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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444

주선시불회합도酒仙詩佛會合圖 이규보: "제가 왕년에 주필이당백이라 이름 좀 날렸습니다, 어흠!" 정철: "선배님보다야 못하지만 저도 술과 시라면 빠지지 않지요!" 이백: "호오, 제법이로다." 변영로: "아이고~선배님들, 저를 빼놓고 여기 계시면 어떡합니까 ㅠㅠ" ㅡ 수주 선생은 소주병을 들고 뛰어들어온다. 이상 강민경 선생 글 그림이다. 말이 통하지 않아 필담으로 회의를 진행했단 말이 있다. 어차피 말이 필요했겠는가? 쏼라쏼라 헬레헬레였으니 말이다. 2020. 12. 23.
글이 안 되자 붓을 던져버린 최온崔昷 고려 중기를 살았던 최온崔昷(?∼1268)이란 사람이 있었다. 당대 문벌인 철원 최씨 출신으로 그 자신 재상까지 올랐던 사람이었는데, 자기 집안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던 인물이었다. 좋게 말하면 문벌답게 행동한 것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콧대높은 안하무인이었다. 그런 그가 문한관이 되어 임금의 문서를 담당하는 고원誥院에 들었다. 그때 이순목李淳牧, 하천단河千旦이라는 이들이 같이 근무했는데, 그들은 지방의 향리 출신이었다. 그러니 최온의 눈에 찰 리가 있나. 서로 경이원지하던 중... "이웃나라에서 견책譴責하려 보낸 조서詔書에 대한 답서答書를 작성하여 올리라는 명령이 있어, 최온이 붓을 잡았는데, 머리를 긁으며 고심을 해도 뜻대로 글이 되지 않자 붓을 집어 던지고 욕을 하며 말하기를, “이것이 시골구석의 포.. 2020. 12. 23.
난리통에 버섯 구워드신 백운거사白雲居士 "관군은 이달 아무 날 동경(경주)을 떠나 운문산으로 들어가 주둔하였는데, 초적(김사미와 효심 등)이 또한 조금 없어져 군대 안에 별달리 일이 없고, 다만 소나무 아래 새로 돋은 버섯을 따서 불에 구워먹으니 아주 맛있구려." ㅡ 이규보 《동국이상국집>》 전집 권27, 서, "전, 박 두 친구가 서울에서 안부를 물은 데 답하는 편지" ㅡ 1202년, 지금의 청도 운문사 일대에서 김사미와 효심이 이른바 '신라부흥운동'을 일으켰다. 이규보는 이를 진압하는 데 '병마녹사 겸 수제원'이란 직책으로 종군했는데, 그때 쓴 편지 일부다. *** 글 그림 모두 강민경 선생이다. 버섯, 그 이상의 버섯 송이 버섯, 그 이상의 버섯 송이 이규보 《동국이상국전집》 제14권 / 고율시(古律詩) 송이버섯을 먹다[食松菌] 버섯은 .. 2020. 12. 17.
내가 불경을 서둘러 읽음은 술이 기다리기 때문 讀終經一卷 불경 하나 읽기를 마침은 猶似出齋時 재계를 마친 때와 같아라 始可親觴酌 이제야 술 마실 수 있거늘 斟來何大遲 술상이 어찌 이리 늦는고 ㅡ이규보 《동국이상국집》 후집 권5, 고율시 "능엄경을 다 읽고 또 짓다" *** 국립박물관 강민경 선생 그림이다. 2020. 12. 16.
소호 김응원(1855~1921)의 휘호揮毫 1. 해강 김규진이 빗자루가 아닌 대붓으로 몇 미터가 넘게 '휘호'한 것과는 정반대의 '휘호'를 만난다. 이 글씨는 해강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소호小湖 김응원金應元(1855~1921)이 가로가 5cm 남짓 되는 종이 위에 쓴 것이다. 이런 종이는 단책短冊이라 해서 일본인들이 단카短歌나 하이쿠俳句 같은 자기네 시를 적기 위해 따로 만든 것이다. 먹을 엷게 우려 구름을 피우고 금박을 좀 뿌려 그럴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거기에 소호는 소동파 칠언절구 한 수를 예서로 정밀하게 적어넣는다. 태화산 서남쪽 몇 번째 봉우리던가 떨어지는 꽃잎 흐르는 물이 끝없네 도인은 다만 둥굴레 캐고 돌아갈 뿐 푸른 산에서 사슴 뿔은 못 보았던가 太華西南第幾峰 落花流水自重重 道人只採黃精去 不見靑山鹿養茸 2. 김응원은 흥선대원군의 .. 2020. 12. 16.
해강 김규진 휘호도 1. 근대의 서화가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1864-1933)이 1920년 무렵, 금강산 구룡폭포 옆 바위에 새길 '미륵불彌勒佛' 석 자를 써달라는 주문을 받는다. 보통 큰 글자가 아니었으므로, 해강은 특별히 거대한 붓을 만들었다. 그리고 거기에 먹을 묻혀 글씨를 썼다. 근데 이쯤 되면 쓴다기보다는 그린다고 해야 맞지 않을까 싶다. 이런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2. 해강의 대스승격인 눌인訥人 조광진曺匡振(1772-1840)이 평양 연광정練光亭에서 "먹물을 적시니 두께가 소의 허리만해진" 붓으로 전위서예를 선보였던 적이 있다. 아마 해강도 그 얘기를 분명 들어 알고 있었으리라. 3. 지금도 구룡폭 옆에는 해강의 거대한 '미륵불' 세 글자가 또렷이 남아 있다고 한다. 100년 전 그 대단했을 퍼포먼스에 쓰인 .. 2020.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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