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설을 돈독히 믿은 한산이씨, 그리고 그 사위 한음 이덕형
조선 중기를 살다간 인물로 이덕형李德泂이란 이가 있다. 예조판서와 판의금부사, 우찬성 등을 역임한 문신으로 字가 원백遠伯이요, 호가 죽천竹泉이라, 그의 중국 사신행 견문록 죽천행록竹泉行錄이 2001년 세상에 공개되기도 했다.1566년, 명종 21년에 태어나 1645년, 인조 23년에 사망했다. 저 시대 이덕형이라 하면 자칫 우리가 익히 아는 그 이덕형과 혼동한다. 우리가 잘 아는 이덕형은 한자를 李德馨이라 써서, 李德泂이라는 죽천과는 다른 사람이다. 우리가 잘 아는 이덕형은 字를 명보明甫라 하며, 한음漢陰은 호다. 죽천 이덕형 보다는 다섯 해 먼저인 1561년, 명종 16년에 태어나 각종 고관대작은 다 해 먹었으니 이조판서, 우의정, 영의정을 역임하고선 1613년, 광해군 5년에 사망한다. 따라서 죽천 ..
2025. 2. 16.
학문은, 전문가는 So what에 답해야 한다
앞서 신동훈 교수께서 상식에 겸허해야 하는 전문가를 말하면서 "사실 전문가에게 가장 무서운 질문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부터 나오지는 않는다"고 갈파했거니와 비슷한 맥락, 혹은 같은 맥락에서 나는 이른바 전문가 집단을 향해, 내가 말하는 이 집단은 주로 고고학에 집중했거니와 그들을 향해 저 대답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주구장창했다. 비단 고고학만이 아니라, 학문 전 분야를 막론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무수한 논문이 쏟아져 나오고, 저 방구석, 카페 구석, 연구실 구석에서 이것이 내 연구라고 독자를 향해 발신하만, 유감스럽게도 내가 보건대, 도대체 이걸 이것이 왜 연구인가 하는 반론을 제기하는 글이 천지라이는 간단히 말해 저 평범하지만, 어쩌면 가장 묵직한 물음, 곧 So what을 답변하지 못하기 때..
2025. 2.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