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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주인공으로 한 번도 등장해 본 적 없는 노비들 필자가 아는 한 노비들은 우리나라 역사 기술에서 과거는 포함 심지어는 21세기까지도 한 번도 역사의 주체로 설명되고 기술되었던 적이 없다. 필자가 기억하는 바 노비가 우리 사회의 화제이자 스폿라이트를 받던 적은 딱 두 번 있었으니, 웃기게도 둘다 소위 K 드라마 관련이라, 한 번은 바로 "추노" 두 번째는 바로 "미스터 선샤인"이다. 이 두 드라마의 주인공 언저리에 있던 인물들이 바로 노비로 이것도 드라마라 한때 화제가 반짝 일었을 뿐,전 국민이 우리 조상만큼은 양반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라 그런지 그 후에도 노비는 한때 전 국민의 절반에 육박하는 인구수를 자랑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제대로 스폿을 받은 바가 없다. 로마시대는 노예가 굴렸다고 전해지는 바, 그 당시에도 노예의 비율은 전체 인.. 2026. 7. 26.
이란 혁명을 열렬히 환호한 미셸 푸코, 그 이후 각종 탄압에는 주둥이를 다물었다 1978년, 이란이 혁명의 기운이 무르익자 미셸 푸코 Michel Foucault는 관광객이나 외교관이 아닌, 자신의 이론을 확인하려는 이론가로서 그곳에 도착했다.권력, 담론discourse, 그리고 서구 제도의 숨은 작동 방식에 대한 분석으로 명성을 떨친 이 프랑스 철학자 푸코는 이탈리아 신문 코리에레 델라 세라Corriere della Sera의 특파원으로 두 차례 이란을 방문했다.그는 자신이 목격한 것이 전례 없는 일이라고 확신했다. 그것은 계급 투쟁에 의한 마르크스주의적 봉기도, 헌법 개혁을 추구하는 자유주의적 반란도 아니었다.이 점에서 푸코의 예상은 적중했다.이란 혁명은 마르크스주의적이지도, 자유주의적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가 서구 정치 범주에서 벗어난 대담한 시도라고 칭송한 것은 새로운 무언.. 2026. 7. 26.
17세기 조선시대 호적은 국비로 인쇄해야 한다 17세기 우리나라 조선시대 남아 있는 호적은국비로 인쇄하여 무료로 전 국민에게 배포하여 뿌려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는 우리 조상이 양반이라는 사람들이 전 인구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모순, 조선후기를 "민중사"로 봐야 한다는 막장 주장, 한국사는 일찍부터 "민족사"였다는 엉터리 주장이 발 붙일 곳 없어지며, 17세기에는 이미 자본주의 맹아가 싹텄다는 엉터리 이야기, 지주전호제 소작제가 이미 그 당시 성립되었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가 발 붙일 곳 없이 사라지게 된다. 한 마을에 몇 안 되는 양반이 수백 명 끝없이 이어지는 노비를 한 집에 거느리고, 그 많은 사람이 "양반 1 호"로 편제되는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지금 이 글 보는 분들 절대 다수는 그 조상이 18세기에 노비 혹은 잘 해야 평민이었지.. 2026. 7. 26.
[금관총은 자비왕릉] (번외2) 대충대충 아무렇게나 새긴 왕 이름 금관총에서 자비마립간, 곧 이사지왕尒斯智王이라는 글자를 새긴 유물은 현재까지 3점이 알려졌으니, 모두 환두대도라 해서 큰칼 손잡이 끝장식에 저런 식으로 새김했다.개중 하나는 尒斯智王(사진)이라 새기고, 다른 하나는 이사지왕도尒斯智王刀라 해서 이사지와의 칼을 의미하는 글자를 새겼으며, 다른 한 점은 다 부러져 나가고 尒라는 한 글자만 꼴랑 남았다.흔히 좀 아는 체 하는 자들(우리는 이를 고고학도나 역사학도라 부른다)이 하는 말을 들으면, 같은 칼이라고 은장도 종류 작은 칼knife을 刀라 하고, 장검sword을 검劍이라 한다지만, 다 개소리라, 새겨 들을 필요 하나도 없는 헛소리 대잔치다.저 글자를 새긴 칼은 분명 장검 종류인데 刀라 했으니, 길건 짧건 지 맘대로 도라 하고 검이라 했다.그건 그렇고 내가 .. 2026. 7. 26.
민족이 없는데 민족을 이야기하는 기이한 역사학 이번에는 한국사의 또 하나의 기둥, 민족사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자. 혹자는 이야기한다. 우리는 서양사와 달라서 오랫동안 한 군데 같이 모여 살며 공동운명체로 지낸지라오래전부터 민족이 형성되어 있었고, 이런 기반하에 고대부터 민족사로 역사를 보는데 익숙하다. 정말 그런가. 민족사라는 건 최소한의 이익을 구성원 전체가 공유하고 있을 때 그 집단을 우리가 민족이라 부르는 것 아니겠는가. 이제 조선시대 호적을 보자.전 인구 10프로 정도가 양반, 5-6프로 정도가 중인이며,양반 아래에는 노비가 무려 전 인구 절반에 육박하고, 그 나머지가 평민인 사회구성을 하고 있었던 시절이 멀지도 않은 18세기 초반까지, 쉽게 말해 불과 200여년 전까지만 해도한국인이라기보다 서로간에 이익을 공유하기는커녕극소수 지배층이 피지.. 2026. 7. 26.
조국이 없는 노동자, 민족이 없는 노비 막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다음과 같이 갈파했다.."노동자들에게는 조국이 없다" 그렇다면 말이다. 노동자들에게도 없는 조국이노비에게는 있겠는가? 조국도 없는데 무슨 민족주의란 말인가? 그리고 그 조국도 민족도 없는 노비라는 종족이 무려 전국민의 40프로를 넘던 시기가 17세기 조선일진데조선을 어떻게 민족주의로 재단할수 있겠는가? 우리는 "민중"과 "민족"은 거저 얻어진줄 안다. 그런데 18세기 호적만 봐도 그 안에는 민중도 없고 민족도 없었다. 그로부터 200년도 안 된 1919년 독립선언문에는 분명히 "민중"도 있고 "민족"도 있는데 말이다. 이 200년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것이 궁금하지 않다면 도대체 이 세상에 뭐가 궁금하겠는가? *** [편집자주] *** 노동자한테는 없다는 조국, 저.. 2026. 7. 26.
[미천왕 고을불리] (3) 압록강 배로 오가며 소금장사를 하는 고구려 왕자 고구려 군주 미천왕美川王은 즉위 이전에도 그렇고 심지어 죽어서도 갖은 곤욕을 맛본 희유한 사람이다.호양왕好壤王이라고도 하는 그의 행적은 삼국사기 미천왕본기에 비교적 자세하거니와, 그것을 새삼 음미한다.생전 이름이 을불乙弗 혹은 우불憂弗이라고도 하는 그는 고구려 제13대 군주 서천왕西川王(재위 270~292) 손자다.아버지는 고추가古鄒加 돌고咄固라, 비록 왕의 손자라 하지마는 아버지가 왕이 아님에도 왕이 되었으니 일단 이에서 권력투쟁을 의심해야 한다. 돌고한테 불운은 서천왕 맏아들이 아니라는 데서 비롯한다. 그 형이 봉상왕烽上王(재위 292~300)이라 둘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엄마가 달랐는지 어쩐지 알 수는 없지만, 이럴 때 동생이 핍박을 받기 마련이다. 봉상왕은 의심이 많았던 듯, 그런데가 언제건 돌.. 2026. 7. 26.
2,800년 된 바다거북 모양 도기 움켜쥔 인골 엘살바도로서 발견 엘살바도르 고고학자들이 약 3,000년 전에 바다거북 모양 그릇sea turtle vessel과 함께 얼굴을 아래로 향한 채 묻힌 인골이 있는 특이한 무덤을 발굴했다.이 무덤은 인신공희를 행한 어떤 마야 이전 문명pre-Maya civilization에 속할 수도 있다.엘살바도르 문화부 발표문을 번역한 내용에 따르면, 이 매장지는 예일대학교 박사 과정 학생이자 고고학자인 카를로스 플로레스 만사노Carlos Flores Manzano가 지휘하는 발굴 작업 중 7월 2일 산살바도르San Salvador 교외 안티구오 쿠스카틀란Antiguo Cuscatlán에서 발견되었다.아직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 유골은 기원전 850년에서 830년 사이, 메소아메리카 중기 선고전기Middle P.. 2026. 7. 26.
왕자의 특권을 없애버린 신라의 시스템, 김유신 밑으로 기어들어간 김춘추의 아들들 신라는 여러 모로 훗날 고려 혹은 조선왕조와는 다른 시스템을 구비하는데 개중 하나가 저 왕자 시스템이다.조선왕조의 경우 익히 알려졌듯이 왕과 그 정비 사이에서 난 아들들은 대군大君이라 해서 관위 품계가 없다. 예서 무품계라는 말은 상것이라는 맥락이 아니라 신성 초월이라는 뜻이라, 품계로 따질 수가 없어 정1품 이하 그 어떤 관료들보다 상위에 위치한다.그래서 길을 가다 저런 대군을 만나면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도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해야 했다. 공주 역시 마찬가지였다.더 요상한 점은 그렇다고 후궁 자식들은 군君, 혹은 옹주 또한 무품계라는 사실이다. 조선시대 무품계 정점에는 말할 것도 없이 왕과 왕비가 위치한다. 왕이야 언터처블 넘버원이라 그렇다 치고, 그렇다고 해서 대군과 공주는 물론이고 군과 옹주까지 무.. 2026. 7. 26.
독일 작센안할트에서 로마 공화정 시대 은화 무더기 발견 로마 공화정Roman Republic 시대 은화는 독일 중부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드물다.고고학도들이 독일 작센안할트Saxony-Anhalt 주에서 최초로 기록된 로마 공화정 시대 데나리우스denarii 작은 은화 무더기를 확인했다.다섯 개 은화로 이루어진 이 작은 은화 무더기는 서기 초 로마와 제국 국경 너머에 산 사람들 사이의 교류에 대한 새로운 증거를 제공한다.이 은화들은 2025년 할레Halle (잘레Saale) 근처에서 자원 봉사 고고학 유산 관리인인 디르크 브라운가르트Dirk Braungardt가 발견했다.작센안할트 주 문화유산 관리 및 고고학 사무소는 7월 22일 이 발견을 발표했다.연구자들은 이 보물이 이 지역 로마 시대 역사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본다.보물에는 은화 데나리우스 5개가 .. 2026. 7. 26.
[금관총은 자비왕릉] (6) ‘신라왕은 동시에 일곱’이라는 식칼 물고 월하의 공동묘지를 나타난 국립박물관 1921년 조선총독부에 의한 금관총 발굴 조사에서 수습한 유물 중에 그 환두대도 칼집 끝장식손에서 ‘이사지왕尒斯智王’이라는 긁음 글씨가 확인됐다는 2013년 7월 3일,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 보도자료는 내 아무리 봐도 신라고고학도인 당시 학예연구사 김대환이 대본을 작성하고당시 결재라인을 보건대 학예연구관 홍진근, 그리고 고고역사부장 송의정, 그리고 학예실장 곽동석, 그리고 박물관장 김영나 재가를 받아 배포됐겠거니와, 이후 저 김대환이 저 금관총을 두고서 발표하는 글을 볼짝시면, 저 보도자료에서 단 한 치 어긋남이 없다. 그렇다면 저 보도자료는 무엇이 문제인가?간단히 말하건대 호도糊塗다. 나는 앞서 나 김태식을 이야기하면서 내가 모르는 것은 모른다 하고, 아는 것만 안다하는 공자형 겸손가를 자처했거니와.. 2026. 7. 26.
민중이 없는데 민중을 찬양하다 80년대 이른바 민중사학 세례를 받은 우리나라 역사학은일견 굉장히 민중 주도의,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민중의 사학인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왠걸. 이 우리나라 역사를 수놓고 있다는 민중사학은조금만 일차 사료를 읽어 내려가면 도대체 누구를 민중이라고 부른 것인지 모호하기 짝이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호적을 보자. 우리나라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200년간 남아 있는 호적을 보면 그 안에 별의별 사람이 다 있다. 이 수많은 배경의, 수많은 성격의 사람을 통틀어서 양반 빼고는 몽땅 민중이라고 부르는 것이 우리나라 민중 사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 사학에서 "민중"이라는 것은 일견 명쾌해 보이지만이것은 20세기 중반, 그 중에서도 한국의 경우 1970년대 이후에나 성립하기 시작한 시민사회를 지.. 2026. 7. 26.
5천킬로미터 떨어진 같은 철기시대 같은 쇠도끼 다른 기술로 제작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고대 철기 시대 도끼, 서로 다른 제련 기술의 비밀을 드러내다고고학자들이 철기 시대 도끼 두 점을 발견했는데, 이 도끼들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다.두 도끼가 발견된 장소가 매우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은 연구자들에게 지역별 고대 금속 가공 기술 차이를 보여주는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했다.카자흐스탄과 독일 북부에서 각각 발견된 이 도끼는 모두 대략 같은 철기 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연구진은 이를 비교 분석했다.잡지 Radiocarbon에 발표된 이 연구에 따르면 두 도끼는 서로 다른 철 제조 기술로 만들었다.연대를 드러내지 않던 철의 연대 측정라이프니츠 연구소Leibniz-Laboratory 마티아스 C. 휠스(Matthias C. Hüls)는 독.. 2026. 7. 26.
크로아티아 연안 비잔틴 난파선서 기록적인 황금 유물 수습 크로아티아 믈례트Mljet 섬 인근에서 발견된 비잔틴 난파선에서 600그램이 넘는 금, 보석이 박힌 허리띠 장식, 황실 동전, 그리고 제국 최고위 관리 중 한 명이 소유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희귀한 인장 반지가 발견되었다.고고학자들은 이 배가 7세기 말 또는 8세기 초에 고위 군사령관, 황실 행정관 또는 외교 사절과 같은 고위 인사를 태우고 상당한 양의 상업 화물commercial cargo을 운반하던 중 침몰한 것으로 추정한다. 크로아티아 문화재보존연구소는 이 난파선을 지중해에서 발견된 비잔틴 시대 수중 고고학 유적 중 가장 중요한 발견 중 하나로 평가한다.고고학 조사를 이끄는 이고르 미홀예크Igor Miholjek에 따르면, 세척 및 복원된 금 유물 무게는 600그램이 넘으며, 이는 지중해 난파선에서 .. 2026. 7. 25.
삼성퇴서 화재 붕괴 추정 제사 신전 확인, 제사갱 성격 달라 (大象新闻, 2026년 7월 24일 14:06) 최근 삼성퇴三星退 유적의 원가원 제사 구역[袁家院祭祀区]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에 새로운 진전이 있었다.사천성문물고고연구원은 제사 구덩이[제사갱祭祀坑]의 형태와 매장 특징을 체계적으로 비교 분석해 삼성퇴 제사 구덩이의 성격에 대한 새로운 학문적 견해를 제시했다.네 가지 유형의 구덩이, 각기 다른 성격여섯 개 대형 구덩이는 다른 용도였을 가능성 전문가들은 원가원 제사 유적이 삼성퇴 유적에서 정기적으로 제사가 행해진 유일한 유적으로, 최고위급 관료적 활동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고 밝혔다.이 유적은 약 3200년에서 3000년 전, 상나라 말기에 해당하는 시기로 추정한다.연구팀은 발견된 제사 구덩이를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5번과 6번 구덩이(B형), 그리고 .. 2026. 7. 25.
취약한 문화유산을 보호하는 더 스마트하고 친환경적인 방법 싱가포르 뉴캐슬 대학교Newcastle University in Singapore 제공박물관, 도서관, 기록 보관소 및 문화유산 관련 기관들은 어려운 문제에 직면해 있다.보존한 많은 유물이 자연적으로 열화하는 재료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비단은 약해지고 누렇게 변색한다. 가죽과 양피지는 콜라겐 구조를 잃는다. 종이는 부서지기 쉽고 산성화한다. 목재는 습기, 미생물 및 화학 반응에 부패한다.새로운 국제 학술 보고서는 이러한 유기 문화재를 식별, 모니터링 및 보호하는 데 최근의 발전 사항을 종합적으로 다룬다.비단, 가죽, 양피지, 종이 및 목재에 초점을 맞춰 현대적인 분석 도구와 새로운 보존 재료가 문화유산 분야 전반에 걸쳐 더 나은 의사 결정을 지원하는 방법을 살펴본다.이 보고서는 중국 정저우 대학교Zhen.. 2026. 7. 25.
동위원소 유골 분석으로 밝혀낸 벨기에 중세 도시 이퍼르Yper의 삶 브뤼셀 자유대학교Free University of Brussels 제공 벨기에 브뤼셀 자유대학교(VUB) 연구진이 이퍼르 박물관Yper Museum에서 열리는 여름 전시회 '원더랜드(wONDERLAND)'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중이다. 1,000구가 넘는 발굴 유골에 대한 학제 간 연구를 통해 수 세기 동안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이 중세 도시 거주자들에게 다시금 얼굴과 목소리를 부여하는 데 성공했다.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벨기에 이퍼르Yper는 거의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현재 박물관이 있는 직물 창고에 있던 도시 기록 보관소 전체가 불타 없어졌다.수십 년 동안 역사학자들은 이퍼르에 대한 정보를 얻지 못했다.그러나 최근 대규모 도시 재생 프로젝트urban regeneration projects가 예.. 2026. 7. 25.
[금관총은 자비왕릉] (5) ‘尒斯智王’을 들고 나온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은 2013년 7월 3일, 느닷없는 보도자료 하나를 언론을 통해 배포하는데 제목이 '신라 금관총 출토 大刀에서 ‘尒斯智王’ 명문 확인'이라, 담당 부서는 고고역사부.담당 부장은 홍진근, 담당 학예연구사는 김대환. 저 중에서도 퇴직하고서 이미 퇴물이 된 홍진근보다는 이 김대환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이 친구가 훗날 계속 이 문제로 걸리기 때문이며, 나아가 근자 신라 금관을 신라왕이 썼네마네 하는 논란까지 이어진다. 금관총은 경주에 있는데, 왜 국립경주박물관이 아닌 서울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저걸 들고 나왔는가?좀 아픈 식민주의 역사가 있다. 식민지시대에 조사한 경주 자료는 당시에도 경주분관이라 해서 훗날 국립경주박물관 전신이 되는 조선총독부박물관 분소가 있기는 했지마는, 찌꺼기 .. 2026. 7. 25.
1,400년 된 돌궐 무덤서 복숭아나무 활과 룬 문자 새긴 말 머리 현악기 발견 몽골 서부 외딴 바위 무덤rock tomb에서 초기 중세 스텝 지역 매우 특별한 유물 두 점이 발견되었다.하나는 복숭아나무 심peach wood core을 사용한 복합 활composite bow이고, 다른 하나는 고대 투르크 룬 문자Turkic runic inscriptions를 새긴 말머리 현악기horse-head stringed instrument다.이 무덤은 2008년 호브드 지역Khovd Province 자르갈란트 하이르한 산맥Jargalant Khairkhan Mountains에서 발견됐다.지역 목축업자 남스라이 단단르Namsrai Dandar는 바위 정상으로 올라간 양들을 데리러 갔다가 동굴을 발견했다.그에서 나무 안장saddle 하나, 노란색 활 한 점과 화살통quiver 한 점을 꺼낸 후 .. 2026. 7. 25.
사마르칸트 지역 8세기 소그드 왕궁 추정 유적 발견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지역 고대 정착지 밍테파Mingtepa를 발굴하던 고고학자들이 서기 8세기경 지역 통치자들 궁전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기념비적인 건축물 유적을 발견했다.이 건물은 정착지 내 요새화한 성채인 '아르크Ark' 내부에서 발견되었으며, 8세기 전반기에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연구진은 이 유적 홀 부분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같은 시기 조각품도 함께 발견했다.이번 발굴은 야히야 굴랴모프 사마르칸트 고고학 연구소Yahya Gulyamov Samarkand Institute of Archaeology 소속 암리딘 베르디무로도프Amriddin Berdimurodov, 후스니딘 라흐모노프Khusniddin Rakhmonov, 니고라 마흐카모바Nigora Makhkamova 연구팀이 좀보이 지역.. 2026. 7. 25.
이전 시대와는 결별한 대원군 정권의 구조 필자 생각이지만, 조선 말기 정국에서 대원군 정권, 그리고 그 후의 고종 시대의 정권도 이전과 비교하여 상당히 이질적이라는 생각이다. 이런 변화는 아마도 순조 이후 19세기 들어오며 시작되다가 대원군 이후 더 노골화했다고 생각하는데, 이 시점에 중앙정치권에 진입한 사람 중에는전통적인 사족이 아니라, 출신이 의심스러운 이가 상당히 많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쉽게 말해 평민 출신, 중인 출신으로 이전 같으면 중앙 정계 진입이 불가능하던 이들이 적지 않은 숫자가 중앙 정계로 진입을 시작했고, 대원군 정권 이후에는 아에 당상관급까지 들어간 이도 상당수 있으며 그 중에는 예전 같으면 도저히 불가능했을서자 출신도 상당히 많아 보인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조선후기사에서는 하도 소위 말하는 문중 등살이 심한 탓에 개별 .. 2026.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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