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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사기념과학관恩賜記念科學館, 대정 천황 내탕금으로 비롯한 한국과학의 효시 2) 은사기념과학관 1925년(大正 14) 5월 10일 다이쇼大正 천황 성혼成婚 25주년 기념 축전을 거행하는 때를 맞아 사회교육을 장려한다는 취지로 내탕금 17만 원이 하사되었다. 이를 주요 재원으로 설비비에 충당하고 경상비는 국고 보조(첫해 보조 예산 5만 원)를 받아, 왜성대倭城臺 구舊 총독부 청사를 이용해 1926년(大正 15) 1월 은사기념과학관을 창립하고 1927년(昭和 2) 5월 10일부터 개관했다. [515] 은사기념과학관은 재단법인 조선교육회 교화부의 사업으로 이를 경영하게 하여 널리 내외의 교화 자료를 수집하고 현대 문화의 축도縮圖를 일목요연하게 드러내고, 실지로 문명의 혜택을 평이하고 간명하게 전달시키며, 민중의 과학적 상식을 계몽·배양하고, 이용후생이 과학에 근거해 왔음을 이해시키며.. 2024. 2. 27.
북방개척의 동반자: 무우? 윤관 북벌, 그리고 조선 전기의 북방개척 (사군육진) 때, 우리 농민들이 가지고 간 농산물이 무엇이 있을까. 문헌 근거는 많지 않아 보이지만 추정을 하자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일단 조선 전기의 개척 때도, 쌀농사는 두만강 유역으로 들고 가지 않았을 것이다. 밭농사가 주축이었을 것이라고 본다면, 기장과 조는 반드시 있었을 것 같지만, 보리를 들고 들어갔을까? 확실한 건 무우는 분명히 들고 들어갔을 것이다. 조선시대 군인들의 휴대품 중에 무우씨는 반드시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고, 현지에서 군인들이 농사를 지을 때 무우씨는 반드시 심었다니 사실 무우는 수확이 빠르고 끓여 먹고 구워 먹고 심지어는 날 것으로도 먹을 수 있어 무우는 반드시 심었을 것이다. 2024. 2. 27.
한국에서 목판인쇄가 번성한 이유 필자가 보기엔 두 가지다. 첫째는 과거제. 과거제가 시행되어 한적을 읽어내릴 수 있는 식자층 숫자가 확보됨가 동시에 이와 관련된 교보재 서적이 많이 필요해져 목판인쇄가 호황을 누리기 시작했고, 두 번째는 대장경 조판. 대장경이 불교신앙심의 발로로 국가적 규모에서 조판되어 목판인쇄 수요를 계속 창출했다고 본다. 일본의 경우에는-. 첫째로 과거제가 없었다. 헤이시 이후 무가 정권은 과거제로 책읽을 필요도 없고 싸움으로 날밤을 샌 터라 자연히 식자층은 서울에 사는 공경과 산속의 스님들로 국한되기 시작하여, 책의 수요가 많지 않았던 것 아닌가 싶고, 이러한 상황은 불경에도 영향을 미쳐 신앙심의 발로로 사경을 많이 했지만, 장경 조판까지는 가지 않았고 국가적 규모의 조판사업이 진행될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은 무가 .. 2024. 2. 27.
에도시대 이전 일본의 식자층과 인쇄문화 에도시대 이전 일본 문헌의 특징은 필자가 보기엔, 에도시대 이전에는 목판이건 활자이건 일본에서 찍어 낸 인쇄물이 많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없는건 아니고 있긴 있는데 현존하는 에도시대 이전 인쇄물의 태반은 한반도나 중국에서 인쇄본을 들여오거나 (불경이나 인쇄서적 등) 일본 국내에도 사찰에서 목판 인쇄등을 했다고는 하는데, 불경을 제외하면 Printed in Japan은 그다지 그숫자가 많지 않은 것 같고, 인쇄본의 수요는 거의 해외에서 인쇄본 도입으로 충당한 것 아닌가 한다. 고려대장경 인쇄본이 일본에서 많이 나오는 이유라 할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서기 고사기, 그리고 칙찬와카슈 등은 에도시대 이전 것으로 남아 잇는 것이 거의 필사본인 듯 하다. 한국의 경우 남아 있는 전적의 다수가 그것이 목.. 2024. 2. 27.
붕어를 출판하고 국화를 인쇄하는 틀 난 붕어빵보다는 붕어빵을 찍는 틀을 먼저 본다. 저걸 주시하는 이유는 떡판 다식판이 진화한 형태인 까닭이다. 저걸로 모양을 내는데 그래서 같은 종류의 빵을 틀이 망가지기 전까지는 무한히 찍어낸다. 이 찍어냄이 바로 인쇄印刷다. 그러니 빵을 찍어내는 행위는 출판이다. 국화빵이라고 다르겠는가? 이 역시 국화를 인쇄하며 출판한다. 인쇄도 출판도 이젠 영역을 확대할 때다. 2024. 2. 27.
작은 창에 빛이 밝으니 [小窓多明] 작은 창에 빛이 밝으니 小窓多明 나로 하여금 오래 앉게끔 使我久坐 추사가 남긴 그 숱한 필적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씨다. 칠십이구초당이라 했으니 북청으로 귀양가기 직전 만년 글씨인데, 그 뜻도 뜻이거니와 글자 구성이 참 아름답지 않은가. 그야말로 현판으로 만들어 창 위에 걸고 싶은 글귀다. *** related article *** 제주추사관-小窓多明 제주추사관-小窓多明2021.06.17.(목) / 제주추사관 소창다명사아구좌 小窓多明使我久坐 작은 창문에 많은 광명의 빛이 나로 하여금 오랫동안 앉아 있게 한다. 제주추사관은 생각을 좀 더 정리한 다음 포스팅하도록 하historylibrary.net 2024.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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