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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514

추사가 읊은 제주 연자방아 말 한 마리 할 일 사람 열이 하니 / 人十能之馬一之 세 채 마을에 신기 자랑하네 / 三家村裏詑神奇 큰 기물 큰 쓰임 본래 이러한데 / 大機大用元如此 종풍 늙은 철퇴 도리어 비웃네 / 還笑宗風老古錐 샘물 끈 물레방아 이에 대면 거칠은 것 / 引泉爲碓亦麤材 조잘대는 방아노래 시샘 마소 / 嘔哳舂歌莫見猜 흡사 선천 향해 지극한 상 찾는듯 / 似向先天探至象 용마 하도河圖 지고 나오는양 하네 / 怳疑龍馬負圖來-  권10, 시, "마마馬磨" *** editor's note *** 시를 더럽게 폼잡으며 썼다는 느낌을 준다. 더럽게 잘난 척 했다. 김정희 작품이 본래 저렇던가? 기억에 없다. 2025. 3. 17.
소나무 아래 달빛을 밟은 운보 김기창과 청계 정종여 해방 전 어느 날, 이당 김은호(1892-1979) 문하인 운보 김기창(1913-2001)이 청전 이상범(1897-1972) 제자인 청계 정종여(1914-1984)와 자리를 함께했다. 스승은 달랐지만 그래도 퍽 가깝게 지냈던 듯싶다.그 둘이 무슨 연유로 같이 만난 것이다. 이 시절엔 글 좀 하고 그림 그린다 하는 이들이 모이면 합작으로 작품을 만들어서 좌장이나 자리를 주선한 이에게 선사하는 것이 일종의 관례였다.그들 앞에 종이가 놓이자, 청계가 먼저 소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 거친 듯 유연한 나무 둥치가 멋스러운데, 아래 공간이 비어 있다. 거기 운보가 신선과 동자를 세웠다. 누런 옷 노인은 저 멀리를 바라보는데, 청의동자는 화폭 바깥을 흘깃 쳐다본다.다 되었다 싶었는지 청계가 다시 붓을 잡았다. 그리고.. 2025. 3. 17.
백범 김구의 총알체 병풍 글씨 [백범이 이런 작품도 다 남겼더라]백범 김구(1876-1949)의 삶은, 그가 했다는 한 마디 말로 요약된다. "내 직업은 독립운동이요." 그의 삶에 물론 그늘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없었던들 과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십 년을 버티며 독립의 꿈을 놓지 않았을까. 또, 해방된 조국의 남과 북이 갈라져나가던 순간에 누가 이를 피 흘리지 않고 붙여보려는 노력을 했을까. 그는 분명 한 시대의 거인이었다.그는 붓글씨를 많이 남겼다. 대개 45년 환국 후 경교장에서 각 잡고, 또 전국 순방을 하며 즉석에서 쓴 것들인데 전해지는 것만도 족히 몇백 점은 되지 싶다. 백범일지에 서명한 것까지 합하면 헤아리기도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은 귀한 대접을 받는다. 인기가 있으니 가짜도 적잖이 나돌고 복사본, 영.. 2025. 3. 14.
100년 전 제주 신동 1913년 12월 5일자 매일신보 박스기사를 훑어보다 보니 '제주' 두 글자가 콕 박혀 들어온다.냉큼 읽어보니 제법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여섯살바기 신동이 났다지 않은가.전라남도 제주군 서문 밖 진성동에 사는 강석균 씨의 아들 강철수는 태어난지 30개월이 못 되어 글자를 3,000자 이상이나 알고 고시와 당음(필자 주: 중국 한시)을 능히 기억하더니 작년부터는 처음으로 붓을 잡는데 필법이 신기하여 서화를 무불통지하므로 주변 사람들이 신동이라 일컬어 글씨와 그림을 받아가는 자가 매일 구름 같이 모여들며, 지금 나이 여섯 살 된 아이로 문필이 이와 같이 구비된 것은 처음이라고 소문이 낭자하더라.진성동은 아마 제주 읍성 안 '무근성'일 텐데 "서문 밖"이라 하였으니, 아마 "서문 안"의 오식이지 싶다.그런데 .. 2025. 3. 12.
조리희照里戲, 줄다리기하다 자빠지면 껄껄 에서 이 과장님이 "성경은, 인문학의 보고야."라고 하듯, 많은 역사학, 사회학, 지역학, 문학 연구자들은 아마 "신증동국여지승람은 우리네 학문의 보고야."라고 하지 않을까.16세기까지 조선의 지리정보와 풍속, 문화, 그 고을과 관련된 시문 등등이 집대성한 지리지이기 때문이다.그 이후로 업데이트가 드문드문 되었다는 게 문제겠지만.어쨌건, 그 승람 전라도 제주목 조에도 재미있는 내용이 한둘이 아니다.그걸 읽다가 흥미로운 구절 하나를 옮겨본다.조리희照里戲  매년 8월 15일이면 남녀가 함께 모여 노래하고 춤추며 왼편 오른편으로 나누어 큰 동아줄 두 끝을 잡아당겨 승부를 결단하는데 동아줄이 만일 중간에 끊어져서 두 편이 땅에 자빠지면 구경하는 사람들이 크게 웃는다. 이것을 조리照里 놀이라고 한다. 이날에 또 .. 2025. 3. 9.
이른바 '조선귀족' 천태만상 1924년 6월, 제48호엔 관상자觀相者라는 인물이 쓴 "경성京城의 인물백태人物百態"란 기사가 실렸다. 말 그대로 경성, 곧 서울을 주름잡던 거물들의 모습을 풍자하듯 그린 글인데 그 말미에 이른바 '조선귀족'들도 언급된다. 그 대단한 나으리들의 모습을 볼작시면... 閔泳綺男의 大學目藥은 광고가 잘 되얏스니 더 말할 것 업고- 민영기(1858-1927)는 을사늑약을 반대한 덕에 '을사오적' 칭호는 듣지 않을 수 있었지만 그 뒤엔 제법 친일행적이 있었고 남작 작위를 받았다. 그런데 갑자기 웬 '대학목약'? 눈 목자가 들어갔으니 안약인 셈인데, 일제 때 꽤 유명한 상표였단다. 근데 그 신문 광고를 보니 둥근 얼굴에 텁수룩한 수염을 기른(또 다른 특징도 있으나 언급하지 않겠다) 인물이 등장한다(참고자료: .. 2025.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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