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18162 걸출한 고고학 스토리텔러 김상태 옹의 사피엔스 이야기 도둑질도 하면 느는 법이다. 김상태 옹은 나랑 동갑인 문화재 업계 친구라, 그 이전 단독 저서가 따로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내 기준 진짜 단행본다운 단행본은 2023년 4월에 느닷없이 들고 나온 단단한 고고학 : 돌과 뼈로 읽는 인간의 역사(사계절)가 시작이라 보는데 평소 과묵하고 그런 까닭에 외모에서는 그닥 이야기꾼 냄새가 나지 않는 옹이 이리도 조근조근 말을 잘 하는 스토리텔러인 줄을 저때 처음 알았으니 그런 그가 이제 환갑 코앞에 둔 조급함도 없지 않은지, 그것이 아니라면 뒤늦게 걸린 발동 신나게 밟기 시작했는지, 아무래도 후자 같은데 내친 김에 가속 페달 더 힘껏 밟아서 2년이 채 지나지 아니해서 우리가 처음 사피엔스였을 때(사계절)라는 또 하나의 단행본을 들고 나왔으니 이렇게 가다간 내년에 또.. 2025. 1. 20. 논문은 한국어를 버리고 외국에 보내야 한다 지름신이 강림하시었는지 나는 국내 이른바 학술계 풍토 그 문제 중 한두 가지를 골라 집중포화를 퍼붓고 있거니와, 그렇다 해서 저에 조금이라도 감발해 그래 좀 고쳐 보자 하고 나설 사람 적어도 그 학술계는 한 명도 없을 것임은 잘 안다.그럼에도 내가 나서는 이유는 이런 사람도 있었음을 후세에 남기기 위함이라고 해 둔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그리 사명감이 투철하겠는가마는, 이런 미친 놈이 한 놈이라도 있었다는 흔적 정도는 남겨놔야 할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각설하고 국내 학술계 풍토에서는 계속 지적하듯이 현재와 같은 시스템으로서는 공정한 논문 심사를 기대하기는 난망하니, 그렇다면 이를 개선할 여지는 없는가? 그러기 위한 한 방편으로 나는 한국어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한국어를 버리는가? 어느 학문.. 2025. 1. 20. 형님 얼굴에 비친 아버지, 그런 형님이 가버리니 연암 박지원은 시는 잘 짓지 않았다.그는 알려진 대로 산문에서 유감없는 천재성을 드러냈다.그런 그의 시 중에서도 무릎을 치게 만드는 몇 편이 있으니 연암집 제4권 영대정잡영映帶亭雜咏이 수록한 연암燕岩에서 돌아가신 형님을 생각하다[燕岩憶先兄]는 만고의 절창이다. 우리 형님 얼굴 덮은 수염 누굴 닮았나?아버지 생각날 때면 우리 형님 쳐다봤지이제 형님 그리우면 어딜 봐야 할꼬두건 도포 걸치고선 냇물 비친 나를 봐야지我兄顔髮曾誰似 每憶先君看我兄 今日思兄何處見 自將巾袂映溪行 저에 부친 한국고전번역원 주석은 다음과 같다.정조 11년(1787) 연암의 형 박희원朴喜源이 향년 58세로 별세하여 연암협燕巖峽의 집 뒤에 있던 부인 이씨 묘에 합장하였다. 이덕무는 이 시를 읽고 감동하여 극찬한 바 있다. 《過庭錄 卷1》 .. 2025. 1. 20. [슈겐도와 일본 미라 이야기] (번외 2):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과 북방의 탄생 요시쓰네와 벤케이, 그리고 미라의 관계를 이야기 하는 데 있어 그 공간적 무대인 일본 동북지역에 대해 옛날에 써 두었던 글에 조금 더 보태본다. ***************일본 막부 최고 실권자를 지칭하는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은사실 무가武家정권에 고유한 것은 아니었고 그 기원은 헤이안 시대에 있다. 처음 "정이대장군"을 칭할 때 "이夷"란 일본 동북지역에 거주하던 에미시(蝦夷 에조)를 말한다.위 지도에서 보듯이 우리 통일신라쯤에 일본은지금의 동북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에미시를 북쪽으로 밀어내는 "북방개척"을 하는데,이 사업에서 현지의 에미시와 계속 군사적으로 충돌했다. 이때 나온 것이 이른바 "정이대장군". 이 때문에 북방에 무력을 파견하는 조정이 그 군대의 수장으로 임명하는 정이대장군은원래 무가武家와 무.. 2025. 1. 20. "내 논문 인용하라" 더 절박한 구미학계 "이 논문은 반드시 인용하라"는 논문 심사서, 알고 보니? 앞에서 이런 말을 하면서 그 지적 내용 대부분은 심사자 본인 논문이라 했거니와이런 경향은 실은 국내보다는 외려 구미학계에서 더 필사적이라고 한다. 왜 그런가 하면 저쪽은 그 인용지수가 임용이나 승진에 곧바로 반영되기 때문이라 한다. 저쪽에 무슨 등재지 제도가 있겠는가? 내가 뛰어난 연구자임을 입증하는 절대 근거가 결국은 인용지수 아니겠는가?봐라! 난 이만큼 뛰어난 논문을 많이 썼고 그래서 이런저런 사람이 이만큼이나 많이 인용하지 않았느냐? 이 수치를 객관화한 것이 바로 인용지수다. 그러니 필사적으로 자기 논문을 선전하려 안간힘을 쓰는 것이며, 심자자로서 선다는 것은 이 인용지수를 높일 절호의 기회이기도 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에 견주어 아직 .. 2025. 1. 20. 볼수록 맘에 드는 바티칸 다이어리 이번 여행 이래저래 신세진 분이 많아 작으나마 선물이나 해야겠다고 아주 작은 것들로 준비했고그 신세진 분을 이미 만나기도 했지만 돌아오자마자 실상 와병하는 바람에 그런 작은 선물을 지금에서야 풀었다.개중에서도 내가 마음에 쏙 드는 것이 이 바티칸박물관 다이어리라물론 원리주의 철저한 반대편 신자들께서야 혹 악마보듯할지도 모르겠지만 와서 보니 꼴랑 두 권만 샀으니 하나는 마눌님이 냉큼 채 가시고 한 권만 달랑 남았다.나머지 더 작은 것들과 더불어 백팩에 넣어다니다 하나씩 드리려 한다.이 추세대로라면 저 다이어리는 하루 걸러 한 번씩 보는 춘배가 혹 물욕이 있다면 낚아채 가리라 본다.혹 이후 저를 보시거더랑 줄 거 없냐 여쭈신다면 하다 못해 바티칸 연필 한 자루라도 증정하리다.이럴 줄 알았더래면 저 다이어리 .. 2025. 1. 20. [잡담] 주말 일본을 들리고서 주말에 오래간 만에 일본 나들이를 했다. 워낙 가까운 나라고 요즘 너무들 많이 나가셔서 몇 가지만 특이했던 경험을 써보면 1. 동경국립박물관 "헬로키티전"정문 들어가면 대형 헬로키티 인형을 만들어 놨는데화면에는 없지만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옆에서 사진을 찍는다. 본관은 사람이 별로 없던데 헬로키티전은 인산인해. 일본 사람들이 헬로키티를 이렇게 좋아하는지 이번에 첨 알았다. 2. 처음 본 송림도병풍일본미술사 강의를 들었을 때 말로만 듣던 일본의 국보,송림도병풍을 비록 복제품이긴 하지만 동경국박에서 전시 중이라 최초로 친견. 의외로 생각보다 별로였다.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다. 당장 위 팜플렛 사진만 봐도 대단해 보이지 않나? 직접 보면 별로다. 이 정도 그림은 우리 국박에 널렸겠다.. 2025. 1. 20. 반대하는 논지를 편 사람한테 논문 심사를 맡겨서는 안 된다! 모든 선생이라는 작자들(이 경우는 작자들이라는 표현을 쓴다. 뒤에 맥락이 드러날 것이다)이 제자들한테 하는 항용 하는 말이 "나를 밟고 지나가라."호기롭게 말한다. 왜? 선생이란 자고로 그러해야 한다는 말을 어디에서 듣기는 했고, 그게 멋있는 선생이라 생각하며 그 모습이 개똥폼 난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로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선 선생 깠다간 학계에서 매장당한다. 저 말 곧대로 믿지 마라. 물론 저걸 실천한 선생(이때는 선생이다)이 아주 가끔, 가뭄에 콩나듯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경우도 세심한 절차가 필요한데, 보통 이럴 때, 그 논문을 쓰기 전에 선생을 찾아뵙고 실은 제가 이런저런 논지로 선생님 주장과 반대하는 글을 쓸까 합니다...제자가 그런 논문을 쓴다는데 속은 쓰리나 그래 잘했다.. 2025. 1. 20. [슈겐도와 일본 미라 이야기] (번외 1): 에조-아이누인의 땅 일본 동북 슈겐도와 일본 미라를 이야기하다 보면 일본 동북지역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사에서 동북지역은 원래 에조蝦夷 땅으로 대체로 7세기에서 9세기까지 야마토 조정이 북진하면서 비로소 일본사 영역으로 들어온 땅이다. 혼슈 북단인 아오모리 현까지 올라간 것은 대체로 가마쿠라 막부 성립 직후로 보니 우리로 치면 무신정권 시기 정도인 셈이다. 우리나라 함경도 땅에 여진계 지명이 즐비하듯이 일본에서도 동북지역은 에조계 지명이 지금도 수두룩하다. 이 지역 지명에서 뭐 좀 모르겠다 뜻이 잘 안통한다 싶으면 에조계로 보면 된다. 특히 아오모리 현에는 에조-아이누계 지명이 많다. 앞서 언급한 요시쓰네가 도주한 일본 동북 지역은 겐페이합전이 종전된 직후까지도 여전히 에조의 기운이 강한 지역이었다. *** pr.. 2025. 1. 20. "이 논문은 반드시 인용하라"는 논문 심사서, 알고 보니? 논문 투고를 많이 해 본 사람들은 누구나 경험하는 일일 텐데, 저와 같은 요구가 평가서에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 심사자가 말하는 그 논문을 훑어보면 그래 솔까 진짜로 빠진 것이 있다. 이는 그 평가자를 존중해야 한다.한데 그가 지적하는 빠진 논문을 보면 십중팔구는 심사자 지 논문이라는 데 심각성이 있다. 내가 아는 어떤 원로 교수는 거의 모든 관련 학술대회마다 모습을 드러내시고는 논평이랍시며 하시는 말이 내가 과거 이런 논문을 썼는데, 왜 발표자는 이 논문을 인용하지 않으시오 라는 분이 계셨으니 이런 지적을 받은 발표자 혹은 논문 작성자는 난감하기 짝이 없어 결국 하는 말이 "녜 제가 실책했습니다. 논문 공간할 때는 반드시 넣도록 하겠습니다."하는 수밖에 없으니 실제 공간된 논문에는 할 수 없이.. 2025. 1. 20. 참고문헌 홍수를 만든 등재지 제도와 인용지수 이른바 학회지를 국가 혹은 그에 준하는 기관이 심사해서 이건 등재지요 이건 등재후보지라 해서 이런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가 그래 이런 표현 참말로 쓰기는 싫다만 자유민주국가에서 한국 말고 어디있는지 모르겠다. 한국 학술의 후진성을 말해주는 대표 증좌가 이 등재지 제도라는 웃기는 제도인데, 권위 있는 잡지는 역사와 전통이 만드는 것이지 우리처럼 국가가 등급을 매기는 데가 어디있는지 말 좀 해 주기 바란다. 그럼에도 왜 이런 구리디 구린 제도가 생겼는가 그거야 따로 궁구할 문제고 구미에서 그래 네이처 사이언스가 등재지니? 참고문헌 남발을 부추기는 제도 아닌 제도가 바로 이 등재지 제도에 수반하는 각종 평가항목이라 이런 잡지를 운영해 본 사람들은 누구나 절감하겠지만 이게 웃긴 게 그 평가항목에 정식으로 들어가 .. 2025. 1. 20. [슈겐도와 일본 미라 이야기] (8): 도주하는 요시쓰네, 벤케이의 간진초勧進帳 (2) 이때 요시쓰네와 벤케이는 이복형 요리모토의 추격을 피해 달아나는 곳이 바로 지금의 동북지역이었다. 일본의 동북지역은 상당히 후대까지도 이민족인 에조가 살고 있는 땅으로헤이안시대까지도 이 지역은 일본의 판도가 아니었고 우리 역사로 치자면 여진족이 살고 있는 북방영토 정도의 포지션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동북지역은 헤이안 시대 줄곧 일본판 북진 정책의 타겟이 되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이미 자세히 쓴 바 있다. 그 글을 새로 고쳐 이 글 다음에 싣고자 하니 한 번 살펴봐주기 바란다. 아무튼, 요시쓰네와 벤케이는 동북지역으로 도주할 때바로 앞에서 설명한 슈겐도 행자의 행색으로 위장하고 있었다는 것이 바로 가부키 극에서의 설명이 되겠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가부키 18번으로 꼽히는 간진쵸에는 벤케이가.. 2025. 1. 20. "참고문헌 보강해 달라" 나처럼 위대한 작가도 단번에 투고 논문이 심사 통과되는 일 드물다. 사람 심사가 그런 게 있다. 심사자가 되면 괜히 객지 한 번 붙어보고, 그걸로 꼬투리 잡고 싶은 심정이야 인지상정 아니겠는가? 골려먹는 재미만큼 짜릿함을 주는 일도 없으니깐.나 역시 피심사자가 아니라 심사자로서, 단번에 수정없이 개재가 판정 때린 적이 거의 없는 듯하다. 물론 난 그런 꼬장 안 부리는 사람이라 보거니와, 수준이 안 되기 때문에 그리 요구했을 뿐이다. 한데 내가 제출한 논문에 대해 가끔씩 수정없이 개재가 판정을 때리면서도 수정 사항이 붙어 오는 일이 있었는데 그 경우는 예외없이 참고문헌 보강해 달라는 말이었다. 참고문헌이 너무 없으니 그 칸을 채워달라는 요청이었다. 난 논문 쓰면서 진짜로 도움 받거나, 내가 모름지기 까부셔.. 2025. 1. 20. 한심하기 짝이 없는 대학원 수업 내 주변에 하도 교수가 많아서, 그리고 교수 아니래도 이런저런 강의로 먹고 사는 사람이 많아 조심스럽기는 하다만, 그렇다고 내가 그네들 처지까지 고려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는 사람도 아니니, 말 나온 김에 제발 이딴 짓거리 이제는 하지 말라는 의미로 까발리고자 한다. 거의 모든 한국 대학원 수업이 이런 방식 아니한가 하는데 무슨 강좌가 개설되면 커리큘럼이라는 게 나오고, 그에 따라 맨날맨날 수업시간에 하는 일이라고는 그날 해당 주제와 관련한 선행연구정리라고 해서 그 주제와 관련해 어떤 사람이 어떤 논문을 썼고, 그 요지는 무엇이며, 그런 논의들이 어찌 흘러왔는가를 장황하게 따지면서 마지막에 가서는 으레 그에서 돌발하는 문제가 무엇이며, 그에 대해 본인이 생각하는 방향은 무엇인지를 발표자한테 덧.. 2025. 1. 19. 차기箚記, 노트란 무엇인가? 이덕무 행장의 경우 반드시 메모한 청장관 이덕무, 박지원이 정리한 그의 행적 이덕무 행장에서 유념할 대목들 앞서 나는 연암집이 수록한 이덕무 행장 전문으로 전재한 다음그에서 내가 생각할 적에 유념할 대목을 따로 추려 뽑아봤으니 박지원이 증언하는 이덕무 학문 행각 중에 차기箚記 습성이 있으니, 이것이 결국 메모라는 사실을 계속 상기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겠지만, 이덕무 행각 만이 아니라, 그 행장에서 내가 필요한 정보들을 적출하는 그 자체가 나한테는 실은 내 공부방식이었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었다. 저 행장에서 예컨대 그 차기만 해도, 이덕무가 그런 방식으로 공부했다고 연암이 증언했거니와, 이 대목을 뽑아서 차기 혹은 메모라는 키워드로 저장하고다른 글들을 읽으면서 그와 관련한 기술 혹은 증언들을 만나면 다시 그에다가 덧붙.. 2025. 1. 19. [슈겐도와 일본 미라 이야기] (7): 도주하는 요시쓰네, 벤케이의 간진초勧進帳-1 유명한 일본 영화의 거장 구로자와 아키라[黒澤明, 1910~1998] 감독 작품 중에虎の尾を踏む男達즉. 호랑이 꼬리를 밟은 남자들이라는 작품이 있다. 45년 종전 전에 이미 완성됐지만 패전 이후 맹목적 충성을 찬양한다 해서 GHQ 즉 맥아더 사령부로부터 상영금지를 당했다가 1952년에야 대중에 공개된 작품이 되겠다.이 작품에 앞서 이야기한 요시쓰네와 벤케이가 나온다. 정확히 말하지면 이 작품은 오리지날 원작은 아니며 그 소스는 가부키에 있다. 에도시대에 이미 요시쓰네와 벤케이는 유명한 대중의 영웅으로 가부키에 그 일화가 다루어졌는데 그 가부키 상연물 중에 "간진쵸勧進帳"라는 유명한 것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노래방만 가면 뽑는 곡을 "18번"이라 부르는데이 18번의 유래가 바로 가부키 18번, 누군가가 .. 2025. 1. 19. [슈겐도와 일본 미라 이야기] (6): 벤케이와 요시쓰네 일본 미라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한없이 일본 역사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이렇게 장황하게 미라로 들어가기 전에 사설이 긴 이야기는결국 우리가 일본사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슈겐도 미라가 됐건 아니면 동일본 오슈 후지와라 미라가 됐건 역사 자체가 워낙 우리에게 생소한데다 만들어진 이유도 다른 동아시아 국가와 다르다 보니이야기가 길어질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도 유명 역사 인물 들에게는 전설같은 이야기들이 뒤섞여 있는 것을 보는데 요시쓰네가 딱 그래서 그의 일생은 전설과 역사적 사실이 뒤섞여 있다. 이 요시쓰네에겐 친구나 다름없는 유명한 심복이 하나 있는데 이름은 벤케이라 한다. 승려다. 일본 중세에는 절을 지키는 승병이 무장하고 정치세력화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벤케이가 딱 그런 무장한 승병의 포지션이.. 2025. 1. 19. 참고문헌 인용문헌이 많은 주제는 논문거리가 되지 않는다! 내가 어떤 글을 쓰는데 참고하거나 인용문헌이 많다 함은 그 이야기를 건딘 사람이 그만큼 쌔고쌨다는 뜻이다. 이놈저놈 안 건딘 놈 없다는 뜻이다. 내가 미쳤다고 나까지 그런 잡탕에 뛰어든단 말인가?참고해야 할 선행연구가 많은 주제는 그래서 언제나 기존 논의에서 한 발짝도 진전이 없으며기껏 한다는 말이 결론만 바꾸어 나는 이리 생각한다!이 짓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새로움을 장착해야 하니, 이런 주제에서는 고작 한다는 말이 기존 논의 중에 빠뜨린 증거라 할까 하는 것들 한두 개 덧보탤 뿐이니 실상 한국학계 논문들이라는 것을 볼짝시면 새로 개척했다 할 만한 글은 100편 중 1편에 지나지 않는다. 가끔 새로운 논문이라 해서 들여다 보면?뭐가 새로워? 거의가 다 이 경우는 자료소개 혹은 자료발굴에 지나지 않.. 2025. 1. 19. [슈겐도와 일본 미라 이야기] (5): 요시쓰네와 단노우라 전투 군담소설 헤이케 이야기에서 요시쓰네는 겐지 편의 사실상 주력으로 탁월한 전술과 용맹으로 헤이케씨를 연전연승 격퇴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이 사람이 실제로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었는지 아니면 삼국지연의의 관우처럼 신격화한 것인지는 말이 많다. 이치노타니 전투와 함께 요시쓰네가 겐페이 합전 당시 탁월한 역량을 보인 또 하나의 전투는 이 합전의 최후를 장식한 단노우라 전투[壇ノ浦の戦い]다. 단노우라 전투란 무엇인가. 일제시대 관부연락선의 일본측 항구가 시모노세키였는데, 이 언저리에 단노우라라는 오래된 포구가 있고, 여기서 헤이케 모노가타리 최후의 전투가 벌어졌다. 합전이 시작된 후 연전연패하던 헤이케는 마지막 힘을 모아 단노우라에서 서진해 오는 겐지 편 군사와 맞서게 되는데 이때 벌어진 해전에서 사실상 헤이케는 전.. 2025. 1. 19. 본문보다 많은 참고인용문헌 포장술은 구미학계 영향? 실제 읽거나 제대로 소화하지도 아니한 논문 혹은 단행본까지 덕지덕지 붙여 참고문헌이라고, 인용문헌이라고 해서 그런 부문이 본문보다 분량이 훨씬 더 많은 기이한 논문을 양산하는 통로로 나는 저걸 지목한다. 구미학계 논문을 보면 실상 저 참고문헌 혹은 인용문헌 부문이 본문을 능가하는 일이 논문 두 편 중 한 편 꼴인데, 이거 언뜻 보면 제대로 폼난다. 왜?참고문헌 인용문헌 잔뜩 붙인 논문은 그렇지 아니한 논문에 견주어 뭔가 모르게 수학 등식 같은 느낌을 주곤 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아닌 글도 저리 포장하면 논문이라는 형식을 띠는 것처럼 보이는 까닭이다. 내가 저 짓거리를 왜 사기냐 하는가 하면 가끔 선행연구라 하면서 내 글도 인용되는 모습을 보는데, 그에서 인용된 맥락, 인용자가 인용이랍시며 끌어다낸 내 .. 2025. 1. 19. [슈겐도와 일본 미라 이야기] (4): "기마민족"과 이치노타니 전투 오다 노부나가가 천하를 잡는 데 결정적인 승리인 오케하자마 전투와 함께이치노타니 전투는 일본사에서 기념비적인 기마전술이 구사된 전쟁으로 유명하다. 아래 글은 이전에 써서 공개한 것이지만 약간 바꾸어 다시 전재한다. ****흔히 쓰이는 말 중에 "기마민족"이라는 말이 있다. 따지고 보면 이 말처럼 모호한 의미의 말은 없다. 사실 역사상 진정한 의미에서 "기마민족"이라는 것이 있기나 한 건지 의문이다.특히 우리 한국인들이 스스로를 "기마민족"이라고 부르는 것은 넌센스라고 본다.한국은 일본에 비해서는 분명히 말을 이용한 시기가 훨씬 이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라시아 대륙전체를 보자면 말을 타고 다니거나 전쟁을 시작한 시기가 상대적으로 빨랐던 것도 아니고,또 한국인의 조상들 대부분이 원래부터 말을 타고 다녔던.. 2025. 1. 19. 이전 1 2 3 4 ··· 865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