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探古의 일필휘지48

소나무 아래에서 달빛에서 만났다가 남북으로 영영 갈린 김기창과 정종여 해방 전 어느 날,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1892-1979) 문하인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1913-2001)과 청전靑田 이상범李象範(1897-1972) 제자인 청계靑谿 정종여鄭鍾汝(1914-1984)가 한 자리에 모였다. 스승은 달랐지만 그래도 퍽 가깝게 지냈던 듯싶다. 그 둘이 무슨 연유로 같이 만난 것이다. 이 시절엔 글 좀 하고 그림 그린다 하는 이들이 모이면 합작으로 작품을 만들어서 좌장이나 자리를 주선한 이에게 선사하는 것이 일종의 관례였다. 그들 앞에 종이가 놓이자, 청계가 먼저 소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 거친 듯 유연한 나무의 둥치가 멋스러운데, 아래 공간이 비어 있다. 거기 운보가 신선과 동자를 세웠다. 누런 옷의 노인은 저 멀리를 바라보는데, 청의동자는 화폭 바깥을 흘깃 쳐다본다. 다 되.. 2021. 1. 21.
풍곡 성재휴, 깊은 산속 깊은 절 라고 해야 할까? 살아 꿈틀거리는 산줄기가 기와지붕 우뚝한 절을 품었다. 기와도 푸른빛, 절 주변 수풀도 푸른빛, 또아리를 튼 산도 푸른빛이다. 스스럼없는 붓질 몇 번에 기막힌 풍경이 펼쳐진다. 이 그림을 그린 이는 풍곡豊谷 성재휴成在烋(1915-1996) 화백이다. 대구 출신으로 석재 서병오, 의재 허백련 같은 대가들에게 배우고, 국전에 3회 입선한 뒤 야인으로 지내며 작품활동을 했던 분이다. 파격적인 산수와 쏘가리 그림이 장기였는데, 이 작품도 구도나 색감이 남다른 데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이 작품은 흠이 꽤 많다. 애초 화첩에 그려졌던 그림이라 가운데 선이 가 있는 것이나 바탕이 찢겼던 것은 둘째 치고, 가운데의 그 선이 비스듬하게 기울어있는 것이다. 왜 그럴까. 이 작품만의 문제였을지 화첩 전체.. 2021. 1. 19.
너 무슨 의도로 그런 얘기를 하느냐 19세기 문인 홍길주가 남긴 글 중에 이런 얘기가 있다(어디에서 읽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아니었나 싶다). 고증학에 밝았던 연경재 성해응이 어느 날 어떤 자리에서 "평양의 이른바 기자릉은 가짜일세."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이양천이란 이가 발끈하며 가로되, "우리나라에는 오직 기자 한 분만이 계시거늘, 그대는 이제 그마저 잃어버리게 하려 하는가? 대체 무슨 심산인가?" 성해응은 더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 2021. 1. 19.
귀록歸鹿 조현명趙顯命(1690~1752)이 머물던 곳 존경하는 송혁기 교수님 최근 포스팅을 보고, 다녀온지 오래된 그곳을 한 번 다시 다녀와야겠다 싶었다. 방학동 간송 전형필(1906~1962) 옛집과 산소 앞길로 쭉 걸어올라간다. 왼쪽에 택시회사 건물을 두고 한 2분? 걸어가다 왼쪽 골짜기를 보면 작은 바위 사이로 제법 깊은 계곡을 만난다. 거기 바위에 '귀록계산歸鹿溪山'과 '와운폭臥雲瀑'이란 각자가 있다. 요 며칠 크게 낮아졌던 기온에 계곡은 꽝꽝 얼어붙었지만, 그 아래엔 귀록 선생이 들었을 물소리가 아직 나고 있었다. 바위에 새긴 글씨 수준도 상당한데, 18세기 밑으로는 내려가지 않을 듯싶다. 지금은 주춧돌은 고사하고 기왓장 하나 보이지 않지만, 군데군데 다듬은 흔적 역력한 돌멩이들이 보인다. 한때 세도 당당했던 정승의 별서가 여기 있었던 것이다. 어.. 2021. 1. 17.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되지 않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 ㅡ 찰스 대너 2021. 1. 16.
버섯 굽는 이규보를 바라보는 어떤 병사 배는 고프고 침이 질질 흐른다. 2021. 1. 14.
실물경제전문가 서하 임춘 선생 고려 무신정권기, 을 지어 경제의 흐름을 논한 문필가가 있었으니 의 저자 임춘 선생이시다. 2021. 1. 13.
규보 형의 낮잠 청자기린 향로에 청자베개다. 2021. 1. 11.
문신놈들은 씨를 말려라 고려 의종 24년(1170), 개경 교외 보현원에서 "무릇 문신의 관을 머리에 인 자는, 비록 서리라도 죽여 씨를 남기지 마라!"는 슬로건 아래 일대 살육이 벌어진다. 이로부터 100년을 이어지는 고려 무신정권의 시작이었다. 2021. 1. 11.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 "옆에 계신 듯이 느끼고 사모하는 그림"이란 뜻인데, 따로 '사당도'라고도 한다. 에서 집집마다 가묘를 두고 신주를 모시도록 하였는데, 그러기 어려운 집에서 사당 대신 장만해놓고 제를 올릴 때마다 사당 안에 지방을 써 붙여 걸어놓도록 했다. 그림 안에 번듯한 제상도 그려놓아, 제수가 없이 약식으로 절만 올려도 되었다. 써 보신 분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때 지방은 밥풀로 붙였다고 한다. 어디 먼 곳에 출타할 때는 행장에 챙겼다가 제삿날이 되면 방 한 쪽에 걸어 똑같이 제를 지냈다니, 조상을 섬기는 그 마음은 하늘도 감동시켰으리라. 2021. 1. 10.
취허翠虛 성완成琬, 뛰어넘으려 했으나 끝내 잡힌 발목 취허翠虛 성완成琬(1639~?)이란 분이 있다. 조선 중기 분으로 시문에 능했고, 특히 조선통신사 일원으로 일본에 가서 문명을 떨치고 온 인물이다. 이 분의 종증손, 종현손이 조선 후기 문인이자 학자로 이름을 날린 청성 성대중, 연경재 성해응이다(한문학 전공자라면 익히 아시리라). 이 분의 글씨를 볼 기회가 있었다. 7언 배율排律 40운韵의 시를 지어 누군가에게 준 시고였는데, 상태가 나빠서 군데군데 탈락된 데가 많아 아쉬웠지만 글씨가 참으로 물 흐르듯 유려했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 이름의 반이 날아가있었다. 반쪽이 된 이름이라...순간 이분의 처지가 확 떠올랐다. 과거에 급제해 벼슬도 하였건만, 이분은 서얼이었다. 조선 후기로 가면서 서얼의 출사에 사회가 보다 너그러워졌다지만, 아무래도 본인에게는 큰.. 2021. 1. 7.
순백 눈[雪]에 그린 백자 조선시대 백자 중에는 설백색이라고, 눈처럼 하이얀 때깔이 나는 것이 있습니다. 백자 중에서도 최상급으로 치죠. 바로 이런 색입니다, 예. 2021. 1. 7.
주역 vs. 주이 의사가 어느 날 점을 보러 갔다가 도사님 책상의 을 보았것다. "내 아들은 점 공부를 시키겠습니다! 의사노릇은 죽어도 못 하게 할 겁니다!" 어리둥절해진 도사님,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의사가 낫지 왜?" "선생님 보는 책은 니 두루두루 얼마나 쉽겠습니까? 제가 보던 의학책은 아주 몸서리쳐집니다!" *** 植補 주역의 역易은 발음이 두 가지라 각기 뜻이 다르다. 쉽다는 뜻일 때는 이, 바꾼다는 뜻일 때는 역이다. 주역이란 주周나라 역이라는 뜻으로 점책이다. 점은 시時로 따지므로 그 시가 변하는 데 따라 점괘가 다르다. 2021. 1. 7.
백수가 된 이규보는 고양이랑 놀고 공께서 잠깐 벼슬 사시다가 백수가 되셨을 때, 까만 냥이를 길렀다고 한다. 2021. 1. 6.
뱀을 신으로 여기는 제주 "(제주) 풍속에 뱀을 매우 꺼리며, 신으로 여겨 받든다. 보면 곧 술을 바쳐 빌며, 감히 쫓아내거나 죽이지 못한다." 2021. 1. 5.
다듬이질, 한국이 숨쉬는 소리 개화기 이 땅에 왔던 서양 사람들이 가장 이채롭게 '들었던' 게 바로 다듬이질 소리였다고 한다. 한영자전을 만들 정도로 박식했고 한국 문화를 깊이 이해했던 캐나다 선교사 게일(1863-1937)은 밤마다 서울 곳곳에서 아련히 들려오는 다듬이질 소리를 "한국이 숨쉬는 소리"라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100여 년이 지난 오늘, 그 소리는 시골에 가서도 듣기 어려워졌다. 누가 있어 그 힘든 일을 할 것인가. 박물관에 놓인 저 다듬잇돌과 방망이는 이제 다시는 또그닥 또그닥 소리를 내지 못한다. 그저 제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2021. 1. 5.
박종홍의 기숙사에 기증된 《역사학보》 창간호 1) 1952년, 아직 전쟁이 한창일 때 창설된 역사학회의 학회지 의 창간호다. 아마 PDF로는 많이 보셨겠지만 실물 표지는 처음 만나는 분도 적지 않으시리라. '신생숙'이라는 데 증정한 거라는데...하여간 그 유명한 Dual Organization 논문도 있고, 그 시절 학자들의 고민들이 목차만 봐도 잡히는 것만 같아 흥미롭다. 2) '신생숙'이 어떤 곳이었는지 찾아보니 맨 아래와 같은 기사가 뜬다. 이에 따르면 신생숙은 서울대 철학과 교수 박종홍(1903-1979)이 1954년 개인적으로 만든 대학생 기숙사였다. 고학생들을 받아 먹이고 입히고 재우며 인재로 길러내던(만들 때 요시다 쇼인의 쇼카손주쿠를 염두에 두었다고) 곳이라니, 어쩌면 박종홍 선생이 일부러 역사학회에 부탁해 과월호를 받아왔을지 모를 .. 2020. 12. 31.
이걸 그냥 확..욱대감 최홍렬 원외랑(員外郞) 최홍렬(崔洪烈)은 뜻이 굳세고 정직하였다. 일찍이 남경(南京)의 장서기(掌書記)로 있을 적에 권신(權臣)인 의문(義文)이 보낸 종이 주인의 세력을 믿고 멋대로 사람을 해치자 그를 때려 죽였는데, 이로 말미암아 이름이 알려졌었다. 그가 하급 관리로 있을 적에, 여럿이 모인 자리에 고을을 다스리는 데 청렴하지 못한 문사(文士) 한 명이 있었다. 최군(崔君)은 자기로 만든 술잔[飮器瓷垸]을 들어 장차 치려 하면서, 먼저 입으로 손가락을 물어 큰 휘파람을 불어서 기운을 격발시킨 다음 큰 소리로 말하기를, “이 좌석에 탐욕스러운 놈이 있어 나는 그를 때리려 한다. 옛날 단수실(段秀實)은 홀(笏)로 간신(奸臣)을 쳤었는데 이제 나 최씨는 술잔으로 탐신(貪臣)을 치겠노라.” 라 하였다. 비록 그 이름.. 2020. 12. 30.
이규보의 꿀벌론 바쁜 벌꿀은 슬퍼할 틈도 없다던가, 고려시대에도 벌은 꿀을 따느라 바빴던 모양이다. 우리의 백운거사 이규보도 벌을 보고 무언가 느끼는 바가 있었던지, 나름의 꿀론, 벌론을 펼친 적이 있었다. 술꾼의 벗 숙취를 가라앉히기 위해 꿀물을 많이 타 잡수셨을테니 더욱이 감회가 깊었으리라. 꽃을 따서 꿀을 만드니 엿과도 비슷하도다 기름과 짝을 이루니 그 쓰임 끝이 없도다 사람들 적당히 거두지 않고 바닥을 드러내야 그만둔다 네가 죽지 않는다면 인욕이 어찌 그치랴 ㅡ 전집 권19, 찬, "꿀벌찬" 2020. 12. 29.
졌지만 항복은 못해! 바둑 불복 이규보 1) 이규보는 바둑도 그럭저럭 두었던 듯 싶다. 하지만 바둑이 늘 그렇듯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했던 모양. 대국에서 한 번 크게 지고 상대에게 지어준 시가 전한다. 상대를 '어른'이라 한 걸 보면 연장자였던 것 같은데, 먼저 시를 지어서 놀리니 이규보 체면에 가만 있을소냐. 그 시에 차운하여 화답하기를... 다행히 봄날이라 해가 길기도 하나니 / 幸是春天日正遲 곧장 통쾌히 싸워 자웅을 결단하였소 / 直須快戰決雄雌 이겼다고 무쌍의 솜씨라 자부하시지만 / 捷來雖負無雙手 졌다고 어찌 한 번 이길 기회 잊겠소 / 敗去寧忘借一期 왕방처럼 맹렬한 들불을 놓으려 하니 / 欲放王逄橫野火 도개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방망이가 되지나 마오 / 莫成到漑兀風椎 그대에게 묻나니 이미 판가름 났다고 항복하랴 / 問君已辦降旗不 이야말.. 2020. 12. 28.
하늘에서 술이 비처럼 내려와 권2에 이런 시가 있다. 제목은 "술을 보낸 벗에게 사례하다". 근래엔 술마저 말라버려 / 邇來杯酒乾 이것이 내 온 집안 가뭄이었는데 / 是我一家旱 감사하구려 그대 좋은 술 보내주어 / 感子餉芳醪 때맞춰 내리는 비처럼 상쾌하네 / 快如時雨灌 이규보가 느낀 희열이 스무 자 시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2020. 12.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