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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통2

참을 수 없는 치통 평소 존경하는 강명관 선생님의 포스팅에 따르면, 옛 어른들은 어지간히 치통을 달고 사셨다. 고려 말 이색(1328-1396)부터 치통을 시의 소재로 다루기 시작했고(물론 그 전부터 있었을 테지만), 조선시대 기록을 봐도 아무개가 치통을 앓았다는 이야기는 적지 않다. 영조는 20대부터 치통을 앓다가 70대쯤 되니 윗니가 하나만 남았다던가. 어쩌면 영조의 성격에 치통이 한몫 단단히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내용 중 재밌는 게 하나 있었다. 치통이 하도 심해 결근한 유건기兪健基라는 양반이 대장장이를 시켜서 이를 뽑으려다가, 그나마도 실패했단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 판서까지 지낸 윤유 이런 분들도 대장장이의 집게로 이를 뽑았는데, 썩 솜씨가 좋지 못했던지 뺨에 구멍이 나질 않나.. 2021. 5. 2.
절대미의 절대조건, 절대미인은 절대의 치통을 앓아야 한다 중국 후한시대 사람으로 양기梁冀라는 이가 있으니 그의 마누라 손수孫壽는 천하의 요부였다. 그를 일러 《후한서後漢書》 권34에 수록한 양통梁統 전기에 붙은 양기의 전기에 이르기를.... (황제가) 조칙으로 양기의 처 손수를 봉하여 양성군襄城君이라 하니...손수는 아름다운 데다가 교태를 잘 지었으니, 근심에 찬 눈매나 우는 듯한 화장, 말갈기 흘러내린 모양 쪽머리에다가 허리가 끊어질 듯한 걸음걸이, 치통으로 괴로워하는 듯한 웃음을 지어 고혹스럼으로 삼았다. 詔遂封冀妻孫壽為襄城君…壽色美而善為妖態,作愁眉,嘀妝,墯馬髻,折腰步,齲齒笑,以為媚惑. 이 중에서도 치통으로 괴로워할 때 짓는 미소가 도대체 뭐니? (February 4, 2013) 2020.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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