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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69

[추적, 한국사 그 순간 -2-] 김유신의 김춘추 겁박 춘추가 임신한 문희와 혼인 미적거리자 “태워죽여라” [중앙선데이] 입력 2016.07.24 00:44 | 489호 23면 김유신은 월경(月經)이라는 난관을 눈부신 ‘대타 작전’으로 돌파했다. 애초엔 큰 누이동생 보희(寶姬)를 김춘추와 짝지어줄 요량이었지만 ‘거사(巨事)’를 준비한 그날 보희가 월경 중임을 알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작은누이 문희(文姬)를 찢긴 옷고름을 걸치고 바느질을 기다리는 김춘추가 있는 방으로 밀어 넣었다. 방에 들어설 때 문희 모습을 『삼국사기』는 “담백한 화장과 산뜻한 옷차림과 빛나는 요염함이 사람의 눈을 부시게 했다(淡粧輕服光艶炤人)”고 묘사했다. 그 아름다움에 넋이 나간 22세 청년 김춘추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에 김춘추가 “혼인하자고 해서 혼례식을 치르고 이내 임신해 아들.. 2018. 1. 20.
[추적, 한국사 그 순간 -1-] 김춘추와 문희의 혼인 김유신, 춘추 방에 언니 대신 동생 들여보낸 까닭 [중앙선데이] 입력 2016.06.26 00:40 | 485호 23면 단재 신채호(1880~1936)는 이민족인 당나라를 끌어들여 같은 혈통인 백제와 고구려를 멸하고는 불완전한 민족 통일을 달성했다는 이유로 김춘추와 김유신(595~673)을 싸잡아 비난했다. “김유신은 지용(智勇·지혜와 용기) 있는 명장이 아니요, 음험취한(陰險鷲悍)한 정치가며, 그 평생의 대공(大功)이 전장에 있지 않고 음모로 인국(隣國)을 난(亂)한 자”라고 했다. 음험취한은 요컨대 음흉하기 짝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단재는 그 보기로 그가 김춘추와 처남 매부가 된 사연인 소위 ‘축국(蹴鞠) 사건’을 들었다. 혹독하기 그지없는 이런 평가는 그 이전까지 천 수백 년가량 지속된 만고의.. 2018. 1. 20.
김유인의 70세 치사致仕(정년퇴직)와 생일 삼국사기 신라 문무왕본기에 의하면 그 재위 4년(664) "봄 정월에 김유신이 나이가 많음을 이유로 벼슬에서 물러날 것을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고 안석과 지팡이를 내려주었다" 고 하거니와, 이때 김유신은 70세가 되는 해였다. 《예기禮記》 왕제王制편에 이르기를 70세가 되면 치정致政한다 했거니와, 이는 정확히 그 예법이 문무왕 당시에 통용함을 보여준다. 치정이란 글자 그대로는 정사政事를 놓는다는 뜻이니 흔히 치사致仕라 한다. 다시 말해 이 시대 신라는 예기가 대표하는 예법이 그대로 법률 혹은 관습으로 강제되고 있음을 본다. 한데 이에서 주목할 점이 있거니와 하필 김유신이 치정을 요청한 때가 그해 시작 시점인 정월인가 하는 대목이다. 고래로 70 치정에 관련해서는 70세가 되는 시점을 어디로 잡을 것이냐가.. 2018.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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