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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철의 잡동산이雜同散異51

살구 생각이 괴는 침 명나라 당인唐寅(1470~1523)《관행도觀杏圖》입니다. 피지도 않은 살구나무를 바라보며 행단杏壇에서 가르침을 받고 싶었을 겁니다. *** 공자 학단 학교를 흔히 행단杏壇이라는데 그네들 특징을 이리 이름한 이는 유가가 아니요 장자莊子다. 문제는 杏이 은행나무냐 살구나무냐 논란이 극심했으니 이 그림에선 명백히 살구다. 은행나무가 저리 생길 리 만무하지 않은가? 하긴 은행나무는 똥꾸린내 장난이 아녀서 공자가 쫄개들 딜꼬 그 아래서 오야붕 노릇 했겠는가 의구심이 일지 않는 것은 아니다. (김태식 補) 2020. 4. 11.
황윤석黃胤錫이 읊은 장성 아치실 아곡鵝谷 〈아곡鵝谷〉 소곡小谷, 아차실이라고도 하고 제곡弟谷이라고도 하며 어떤 이는 아찬곡阿餐谷이라 부른다.鵝谷【亦曰‘小谷、아차실’, 亦曰‘弟谷’, 或云‘阿餐谷’。】 조상님들 거치셨던 이곳 아치실은 깊은 산속 골짜기로 마을 아늑하네기수의 대나무엔 옛 그리움 남았고마당의 눈에는 유학한 자국 쓰였네쓸쓸히 잔약한 손자가 여기 있나니멀고도 아득하니 너무도 오랜 세월해는 뉘엿뉘엿 말을 몰아 떠나면서가는 걸음걸음 자꾸자꾸 돌아본다 吾祖經行地, 山深里巷幽。淇竿留舊戀, 庭雪記曾游。寥落孱孫在, 蒼茫小劫悠。斜陽駈馬去, 臨路更回頭。 -첨정부군僉正府君께서는 이씨李氏 집에 장가들었고, 취은부군醉隱府君과 구암부군龜巖府君께서는 기씨奇氏 집에서 배우셨으니 3세의 유적이 모두 이곳에 있다.- 【僉正府君娶于李氏, 醉隱府君、龜巖府君學于奇氏, 三世.. 2020. 3. 31.
조선후기 지도에 보이는 장성 아치실 하남정사河南精舍 장성군長城郡 황룡면黃龍面 아곡리鵝谷里로 《세조실록》에 보이는 소곡小谷이 원래 이름이다. 계속 소곡만 사용하다가 영조 때 집 당호에 하남정사河南南精舍가 쓰이면서 하남리河南里라는 이름이 새로이 만들어졌다. 소곡은 작은 마을이라는 뜻으로 우리말로 아치실이다.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1729~1791)은 그의 백과사전식 일기 《이재난고頤齋亂藁》에서 小谷=鵝谷=아찬곡阿餐谷=제곡弟谷이라 적었으니, 소곡은 뜻으로 표기한 것이고, 나머지는 우리말 아치실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첫번째 사진인 1872년 《장성부지도》부터 하남河南이라는 명칭이 보인다. 장성군이 홍길동테마파크를 조성해 놓은 곳이 아곡이고 그곳에 있는 사창社倉이 지금 홍길동테마파그 주차장이 된 곳이다. 이 사창은 1900년 무렵 학교로 사용되었는데, 학교 이.. 2020. 3. 31.
조선후기 장성 입암산성 고갯길 새재[鳥峙] 장성長城 입암산성笠岩山城 동쪽에서 정읍井邑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오늘날 새재라고 하여 아름다운 길이다. 새재라는 문헌 근거가 있느냐고 묻는 분이 계셨는데, 당시에는 찾지 못하여 월은치月隱峙만 말씀드렸다. 1899년 간행된 《장성읍지長城邑誌)》에 수록된 지도에 조치鳥峙가 있다. 이 지도에는 19세기 백양사白羊寺가 어떠했는지가 잘 나타난다. 그 말사인 운문암雲門庵에는 탑이 있다고 표시돼 있지만, 지금은 흔적도 없다. *** (김태식 보) 고갯길에 새재라고 이름 붙인 일이 각지에 산재하거니와, 내 고향 경북 김천시 대덕면 조룡리 봉곡사 라는 절이 위치한 곳에도 고갯길이 있어 새재라 하며, 그 아래 사하촌 두 곳을 각기 상대적 위치에 따라 아랫새재 윗새재라 부른다. 물론 이런 새재로 가장 이름 높은 데가 문경새재.. 2020. 3. 30.
소령원昭寧園, 영조가 만든 생모 무덤 훗날 왕위에 올라 영조가 되는 연잉군延礽君(당시 연성군으로 읽었음)은 생모(어머니가 아니라 생모임, 법적 어머니는 아님) 숙빈 최씨가 죽자 파주에 묏자리를 잡아 장사 지내고 당시의 일을 《무술점차일기戊戌苫次日記》에 소상히 기록했고, 그곳에 제청을 짓고 석물을 배설한 일을 《제청급석물조성시등록祭廳及石物造成時謄錄》으로 남겼으며, 수직방의 도배나, 석공들의 인건비 내역을 정리한 문서, 그리고 많은 묘산도를 남겼습니다. 첨부 도면은 《제청급석물조성시등록》에 실린 석물배치도입니다. 이후 소령원으로 승격되며 석물이 약간 추가되었지만, 원형은 잘 남아 있습니다. * 내암 정인홍 후손으로 영조 이야기만 나오면 분개하시는 분의 댓글은 사절합니다. 그러면 조상 욕보인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2015.3.12) *** .. 2020. 3. 12.
육이오 북한군 삐라에 더부살이 하는 어사 박문수 가치는 시대에 따라 다르다. 육이오에 집이 불타 자료가 산실되자 선조고께서 서첩들을 만들었다. 동국명현첩 6책은 좋은 종이로 만들었지만 물자 부족으로 일부 서첩은 육이오 당시 삐라를 속지로 사용하였다. 이 박문수(朴文秀)의 편지 바탕에 보이는 신문지 같은 것이 육이오 때 북한군 삐라들이다. 나중에 저것을 다 분해해서 근대사 자료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2020. 1. 28.
양반의 조건과 양반의 거짓 어느 집이나 '우리는 명문가요, 동방의 갑족'이라 내세운다. 기준의 문제일 뿐 누가 틀렸다고 따지겠는가? 양반 명문가의 조건이 몇 있었으니, 첫째, 세조의 왕위찬탈에 협력하지 않았다. 설령 세조 초 벼슬을 했어도 본의가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우리 집도 이 사기 대열에 합류하였다. 둘째, 기묘사화와 을사사화에 화를 입었거나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그에 관한 야사들이 쓰일 때마다 피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하며, 그 공신도 본의가 아니었다고 퉁친다. 그 야사 가운데 일부는 가해자 후손이 가해자인 선조를 피해자로 변개한 것이 많다. 특히 을사사화는 민감한 문제여서 영남 남인의 뿌리가 사실은 가해자 집단이다. 셋째, 임진왜란에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해야 했다. 제대.. 2020. 1. 27.
세종시대의 교지 집에 전하는 고문서는 세종 30년(1448)부터 시작되어 조선 전 시기의 것이다. 육이오에 하남정사가 불타며 건진 일부만 남았지만, 그 양은 적지 않다. 문화재로 지정해야 하는데, 기승전자치단체라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기탁받은 기관에서도 지정하려고 하는데 기초단체가 하려고 하지 않는 이상 지정할 방법이 없다. 단체장이 바뀌면 되겠지. 모 기관에서는 문서 소재지를 경기도 고양으로 이전하시면 된다고 하였다. 첨부한 사진은 1448년(세종30) 7월 25일에 20대조 기건(奇虔, ?~1460)을 가선대부 전라도 도관찰출척사 겸 감창 안집 전수 권농 관학사 제조 형옥 병마공사 겸 전주부윤(嘉善大夫 全羅道都觀察黜陟使 兼監倉安集 轉輸 勸農 管學事 提調 刑獄 兵馬公事 兼全州府尹)으로 임명한 것이다. 이는 왕지.. 2020. 1. 24.
조선시대 공무원 봉급명세서 이조 또는 병조에서 발급한 이런 녹패祿牌를 가지고 광흥창廣興倉에 가서 녹봉을 수령했다. 장성 행주기씨 종가 소유로 현재는 공공기관에 이를 포함한 집안 고문서 일체가 기탁된 상태다. *** 이하 김태식 補 문서에 동치同治 6년이라 했으니 1867년에 작성된 것이다. 권지승문원부정자 기양연權知承文院副正字 奇陽衍 앞으로 발급한 것이다. 문서 네모칸마다 정묘丁卯 8월 이래 동년 12월까지 달마다 표시된 것으로 보아 이 문서는 월급 형식으로 녹봉을 수령한 것이 아닌가 하며, 한번만 써먹고 버린 증서가 아닌듯 하다. 상평통보 운운하고 조선후기 상업경제 운운하나 헛소리다. 19세기 중반이 되도록 현물로 월급 수령했다. 입금? 그런 게 있을 리 있겠는가? 은행도 없고 캐피탈금융도 없었다. 2020. 1. 23.
조선시대 공무원은 빚쟁이..챙기려면 지방 가라 조선시대 관료의 녹봉은 형편이 없어 생활할 정도가 못 되었다. 앞서 마첩馬帖과 행하行下를 올리니 돈 많이 번 듯하지만, 실제로는 고향집에서 부모님께 용돈 받아가며 공무원생활을 했다. 5대조와 6대조가 주고받은 편지에 따르면 관료 생활 중에 고향에서 보내준 돈이 떨어지면 서울에서 지인에게 빌려서 쓰곤 하였다. 공무원 7년차에도 돈 200냥을 꾸어 쓰며 올해 안에 갚겠다고 써준 차용증이 이 수표手票다. 탈초하면 이렇다. 辛未三月初十日 前手票 右票事錢文貳百兩限歲 前備報之意相約印 標主 奇陽衍[着名] 그래서 조선의 관료들은 부모를 봉양하겠다는 빌미로 자꾸 지방관으로 내보내 주기를 청하는데, 이를 걸군(乞郡)이라고 한다. 행장 등에서는 효성이 깊어서 지방으로 나가기를 청했다고 분식회계하지만, 9할 이상은 돈챙기러 .. 2020. 1. 22.
관용차로 내려온 망아지 모닝 Horse tags 마패馬牌 Horse tags Used as a kind of id card, the tag enables its owner to borrow as many horses as the tag has in local offices on official business during the joseon dynasty period. The tag varies from t.. historylibrary.net 이런 소개에 토지주택박물관 김충배 선생이 이르기를 말이 요즘 벤츠 한 대 값은 되었을 것이다. 라 했으니, 말은 가격 등락이 있었지만 조선 후기에 소 3~6마리 값이었다. 영조가 청나라와 말 무역을 허용한 이후 조금 저렴해져서 보통 3마리 값이었다. 첨부 문건은 5대조부께서는 옥책관玉冊官을 .. 2020. 1. 22.
내가 쏜다 요즘도 승진하거나 영전하면 한턱 쏜다고 하는데, 조선시대에도 새로 관직에 임명되면 인사, 부임과 관계있는 각 관부의 서리 등에게도 음식물을 내려주었고, 그것을 행하行下라고 했다. 첨부한 문서는 5대조께서 홍문관弘文館에 부임했을 때 그 기념으로 어느 군사軍士에게 음식물 값 3전錢을 내려준 문서다. 寺洞 玉堂拜辭軍士壹名處食物上下事 行下[署押] 三戔 (소장자 : 가친..단 모 공공기관에 기탁한 상태니 도둑님들 우리집에 와도 없음!) 2020. 1. 22.
팔고조도八高祖圖, 족보의 허실로 가는 바로미터 중학생이던 때 를 그려본 적이 있다. 당시에는 접할 자료가 많지 않아 제대로 완성하지 못하였다. 지금 하자면 제대로 그릴 수 있을 듯한데, 그럴 의지가 없다. 선인들은 제대로 된 팔조고도를 그리고 싶어했지만, 제대로 그리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심지어 국왕의 팔고조도도 모계쪽이 제대로 그려지는 일이 많지 않다. 팔고조도를 그려보면 족보의 허실을 금방 알게 된다. 첨부한 사진은 노사 기정진 선생 수고본 표지와 그에 실린 정무공貞武公 현암眩庵기건奇虔(1390~1460) 선생의 팔고조도다. 장성 아치실 행주기씨 종가 소장본으로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 선생이 직접 만든 가승家乘이다. 대동보 수준이다. 《노사집蘆沙集》 권17에 시씨가승서奇氏家乘序가 수록되어 있으니, 그 서문이 말하는 책 전체.. 2020. 1. 19.
조상들은 무엇을 비누로 썼을까 요즘이야 흔해 빠진 게 비누라서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잭 니컬슨은 한 번 쓰면 쓰레기통에 휙 내던지는 지경이다. 전근대 시대 비누는 녹두로 만든 비누[비루飛陋]였다. 언제부터 녹두를 비누 원료로 썼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15, 16세기부터는 일반화했었던 듯하다. 그전에는 무엇이었을까? 비조肥皂라는 것이 기원전후부터 사용되어 명나라 초기까지 기록에 빈번하게 나오는데, 이것을 사용한 듯하다. 고급품은 향비조香肥皂라고 하여 침향이나 사향을 첨가하기도 했다. 주원료는 쥐엄나무[皂莢] 열매껍질이나 무환자나무[无患子, 肥珠子] 열매껍질이었다고 한다. 한번 실험해 볼 일이다. 옻올라 고생한 나 빼고..... *** 이런 소개에 여러분이 아래와 같은 사례를 소개했다. ▶ 오줌이나 잿물도 있었지요 ▶ 외할머니 .. 2020. 1. 17.
전통시대 단위어 계속 수정 보완합니다. ** 작勺이 문서에는 '夕'으로 쓰여 있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작으로 읽는다. ** 전錢이 문서에는 '戔'으로 쓰여 있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錢이다. ** 주지 같은 경우는 단위어 사전에 나오는 것과 고전에 나오는 것을 대조하면 정확하지 않다. ** 동同은 올의 굵기, 옷감의 종류, 관할이 호조냐, 병조냐에 따라 다 달라서 어느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밖에 기와는 눌訥이 쓰이는데, 이것도 몇 장인지 정리가 안 된다. 2020. 1. 13.
고전에 보이는 곡물명 ** 계속 수정 보완할 예정임 2020. 1. 13.
지도로 남은 조선후기의 장성부 1856년(철종 8)~1858년 장성부사長城府使를 지낸 한필교韓弼敎(1807~1878)의 《숙천제아도宿踐諸衙圖》 중 장성부長城府다. 내용 중 오자誤字가 몇 곳 있으니, 예컨대 객사客舍의 등산관登山館은 오산관鰲山館의 잘못이고, 삼문산三門山은 삼성산三聖山의 잘못이다. 이는 18세기에 그린 비변사인 방안지도備邊司印方眼地圖의 장성부다. 둘을 비교해 보면 약간의 차이가 있다. 2020. 1. 2.
과대포장된 고산자 김정호 신화-전라도 장성의 경우 《대동여지도》는 최남선 이후로 너무도 과대포장 하는 바람에 오늘날 1/5만 지도 정도 정확성이 있다고 여기는 분이 많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실제 가보지 않아 엉뚱하기 그지없는 지도이다. 장성의 산천도 진원현이 엉뚱한 곳에 있고 산들은 강을 건너 있으며 청암역으로 바뀐지 200년인데 단암역으로 되어 있기도 하다. 정확성은 《해동지도》가 훨씬 높다. 지리지인 《대동지지》도 부정확은 형언키 어려운 정도여서 유형원의 《동국여지지》가 훨씬 정확하다. 대동지지를 분석해 보면 김정호는 비변사의 하리로 비변사에 있는 비변사방안지도와 기왕의 지리지를 종합해서 이를 지도로 만들었던 듯하다. 하지만 실제 가보지는 않아 전혀 엉뚱한 결과가 나타났다. 그 업적은 높게 쳐야하겠지만, 맹신한 데 대한 반성도 필요하다. 김정호가 .. 2019. 12. 30.
조선시대 지식인들의 3대 새빨간 거짓말 1. 가난해서 송곳 꽂을 땅도 없고 일단사일표음한다. (문집 간행할 정도면 요즘으로 따지면 100억 이상 자산가는 됨) 2. 벼슬에 뜻이 없다. (문집에 낙방한 과거시험 답안지 수두룩) 3. 병에 시달려 다 죽은 몸이다. (서른 즈음부터 그래 놓고 90까지 사는 경우가 많음) By 기호철 2019. 12. 11.
2x9는 부추 둘 부추[韭子] 김우급(金友伋, 1574~1643) ​ 푸른 머리털 이슬비에 젖으니조석으로 잘라도 아직 남았네사람마다 열여덟 반찬 먹으니이 상서를 비웃지는 마시구려 翠髮和煙雨, 昏朝剪更餘. 人皆十八食, 莫笑李尚書 [해설] 제목 ‘구자韭子’는 ‘부추[韭菜]의 씨앗’을 이르지만, 시 내용으로 보면 ‘부추[韭菜]’ 그 자체를 읊은 것이다. 3행의 열여덟 반찬은 부추를 이르는 말이고 4행의 이 상서李尚書는 후위後魏의 명신 이숭李崇(455~525)이다. 이숭은 상서령 의동삼사尚書令儀同三司를 지냈고 부유하기로는 천하를 압도하여 수천 명을 부렸는데도 성품이 대단한 구두쇠여서 너절한 옷을 입고 거친 음식을 먹었는데, 끼니에 언제나 고기도 없이 부추 나물과 부추 절임만을 먹었다. 이숭 문객인 이원우李元祐가 어떤 이에게 “이.. 2019. 12. 8.
동전 강제화 정책을 노래한 김우급의 시 동전을 사용하려고 먼저 시험 삼아 녹봉으로 나누어줌[用錢先試頒祿]김우급金友伋(1574~1643) 듣자니 조정에서는 동전 사용하려고백관에게 유달리 많이도 반사하다네지팡이 짚고 나가도 돈 한 푼이 없어나부끼는 주막 깃발도 자주 못보거늘 聞說朝廷用青銅, 百官頒賜也獨豐. 扶杖出門無一貫, 不堪頻望酒旗風. [해설] 동전을 유통 보급하기 위한 화폐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1633년(인조 11)에 조선통보朝鮮通寶를 법화法貨로 주조, 유통하기로 하였다. 이때 명나라의 만력통보萬曆通寶를 본떠 만들었는데 세종조에 주조, 유통하던 조선통보와 구별하기 위해서 팔분서八分書 조선통보로 주조하였다. 이 동전은 서울의 상평청常平廳에서 주조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이듬해인 1634년에는 안동·대구·개성 등 물산物産이 풍부하고 인물.. 2019. 1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