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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보函普와 이안사李安社는 닮은 꼴이다 변경사에는 이쪽에서 저쪽으로의 식민 (사민)과 저쪽에서 이쪽으로의 유입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식민 없이도 우리쪽에서 자발적으로 도주한 사람들도 있다. 이 사람들의 역사도 무시할 수 없다. 가까이는 조선 후기 청의 봉금封禁 지대로 목숨을 걸고 숨어들어 농사를 짓던 조선인들도 이런 범주에서 해석할 수 있으며 멀리는 금金나라 완안부完顏部 시조 함보函普(10세기 초)나, 조선 왕조 사실상 중시조인 이안사李安社(목조穆祖. ?~1274)는 모두 이런 부류에 속한다. 함보는 한반도에서 간 것이 아니라 여진족 전승이 와전되었다는 주장도 일제시대 관학자들을 중심으로 심심찮게 제기된 것으로 아는데 조선 중시조 이안사의 예를 보면 한반도로부터의 도망자 함보는 충분히 존재했을 법한 사람이다. 전승에 의하면, 함보는 나이 60.. 2022. 12. 25.
포석정 비밀을 푸는 열쇠는 쌍방울에 있다 포석정鮑石亭 현재 모습은 몸통과 그 몸통으로 연결하는 배수관 같은 두 줄이 꽈배기를 이룬 구조를 한다. 이 몸통이 바로 바다 조개 중에서도 포어鮑魚, 곧 전복 모양을 본뜬 것임은 두루 알려졌고, 실제로도 그 모습이 전복의 그것이라, 이것이 바로 여근女根 혹은 여음女陰임은 앞서 지적했다. 포석정 그 비밀을 푸는 열쇠는 여근, 혹은 전복인 저 몸뚱아리가 아니라, 그 한 쪽 귀퉁이로 연결된 배배 꼬인 배수관 같은 두 X자형 부속 시설이다. 보다시피 현재는 공교롭게 그 한가운데에 거대한 느티나무 노거수가 자란다. 한데 그 끝터머리 각각에는 석조石槽가 하나씩 있다. 이 석조 두 개가 무엇인가? 볼짝없다. 저 몸통이 여근이라면, 이건 볼짝없이 쌍방울이다. 포석정은 간단하다. 여근과 쌍방울을 결합한 구조물이다. 여근.. 2022. 12. 25.
허백당虛白堂 성현成俔(1439~1504)이 증언하는 경주 영묘사靈妙寺 영묘사〔靈妙寺〕 성현成俔(1439~1504), 《허백당집虛白堂集》 제5권 시詩 고찰 폐허 된지 세월 얼마인고 / 古刹荒蒼閱幾春 그때 흔적 티끌 되고 말았네 / 當時遺跡已成塵 황금 큰 조각 비로자나요 / 黃金大像毗盧佛 백옥 귀태 여왕 몸이네 / 白玉嬌姿女主身 탑 그림자 마당 백 척 질러 가르고 / 塔影半庭橫百尺 종소리 골짝 나가 많은 사람 일깨우네 / 鍾聲出谷警千人 이끼 낀 절터 사방으로 지저귀는 새 / 苔墟四面多啼鳥 말 멈추고 석양에 한번 탄식하네 / 駐馬斜陽一愴神 [주-D001] 영묘사(靈妙寺) : 경주부(慶州府)에 있던 절인데, 신라 시대 선덕여왕(善德女王)이 창건했다고 한다. [주-D002]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 비로자나는 광명변조(光明遍照)의 뜻으로, 즉 부처〔佛〕의 진신(眞身)을 나타내는 .. 2022. 12. 25.
전복[鮑魚]과 포석정鮑石亭, 그리고 나정蘿井 바다 생물, 특히 그 조개류 중에 전복은 그 생김을 두고 항상 남자들이 쑥떡하는 이유는 새삼 더 보탤 까닭이 없을 것이다. 그 생김은 딱 여음女陰 혹은 여근女根이라, 이 전복 모양을 본뜬 석조 건축물이라 해서 신라시대 저명한 유산으로 경주 남산 기슭 포석정鮑石亭이 있다. 보다시피 이 모양 전복 그대로다. 전복이 여음女陰이라면, 포석정 저 구축 또한 여근이라 봐야지 않겠는가? 신라인들이라 해서 여근이 다르게 생겨 먹었을 거 같은가? 볼짝없다. 저 포석정은 전복을 본뜬 것이며, 그 원초 의미는 여근이며, 자궁子宮이다. 고대인들이 저런 섹슈얼 코너테이션 sexual connation를 동원하는 까닭은 생명 탄생, 창조 이런 뜻이다. 그런 의미를 담았으므로 당연히 저 포석정이 지닌 원천 기능 역시 생명 탄생이다.. 2022. 12. 25.
비단 우산 펼친 듯한 해당화 by 성현成俔(1439~1504) 해당화 [매괴玫瑰〕 성현成俔(1439~1504), 《허백당집虛白堂集》 제1권 시詩 한 그루 매괴나무 있어 / 一朶玫瑰樹 사람들 하는 말이 해당화라고 / 人傳是海棠 이슬 내려 꽃가루 가벼이 씻고 / 露華輕洗粉 바람 불어 향기 살살 풍기네 / 風骨細通香 처음엔 붉은 비단 오렸나 했더니 / 始訝紅羅剪 끝내는 비단 우산 펼친 듯하네 / 終成錦繖張 어여뻐라 더없는 자태 뽐내며 / 憐渠矜絶艶 글 읽는 책상 가까이 피어 있네 / 開近讀書床 [주-D001] 매괴(玫瑰) : 해당화海棠花의 별칭이다. ⓒ 한국고전번역원 | 임정기 (역) | 2008 *** 번역 문투는 내가 손을 좀 댔다. 2022. 12. 24.
실록 4천964만6천667자보다 중요한 98자 어느 궁핍한 마을 [궁촌사 窮村詞〕 성현成俔(1439~1504), 《허백당집虛白堂集》 제2권 시詩 검은 구름 하늘 걸려 북풍은 거세고 / 玄雲承空朔風怒 딱따구리 시냇가 나무를 딱딱 쪼네 / 彩鴷啄啄溪邊樹 산 아래 띠집 달팽이 집마냥 작은데 / 山下茅廬小縮蝸 세 아들 두 늙은이랑 한 집에 사네 / 三男兩老同家住 한 아들 도끼 메고 땔나무 하러 가고 / 一男荷斧撏薪蒸 다른 아들 토끼 쫓아 산을 넘어갔네 / 一男跡兔踰丘陵 가장 어린 아들 밥 달라고 울어대고 / 最少一男啼索飯 어미는 버선 깁고 애비는 새끼 꼬네 / 姑坐補襪翁陶繩 불 넉넉히 지피니 흙 온돌 따뜻해지네 / 土榻微溫煙火足 질솥엔 뜨끈뜨끈 팥죽 설설 끓어대네 / 瓦釜瀜瀜泣豆粥 소는 음매하며 콩깍지 먹고 닭은 횃대 앉았지만 / 牛鳴齕萁鷄在榤 사람 가축 .. 2022. 12. 24.
이성계 선조는 두만강에서 함흥까지는 어찌 왔을까? 여기에 대한 희귀한 기사가 사실 조선왕조실록에 있다. 처음에 목조(穆祖)가 때때로 현성(峴城)에 가니, 여러 여진(女眞)의 천호(千戶)와 다루가치(達魯花赤)들이 모두 교제(交際)하기를 원하므로, 마침내 그들과 함께 놀았다. 여러 천호(千戶)들이 예절을 갖추어 대접하기를 매우 후하게 하고, 반드시 소와 말을 잡아서 연회를 베풀고는 문득 수일(數日)을 유련(留連)하였으며, 여러 천호들로서 알동(斡東)에 이른 사람이 있으면 목조도 또한 이같이 접대하였다. 익조(翼祖) 때에 이르러서도 이대로 따라 행하고 고치지 않았다. 익조의 위엄과 덕망이 점차 강성(强盛)하니, 여러 천호(千戶)의 수하(手下) 사람들이 진심으로 사모하여 좇는 사람이 많았다. 여러 천호들이 꺼려서 모해(謀害)하기를, "이행리(李行里) 【익조.】.. 2022. 12. 24.
삼척에서 육안으로 보이는 울릉도, 우산국은 생각보다 더 가깝다 하도 동해안, 그리고 울릉도 얘기를 쏟아내니 경주에서 맹동에 옴짝달짝 못하고 방구석 신세인 오세윤 형이 틱 하니 카톡 메시지를 보내면서 이르기를 "울릉도에서 대관령 잘 보인다." 하는 게 아닌가? 잉? 대관령이 잘 보인다고? 이러면 얘기가 달라지는데?? 내가 하는 고민 일거에 해결하는데? 하고선 다시 다그치니 신경질을 내면서 이르기를 "내가 봤다니깐?"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대관령? 강릉 주재 남대천 철새 특파원 우리 공장 유형재 형한테 기별을 넣어 "승님, 블라블라 울릉도 사진 있소?" 했더니만 본인은 찍은 적이 없고 삼척에서는 울릉도가 가끔 육안으로 보인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혹시나 해서 우리 공장 DB를 돌려봤다. "삼척+울릉도"라는 키워드를 넣으니 잉? 이게 뭐란 말인가? 앞에 부친 사진, .. 2022. 12. 24.
강원관찰사 허백당虛白堂 성현成俔이 증언하는 강릉 사람들 강릉·원주 풍속기〔記江陵原州風俗〕 성현成俔, 《허백당문집虛白堂集》 제3권 / 기記 대체로 사람의 상정常情은 척박한 땅에 살면 부지런해지고 비옥한 토양에 거처하면 안일해지기 마련이다. 위魏 풍속은 검소하고 인색하며 연燕·조趙에는 굳세고 과감한 선비가 많았으니 그 땅이 변새邊塞와 연접해 산이 높고 물살이 빠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곳에 사는 사람은 성정이 모두 참을성이 강하며 질박하고 정직하여 근본에 힘쓰고 말단을 좇지 않는다. 반면 정鄭과 위衛는 음탕하고 제齊 풍속은 사치하고 큰소리로 남을 속이며 강동江東 지역 사람들은 나약하여 떨쳐 일어나 분발하려는 의지가 없으니, 그 산세가 완만하고 물이 느릿느릿 흐르며 거주지가 해안에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성정이 태만하고 소극적이며 본업에 힘쓰지 .. 2022. 12. 24.
진흥왕시대 신라 영역은 지도가 축소됐다 진흥왕 시대 신라의 국경선은 최소가 이것이다. 기존에 저 시대 신라 영역이라 표시된 지도는 다 오류다. 보통 이딴 식으로 그리곤 하는데, 왜 오류인가? 저 지도대로라면 진흥왕이 지들 국경선 끄터머리에 서서 여긴 우리 땅이라 표시한 셈이 되거니와, 어떤 미친 놈이 이런 짓을 한단 말인가? 실제 같은 순수비인 북한산 비봉비 역시 신라 영역 복판이었다. 순수비는 아니지만, 그와 성격이 비슷한 창녕비도 그것을 중심으로 주변 일대를 모조리 신라가 장악하고서 그 복판에다가 세운 것이다. 한데 황초령비와 마운령비만큼은 지금의 휴전선 혹은 DMZ 같은 데다 적들을 바라보며 성대한 의식을 하면서 그 끝에다가 저걸 세웠다고? 어떤 놈이 저 따위 망발을 일삼는가? 마운령비 황초령비는 저것을 세운 지점 주변 넓은 땅이 신라 .. 2022. 12. 24.
세형동검과 마운령 마운령이 우리 역사에서 상당히 장기간 동안 경계선 역할을 했으며 이는 신라 시대 (진흥왕순수비), 고려시대 (윤관 북벌) 등 사건에서 반복적으로 확인할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글에서는 이런 흐름이 상당히 오래전까지 소급가능하다는 이야기를 쓰려 한다. 세형동검이 유행하던 시기-. 우리나라 세형동검 분포는 다음과 같다. 조진선 선생 단행본에서 취한 그림이다. 위 그림이 우리나라 세형동검 분포도다. 이전에는 이를 "청천강 이남"이라고 했었다. 세형동검 분포도를 보면, 여러 개 권역으로 나뉘는데 그 중 동해안쪽으로는 동북부지역권이 있다. 이 지역이 바로 고조선시대 임둔, 그리고 한군현 시대 임둔군이 되는 지역으로 세형동검 집중 분포지 중 하나다. 이 지역 안에 점이 찍힌 모습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 2022. 12. 24.
용인 서리 고려백자요지의 과거와 현재 지난 12월 22일, '용인 고려백자요지의 콘텐츠 개발 및 활성화 방안'이라는 주제의 학술대회가 용인문화원, 경기학회, 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 공동주최로 개최되었다. 약 20일 전에 이번 학술대회에서 '서리고려백자요지 정비사업 운영 현황과 방향'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의뢰받았다. 짧은 준비기간이었지만, 학술적 가치에 대한 부분은 다른 발표자가 맡기로 하였으므로, 이번 발표에서는 학술적 가치와 의미, 중요성보다는 그동안의 조사, 정비 과정과 앞으로 정비 방향에 대해서 정리하였다. [일제강점기 ~ 1990년대 유적 변천 과정] 용인 서리고려백자요지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일본인 학자 아사카와 노리타카(淺川伯敎, 1884∼1964)에 의해 발견되었다. 아사카와 노리타카는 일본의 조각가로 동생인 아사카와 다쿠미.. 2022. 12. 24.
강릉 고려성, 강릉 일대 여진을 방어하기 위해 고려가 쌓은 성 편집자注 - 아래는 《고려성의 역사성 고찰과 복원계획 수립 학술용역 보고서》 (강릉시·강원고고문화연구원, 2022)를 발췌한다. 원의는 훼손하지 않고 문장은 손댔다. 하도 동해안 쪽 관심은 적은 듯해서 열불 나서, 말갈론 여진론을 토대로 깔아 정리한다. 강릉 고려성은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리 508-1 일원에 위치하는 석성石城이다. 성 동쪽에는 안인항과 정동진을 잇는 7번국도(율곡로)와 동해안에 접하고, 서쪽에는 괘방산이 남북으로 능선을 길게 뻗었으며, 남쪽에는 정동캐슬과 하슬라미술관이, 북쪽 약 300m 지점에 등명낙가사가 있다. 율곡로에서 등명낙가사 주차장으로 들어오면 관광안내도 옆으로 마을로 들어가는 길(괘방산로)이 있으며, 길을 따라 약 460m를 이동하면 민가와 인접하여 고려성 서벽이 드러.. 2022. 12. 24.
고려의 사민徙民과 발해민의 투항 1. 고려전기는 조선전기 만큼이나 활발히 북진이 이루어지던 시기로 고려 태조의 건국 이후 약 100년간 압록강 하구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흥미로운것은 고려 전기에는 사민 기사가 많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물론 누락되었을 수도 있지만, 완전히 없지는 않으니 대표적인 것이 아래 몇 가지다. 서경에 사민하라는 전교 (918년): 丙申 諭群臣曰, “平壤古都, 荒廢雖久, 基址尙存. 而荊棘滋茂, 蕃人遊獵於其間, 因而侵掠邊邑, 爲害大矣. 宜徙民實之, 以固藩屛, 爲百世之利.” 遂爲大都護, 遣堂弟式廉, 廣評侍郞列評守之. 서경에 고관대작 집안을 이주시키라는 전교 (922년): 是歲, 徙大丞質榮·行波等父兄子弟, 及諸郡縣良家子弟, 以實西京. 幸西京, 新置官府員吏, 始築在城. 親定牙善城民居. 남쪽 백성을 북쪽으로 옮기라는 전교.. 2022. 12. 24.
화외化外로서의 여진과 탐라, 고려가 발명한 야만 고려사절요 제1권 태조 신성대왕 (太祖神聖大王) 을유 8년(925), 후당 동광 3년ㆍ거란 천찬 4년 ○ 11월에 탐라(耽羅)에서 지방의 산물을 바쳤다. 고려사절요 제1권 태조 신성대왕 (太祖神聖大王) 신묘 14년(931), 후당 장흥 2년ㆍ거란 천현 6년 ○ 이해에 안북부(安北府)와 강덕진(剛德鎭)을 설치하고 원윤(元尹) 평환(平喚)을 진두(鎭頭)로 삼았다. 왕이 유사에게 이르기를, “북번(北蕃) 사람은 얼굴은 사람꼴이지만 마음은 짐승과 같아서, 굶주리면 오고 배부르면 가버리며 이익을 보면 부끄러움도 잊는다. 지금은 비록 우리에게 복종하여 섬기고 있지마는, 따르거나 배반함이 일정치 않을 것이니 마땅히 지나가는 주ㆍ진에는 관사(館舍)를 성 밖에 지어서 그들을 접대하라." 하였다. 고려사절요 제4권 정종 .. 2022. 12. 24.
조선 세조시대 양성지의 삼국사기 독후감 세조 34권, 10년(1464 갑신 / 명 천순(天順) 8년) 8월 1일(임오) 2번째기사 양성지가 군법·군정·군액·군제·사역에 관한 일로 상서하다 군정軍情을 보살피는 일. 신臣이 평일에 《삼국사기三國史記》를 보니, ‘우리 나라 사람들이 중국인[漢人]과 싸우면 열 번 싸울 때 일곱 번 이기고, 왜인倭人과 싸우면 열 번 싸울 때 세 번 이기고, 야인과 더불어 싸우면, 열 번 싸울때 다섯 번 이깁니다.’고 했다. *** 양성지梁誠之는 생몰년이 1415~1482이라, 이른바 사육신, 그리고 수양대군과 대략 동시대를 태어나 그들과 동시대를 호습했으니, 그는 특히 역사지리학에 조예가 깊어 조선전기 문물 흥성에는 그가 빠지지 아니했다. 2022. 12. 24.
마운령, '그 너머'로서의 상징과 실질 세종 3년 신축(1421) 2월 7일(경자) 함길도 관찰사가 계하기를, “단천端川 기원역碁原驛에서 시리역施利驛에 이르는 동안에 잇수[里數]가 매우 멀고, 또 마운령磨雲嶺을 넘는데 고갯길이 높고 험하여, 사람과 말이 모두 피곤하여 그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옵는데, 고개 아래에 옛 관館 터가 있사오니, 합배合排를 설치하여 부근 민호民戶를 거기에 부속시키게 하고, 또 홍원洪原 평포역平浦驛에는 역리驛吏가 한두 호戶에 지나지 못 하오니, 바라옵건대, 민호民戶를 뽑아 합배를 설치하여 도와주게 하소서.” 하니, 상왕이 그대로 따랐다. 【원전】 2 집 423 면 【분류】 교통-육운(陸運)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주-D001] 합배(合排) : 역(驛)은 아니나, 역을 도와주는 구실을 하는 곳임. 세종 27년 을축(.. 2022. 12. 24.
고려시대 여진으로 푸는 신라 우산국 정벌 내가 연구사 검토할 때까지만 해도 이 대목이 집중 부각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어떠한지 모르나, 나는 언제나 말했듯이 그 비밀은 고려시대 여진족에서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진이 한반도를 침략하는 통로는 언제나 동해안 해로였다. 고려시대 동해안 피침탈 기사를 보면 언제나 여진은 배를 타고 나타났다가 배를 타고 사라진다. 그래서 그 지역 지방관 업적을 나열하는 데는 언제나 적선 몇 척을 나포했다는 기록이 빠지지 않는다. 그들의 침투 지역에 주된 지역은 경주였다. 이들이 자주 찾은 곳은 경주였다. 그들이 경주를 침략하는 통로가 바로 해로다. 이는 역설적으로 신라시대 신라가 동해안을 진출한 비밀을 푸는 열쇠가 된다. 그것 역시 말할 것도 없이 해로였다. 육로를 통하는 어려움은 김순정의 수로부인 관련 기사에서 명.. 2022.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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