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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69

[마질차] (7) 마질차 엄마는 김유신의 딸 김유신 자식은 삼국사가 삼국유사에 그 실체가 어느 정도 공개되지만 아들만 실명 공개했을 뿐이요 특히 전자에서는 네 딸을 두었다 했지만 그 넷은 이름도 없고 당연히 행적도 없다. 예서 드는 의문. 김유신 정도 되는 아버지 딸들이 평이한 삶을 살았겠는가? 한데 화랑세기와 상장돈장에는 그 네 딸 이름만이 아니라 그 행적 또한 비교적 소상히 보이는데 예상대로 간단한 삶을 살지는 않았다. 그 네 딸 이름을 진광晉光 신광信光 작광酌光 선광善光이라 해서 첫 부인 령모令母. 소생이라 밝힌다. 이들은 기존에 알려진 김유신 장남 삼광三光과 더불어 모조리 光을 돌림자로 썼다. 이들과 달리 김유신이 환갑에 취한 지소공주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들은 노자의 별칭인 장이長耳만 빼고선 원술元述을 필두로 모조리 元자를 돌림으로 쓴다. .. 2024. 3. 10.
이름이 품은 문화사, 당대 세계를 소비한 김유신 시대의 신라 김유신 조카이자 사위이고, 김흠순 아들인 김반굴金盤屈은 그 이름 반굴이 그 자체 특정한 의미를 지닌 작명법임을 앞서 지적했거니와, 그렇다면 궁금하지 아니한가? 왜 저 시대 하고 많은 이름 중에 저이는 반굴盤屈이라는 이름을 썼을까? 이것이 궁금하지 않냐 이거다. 이는 앞서 밝혔듯이 본래는 산해경에서 출전을 삼는데, 그 반굴은 도삭산度朔山이라는 상상의 산에 자라는 복숭아 나무 가지가 삼천리 가지를 뻗친다 하면서 그것을 묘사할 때 구사된 구절이다. 이를 통해 모름지기 저 시대 신라사회가 산해경을 소비했을 것이라는 발상은 겉핥기에 지나지 아니하고 그것을 소비한 신라사회 앙태 일면을 들여다 보는 증언이라는 데 진정한 의미가 있다고 나는 본다. 도삭산이라는 신선의 산, 복숭아 나무 이런 키워드를 묶으면, 그 시대 .. 2024. 1. 10.
“음모로 인국隣國을 난亂한 자”, 김유신을 혹평하는 단재 신채호 김춘추가 한창 복수운동에 분주하는 판에, 그 보좌인 一 명물이 있으니 곧 김유신이다. 당시에 연개소문을 고구려의 대표인물이라 하고, 부여 성충을 백제의 대표인물이라 하면, 김유신은 곧 신라의 대표인물이라 할 것이다. 고구려 백제가 망한 뒤에 신라 사가들이 彼 양국 인물의 전기적 자료를 말살하고 오직 김유신만을 가송歌訟하였으므로, 삼국사기 열전에 김유신 一人의 전기가 을지문덕 이하 수십 개 인의 전기보다도 그 매수가 훨씬 많고, 부여성충 같은 이는 그 열전에도 참여도 못하였다(이상 460쪽). 그러면 김유신전이 익미溢美한 말이 많음을 가히 추지推知할 것이다. 이제 그 사리에 合한 자를 추리면 대개 下와 같다.... 그러나 유신이 가야의 김씨인 까닭에 비상한 반연攀緣이 없으면 중용되지(이상 461쪽) 못할 .. 2024. 1. 8.
딸을 과부로 만든 김유신(3) 원술이 희생되지 않은 이유 김유신 장자는 김삼광金三光이다. 그가 군직에 있었으면 당연히 그는 아버지를 따라 백제정벌전에 종군했어야 했지만, 이미 660년 이 전쟁 당시 김유신은 66세 노장이었고, 그 아들 삼광은 몇 살이었는지 확실치는 아니하나, 적어도 40대 중년이었을 것이다. 또 군대 쪽에서 활동한 흔적은 없고, 저 전쟁보다 6년이 지난 문무왕 6년(666)에는 천존의 아들 한림漢林과 더불어 나마로서, 당나라에 들어가 숙위한 상태였다고 하므로, 금수저로 일찍이 관직에 진출해 차곡차곡 공무원 경력을 쌓은 듯하다. 그는 분명 백제 정벌전에는 출전하지 않았다. 앞서 얘기했듯이 했다면 그가 가장 먼저 희생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김유신은 곤혹에 처한 전세를 만회하고자 약발이 센 젊은 친구들만 골랐다. 그래서 부사령관들 자제를 골랐으니.. 2023. 12. 27.
딸을 과부로 만든 김유신 (2) 약발은 셀수록 좋다. 이참에 반드시 백제는 인류 역사에서 종적을 말살하고 말리라고 결심은 굳힌 신라는 5만이라는 대군을 동원해 사비성을 향해 나아갔지만, 황산벌에서 계백에 이끄는 5천 군대에 발목이 잡혔다. 네 번 싸워 네 번을 진 신라군 수뇌부에서는 특단의 대책을 강구할 수밖에 없었으니, 분기탱천을 유발하는 전술을 강구했다. 이에서 66세에 이른 노회한 총사령관 김유신이 택한 방법은 그 분기탱천이 최대한 ‘약발’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아주 괜찮은 놈을 희생시킨다는 것이었다. 아마 이 전쟁에 그의 아들들은 참전하지 못한 듯하다. 나는 이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때까지 성년에 이른 그의 유일한 아들은 삼광三光이었다. 하지만 삼광은 이 무렵 당군에 가담해 그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한 듯하다. 황산벌 전투에서 위기를 타개하고자 왜 김.. 2023. 12. 27.
너무 잘난 형을 둔 흠순欽純 (5) 미스터리 국정자문위원 렴장廉長 김유신-흠순 형제가 한창 주가를 날리던 시대, 신라에서 돈과 권력으로 정계를 주무른 이로 렴장廉長이란 사람이 있다. 하지만 염장은 미스터리다. 그건 다른 무엇보다 꼴랑 한 군데 고개를 내밀고는 사라지고 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꼴랑 한 번 고개를 들이민 사람이 대단했을 것임을 우리는 어찌 아는가? 이를 위해 위선 우리는 그 꼴랑 한 번하는 장면을 음미해야 한다. 《삼국유사》 기이편紀異篇 진덕왕眞德王 이라는 제하 이야기에 보이는 대목이다. “(진덕여)왕이 즉위한 시대에 알천공閼川公·림종공林宗公·술종공述宗公·호림공虎林公(자장慈藏의 아버지다)·렴장공廉長公·유신공庾信公이 있었다. 이들은 남산南山 우지암亏知巖에 모여 나랏일을 의논했다.” 간단히 말해 왕은 꿔다논 보릿자루였고, 실제는 이들 여섯 분이서 나라일을.. 2023.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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