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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 일본에 뭘 전해준 건지 모르는 조선 성리학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조선성리학은 일본에 뭔가 전해준 것은 맞다. 그리고 그것도 일본성리학의 본격적으로 도약하기 시작하는 시기에 큰 영향을 미친 것도 맞다. 그런데 문제는 도대체 뭘 전해줬는지 우리가 잘 모른다는 게 문제다. 조선은 일본에 성리학을 전해준 것이 아니다. 성리학을 전해줬다는 게 얼마나 웃긴 이야긴가. 임진왜란 전후한 시기는 이미 주회암이 사망한지 4백년 가까이 되는 시기로, 주자의 주가 사서에 찍혀 돌아다니던 때였다. 주자학을 보기 싫어도 사서를 구해 보면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는 시기였다는 말이다. 그러니 일본 쪽에서는 조선이 주자학을 전해 준 것이 아니라는 말도 한다. 그 이전부터 일본은 주자학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도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일본이야 받는 쪽 입장.. 2024. 1. 16.
할머니 죽음을 절규하는 성종 왕치王治 고려 제6대 국왕 성종 왕치王治는 아버지가 왕건의 아들 대종戴宗 왕욱王旭이요, 어머니는 선의태후宣義王后 유씨柳氏라, 이 선의태후는 다시 아버지가 왕건, 엄마가 정덕왕후貞德王后 유씨柳氏라, 복잡한 콩가루 집안 사정을 다시금 확인한다. 뭐 복잡하니 아래 계보도를 참고해 주셨으면 한다. 보다시피 그 부모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아버지는 왕건으로 같지만, 어머니가 다른 이른바 동부이모同父異母간 결혼이다. 앞서 말했듯이 고려 왕조는 이럴 때 여자는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 성을 따른다. 왜? 그래야만 대외로 우리는 족내혼이 아니라 족외혼이다 라는 사기를 칠 수 있는 까닭이다. 성이 다른 사람들이 결혼했으니, 우린 남남과의 만남이다 이런 식의 사기를 쳤다는 뜻이다. 따라서 성종한테 신정왕후神靜王后 황보씨皇甫氏는 친할머니다.. 2024. 1. 16.
당시: 靜夜思 (이백) 床前明月光 疑是地上霜 擧頭望明月 低頭思故鄕 너무 유명한 시라 이 블로그에 새삼 올릴 것도 없지만 지금 아니면 포스팅하기도 어려 울것 같아 올린다. 오늘 같이 추운 날에 술 한잔 데워놓고 읽고 보면 좋은 시인데 달빛인 줄 알았더니 서릿발이고 고개를 들어 달을 한번 보고 고개를 다시 숙이며 고향을 생각한다니 이백 답다. 이 시는 당시삼백수에는 있는데 왠일인지 고문진보에는 없다. 고문진보에는 없는데 워낙 유명해서 그런지 모르는 사람이 없는 시다. 이백 답지 않게 호방하기 보다 깊게 침잠하는 모습인데 필자 짐작에 취하지 않고 맨정신에 쓴 시 아닌가 한다. 2024. 1. 15.
종모성從母姓, 근친혼 사회의 족외혼을 위한 가식 성씨 탄생 이후 인류사는 부계 중심으로 일방적 흐름을 보였으니 그에 대한 근자의 움직임은 여기선 일단 논외로 치고 그 대표 증좌가 아들딸 구별없이 그 자식은 남자 성씨를 따르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예외없는 법칙은 없어 간혹 어머니쪽 성씨를 따르기도 하는데 이를 종모성從母姓이라 한다. 종모성이 탄생하는 조건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 경로로 좁힐 수 있으니 첫째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고 엄마만 알 때는 엄마성을 따른다. 두번째는 아버지를 알고도 일부러 아버지를 피하고 엄마성을 따르는 경우가 있으니 오늘 이야기하고 하는 것은 바로 이 경우다. 이 두 번째는 극심한 근친혼 사회에 주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으니 이 근친혼 사회라 해도 마누라는 반드시 그 씨족 바깥에서 데리고 와야 하는 족외혼이 작동하는 .. 2024. 1. 15.
고려사는 개족보와의 전쟁터 이 개새끼가 종족을 번식해 가는 과정은 재미 있는데, 본래 암캐 한 마리였다가 이 암캐 한 마리가 어디 가서 배가 불러와서는 몇 마리 낳은 순간부터 잡식성 번식을 해가니 이미 이 단계가 되면 지들끼리 번식 시대라, 애미 자식이 새끼를 까고, 새끼들끼리 새끼를 까고 하니, 이를 개족보라 한다. 신라시대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신라시대 그 면모는 기록 망실로 그 실상을 엿보기가 부족하지만, 고려시대 접어들어서는 사정이 달라져 그 개족보가 비교적 완연히 남은 까닭에 그 계보를 그릴 수 있거니와 흡사 개족보에 다름 아니다. 이 극심한 근친혼 사회는 놀랍게도 그것을 지탱 운용하는 원리가 있는데, 이 원리를 벗어나면 그것이 대의大義를 범한 것으로 간주되어 목숨을 내놓아야 하기도 했으니 비록 지친至親이라는 이유로 조카.. 2024. 1. 15.
왕건의 소폰서 황보씨皇甫씨 고려왕조를 개창한 태조 왕건은 삼한을 일통하는 과정에서 군사적 협박과 더불어 결혼을 고리로 지역 토호들을 포섭했으니, 이 과정에서 무수한 여인을 후실로 맞아들이게 되거니와, 개중 한 명이 훗날 죽은 뒤에 신정왕태후神靜王太后라는 이름을 얻은 황보씨皇甫氏다. 고려사 권 제88 열전 제1 후비后妃 전에 의하면 그는 지금의 황해도에 위치하는 황주黃州라는 고을 사람으로 훗날 고려 왕조 개창 이후 태위太尉라는 벼슬에다가 삼중대신三重大匡이라는 직책 혹은 직급으로 승진하고 죽어서는 충의공忠義公이라는 시호를 받은 황보제공皇甫悌恭이라는 사람 딸이다. 왕건은 남는 장사를 한 사람이라, 철저히 주고받기를 했으니, 황보제공이 정확히 저 결합 무렵에 어느 정도 위상을 지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떼부자였을 것이다. 왜? 통일에.. 2024. 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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