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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아궁이 와장창 해남 읍호리 고분군 조사 상보[자문위 자료첨부]

by taeshik.kim 2024.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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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읍호리고분군(5차) 고담고분군 발굴조사 자료집(최종).pdf
8.40MB
해남 읍호리고분군 발굴조사 약보고서(허가 제2021-0970호) - 전체.pdf
19.53MB

 
 
해남 읍호리 고분군 발굴성과 중 하나가 최근 해남군에서 배포되었거니와, 5세기 무렵 무덤 하나를 깠더니 그 바닥에 토기 를 동강내 깔았더라! 그 동강낸 조각들을 도로 찡가 맞춰 보니 아궁이 세트였더라. 이런 내용이었다. 




해남군 의뢰로 대한문화재연구원이 실시한 이 조사는 조사 완료 당시에는 그렇고 그런 무덤이라 해서 별도 보도자료를 배포하지 아니했지만,

저런 성과가 나오니 연구원 자체가 알아서 알릴 수는 없고, 쩐주인 해남군에다가 오잉? 이런 결과가 나옵디다, 이건 언론을 통해 국민께 도민께 군민께 알려야 합니데이 해서 급하게 저리한 것이다. 


물론 이런 일 잘했다. 

관련 소식을 우리 THE HERITAGE TRIBUNE도 전했거니와,

좀 더 상세한 당시 발굴사정을 해남군에 요청해서 받았다.

이름하여 
해남 읍호리 고담고분군 긴급발굴조사 자문회의 자료집이라 2024. 01. 12 (재)대한문화재연구원 작성이다. 




당연히 이 자료에는 아궁이 운운하는 대목이 없다. 왜?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으니깐. 

요새 발굴단 중에서는 이영철이 젤로 잘나가. 카페 영업도 잘된다더만.

 
조사의뢰기관 : 해남군
조사기관 : 대한문화재연구원
조사명 : 해남 읍호리揖湖里 고담고분군 긴급발굴조사(허가번호 제2021-0970호)
조사지역 :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읍호리 산 65-3번지 일원
조사기간 : 2023.12.18.~2024.01.16(실조사일수 16일)
조사면적 : 242㎡ m 조사목적
 - 해남 읍호리 고담고분군 내 산 65-3번지 단애면에 노출된 석곽 조사
 - 석곽의 지속적인 훼손 가능성이 높아 조사 후 유적의 성격을 명확히 하고자 함
 - 고분군 정비 및 보존 방안 마련을 위한 기초자료 확보
 


조사대상 무덤이 속한 해남 읍호리 고담 고분군은 동-서로 뻗은 구릉 능선 남쪽 경사진 쪽을 따라 무덤이 집중 분포한다.

현재까지 조사 결과 초기 삼국시대 이래 석실·석곽이 중심인 백제 웅진~사비시대 집단 무덤으로 확인되었다.

이 일대는 도굴 및 최근의 무덤 조성과 산림 사업 등으로 유적 훼손이 확인됨에 따라 이번 발굴조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번 조사는 같은 읍호리 고분군 산 66묘를 정밀발굴조사하면서 그 남동쪽 인접지점에서 석곽 흔적이 발견됨에 따라 이뤄지게 되었다.

노출 석곽이 그대로 놔두면 지속적으로 훼손될 가능성이 높아 이에 대한 정밀발굴조사를 실시하여 유적 성격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그 결과 지상으로 일부가 노출된 석곽 1기 말고도 그 북동쪽 경사진 데서 고려시대 토광묘 1기가 추가 확인되었다. 





1) 석곽

조사구역 중앙 남쪽 경사면 해발 19.57m에 위치한다. 무덤 아래쪽이 훼손되면서 석곽이 노출된 것이다.

석곽은 폭이 좁은 동쪽 벽 일부와 길이가 긴 남쪽 벽체 일부가 훼손되어 없어진 상태였다.

시신을 매장한 바닥에서 토기 조각들이 깔린 상태로 발견됐다.
석곽은 수혈식竪穴式 구조로 덮개돌도 없어진 상태였다.

벽을 쌓는 데는 두께 10㎝ 안팎으로 편평하게 깬 돌을 썼다. 동·서쪽 벽에 각 1매, 북쪽과 남쪽 벽은 이런 돌 5~6매를 세워쌓았다.

석곽 평면형태는 긴네모꼴이다. 길이 270㎝, 너비 42㎝, 높이 50㎝. 장축방향은 동-서.

바닥에는 연·경질토기 최소 5개체 정도를 파괴해서 비교적 질서있게 깔아 관 받침대로 썼다. 

시신은 동쪽으로 머리를 둔 것으로 보인다.

그 머리 부분에서 관옥 2점, 허리 왼쪽 부분에 철도자 1점이 발견되고, 그 반대편 서쪽 발치 부근에서 단경호短頸壺 1점, 소호小壺 2점, 철겸鐵鎌 1점이 출토되었다. 

 
2) 토광묘

토광묘는 조사구역 중앙부 북동쪽 경사진 곳 해발 20.34m에 위치한다. 흙을 걷어내는 과정에서 청자 병 아가리와 몸통 부분이 확인됨으로써 무덤이었을 알았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무덤 윗부분은 날아갔다. 





내부에는 사질점토가 단일 퇴적된 상태다.

평면 장방형이며, 구조는 아주 단순한 움무덤이다.

장축은 남-북 방향이며 등고선과는 교차한다.

길이 176cm, 너비 72cm, 최대깊이 30cm. 유물은 남쪽에서 청자 병, 청자 완, 청자 접시(뚜껑), 청동숟가락이 출토되었다.

병은 몸통이 길며 철화 시문한 특징이 있다.

이런 병은 해남 진산리 20-1호 가마·74-2호 가마 출토품에서 확인된다.

윤형굽 완을 갖춘 청자 완은 해남 진산리 20-2호가마·진산리 74-1호 가마, 청자 접시는 진산리 20-1호 가마 유물에서 확인된다.

이 중 해남 진산리 20호 청자요지는 고려 초기에서 중기에 걸쳐 운영한 곳으로 11세기 후반에서 12세기 전반 혹은 중반대에 해당한다. 

 
*** 의의 ***


석곽묘 수장품 중 단경호는 둥근 몸체에 그 윗 부분은 간소한 문양을 넣었지만 횡침선을 둘렀다는 점에서 산66묘에서 보고한 무덤과 마찬가지로 그 만든 시점은 5세기 3/4분기로 판단한다.

낮은 몸통이 짧고 곧추선 아가리를 갖춘 소호는 영산강유역을 비롯한 남해안지역 고분을 중심으로 두루 출토한다. 이번 출토품 2점 중 1점은 아가리를 일부러 깨뜨렸다.
 

바닥 쪼가리 질그릇 노출 상태



이런 모습은 산66묘에서도 확인된다. 나주 복암리 3호분 4호 석곽묘·11호 옹관묘 출토품과 유사하고 주된 제작 시점은 역시 5세기 3/4분기를 전후한 무렵으로 본다.

조사된 읍호리 산66묘·산66번지·산65-3번지 일원 고담 무덤들은 초현 왜계倭系 무덤에서 보이는 왜倭 요소가 현저히 줄어들고 지역사회 매장풍습 요소가 가미된 점은 이곳에 묻힌 사람들 성격을 가늠케 한다.

판석재와 목판재를 혼용해 변형시킨 유사상식석관類似箱式石棺 구축, 토기를 사용한 시상 마련 및 관내 부장, 복수의 매장시설 등과 같은 요소는 현지사회에 동화한 왜계 2·3세대 매장풍습으로 이해된다.
 

복원한 토기 쪼가리들



고분에서 확인된 석곽묘 매장시설의 시기가 5세기 3/4분기인 점도 이를 뒷받침해준다.

읍호리 고분군은 100여 기가 넘는 석실이 직경 1km 이상 면적에 걸쳐 확인된다.

지금까지 일부 조사된 내용을 통해 볼 때, 고분군은 가장 이른 시기 유사상식석관부터 횡혈식석실橫穴式石室 구조까지 이 일대에 5~6세기 무덤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읍호리 고분군에 대한 장기적인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향후 이 일대 5~6세기 무덤 구조 변화와 함께 묻힌 사람들 유래나 계층, 직업 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복원한 질그릇 쪼가리 중 아궁이



또한 읍호리 고분군 일대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기념물에서부터 고려시대 생활유적, 산성, 무덤 유적 등이 분포한다.

이번 조사과정에서 고려시대 토광묘가 확인되었기에 유적 주변으로 고려시대 무덤이 분포 가능성이 있다.

읍호리 고분군은 유적 훼손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한 상태다.

정비를 위한 발굴조사 뿐만 아니리 고분군 보존·정비를 위해 여러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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