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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로물루스·레무스 형제 spinoff] (1) 언덕으로 올라가는 도시, 그리고 두 개의 city wall

by taeshik.kim 2023.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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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로마의 7개 언덕

 
앞선 이야기에서 쌍둥이 형제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어디를 터 잡고 도시를 만드느냐 하는 문제로 결국 존속살인 사건으로 발전했다는 말을 하면서 

로물루스는 팔라티노 언덕을, 동생 레무스는 아벤티노 언덕을 선호했다 했으니, 이는 결국 권력투쟁에 다름 아니다. 

비단 로마만이 아니라 언덕 hill은 인간 생활조건, 특히 도시 발달에서 매우 긴요한데, 내가 늘 말하듯이 사람의 일상 거주공간이 평야지대로 내려온 것은 근대 이후다.

무엇보다 평야지대는 충적지라, 걸핏하면 강물이 범람하는 지역인 까닭에 치수治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인간이 일상으로 거주할 곳이 못 되는 저주받은 땅이다.
 

바뇨레조 라는 데로, 왜 저런 데 기어올라가겠는가? 겁이 많아서다.

 
그래서 인간은 본능으로 높은 곳으로 기어올라가게 되어 있다.

하지만 무한정 높은 곳으로 갈 수는 없으니, 적당한 높이로 올라가야 한다. 이 적당한 높이가 바로 언덕 hill이다.

한국사회에서도 농촌 혹은 산촌을 가면 예외없이 앞으로는 강물이 흐르지만, 홍수 피해가 상대로 적은 기슭에다가 동네를 만든다. 

로마는 전체로 보아 분지라고도 할 만하겠지만, 실상 비교적 높은 산이 너무 먼 데 펼쳐진 평야도시다. 그 복판을 테베르 강이 흘러가며 젖줄 구실을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충적지대랑은 거리가 좀 있다.

완전한 평야도 아니요, 곳곳에 야트막한 언덕이 발달했으니, 이 언덕 주변으로 보면 희한하게도 천애절벽인 곳도 있고 해서 어느 한 쪽만 틀어막으면 천연 요새 구실도 한다. 

이 적당한 높이는 그래서 안정감을 준다. 첫째 홍수로부터의 안전성을 담보하고, 둘째 외적 침입으로부터의 안전성 혹은 방어성을 제공한다. 그래서 예외없이 도시는 이 언덕배기를 중심으로 발달하게 된다.

같은 언덕이라 해도 우리는 뒤로 산이 병풍처럼 펼쳐진 데 견주어 저짝도 그런 데가 없지는 않겠지만, 천애절벽 같은 방어력을 갖춘 언덕배기에 오밀조밀하게 각종 도시 기능이 밀집한다. 

물론 이것도 초기 얘기라, 도시가 확대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평야지대로 펼쳐간다.

또 한 가지, 언덕배기로 올라간 도시는 가장 심각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바로 물!! 이다. 이 물 문제는 생존이 달렸다.

그만큼 중요한 문제라 이를 어떻게 해결하려 했는지는 또 다른 궁구거리다. 
 

전쟁보다 더 겁나는 게 실은 홍수다.

 
이런 언덕을 이탈리아어로는 콜리나 collina라 한다.

로마는 제국 이름이기도 하면서 그 수도 이름이라, 우리가 말하는 로마는 로마제국 시대 로마라는 수도를 말하거니와, 문제는 이 로마도 끊임없이 변모했으므로, 어떤 시점을 잡느냐에 따라 얘기가 왕청나게 달라진다. 

이런 도시는 유럽 도시도 그렇고, 한국사회에서는 이른바 읍성이라 해서 city wall이 발달하게 되거니와, 이 시티월을 중심으로 도시는 안팎을 구분한다.

이 시티월은 군사력 방어력은 제로다. 왜? 너무 커서 방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른 실용 기능보다는 안과 밖을 가르는 상징성에 더 무게중심이 간다. 간단히 말해 안쪽에는 있는 놈들, 밖에는 없는 거지들이 사는 동네라는 인지적 경계 설정 말이다. 

로마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서기 330년 5월 11일, 수도를 비잔틴, 지금의 이스탄불로 옮겨가면서 실상 폐허가 되다시피 하고, 그 자리에 남아 명백을 유지하던 서로마제국마저 이내 붕괴하고 마니, 실상 우리가 말하는 로마 혹은 로마제국은 그 역사가 끼껏해야 500년도 되지 않는다.

로마는 기원전 146년 카트타고를 멸함으로써, 지중해 패권을 장악하게 되니, 이때가 우리가 아는 로마시대 서막이라 해도 좋다.
 

파란색이 세르비우스 방벽이고, 붉은색이 아우렐리우스 방벽이다. 후대 방벽이 테베레 강을 넘어 지금의 트라스테베레 지역까지 영역을 확장했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앞서 잠깐 논급한 로마를 감싼 시티월을 다시 논하자면, 크게 두 가지가 있어, 지금도 그 녹록한 흔적이 곳곳에 로마 시내에는 남았으니, 자연 로마 제국의 확대에 따라 기존 시티월은 밖으로 확장하게 된다.

개중 하나가 이전 시대에 존재한 세르비아누스 방벽 Servian wall이며, 다른 하나가 후기에 도시 확대에 따라 그 영역을 더욱 넓힌 아우렐리우스 방벽 Aurelian wall이다.

로마 중앙역인 테르미니역을 나서자마자 오른편에 이상한 담벼락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전자의 성벽 잔해다. 
 

테르미니 인근 세르비우스 성벽



세르비우스 월 Servian Wall 은 라틴어로는 무루스 세르비 툴리 Murus Servii Tullii 라 하며, 현대 이태리어로는 무라 세르비아네 Mura Serviane라, 그 건립 시점은 4세기 초반이다. 

높이 대략 10m에 너비 3.6m가량이며 총길이는 11km다. 16개 문이 있었다고 하지만 살아남은 건 한둘이다. 

그것이 감싼 면적은 246헥타아르. 전설이라는 영역을 벗어나기는 힘들지만 아무튼 세르비우스 툴리우스 Servius Tullius 라는 로마왕정 제6대왕 재위 시절에 만들었다 해서 이리 이름한다. 
 

세르비우스 성벽은 이렇게 불쌍하게 남았다.



이 시티월은 서시 3세기 아우렐리우스 방벽이 등장함에 따라 시티월 기능을 상실한다. 
 

로마 시내 곳곳에는 이 아우렐리우스 성벽이 이런 식으로 비교적 잘 남아있다. 시멘트로 쳐발라서 오래간다.

 
아우렐리우스 방벽, 이태리어로는 무라 아무렐리아네 Mura aureliane인 이 친구는 건축시점이 서기 271~275년이라, 아우렐리우스 황제 시절에 쌓았다 해서 이리 이름한다.

이 성벽은 기존 방벽이 커버하던 7개 언덕 seven hills of Rome은 물론이고  캄푸스 마르티우스 Campus Martius랑 무엇보다 로마 시내를 북남으로 관통하는 테베르 강 건너편 일부(이곳은 현재 트라스테베레라 일컫는 곳이다)까지 커버한다.

대체로 서쪽 방벽은 테베르 강 동안을 따라 쌓았다. 전체 길이 19km로 기존 방벽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그것이 감싼 총면적은 1천400헥타르. 성벽 재료도 기존 화산 폭발로 생긴 응회암과는 달라져 블록 시멘트로 대체됐다. 

젠장, 이 이야기가 아니라 로마의 7개 언덕 얘기를 하려 했는데 또 옆길로 샜다. 이러다 로마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가는 데까지 가 보기로 한다. 어디서 끝날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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