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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탕 패션의 완성은 메두사 로마 디오클레티아누스 Diocletianus 목욕탕 바닥을 장식한 메두사 Medusa 모자이크다. 이 목욕탕은 한꺼번에 3천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었다. 목용탕이 하나가 아니기에 Baths of Diocletian 라 해서 복수로 쓴다. 로마 황제들은 대체로 그들의 정통성을 확고히 하고자 목욕탕을 웅장하게 지었다. 이 목욕탕은 완공(서기 298-306)까지 8년이 걸렸지만 이 테트라키 Tetrarchy 창시자인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치하에서는 완성되지 않았다. 다만 그가 시작했고 중요한 역할을 했기에 그의 이름을 따서 부른다. 2024. 5. 18.
500년 전 위대한 파라오 투트모시스 3세를 불러낸 바켄무트 Bakenmut https://ia800909.us.archive.org/25/items/clevelandart-1914.561-coffin-of-bakenmut/1914.561_full.jpg 무엇보다 이 화질 서비스가 놀랍기만 하다. 기원전 약 1000-9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바켄무트 Bakenmut 관이집트, 특히 테베 Thebes 에서 제3중기 제21왕조 후기에 유래한다. 게소드 gessoed 하고 원색으로 칠한 플라타너스 sycamore 로 제작했다.미국 클리블랜드 미술관 Cleveland Museum of Art 소장.박물관이 제공하는 기본 정보는 아래와 같다.  Coffin of Bakenmut c. 1000–900 BCE Part of a set, view all set records Egypt,.. 2024. 5. 18.
튀긴 흙탕을 보며 흙탕물은 틔기 마련이다.금낭화마냥 언제나 자태가 고울 순 없다.시간은 가기 마련이라내가 언제나 십대 이십대일 수는 없다.서른줄이면 이미 중년이요마흔줄이면 이미 노년이며쉰줄이면 이미 몰년이다.매일매일 보는 사람이 늙어갈 수는 없다.십년 이십년 만에 만난 사람이라야 변화가 보이는 법이다.그 흙탕이 보일 즈음측은과 연민과 동정을 넘어서는 그 무엇이 돋아나지 않겠는가? 2024. 5. 18.
언제쯤 김밥 딸기 우유 제대로 뜯어보나 번번이 실패하고선 번번이 다짐하는 일이 저것이라 편의점에서 파는 저 김밥 말이다. 난 저걸 제대로 쨀 줄을 몰라 언제나 째다 보면 신경질이 나서 뜯고 나면 김과 그걸 감싼 밥알이 따로 논다. 결대로 짜르면 된다지만, 한두 번 또 성공도 해 본 적 있다만 언제나 까먹고는 요리조리 뜯다가 정 안 되면 이빨로 물어뜯었으니, 그러다 보면 김밥은 온데간데 없고 주먹밥이 되어 있더라. 난 딸기우유파라, 그래서 보통 대병에 든 딸기우류를 사는데, 요새는 투플러스원이 많아 보통 세 통을 사서 그 자리서 다 뽀갠다. 문제는 따는 데를 찾지 못한다는 것 어차피 둘 중 하나 아니겠는가? 두 군데 중 한 군데를 따는데, 분명 저 표식을 보면 따는 데가 요기라 해서 따면 정반대라 그 반대편으로 이내 옮기면 되는데, 굳이 저길 .. 2024. 5. 18.
머리엔 이가 득실거리고 O형에 키 155센티인 4천년전 실크로드 백인 여성 이른바 누란 미녀 Beauty of Loulan, 楼兰美女, 혹은 누란 장녀 楼兰長女 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분 연세는 대략 4천 살이다.1980년 4월 1일, 신장新疆 나포박罗布泊 북쪽 철판하铁板河 아래 삼각주三角洲 주변 철판하묘지铁板河墓地, 일명 태양묘지太阳墓地라는 데서 중국 고고학자 목순영[穆舜英, 무쑨잉, Mu Sun-ing]과 중국 신강新疆 사회과학원 고고학연구소 연구원들이 다른 건시들과 함께 수습한 청동기시대 여성 건시 乾屍라, 중국에서는 미라를 저리 건시라 쓰기도 한다.이 일대를 둘러싼 분지를 타림 Tarim 라 하는데 무지막지한 미라가 나온다.시신 근처에는 점토로 만든 여러 가지 물건과 곡물이 발견되었다.  현재 신장박물관新疆博物馆에 있다. 대략 저 분이 살다 간 시대는 탄소연대 측정 결.. 2024. 5. 18.
한 이야기 또 한다는 충고도 없는 늙다리 앞글에서 늙다리에 대한 글을 썼지만 필자도 늙다리다. 그리고 늙다리는 입 닫고 있어야 한다는 말도 아니다.최근에 필자도 지금까지 해온 작업을 정리하여 책으로 공간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보고한지 10년이 넘은 학술보고는 이미 학설로서 수명을 다했더라 이거다. 물론 그 연구의 팩트 자체 가치가 사라진 것은 아닌데, 결과의 해석과 전망은 완전히 새로 쓰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세상이 바뀌었더라 이것이다. 늙다리라도 당연히 공부의 결과를 보고할 자격이 있다. 젊은 친구들 모아 놓고 이야기 할 수도 있다. 다만, 햇던 이야기 또 하지 말기를. 필자도 나이가 들수록 느끼는 것은 했던 이야기 또 하는 건 점점 해마다 증가하는데 그걸 모르는건 자기뿐이더라는 이야기다. 10년간 같은 이야기로 떠들었으면.. 2024.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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