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探古의 일필휘지73

동국이상국집을 읽다가 ㅡ 나는야 개경에 살리라 고려시대 분들은 지금의 우리보다도 개경을 떠받들고 거기서 살고 싶어했다. "개경 or nothing"이랄까. 그래서인지 고려시대엔 개경에 살던 고위층을 연고지로 보내버리는 '귀향형'이 꽤 무거운 벌이었다. 반면 지방관이나 유배객이 그 지역에서 죽으면, 유해를 거의 반드시 개경 근처로 모셔와 장사지냈다. 2021. 4. 7.
以酒治酒, 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숙취와 싸웠을까? 권2에 이런 시가 실려 있다. 제목은 '술병[酒病]으로 일어나지 못하는 벗에게 희롱삼아 지어 주다'. 내가 바로 노숙한 의원이라 병을 잘 진단하지 / 我是老醫能診病 누구의 빌미냐 하면 틀림없이 누룩 귀신일세 / 誰爲祟者必麴神 새벽에 아황주 닷 말을 단숨에 마셔야 해 / 鵝黃五斗晨輕服 이 약이 유백륜에게서 전해온 비방일세 / 此藥傳從劉伯倫 아황주가 뭔가 싶었더니 갓 알을 깬 거위처럼 노르스름한 때깔의 술이라서 鵝黃酒란다. 요즘도 파는 곳이 있다는데, 한 번 마셔보고 싶기는 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술 닷 말을 숙취에 걸린 사람에게 들이붓다니. 요즘 같으면 헛개수나 '견디셔'를 권해주고 싶건마는. 2021. 3. 28.
이건 어느 분 글씨일까 60년대 국립박물관에서 낸 팜플렛의 제목들이다. 셋 다 제법 달필이고, 특히 맨 오른쪽은 유려하기까지 하다. 요즘 포스터의 무미건조한 글자와는 차원이 다른데, 이쯤 되니 누가 쓰셨을까 궁금해진다. 후보는 몇 있다. 초대 관장 김재원(1909-1990), 당시 국립박물관에서 근무하던 최순우(1916-1984)나 김원룡(1922-1993)이 붓을 들지 않았을까 싶은데, 정작 팜플렛엔 글씨 쓴 이를 밝히지 않았으니 알 도리가 없다. 2021. 3. 27.
월급날이 지났지만 통장은 그저 정거장일 뿐이런가 2021. 3. 27.
시냇물의 흐름은 쉬지 않는다 운여 김광업(1906-1976)의 작품 *** 천류불식川流不息 이라 천류를 강물의 흐름이라 새길 수도 있고 강물은 끊임없이 흘러 라고 보아도 좋다.(台植補) 2021. 3. 24.
무호無號 이한복李漢福, 그의 글씨 무호 이한복(1897-1944). 근대의 이름난 화가였지만, 당대의 거물 오창석의 제자에게 배워 글씨로도 일가를 이룬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조선미술전람회에서 書를 빼자 주장하는, 언뜻 모순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석사논문 하나만 나왔을 정도로 본격적인 연구가 많지 않은데, 언젠가 이분의 서예인식을 한 번 글로 써보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런 사연을 떠나서라도, 글씨가 좋지 않은가 말이다. 멋을 낸 전서 글씨의 구조하며, 긴장미가 흐르는 형태는 또 어떤지. 2021. 3. 24.
위창葦滄이 보던 고려도경高麗圖經 국립중앙도서관 위창문고에 있는 이다. 매우 흥미롭게도 철필로 긁어 민 등사본이다. 몇 군데 살펴보니 지부족재본을 그대로 베꼈는데, '경성 군서당서점'이란 딱지가 붙었다. 이당 김은호의 자서전 을 보면 당시 서점에선 알바들을 고용하고 책을 베꼈다고 한다. 필경사들이 베낀 책의 수요가 제법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위창 선생 댁에 지부족재본 이 없었다니 그건 그것 나름대로 놀라운 일이다. *** 台植補 *** 위창문고란 근대 서화가이자 서지학도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1864~1953) 문고를 말한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이다. 이에서 말하는 등사가 실은 전통시대 전형적인 출판방식이다. 인쇄본? 졸라 비싸고 출판량도 많지 않아 구득은 하늘에 별따기였다. 것도 대개 비매품이라, 그거 하나 얻겠다 난리를.. 2021. 3. 17.
무심한 아들놈 야쓰이 세이이쓰 1918년 9월 10일, 조선총독부의 촉탁이자 고적조사위원을 겸하고 있던 야쓰이 세이이쓰(谷井濟一 곡정제일, 1880-1959)는 경성부 아사히마치旭町 잇초메一丁目 143번지, 지금의 서울 중구 회현동 143번지(소월로 16)에 있던 집에 이삿짐을 옮겨놓는다. 그리고 이사했다는 사실을 관제엽서에 인쇄하여 지인들에게 보낸다. 그 중의 한 장이 최근 세상에 나왔다. 그런데 이 엽서는 다른 것하고는 구별되는 사연이 있다. 바로 이 엽서를 받는 와카야마현의 야쓰이 간조谷井勘藏란 사람이 다른 이도 아니고 야쓰이 세이이쓰 본인의 아버지라는 사실! 보통 생각하기에 아버지(로 대표되는 가족)에게 이사했다는 걸 알려야 한다면 손으로 직접 정성스럽게 "아버님 전상서, 소자가 이번에...."이런 식으로 써서 부치거나, 전화.. 2021. 3. 15.
[옛 글씨를 보다가] 고우古友 최린崔麟의 경우 이 땅의 근대는 참 파란만장했다. 그만큼 많은 인물이 나타났고 스러져갔다. 역사에 향기로운 이름을 남긴 이들만큼이나, 더러운 발자국을 남긴 이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을 어떤 한 면만 보고 판단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어째서 그들이 그런 선택을 했을지, 그들이 남긴 다양한 면모를 두루 살피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고우古友 최린崔麟(1878-1958) 글씨를 감상하며 그런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귀한 작품을 보여주시고 사진촬영과 게재를 허락해주신 소장자께 감사드린다). 최린은 대한제국 황실 후원으로 일본 유학을 다녀오고 보성전문학교 교장, 천도교 종법사宗法師, 계명구락부 이사를 역임한 당대 일류급 지식인이었다. 또한 3.1운동 민족대표 33인에 이름을 올린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조.. 2021. 3. 14.
이규보, 박연폭포의 전설을 읊다 피리 소리에 반한 용녀 선생께 시집오니 / 龍娘感笛嫁先生 오랜 세월 그 정열 즐겁기만 하였겠지 / 百載同歡便適情 그래도 임공의 새 과부 탁문군이가 / 猶勝臨邛新寡婦 거문고 소리 듣고 실신한 것보단 나으리 / 失身都爲聽琴聲 《동국이상국집》 권14, 고율시, '박연폭포를 읊다' - 이 시 제목에는 다음과 같은 주注가 있다. "옛날 박 진사朴進士란 사람이 못가에서 피리를 부니, 용녀龍女가 그 피리 소리에 반하여 저의 본 남편을 죽이고 박 진사에게 시집갔으므로, 이 못을 박연이라 이름했다 한다." 2021. 3. 11.
요시다 상, 《에혼타이코기繪本太閤記회본태합기》를 베끼다 도요토미 히데요시(1536-1598)를 좋아하는 한국인이 있을까? 한국인으로서는 7년 전쟁을 이끈 왜구 두목 이상의 평가를 주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일본인이 보기에 도요토미는 오다 노부나가(1534-1582), 도쿠가와 이에야스(1542-1616)과 더불어 전국시대의 삼걸三傑로 꼽히는 무장이자 흙수저 성공신화를 이룬 경세가다. 그 인기는 도요토미 정권을 끝낸 에도 바쿠후 시절에도 식지 않았다. 바쿠후는 도요토미와 관련된 서적을 금서로 지정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만, 그럼에도 일본 서민들 사이에서 그의 인기는 여전했다. 때는 분세이 6년(1823), 후루시마古島邑라는 곳에 요시다 아무개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제법 글자를 알았던 그는 어느 날 소설을 읽고 싶다는 욕망에 사무쳤다. 하지만 소설을 살 돈.. 2021. 3. 1.
근원 김용준(1904-1967)의 병풍 속에서 그의 붓이 지나면 가지의 감은 어느새 익고 팔백 년 전 청자가 나툰다 거기에 꿈틀대는 게 한 마리 어디선가 기어온다 2021. 2. 21.
나손 김동욱(1922-1990) 선생의 글 창의創意가 없는 글은 쓰지 마라 정묘丁卯 원일元日 라손羅孫 당연한 듯 싶으면서도 참 어려운 목표 2021. 2. 20.
고청 윤경렬(1916-1999)의 손길 "마지막 신라인"이라 지금까지도 칭송받는 경주의 큰 어른 고청 윤경렬 선생, 그는 누구 못지않게 빼어난 공예가였다. 젊은 시절 토우 만드는 기술을 배우러 일본에 갈 정도로 흙 굽는 일을 천직으로 여긴 그는 일제 말과 해방 전후 혼란기에도, 전통을 도외시하던 1950년대 이후에도 우리의 문화와 역사 풍속을 담은 인형을 흙으로 빚어 구워내곤 했다. 그것은 물론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이었지만, 그만큼 '불타오르는' 예술혼을 갖고 있었다는 얘기도 되겠다. 그의 회고록 을 보면 토우를 제작하며 만난 이들과 겪은에피소드가 여럿 보인다. 한 예로 그가 경주에 내려오고서 곧 경주박물관에 무상으로 드나들게 되는데 그 계기가 토우 제작이었다(자세한 내용은 책을 참고 부탁드립니다). 오래 산 만큼 작품이 많이 남.. 2021. 2. 20.
명도 선생의 교훈, 겐또는 처음 끌린 게 맞다! 북송의 성리학자 정호가 어느 날 창고에 앉아 있었는데, 심심풀이로 뒤채 행랑의 기둥 수를 세어 두었다. 그런데 다시 세어보니 맞지 않는 것이다. 할 수 없이 다른 사람을 불러다 소리내가며 세게 했더니 처음 센 게 맞았다. 이에 정호는 '집착할수록 안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시험 칠 때 처음 찍은 게 맞는다는 것을 900여년 전에 알아차리신 위대한 명도 선생이시여. 2021. 2. 19.
교정의 기쁨과 고통 한때는 교정, 교열을 보면서 밥 먹을 돈을 벌었다. 요즘도 글을 교정할 일이 많다. 그럴 때는 열일 제쳐놓고 빨간펜의 흔적이 역력한 교정고를 돌려주곤 한다.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글을 먼저 본다는 독자의 기쁨이 있고, 틀린 글자나 어색한 표현을 찾아내는 교정자로서의 기쁨이 있다. 하지만 문득문득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교정보았던 것이 다 반영이 되지 않기도 하고, 자칫 교정으로 인해 글의 주인과 나 사이에 앙금이 생기기도 하기 때문이다.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에서 감정싸움이 되면 피곤한 일이다. 예전부터 교정을 볼 때, 네 글도 아닌데 뭘 그렇게 정성스럽게 보느냐고 한소리 듣는 일이 있었다. 교정만 보면 되는데 어디서 월권을 행사하느냐는 듯한 어조가 "고마워요"라는 답에서 느껴지기도 한다. 어쩔 수 없.. 2021. 2. 16.
제주풍토록을 읽다 중종 15년인 1520년, 충암 김정(1486-1521)이 제주에 발을 디뎠다. 이때 충암의 나이 서른다섯. 촉망받던 관료였으나 조광조(1482-1519)와 정치적 입장을 같이했다는 이유로 진도에 유배되었다가 다시 제주에 오게 된 것이다. 그는 제주에서 어떤 일을 겪었을까. 그를 기다리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틈틈이 그는 붓을 들어 외조카에게 서찰을 썼다. 아니 그것은 서찰이라기보다 제주 리포트였다. 그것이 지금까지 남아 전하는 이다. 거기에 그가 겪은 일, 그가 본 제주가 담겨 있다. 2021. 2. 16.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오대십국 시기 진단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황제가 바뀌던 그때, 아무개가 나라를 세웠다는 얘기를 들으면 진단은 눈살을 찌푸릴 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후주의 장군 조광윤이 송을 세웠다는 얘기가 그의 귀에 들려옵니다. 흰 나귀를 타고 있던 진단은 갑자기 거기서 굴러떨어집니다. 그러면서도 얼굴 가득 웃음을 띄우며 이렇게 말했다죠. "천하는 이제 안정되리라!" 도가에서 신선이었다며 추앙하는 진단. 그가 기뻐하며 외친 것처럼 천하가 안정되기를, 그리고 세상 모든 분이 새해에 복을 받고 평안을 누리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2021. 2. 14.
위창葦滄 독서도 위창은 오경석 아들로 오세창吳世昌(1864~1953) 호다. 《근역서화징槿域書畫徵》 작가다. 2021. 2. 13.
동국이상국집을 읽다가 온갖 벌레 잠들고 밤은 괴괴한데 / 百蟲潛息夜幽幽 괴이할사 너만이 등불 들고 노니누나 / 怪爾擡燈獨自遊 더러는 미인의 부채에 얻어맞기도 하고 / 時見美人羅扇撲 또는 시객의 주머니에 잡혀들기도 하며 / 苦遭詩客絹囊收 낮게 날 적엔 옷깃에 붙을 듯하다가 / 低飛似欲黏衣領 높이 날 적엔 지붕도 훌쩍 넘어가네 / 飄去無端度屋頭 그러나 저 하늘 끝까지는 날지 마라 / 更莫迢迢天際逝 사천대가 유성流星이 지난다고 쉬이 보고할라 / 觀臺容易報星流 또 너의 불은 원래 태우지 못하고 / 螢火元不焚 그저 인광燐光만 반짝이므로 / 徒爾光炳炳 비록 띳집에서라도 / 雖於茅屋間 멋대로 날도록 내버려 두네 / 任汝飛自逞 푸르스름한 빛 풀잎에 붙기도 하는데 / 靑熒點草上 이슬과 달빛에 한결 더 반짝이며 / 淸露炤月炯 날아서 창문 안에.. 2021. 2. 11.
고려시대의 탐관오리 요즘이라고 없겠는가 2021. 2.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