700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