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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철의 잡동산이雜同散異244

세검정洗劍亭, 그 내력 [세검정] 세검정은 인조반정 후 칼을 씻어서 세검정이라고 한다는 설도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기록을 추적하면 영조 때 총융청을 신영동으로 이설할 즈음 지은 것이다. 일부 연구자 가운데 그 이전 기록에 세검정이 보인다고 그 이전에도 있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는데, 그 세검정은 함경도 삼수군(三水郡)의 세검정이다. 영조 때 여항문인 김상채(金尙彩)는 《창암집 蒼巖集》 권2 〈세검정〉 시에서 “정묘년(1747, 영조23)에 총융청을 탕춘대 뒤로 옮겨 세우고 무진년(1748)에 새로 정자를 지었다.[丁卯 摠廳移建于蕩春臺後 戊辰新構亭也]” 고 하였으니 1748년(영조 24)에 지어졌다. 영조는 신미년(1751, 영조27) 7월 17일 비를 맞으며 세검정에 올라 시를 한 수 지어 이곳에 걸었는데, 그 시는 다음과.. 2022. 6. 25.
파방罷榜, 낙방의 만능키 [잘못된 믿음] 조선시대 과거시험을 치고 합격자 이름을 써서 방을 붙이는 것을 방방(放榜)이라고 한다. 요즘 주요 일간지에 합격자 명단 공고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그 합격자에게는 합격 증서를 주는데, 생원과 진사에 입격(入格)한 자에게는 백패(白牌)를, 대과에 급제(及第)한 이에게는 홍패(紅牌)를 준다. 선인들도 부정행위에 있어서만큼은 전통은 계승하고 신기술은 개발하여 부정행위는 그칠 날이 없었다. 그래서 방방을 마쳤는데 부정이 발각되어 합격을 취소하기도 했는데, 이를 파방(罷榜)이라고 한다. ‘개인의 일탈(현 정부 관료의 주특기)’인 경우 그 사람만 파방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정치적 이유로 전체가 파방되는 경우도 있었다. 중종 때 현량과(賢良科)라든가 광해군대 인목대비 폐비를 꼬집은 답을 적.. 2022. 5. 4.
송암 기정익 어제 정읍 우암선생 수명비를 보며 11대조 송암 기정익 선생을 생각했다. 우암의 문인으로 명재 윤증, 우헌 박상현과 벗으로 북이면 모현리 송암에서 셋이 사흘 밤낮 성리학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노소분당 이후 우정은 금이 갔고 토론을 정리한 문서는 문집에 수록되지 않고 필사본으로만 남았다. 노소분당 이후 소론이 강했던 영광, 장성. 나주 일대에 노론의 중심 서원으로 필암서원을 현 위치로 이건하고 스승에게 글씨를 받고 친구 김수항, 신익성 등을 원장으로 초빙하여 위상을 정립한 분이다. 그 제자로는 손재 박광일 등이 있다. 벗으로 말미암아 스승에게 사약이 내렸다는 소식을 장성 청암역에서 들었고, 어명을 앉아 기다리는 것은 불충이라며 우암은 길을 재촉해 정읍까지 올라가 사약을 받들었다. 청우(靑郵) 사건 또는 .. 2022. 4. 14.
무슨 풀을 심으라는 규정이 없는 묘소, 건원릉이 억새 천지가 된 내력은? 《현종개수실록》 4년 3월 18일 기사에 병조 판서 김좌명이 영릉(英陵)의 사초를 개사改莎하는 것이 옳지 못하다는 문제로 상차하기를, "신이 듣건대, 본조의 여러 능침陵寢 가운데 유독 건원릉健元陵과 영릉英陵에 사용한 사초가 보통과 달랐는데 그 때문에 처음 봉분하였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개사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신이 경기도관찰사로 있으면서 영릉을 봉심하였는데 능위의 사초가 이삭이 나오고 꽃이 활짝 피어 보통 사초와 같지 않았으며 큰 것은 3척 가까이 되었으니 속칭 속사초束莎草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조 때에 개사하려고 했었는데, 백년토록 개사하지 않은 사초를 일시적인 소견으로 갑자기 개사하는 것이 중대하고도 어려운 문제라고 여겨 그대로 놔두고 개사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개사를 하려 하니 신의 마음.. 2022. 4. 9.
내년 꽃 피어 술잔을 들 땐 취기 오른 볼 홍매처럼 붉어지리 매요신(梅堯臣, 1002~1060), 〈오정중이 홍매 접가지를 구한다기에[吳正仲求紅梅接頭]〉 그대 집 시냇가에 매화 있었지만 君家梅溪上 보이는 건 꽃이 흰 매화뿐이었소 但見梅花白 우리 집에 홍매나무 기르고 있어 我家家樹紅 접가지 구해서 귀객에게 부치오 求枝寄歸客 잘라 접붙임은 우정 맺음 같으니 剪接如交情 접그루 접가지 떨어져선 안 되오 本末不相隔 내년에 꽃이 피어 술잔을 들 땐 明年舉酒時 취기 오른 볼이 볼그름해질게요 醉頰生微赤 2022. 3. 27.
황윤석이 채록한《부풍향차보扶風鄕茶譜》 《이재난고》에는 1756년에 부안현감이던 이운해(李運海)가 버려진 선운사 일대 차를 이용해 칠향차(七香茶)라는 약용차를 만들며 남긴 《부풍향차보(扶風鄕茶譜)》가 실려 있다. 이재 황윤석이 전사해 두었다가 1771년에 일기 빈 책장에 적어 둔 것이다. 그간 논문도 몇 편 나왔고, 차를 좋아하는 이들이 많이 연구하고 공부하는 자료로 알고 있다. 연구 성과를 살펴보니 그간 제대로 번역이 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번역문은 조만간에 블로그에 올려둘 생각이다. 여기를 봐도 다도라고 가르치는 건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에서 들어온 왜색문화야. *** 편집자주 *** 무슨 다도인가? 원샷 때리기라 한 입에 털어넣었으며 무슨 한복 입고 차를 다리고 따랐단 말인가? 2021.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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