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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182

남농 선생의 대나무 1. 나는 근현대 한국화가 가운데 이 어른, 남농 허건(1907-1987)을 가장 좋아한다. 소치의 손자니, 호남 화단의 거목이니 하는 미사여구는 둘째치고, 집에 들른 외판원도 그냥 보내지 않았다는 그 인품에다가 마주 보면 바람소리가 들릴 듯한 그의 소나무에 반했기 때문이다. 그가 없었던들 60-70년대의 이른바 동양화 붐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 특히 만년작은 위작이 많기로도 유명하지만, 워낙 인기가 있었기에 나타난 현상 아니겠는가. 2. 남농 선생은 주로 산수와 소나무를 즐겨 그렸고, 사군자나 화조는 썩 즐기지 않은 것으로 안다. 젊은 시절의 화조도는 한 번인가 두 번인가 실물로 봤고, 난초나 대나무는 몇 차례 만났는데 그야말로 남농의 모습다운 난초와 대나무였다는 기억이다. 매화는 .. 2022. 9. 27.
키 크기로 유명한 사람, 김부귀 1930년대 경성, 사람들은 '그로'(그로테스크)에 빠져있었다. 무언가 기괴한 일 없나, 궁금해하고 찾아다니던 그들의 앞에 '그로'의 실체가 나타났다. 당시 세계에서 세번째로 키가 컸다는 거인, 김부귀金富貴(1905-1943)가 그였다. 경남 거창 사람으로 지리산 화엄사에 출가해 승려생활을 하다 속세로 나온 그를 두고 사람들은 "낮도깨비야 낮도깨비!" "원 그런 사람이 있을랴구"라고 수군거렸으며, 신발이 배만하다는 둥 손이 솥뚜껑만하다는 둥 온갖 말을 덧붙였다. 남아있는 사진만 봐도 과연 거인巨人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신문이며 잡지에 실린 인터뷰 기사도 제법 확인되는데, 그 큰 체구로 세계일주를 하겠다고 나서 중국, 일본을 거쳐 미국 하와이까지 갔다왔다니 환속還俗한 보람은 있었다고 할까. 거기서 더 나아.. 2022. 9. 16.
문정경중問鼎輕重, 저 세발 솥은 무게는 어떠한고 주나라가 기울고 제후국들이 자기 목소리 크게 내던 춘추전국시대, 춘추오패의 하나로 꼽히는 초 장왕이 주나라 수도 낙양 근처까지 병사를 이끌고 왔다. 이에 주 정왕은 대부 왕손만이란 이를 사신으로 뽑아 장왕에게 보냈다. 장왕은 왕손만을 만나자마자 대뜸 묻기를, "구정九鼎은 크기가 얼마나 되오?" 중국 고대에는 전국 9주州의 구리를 모아서 만든 9개의 세발 솥, 곧 구정九鼎이 왕권을 상징하는 물건이었다. 그 구정 크기를 묻는다? 왕손만은 답하지 않는다. 그러자 장왕은 다시 묻는다. "크기를 모르면 무게는 알 수 있겠군. 구정은 무게가 얼마인가? 참고로 우리 초나라에선 부러진 창끝만 모아도 그런 솥 서너 개는 만들 수 있을 게요." 이는 주나라 왕실로부터 그것을 빼앗아 초나라로 옮기겠다는 뜻이었다. 거기서 더.. 2022. 9. 16.
연혼포延婚浦 또는 열운이 탐라를 연 세 신인은 모두 남성이었다. 아메바처럼 단성생식을 할 게 아닌 바에야 짝이 될 여성이 있어야할 터 어느 날 동쪽 바닷가에 큰 나무 함 하나가 나타났다. 그 안에는 오곡의 씨앗과 말, 소, 그리고 세 여인과 한 사내가 있었다. 그 사내는 세 신인에게 "저는 벽랑국(에는 일본국이라 했다) 사람입니다. 우리 임금께서 세 따님을 낳고 이르되 서해 한가운데 있는 산에 신자神子 3명이 강생降生하여 장차 나라를 세우려는데 배필이 없도다 하시고 이에 신臣에게 명하여 세 왕녀를 모시고 가게 하였습니다. 마땅히 배필로 삼아 대업大業을 이룩하시옵소서." 하고 홀연히 구름을 타고 떠나가 버렸다 한다. 이에 세 신인은 세 공주와 혼인하고 탐라국의 기틀을 다지게 된다. 그 나무 함이 둥둥 떠왔다는 곳인 연혼포에 다녀왔.. 2022. 9. 10.
개화기 상소서上訴書와 우영우 "이의 있습니다!" 보통 이렇게 외치는 변호사는 없다고 한다(변호사 지인 두 분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니 맞으리라). 하지만 사람들은 피고인 - 약자를 위해 변론을 펼치고 잘못된 것처럼 보이는 판결에 항소하는 변호사들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가 왜 인기였겠으며, 그 전의 그 숱한 법정드라마가 왜 만들어졌겠는가. 아마도 갑오개혁 즈음 인쇄된 것으로 보이는 형법서의 낙장을 몇 장 우연히 보게 되었다. 재판소니 검사니, 피해자니 피고인이니 하는 단어가 이때부터 있었구나 생각하니 퍽 흥미로웠는데, 개중 '상소서'란 문서의 서식 하나가 실려있었다. 재판장이 판결하여 내린 선고가 아무래도 '미타당'하므로 소를 제기한다는 내용이다. 과연 이 상소서를 써서 제출한 분(변호사와 피고인을 막론하고)들은 얼마나 있었으며,.. 2022. 9. 5.
조각가 문신이 시인 박성룡에게 보낸 편지 봉투 1. 군사정권이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1987년 1월 7일, 마산 추산동 52-1에 살던 조각가 문신文信(1922-1995) 선생은 서울신문사에 근무하던 시인 박성룡(1932-2002) 선생에게 무언가를 보내야 했다. 문선생은 단아한 필체로 자기와 받는이의 이름과 주소를 두꺼운 종이봉투에 적고, 봉투 안에 무언가를 넣어 봉했다. 그리고 그것을 우체국에 갖고 가 서울로 부쳤다. 2. 대개 우편물을 받으면, 봉투를 뜯어서 내용을 확인하고 난 뒤 찢어버리든 그냥 버리든 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런데 박선생은 어째서인지 그 봉투를 그냥 두었다. 언제부턴가 그 봉투는 세상을 떠돌았고, 어느 집 창고에서 묵고 있었다. 그러다 방랑의 길에 들어선 봉투, 새 주인을 만나고 그 손에 이끌려 사진을 박았다. 3. 올.. 2022.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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