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호철의 잡동산이雜同散異69

조선후기 완산향교의 살구나무 1887년(고종 24) 지방 화사(畵師) 나능호(羅能浩)가 완산 향교에 봉안된 것을 모사한 《공자행단현가도(孔子杏壇絃歌圖)》 여기는 살구나무이다.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에는 1734년작으로 되어 있다. 화제를 보지 않아 어느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 related article *** 행단杏壇 : 살구나무를 뽑은 은행나무 행단杏壇 : 살구나무를 뽑은 은행나무 김태식 선생이 실시간 방송에서 과장해서 이야기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참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대로 쓰려면 일 주일쯤은 자료를 정리해야 할 듯합니다. 조선에서 행단의 행이라는 나무� historylibrary.net *** 이에 대한 아래와 같은 논급이 있어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제가 이 그림에 대해 공부한바가 있어 그냥 지나치지 .. 2020. 9. 27.
행단杏壇 : 살구나무를 뽑은 은행나무 김태식 선생이 실시간 방송에서 과장해서 이야기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참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대로 쓰려면 일 주일쯤은 자료를 정리해야 할 듯합니다. 조선에서 행단의 행이라는 나무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만 간단히 보겠습니다. 《성종실록》 11년 경자 10월 14일에 성종은 12폭 그림을 내어 보이며 시를 잘 짓는 문신들에게 1편씩 지어 올리게 하였는데, 이때 어세겸(魚世謙, 1430~1500)은 제10폭 《증점(曾點)이 비파를 타는 그림[曾點鼓瑟圖]》을 시로 읊기를, “제자들이 공자님을 조용히 모시는데, 행단의 봄빛이 꽃가지에 스몄어라.[弟從容侍坐遲, 杏壇春色透花枝。]” 라고 하였다. 시 내용으로 보아 행단의 행이 살구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혼란이 발생하게 되는데, 바로.. 2020. 9. 26.
천고마비天高馬肥의 본디 뜻 우리는 천고마비를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뜻으로, 하늘이 맑고 모든 것이 풍성함을 이르는 말로 사용한다. 비슷한 말로 추고마비(秋高馬肥)가 있다. 이 말은 '추고새마비(秋高塞馬肥)'라는, 당나라 두심언(杜審言)의 시구에서 나왔다. 그는 참군(參軍)으로 북녘에 가 있는 친구 소미도가 하루빨리 장안(長安)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며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구름은 깨끗한데 요사스런 별이 떨어지고[雲淨妖星落] 가을 하늘이 높으니 변방의 말이 살찌는구나[秋高塞馬肥] 말 안장에 의지하여 영웅의 칼을 움직이고[馬鞍雄劍動] 붓을 휘두르니 격문이 날아온다[搖筆羽書飛] 이 시에서는 변방의 정경과 당나라 군대의 승리를 가을날에 비유한 것이다. 따라서 '추고마비'는 아주 좋은 가을 날씨를 표현하는 말로 쓰였다. 그러나《한서.. 2020. 9. 26.
추석에 소외된 이를 생각합시다 노인의 말을 쓰다 2수[記老翁語 二首] 수자리 가렴주구에도 요행히 온전했거늘 征戍誅求幸得全 한평생 고생스럽기론 올해가 최악이었소 一生辛苦最今年 관련도 없는 산성미 마련하여 내느라고 無緣辦出山城米 대대로 전한 몇 마지기 전답도 팔았다오 賣得傳家數頃田 아들 부부 모두 죽고 손자 하나 남았는데 子婦俱亡孫獨在 날 때부터 신발도 없었고 옷도 없었다오 生來無屨且無衣 오늘 새벽 나뭇짐 지고 관아에 들어가서 今曉負薪官上去 어떻게 눈보라 속에 살아왔는지 모르겠소 未知風雪得全歸 추담秋潭 김우급金友伋(1574~1643) 2020. 9. 25.
임자연林子淵에서 맛본 쾌감 번역하는 책에 '만옹晩翁'' '만수晩叟'라는 이와 주고 받은 시가 20수 가까이 실려 있는데, 도무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그 가운데 임자연林子淵이라는 단서가 드러났고, 임자연을 찾으니 청음 김상헌이 지은 죽은 임자연에 대한 만사가 있었다. 이것으로 보면 자연이 이름이고 득지가 자인 듯한데, 확인하니 거꾸로였다. 임득지는 선교랑(宣敎郞)으로 본관은 평택, 자가 자연, 호가 晩竹이며 금호 임형수의 종손(從孫)으로 수은 강항과는 사돈이다. 이틀간 나를 괴롭힌 김상헌의 시는 다음과 같다. 자와 호를 거꾸로 써 놓으니 번역할 때 끝내 누군지 알지 못한 것이다. 하다 보면 이런 것을 찾는 게 무척 괴롭지만, 해결했을 때 느끼는 희열 때문에 죽을 듯 달려든다. 〈득지(得智) 임자연(林子淵)을 곡하다[哭林得智子淵].. 2020. 9. 25.
文을 너무 숭상한 조선 고위관료 출신이나 학문, 충렬, 학행이 뛰어난 이에게 시호를 내렸다. 시호는 당사자의 삶의 행적을 살펴 두 글자로 정했는데, 본래 훌륭한 사람에게는 좋은 시호를, 못된 사람에게는 나쁜 시호[惡諡]를 정해주어 경계하는 뜻도 담겨 있었다. 주나라 여왕(厲王)과 유왕(幽王)의 시호가 바로 대표적인 악시이다. 후대에 악시는 사라졌다. 어떤 인물에게 ‘시호가 내려지는가’ 와 또 ‘어떤 시호가 내려지는가’는 그 가문이나 학파, 정파 등 관련 인물에게 매우 민감한 문제였다. 성종 때에 김종직이 사망하자 그의 시호를 문충(文忠)으로 정하였는데, 반대파에서 온당치 않다며 문제를 제기하였다. 문(文)을 숭상하는 유학적 사고에서는 ‘문’ 자 시호를 선호하였고, 그중에서도 ‘도덕을 갖추고 학문이 넓다[道德博聞]’는 뜻의 ‘문.. 2020. 9. 25.
[9월은 재산세 납부] 조세 독촉[催租] 조세 독촉[催租] 김우급金友伋(1574~1643) 겨울밤 호각 소리 외딴 성을 울리는데 一聲寒角動孤城 촌구석 집마다 아전이 밤에 찾아간다 村巷家家吏夜行 내일은 사또가 조세 마치라는 기일이라 明日縣官期畢租 삼경 넘도록 절구질 소리 견딜 수 없네 不堪舂杵度三更 *** related article *** 국화꽃을 빌리다[借菊] 추담秋潭 김우급金友伋(1574~1643)국화꽃을 빌리다국화꽃을 빌리다[借菊] 추담秋潭 김우급金友伋(1574~1643 그대 기른 국화 키가 한 길 남짓이라는데 聞君養菊長尋餘 서리 내려 맑은 향기 옷깃에 가득 배겠소 霜後清香滿人裾 병치레에 길을 나설 ��historylibrary.net 2020. 9. 25.
노인의 기억 집안 고문서 가운데 어느 땅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 있었다. 1767(영조43)년 5칸 짜리 초가와 3칸 짜리 마굿간, 3칸 짜리 초가집이 있는 200평쯤 되는 집터와 집 주위 800평쯤 되는 대밭과 그 주변에 산까지 있는 땅을 15냥에 구입한 문서였다. 가친께 여쭈니 모르겠다고 하시더니, 밤새 기억이 났는지 새벽에 전화를 주셨다. 하남정사 아래 성재 기삼연 선생 생가 땅이라고 하신다. 8대조부 아우가 분가할 때 그 땅을 주었다고 하신다. 의병 독립운동을 하면서 그 집터와 대밭과 산은 모두 남의 땅이 되었다. 최근 문서들을 정리하는 건 구순 노인 총기가 어제 오늘 다르기 때문이다. 김태식 단장이 노인 한 분이 돌아가시면 백과사전 한 질이 사라진다고 했던 말을 실감 중이다. 2020. 9. 23.
야경夜警 돌 때 치는 악기 딱따기 ‘격탁擊柝’이라는 말이 있다. 딱따기를 치며 야경을 도는 것을 이른다. 《주역》 〈계사전 하繫辭傳下〉에 “문을 이중으로 하고 딱따기를 쳐서 도적을 대비한다.[重門擊柝, 以待暴客.]”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딱따기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구글 서칭했더니 저 사진이 나오는데, 과연 조선시대 것도 저랬는지는 모르겠다. '딱딱이'로 쓴 것들이 많은데 '딱따기'다. 딱따기는 방자梆子라고도 한다. *** 이에 대해 그의 지인들이 이런 댓글 공작을 벌였다. 이게 중국에서는 악기이기도 하죠. 한국에서도 악기로 썼을 듯... 딱다라닥딱 박자 맞추는 악기요.(홍승직) 박拍, 집박執拍 입니다.(김영일) 이렇지 않았을지?(강민경) 이야기 주제가 딱딱기로 야경 돌 떄, 사용했었죠. 그런데 2개를 마주 쳐 소릴 내는 것이었죠. 윗.. 2020. 9. 22.
국화꽃을 빌리다 국화꽃을 빌리다[借菊] 추담秋潭 김우급金友伋(1574~1643) 그대 기른 국화 키가 한 길 남짓이라는데 聞君養菊長尋餘 서리 내려 맑은 향기 옷깃에 가득 배겠소 霜後清香滿人裾 병치레에 길을 나설 채비도 할 수 없거늘 多病未能治杖屨 화분 하나 어째 우리 집에 보내주지 않소 一盆何不送吾廬 多病을 코로나(瘟疫)로 바꿀 터이니.알아서 보내주소. ㅋㅋㅋ *** 태식 補 도연명이 그리 상찬賞讚하면서 완상玩賞한 국화가 왜 느닷없이 현대 한국사회에서는 조문의 대명사가 되었는지는 내가 모르겠다. 양놈 문화 영향이 아닌가 하는데,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근대 이전 국화를 초상집에 갖다 놓는 꼴을 못 본 까닭이다. 2020. 9. 21.
며느리한테 증여하는 이유 아래에서 재산을 몰아주기 위해 별급이라는 방법을 사용했다고 밝힌 데 대해 며느리에게 증여하는 것을 신기하게 여기시는 듯하다. 며느리에게 별급하는 것이 아들에게 별급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지만, 별다른 까닭도 없이 별급하면 다른 아들들이 불만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며느리에게 시집왔는데 예쁘더라, 시부모를 극진히 모셨다거나, 손자를 낳아다거나 여러 빌미가 있었다. 다만 그 재산의 처분을 제한하여 실제적으로 장자 상속이 되도록 하고 있다. 9대조 기종상奇宗相이 1754년(영조30) 8월 20일에 큰아들 기태온奇泰溫의 처인 큰며느리 부안 김씨에게 용모가 단정하고 종갓집 살림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독다리들[석교평, 농사農舍와 감농정鑑農亭이 있던 일대] 논 6마지기를 별급하였다. 여기에는 단서가 붙어 있었는.. 2020. 9. 20.
조선시대 재산상속의 비법 《경국대전》이 표방하는 조선의 상속법은 자녀균분상속이다. 법대로 하면 종법질서가 어그러질 수 있었다. 그것을 피하는 방법이 여럿인데, 가장 애용한 방법이 별급別給이다. 요샛말로 하면 증여다. 별급으로 먼저 이쁜 자식에게 몰아주고 남은 재산만 균분상속하면 되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조선은 증여세가 없었다. 1622년(광해군14) 13대조 기처겸(奇處謙)이 장자 기진탁(奇震鐸)의 처(妻)인 나무춘(羅茂春, 1580~1619)의 딸 나씨에게 승중(承重) 총부(冢婦)로서 용모가 단아하여 오늘 처음으로 보고 감격을 금치 못하여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어서 노비 3구(口)와 전답 17마지기를 별급해 주었다. 또 1624년(인조2)에는 장자 기진탁이 18살 어린나이에 사마시에 입격하여 기쁨을 이길 수 없다는 이유로 노비.. 2020. 9. 20.
늙어서 하릴없이 스스로 비웃노라 늙어져 하는 일 하나 없이 홀로 깊은 계곡 은은한 물소리 듣고 있으니 自笑老餘無一事 獨來幽澗聽冷冷 -추담秋潭 김우급金友伋(1574∼1643) - 2020. 9. 20.
선비의 멋 옛 선비의 시문을 보면 아주 간단한 대화를 멋진 시문으로 주고 받는다. 영광에 살던 기천杞泉 이희웅李喜熊(1562~1648)이라는 분이 장성(당시는 영광)에 살던 벗인 추담秋潭 김우급金友伋(1574~1643)에게 다음과 같은 시를 보낸다.(10살 남짓은 뜻이 맞으면 벗을 삼는다, ) With me? 요사이 시름겹기가 고슴도치 터럭이라 年來心事蝟毛多 날마다 큰소리로 강개한 노래 읊어대오 日日高吟慷慨歌 절간에 가을 경치 다해간다고 들었으니 聞道伽藍秋色盡 그대와 함께 찾아가 감상하면 어떻겠소 欲將君去賞如何 이에 김우급은 Call! 이전에 보내주신 시문들 많았는데 從前詩什寄來多 슬픈 노래 아니라 원망의 노래였소 不是悲歌即怨歌 절에 가자는 시 한 수 방금 받았거니 尋寺一聯今始到 가을 산을 돌아보면 흥취가 어떠할지.. 2020. 9. 19.
곤면袞冕 “대구를 갖추고 면을 쓰는 것을 구면이라고 하고 대구 없이 면을 쓰는 것을 곤면이라고 한다.[夫大裘而冕,謂之裘冕,非大裘而冕,謂之袞冕。]”《宋史‧輿服志三》 - 대구(大裘) : 옛날 천자가 하늘에 제사 지낼 때 입는 가죽 예복 - 면(冕) : 고대에 천자, 제후, 경(卿), 대부(大夫) 등이 조정의 의식이나 제례 때 쓰는 예식 모자 - 곤면(袞冕) : 곤의(袞衣)와 면(冕). 곤의는 권룡(卷龍)을 수놓은 것을 매단 예복이다. 사진 속 사마염의 복장이 곤면 2020. 9. 2.
사투리 쓴다 차별한 조선시대 영조 7년 2월 24일 정시 전시 시권을 뽑는 자리의 대화이다. 영조가 이르기를, “김한철(金漢喆)은 비록 서산(瑞山)에 살기는 해도 어찌 그를 시골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지방 유생은 부(賦)나 표(表)가 서울 유생만 못한데 지금 책문에서 또 입격한 자가 한 사람도 없으니 어쩔 수 없다 할 만하다.” 하니, 박문수가 아뢰기를, “시골 유생의 문장에는 자연히 향음(鄕音)이 있으므로 표나 부에서 매번 낙방합니다. 이번에는 전시에서 대책(對策)을 만나 또 모두 낙방했으나 시골 유생들 사이에 억울하다는 말은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사투리 쓰면 과거 합격도 쉽지 않았다. 심지어 합격해도 어전에서 사투리 심하게 쓰면 시종신으로 쓰지도 않았다. 시골 양반 서울에 몇 년 유학하며 과거공부한 것은 이유가 있었.. 2020. 9. 1.
문서 판독은 자획字劃보단 문리文理로 금석문 등 한자를 판독할 때 자획字劃만 보려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필사본 문서들을 보면 자획으로 판독하면 곤란한 경우가 많다. 승정원일기를 예로 들면 熙는 熈로 쓰이는 경우가 더 많고, 經은 자획으로 보면 徑으로 쓰였고, 器는 哭으로 쓰인다. 己, 已, 巳는 구분해서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자 판독의 기본 전제는 자획이 아니라 문리다. 문리로 읽어야지 자획만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2020. 8. 31.
송편, 젓가락 집어드니 반달이라 송편松䭏 장성의 여류 문장가 조씨가 지은 것이다.[長城女文章姓趙氏所作] ​ 손안에서 둥글둥글 새알을 둥글려서 掌裏團團轉鳥卵 손끝으로 하나하나 조갯살 오므렸네 指頭箇箇合蚌唇 쟁반에 늘여놓으니 산천이 겹겹인데 金盤錯列山川疊 젓가락으로 집어 든 것 반달이로구나 玉箸引來月半輪 ​ [해설] 김삿갓, 정조, 김인후, 차천로, 남이, 주희, 박두식(朴斗植) 등의 시를 필사하여 엮은 《쌍청집(雙清集)》이라는 책에 수록되어 있다. 표지에 ‘上章敦牂流火初’라고 쓰여 있어 경오년 7월 초에 필사했음을 알 수 있는데, 박두식이 활동한 시기로 보면 1930년 7월에 전사한 것이다. 필사자는 알 수 없다. 장성의 여류 문장가였던 조씨가 누구인지 알기에는 어렵다. 2020. 8. 24.
살구 생각이 괴는 침 명나라 당인唐寅(1470~1523)《관행도觀杏圖》입니다. 피지도 않은 살구나무를 바라보며 행단杏壇에서 가르침을 받고 싶었을 겁니다. *** 공자 학단 학교를 흔히 행단杏壇이라는데 그네들 특징을 이리 이름한 이는 유가가 아니요 장자莊子다. 문제는 杏이 은행나무냐 살구나무냐 논란이 극심했으니 이 그림에선 명백히 살구다. 은행나무가 저리 생길 리 만무하지 않은가? 하긴 은행나무는 똥꾸린내 장난이 아녀서 공자가 쫄개들 딜꼬 그 아래서 오야붕 노릇 했겠는가 의구심이 일지 않는 것은 아니다. (김태식 補) 2020. 4. 11.
황윤석黃胤錫이 읊은 장성 아치실 아곡鵝谷 〈아곡鵝谷〉 소곡小谷, 아차실이라고도 하고 제곡弟谷이라고도 하며 어떤 이는 아찬곡阿餐谷이라 부른다.鵝谷【亦曰‘小谷、아차실’, 亦曰‘弟谷’, 或云‘阿餐谷’。】 조상님들 거치셨던 이곳 아치실은 깊은 산속 골짜기로 마을 아늑하네기수의 대나무엔 옛 그리움 남았고마당의 눈에는 유학한 자국 쓰였네쓸쓸히 잔약한 손자가 여기 있나니멀고도 아득하니 너무도 오랜 세월해는 뉘엿뉘엿 말을 몰아 떠나면서가는 걸음걸음 자꾸자꾸 돌아본다 吾祖經行地, 山深里巷幽。淇竿留舊戀, 庭雪記曾游。寥落孱孫在, 蒼茫小劫悠。斜陽駈馬去, 臨路更回頭。 -첨정부군僉正府君께서는 이씨李氏 집에 장가들었고, 취은부군醉隱府君과 구암부군龜巖府君께서는 기씨奇氏 집에서 배우셨으니 3세의 유적이 모두 이곳에 있다.- 【僉正府君娶于李氏, 醉隱府君、龜巖府君學于奇氏, 三世.. 2020. 3. 31.
조선후기 지도에 보이는 장성 아치실 하남정사河南精舍 장성군長城郡 황룡면黃龍面 아곡리鵝谷里로 《세조실록》에 보이는 소곡小谷이 원래 이름이다. 계속 소곡만 사용하다가 영조 때 집 당호에 하남정사河南南精舍가 쓰이면서 하남리河南里라는 이름이 새로이 만들어졌다. 소곡은 작은 마을이라는 뜻으로 우리말로 아치실이다. 이재頤齋 황윤석黃胤錫(1729~1791)은 그의 백과사전식 일기 《이재난고頤齋亂藁》에서 小谷=鵝谷=아찬곡阿餐谷=제곡弟谷이라 적었으니, 소곡은 뜻으로 표기한 것이고, 나머지는 우리말 아치실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첫번째 사진인 1872년 《장성부지도》부터 하남河南이라는 명칭이 보인다. 장성군이 홍길동테마파크를 조성해 놓은 곳이 아곡이고 그곳에 있는 사창社倉이 지금 홍길동테마파그 주차장이 된 곳이다. 이 사창은 1900년 무렵 학교로 사용되었는데, 학교 이.. 2020. 3.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