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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17

개돼지도 하는 발굴 잠깐 고개만 드리밀었다. 대회 이튿날인 오늘은 분과별 발표가 동시간대 각기 다른 장소에서 진행 중이다. 네 곳 중 대중고고학 패널은 발표 두어개를 졸면서 경청하고 한일 고분 고고학과 경주 월성 패널은 분위기만 살폈다. 유리시아 고고학 파트는 장소도 모르겠고 시간도 없어 못봤다. 세곳 중 한일고분 발표장이 장소도 넓고 참석자가 플로어를 매웠으며 월성도 좁은 발표장에 입석이 많은 성황이었다. 의외는 대중고고학이다. 자리가 텅 비었다. 하지만 발표 내용은 가장 들을 만했다. 내가 퍼블릭 아키올로지를 중시하는 까닭은 그것이 한국고고학의 현재요 미래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고학은 파서 유구 유물 분석하는 것이 전부도 아닐뿐더러 나는 그것이 기초라고도 생각 안 한다. 고고학과 관련한 일체의 행위 자체를 나는 고고학.. 2020. 11. 5.
Exploratory vs Descriptive, so what에 꿀먹은 벙어리 고고학 미술사에 국한해 말한다. 우리네 학문, 그것이 구상으로 표출한 소위 논문 절대다수를 보면 Descriptive다. 이는 why를 전연 설명하지 못한다. 이는 so what에 대한 그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한다. 무엇이 디스크립티브인가 토기를 예로 든다. 백제시대 초기엔 어떤 토기가 출현해 대종을 이루다가, 중기에 그것이 사라지면서 다른 기종 혹은 다른 기술의 토기가 대체하고, 다시 말기가 되면서 그것을 대체해서 다른 기종 다른 기술을 구사한 토기가 급격히 증가한다. 그것이 변천한 순서는 어떠하며 그것이 변화한 양상은 어떠하며 그 개별 토기는 어떤 특징이 있으며 그 절대 편년은 어디에 해당하는가 하는 것이 바로 디스크립티브다. 미술사 논문 역시 상당수가 디스크립티브 영역에 속하거니와, 다른 무엇보다 .. 2020. 10. 23.
금동신발 보고 아이들이 묻는다, 너희가 고고학도니? 아래 백제금동신발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에다가 실물을 참관한 어린이들이 묻고 있다. 아래 신발이다. 무령왕릉 출토 금동신발이다. 왕과 왕비가 신은 금동신발이다. 스파이크 신발이다. 어제 국립공주박물관을 다녀온 여송은 선생 사진들이다. 내가 그토록 강조한 말이 있다. 고고학과 박물관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 답은 어린아이들한테 있다고 입이 아프로독 말했다. 동탁은잔? 그 문양이 어떻고 저떻고?그거 하나도 안 중요하다. 그걸 전시하는 박물관에서 한 시간, 아니 30분만 지켜봐도 고고학 미술사학 박물관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걸 보고 와! 문양 이뿌다. 백제 사람들 정말 미적 감각 있네? 이 따위 말할 거 같은가? 100명이면 100명 다 이렇게 묻는다. "이거 어디가 쓴 물건임?" 다시 본.. 2020. 8. 9.
로마에서 한국고고학을 물었다 갈수록 무엇을 위한 폐허인가를 묻는다. 이제는 이를 대답할 시점이 된 듯하다. 폐허주의..그렇다고 우리가 100년전 이상화·오장환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왜 폐허인가에 대한 그럴 듯한 답을 이제는 내어놓아야 한다. 돌이켜 보면 이런 철학적인 물음을 성찰하지 아니했다. 그것은 언제나 외국, 특히 구미유럽의 몫이라 생각했고, 그리하여 언제나 이런 거창한 물음은 누군가는 하겠지 하고 팽개쳐두고는 언제나 달려간 곳이 주거지 변천양상이었고, 토기의 변화양상이었다. 이런 학문을 내가 폄훼하고자 싶은 생각은 없으나, 가장 저급한 형이하학에 지나지 않는다. 왜? 무엇을? 이런 물음을 동반하지 않는 저런 학문은 이제는 설 땅이 없다. 왜? 무엇을? 이것을 동반하는 토기연구여야 하고 주거지 연구여야 한다.. 2020. 7. 24.
빗물이 그은 라인, 지붕 처마선 고고학이나 고건축이 건물터 발굴할 적에 이런 지붕 처마선 얘기를 잘한다.빗물이 떨어진 이 줄이 처마선인 까닭이다.거창하게 볼 거 암 것도 없다.땅 한 번만 파보면 아는 일이다. 아니 안 파도 안다. 등신이 아니라면 말이다.고고학이 고고한 그 무엇이 아니다.삶이다. 2020. 4. 17.
모기와 쟁투하는 <나는 자연인> 틈나는 대로 즐겨보는 tvn 는 프로그램이다. 이거 보다 마누라한테 자주 걸리는데 그때마다 매양 같은 비아냥이 돌아오니 오호 그래 혼자 살고 싶다 이거지 뭐 이런 거다. 이 장면은 산골생활 여름에 마주 하는 모기 퇴치법이다. 나무가 쉬 썩어내림을 견디지 못한 이른바 자연인이 그 대처로 돌집을 지으려고 돌을 채취 옮기는 장면이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고고학을 하는 사람들이 그네들 학문하는 차원에서 이를 주시해야 한다고 본다. 모기? 구석기신석기라고 여름엔 모기가 없었겠는가? 그 시대라고 돌집을 강구하지 않았겠는가? 농사? 땅 있고 물만 있으면 쌀이 펑펑 쏟아질 거 같지만 기후 풍토에 지배받는 것은 물론 이런 산촌에선 들짐승 날짐승에 남아돌진 않는다. 저들이 산 흔적? 그게 남기나 할 거 같은가? 모.. 2019. 12. 24.
문화재현장의 전공별 특징, 목 디스크 걸린 사람들 November 6, 2014 at 5:19 PM · 문화재 현장을 돌다보면 전공별 특징이 너무나 다르다는 사실을 직감한다. 1. 고건축학도...이들은 지붕만 쳐다본다. 그 안에 부처님이 들었건 말건 나몰라라다. 2. 미술사학도, 특히 도자사학도...이들은 그릇 똥꾸녕만 쳐다본다. 도자기는 못 뒤집어봐서 환장한다. 굽이 생긴 모양으로 편년을 하기 때문이다. 건물은 안중에도 없다. 3. 고고학도...이들은 토기만 환장한다. 물레질을 했니 안했니 이딴 거만 정신 팔린다. 4. 역사학도...이 친구들은 금붙이도 관심없다. 오로지 글자 적힌 유물 없나 부라린다. 5. 기자들....니미 남들 보는 건 다 본다. 하지만 하나도 제대로 보는 건 없다. *** 그 아래 다음과 같은 글이 붙었다. 6. 민속학...동네를.. 2019. 11. 6.
[학술대회 소식]분단 70년 북한 고고학의 현주소 남북한 고고학 시각차는 얼마나 될까…19일 학술대회송고시간 | 2019-09-17 11:34국립문화재연구소·한국고고학회 공동 개최 2019. 9. 16.
소학교가 학력 전부인 이은창, 그리고 조사원자격기준 우산牛山 이은창李殷昌 선생이다. 그의 간단한 이력은 아래 우리 공장 기사를 참조하라. 고고학계 원로 이은창 전 대전보건대 교수 별세송고시간 | 2019-07-26 17:55 1922년생이라, 선친보다는 1살 적은 양반이라, 기록적인 장수를 하고는 타계했다. 그 아드님이 같은 고고학도 길을 걸은 이성주 고고인류학과 교수요, 며느님이 이현주 부산박물관 학예연구관이라, 집안이 그의 대에 고고학 관련 학문에 투신했음을 본다. 1922년을 허심하게 보아 넘길 수 없는 까닭은 연세대 사학과에 봉직하며 공주 석장리 발굴을 통해 한반도 중남부에도 구석기 문화가 존재함을 알린 손보기도 이해 출생이요,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창설과 더불어 그에서 많은 후학을 길러낸 김원룡 역시 같은 해에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윤무병은 이들보.. 2019. 7. 28.
고고학, 그 궁금증이 망친 신라 건국의 땅 경주 나정蘿井 박혁거세가 탄강했다는 그 유서깊은 경주의 신라 고적 나정蘿井 3년 전 모습이다. 단언하지만 삼년이 지난 지금도 저 모양이라 하등 변화가 없다. 그 옛날 수학여행 시절에 만났을 지도 모르는 그 나정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게 뭔가 하고 눈이 휘둥그레 질 일이다. 그래 뭔지 모르나 탄강지 걸맞게 신비감을 주던 비각과 주변 숲은 온데간데 없이 왁싱 좍 해버렸다. 뭔가 궁금한지 비각은 쏵 깔아뭉개버리고는 그 땅속까지 모조리 파제껴 고고학 발굴이라는 걸 해 버리고는 나몰라라 복토하고 잔디심고 저 꼴로 만들어놨다. 이유는 그럴 듯했다. 유적 정비차원에서 발굴한다고 했다. 묻는다. 이게 유적 정비니? 책임도 못질 일은 뭐하러 했더란 말인가? 이 꼴로 만들려고 발굴했던가?한국고고학에서 흔히 통용하는 정비를 위한 발굴.... 2019. 5. 10.
발굴현장은 배우러 가는 곳이지 가르치러 가는 곳이 아니다 고고학 발굴현장 풍광도 사뭇 달라졌다지만 내가 처음 이 업계에 발을 디딘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단 하나도 달라지지 않는 꼴불견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저것이라. 남의 발굴현장을 배우러 가는 것이 아니라 한 수 가르쳐 주고 말리라는 사명의식으로 투철한 자가 하고 많은지라, 기껏해야 그 현장이라곤 발굴현장 설명회니 공개회니 하는 자리 잠깐 빌려 본 자들이 무에 그 현장에 대해 아는 것이 그리 많다고 미주알고주알, 이건 토층을 잘못 그렸니, 이 유구는 범위를 잘못 잡았니, 이 토기는 일본 스에끼라 조사단에서 오판했니 어떻니 저떻니 하는 선생 흉내 끝내 못 버리는 자들을 말함이라. 객客에 지나지 않는 이런 뜨내기들이 그 현장 무엇을 얼마나 안다고 저리 구는지 내가 참말로 알다가도 모르겠다. 물론 조사단이 오판.. 2019. 2. 21.
"발굴은 곧 파괴다"는 시대에 뒤쳐진 구닥다리 구호다 우리 문화재 현장의 주특기는 폐쇄다. 툭하면 폐쇄라 해서 문을 쾅쾅 닫아버리고, 심지어 영구폐쇄라는 이름으로 영원이 그 현장을 사람한테서 단절하고 격리한다. 명분은 그럴 듯하다. 보존을 위해 그리 한단다. 그리하여 툭하면 보존 보존을 외치며 그것을 빌미로 툭하면 폐쇄다. 그러면서 매양 하는 말이 "매장문화재는 땅속에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발굴은 곧 파괴다"라고 한다. 그런가? 발굴은 곧 파괴인가? 나는 이 따위 구닥다리 말이 아직도 문화재 현장에 불문률처럼 통용한다는 일이 비극이라고 본다. 아직도 이 말이 위대한 문화재현장의 권리장전, 마그나 카르타로 통용하는 일을 비극이라고 본다. 땅 속에 있을 때 안전해? 그래서? 그러면 뭐가 보이니? 발굴은 파괴?내가 보는 발굴은 창조다. 창조를 위한 파괴다. .. 2019. 2. 21.
한국고고학에 필요한 것은 armchair archaeologist다! armchair archaeologist...글자 그대로 발굴현장 대신 연구실 의자에 앉은 고고학자를 비아냥조로 두고 한 말이다. 고고학도는 현장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데 이 말이 연전에 한국고고학계에서 회자된 적이 있다. 매장문화재 조사 관계 법령 공포시에 이 법령이 고고학도를 armchair archaeologist로 만들 것이라고 들고 일어난 것이다. 나는 이 말이 지닌 원천의 경고를 존중한다. 하지만 한국고고학이 과연 삽질을 아니하거나, 덜해서 학문을 못하는것인가? 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돌이켜 보면 40억년전 지구 탄생 이래, 수백만년전 인류의 탄생 이래 작금의 대한민국만큼 고고학 발굴이 성행한 적은 없다. 지금은 그 여파를 걱정하거니와, 부디 나는 한국고고학이 다른 모습으로 다시 .. 2019. 2. 21.
불알 두 쪽과 백미터 달리기 불알 두 쪽. 이것이 내가 어날 때 달고 나온 전부다. 누군 금수저 계속 물고 있다가 이빨이 나갔다며, 그룹 회장직도 훌훌 던지던데, 그런 금수저 은수저 물고 태어난 사람들과의 전투는 힘이 좀 부쳤다. 나는 이를 매양 백미터 달리기에 견주며 말하길, 저들은 백미터 라인에서 달리는데 내 출발선은 언제나 백오십 미터 지점이었으며, 그래서 그들을 따라잡느라 가랭이가 찢어지고 심장이 터졌다고 말이다. 내가 무에 정의감 유별나게 투철한 인간이리오? 평균적 인간만큼 적당히 썩었고, 적당히 정의롭기도 했다. 소시민에 가깝다 할진댄, 이런 나도 언제나 거품을 물 때가 있으니, 저 백미터 달리기 출발선이 말하는 기회의 균등, 차별의 법적 제도적인 제거만큼은 단 한 치도 양보할 생각이 없다.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고, 학위.. 2018. 12. 20.
뚜껑[蓋]은 토기 분류 항목 하위 디렉토리를 만들 수 없다 한국고고학이 지나치게 토기 중심이고, 나아가 그 토기를 포함한 각종 유물 유구에 대한 다대한 분류 중심주의거니와, 언뜻 세밀하게 보이는 이 과정에서 정작 고고학이 저버릴 수 없는 인간을 팽개치는 결과를 낳았거니와, 그런 한국고고학이 신주단지 받들듯 하는 토기 분류에서 그 기종을 중심으로 나눌 적에 '개(蓋)'라는 항목으로 배열하는 것이 있으니, 이는 글자 그대로 그릇 뚜껑을 말한다. 한데 작금 한국고고학 토기 분류를 보면 이를 호(壺)니, 옹(甕)이니, 병(甁)이니, 완(碗)이니, 발(鉢)이니 해서 동등한 가치를 두어 병렬로 나누는 경우를 너무 자주 본다. 하지만 개는 저들 토기의 부품이지 기종이 아니다. 따라서 이를 포함한 기종 분류는 분류학 근본조차 망각한 오류다. 같은 논리대로라면 받침인 대(臺)나.. 2018. 7. 22.
대학발굴(1)...무엇을 어찌 할 것인가 이거 나도 이곳저곳에서 여러 번 얘기했지만, 오늘도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있다가 김태식의 압제를 견디지 못하고 전북대 교수로 탈출한 김낙중 선생이 이 문제를 오늘 다시 거론했으므로, 새삼 재방송에 가까운 이야기를 또 해 볼까 한다.비단 김 교수만이 아니라 현직 대학 고고학 전공 교수 사이에서 팽배한 불만 중 하나가 왜 명색이 고고학과 혹은 관련 전공과인데도 대학에서 발굴을 못하게 하느냐라 할 수 있다.이들이 대학 발굴을 하게 해달라고 하는 이유는 교육적 목적에 따른 것이다. 명색이 고고학 혹은 관련 전공이라 하는데 막상 이들이 발굴을 가르칠 현장이 없기 때문이다.그러면서 작금 대학 고고학 실습은 문화재발굴전문조사기관들에 의지해야 하지만, 이들이 교육을 제대로 시킬 리는 없다는 것이다.이들의 볼멘소리, 나는 .. 2018. 1. 20.
[김태식의 독사일기(讀史日記)] 3편 왕건, 죽어도 죽을 수 없던 神 注) 이는 문화유산신문 기고문이며 기사 입력시간은 2016년02월22일 14시15분이다. 고려를 창건한 신라인 왕건은 고려 왕조를 개창한 까닭에 그 이름만 들으면 우리는 대뜸 ‘고려인’으로 단정하기 십상이지만, 실은 뼛속까지 신라인이다. 그가 태어나기는 당 희종(僖宗) 건부(乾符) 4년이니 이해는 신라 헌강왕(憲康王) 3년(877)이다. 청장년기를 신라에서 배반한 궁예에서 복무하기는 했지만, 그가 자발적 헌납이라는 형식으로 신라를 접수한 때가 59살 때인 935년이며, 그로부터 8년 뒤인 943년 향년 67세로 눈을 감는다. 다시금 강조하지만 왕건은 신라인이다. 이런 그가 고려라는 새로운 왕조 혹은 국가를 만들 때 그 절대적 토대는 신라의 그것이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그가 죽어 묻힌 곳을 현릉(顯陵).. 2018. 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