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探古의 일필휘지525 구보다상, 비행기 사려고 그림을 팔다 꽤 오래 묵은 매화 등걸 하나가 있다. 솟구쳐오르다 퉁 하고 굽은 줄기는 잔가지를 다시 허공으로 솟게 만들었다.그 잔가지에 흰 꽃이 가득 피었다. 때는 겨울에서 막 넘어온 봄이런가, 그 봄이 알알이 저 매화꽃잎 하나하나에 들어찼다.오래 말았다 폈다 한 족자는 자연스레 꺾이는 현상이 생기곤 한다. 그 현상이 화폭 위에 선을 긋는다. 그 선은 그냥 선이 아니다. 어느새 그것은 잔잔히 피어오르는 윤슬이 되어 화폭 안을 고요한 연못으로 만들어내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구름이 되어 연못 위에 푸른 봄 하늘빛을 우려낸다. 그래서인지, 화제도 그 모습 그대로이다.눈 같은 매화가 봄 연못을 가득 채웠네.일류라고 할 수는 없을지라도, 제법 서정을 갖추고 먹의 농담을 운용한 이 작가는 구보다 료헤이(1872-1940?)라는.. 2025. 7. 24. 난실蘭室, 난초 방인가 레이디 룸인가? 독자 여러분을 존경하긴 합니다만, 그래서 하는 告白은 아니고....예전에 한 일의 결과물 중 하나가 틀렸음을 알려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2021년도에 제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현판' 조사를 한 적이 있지요. 어떻게 된 게 고고역사부에 4년 있는 동안 고려 묘지명, 현판 같은 중량급 유물 조사를 도맡았습니다.제가 떠난 뒤에 탁본(종이) 조사를 하더군요. 그건 그렇다치고, 그래도 일은 일이니 열심히 조사하고 사진을 찍고(김광섭 작가님 감사합니다) 번역을 요청하고(송혁기 선생님 이하 여러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검수하고 기간 안에 보고서를 만드는 데까지 성공했습니다. 그때 제가 유달리 마음이 가던 현판이 하나 있었습니다. 조선 근대의 정치가이자 서화가로 일세를 풍미했던 흥선대원군 석파 이하응(1820-189.. 2025. 7. 23. 의사 한국남한테 호를 지어주며 백아 김창현이 쓴 글 나는 잘 모르지만, 내 아버지 연배 분들한테 '한국남'이란 의사는 꽤 유명했다고 한다. TV에 나와서 입담으로 사람들을 웃기고 의학 상식도 많이 알려주었다나. 그런 그가 백아 김창현(1923-1991)을 찾아 호를 하나 지어달라 한 모양이다. 서예가이자 한문학자였던 백아는 고심 끝에 《주역》에서 그럴 듯한 구절을 찾아 호를 짓는다. 그리고 이를 직접 써서 닥터 한에게 주었다.경원經園.《주역》의 '둔'괘에 이르기를, 군자는 경륜經綸으로써 널리 세상을 구한다 했다. 한국남 박사는 국수國手이다. 날마다 나에게 별자(호)를 구하였다. 대개 세상을 다스리는 것과 사람을 오래 살게 하는 것엔 진실로 두 가지 이치가 있을 수 없다. 그런 까닭에 이에 (《주역》의 이 말을) 취하여 호로 삼아 경원이라 부르고, 드디어 .. 2025. 7. 22. 치카자와쇼텐, 조선학총서를 내다(3) 1932년, 치카자와쇼텐에서 야심차게 내건 출판 프로젝트가 있었으니 바로 '조선학총서'다. 조선을 연구하는 데에 필요한 고문헌을 연활자본으로 인쇄 발간하는 것이었는데, 기실 비슷한 총서류 발간은 1910년대부터 한일 양쪽에서 적잖이 있었다. 이는 존경하는 노경희 선생님이 깊이 연구하신 바 있어 여기선 생략하지만, 치카자와쇼텐도 차별화를 위해 믿는 구석이 없지 않았다. 그건 바로 경성제대 사학과 교수인 이마니시 류 금서룡今西龍(1875-1932)의 대상 선정과 직접 교정이었다. 사실상 '조선학총서' 자체가 이마니시의 기획이었던 것 같은데, 그에 관해선 후술하기로 하고..어쨌건 1932년 조선학총서 제1권이 세상에 나온다. 제1권의 영광을 안은 건 서긍(1091-1153)의 《선화봉사고려도경》이었다. 그 중.. 2025. 7. 10. 치카자와쇼텐, 조선학총서를 내다(2) 그 유명한 세키노 타다시의 , 아유카이 후사노신의 시리즈가 1930년대 경성 장곡천정(하세가와쵸, 지금의 서울 소공동) 74번지에 있던 근택서점, 곧 치카자와쇼텐에서 나왔다. 그 광고지를 보면 이 책들은 그냥 나온 것도 아니고 7원, 1원 80전~6원 50전(우송료 별도)이란 거액을 붙인 호화판으로 나왔다. 일제 때는 금본위제도라 해서 화폐가치가 금을 기준으로 매겨졌다. 거칠게 말하면 이 시절 돈은 은행에서 금과 바꿀 수 있는 증서였다고나 할까. 그 법정가치는 금 1돈에 5원이었다. 지금 금값으로 치면 1원이 대강 10만원 정도인 셈. 세키노의 는 70만원+a짜리였다.하지만 그때, 1920~30년대 기준에서 7원의 실질가치는 도대체 어느 정도였을까? 1924년 발표된 현진건의 을 보면 김첨지가 '운수 .. 2025. 7. 9. 치카자와쇼텐, 조선학총서를 내다(1) 해방의 기쁨이 불안과 초조함으로 바뀌던 1946년 5월, 장안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하나 터졌다. 이른바 '조선정판사 위폐제조사건'. 조선공산당에서 당 예산을 조달하고 38선 이남의 경제를 교란할 목적으로 1,200만원어치 위조지폐를 만들었다는 미군정 측의 공식 발표가 있었지만, 공산당 측은 고문으로 인한 허위자백 말고는 어떤 증거도 없는 날조극이라고 맞섰다.훗날의 연구에 따르면 진실은 후자에 가까웠지만, 어쨌건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군정은 공산당 계열 인사를 철저히 탄압하기 시작했다. 조선 땅에 불어닥친 냉전의 시작이었다.그런데 그 사건의 발단이 된 '조선정판사'가 어떤 곳인지 찾아보면 꽤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만나게 된다. 지금의 서울 중구 소공동 74번지(사라진 지번인데, 지금의 웨스틴조선호텔 남.. 2025. 7. 8. 이전 1 2 3 4 ··· 88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