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동국이상국집39

동이 비우니 달도 비어 by 이규보 산에 사는 스님 달빛 탐내어 山僧貪月色 한 동이에 달 물 함께 길었네 幷汲一甁中 절에 이르러 비로소 깨달으리 到寺方應覺 동이 기울면 달도 빈다는 것을 甁傾月亦空 ㅡ 이규보, 후집 권1, 고율시古律詩, 2수 중 1수 *** 백운거사 숱한 시 중에서 절창으로 꼽는다. 2023. 10. 9.
유홍개庾弘蓋, 이규보가 건진 고려의 제주 지방관 나 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 한 인물이 있다. 유庾씨인 것을 보아 고려 개국공신 유금필庾黔弼의 후예인 평산 유씨 아니면 무송 유씨였을 게고 과거에 급제했거나 음서로 출세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어쨌건 제주濟州에 지방관으로 부임했다는 것 말고는 업적이건 뭐건 알려진 것이 없는데 만약 후집에 그에게 보내려 한 이규보의 시가 실리지 않았던들 영원히 묻혔을지도 모른다. 제주에서마저 잊혀진 그 이름 유홍개여. 지평선 저 너머 머나먼 길 전송할 때 / 漫長路垠送遐征 눈물 어린 깊은 정감 스스로 알겠네 / 淚墮方知自感情 - 시랑(侍郞, 여기서는 이수李需란 이다)이 태수를 전별하는 정감을 말한다 파도 잔잔하니 무사히 바다를 건널 테고 / 瀾涉穩堪尋過海 술이 얼근해지니 자꾸 잔을 권하려네 / 酒傾醺好更斟觥 천성이 옹.. 2023. 7. 11.
타는 목마름으로, 고기를 갈망한 이규보 예전에도 한 번 말한 듯한데 이규보 선생님은 육식파였다. 소고기만 보면 먹지 않을 수 없었고 술안주로 기린을 구워먹고 싶다고 했었을 정도니까. 그렇지만 가난뱅이 하급 관료가 고기를 먹을 일이 얼마나 있었을까. 대개는 그림의 떡이었으리라. 그래서였을까, 그는 전주에 있으면서 고기도 제대로 못먹는 울분을 토해내는 글을 하나 남겼다. 삼가 채소ㆍ과일과 맑은 술의 제수로써 성황대왕城隍大王의 영전에 제사 지냅니다. 제가 이 고을에 부임하여 나물 끼니도 제대로 계속하지 못하는데, 어떤 사냥꾼이 사슴 한 마리를 잡아 와서 바치기에 내가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가 ‘이 고을에는 예부터 매월 초하루에 저희들로 하여금 사슴 한 마리와 꿩 또는 토끼를 바쳐 제육祭肉에 충당하게 하고, 그런 뒤에 아리(衙吏, 아전)들이 공봉公.. 2023. 5. 11.
술은 겨울 모자, 머리 깎은 중한테 한 잔 권한 백운거사 나야 세상에 나온지 이제 30년 조금 넘었고 술 주자 주력은 당연히 그보다 짧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 동안 느낀 점 중 하나는 술은 좀 추워지는 겨울에 마시는 것이 좋더라는 거다. 눈내리는 겨울 밤 운치도 운치려니와, 술이 들어가면 몸에 열이 오르는데 특히나 여름날 진탕 마시면 얼굴에 땀이 흥건해져서 견디기가 힘들어진다. 그러니 오래 술자리를 이어가기엔 겨울이 그나마 제격이다. 난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고려시대에도 술이 들어가면 후끈해져서 따숩게 겨울 밤을 보내는 분이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느 겨울날, 우리의 백운거사께서 술상을 봐 놓고 지인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그런데 그 지인이 다름아닌 스님! "거...안되는데..." 뻘쭘했는지 쭈뼛거리며 술잔을 받는 스님을 보며 이규보 선생님은 이렇게 농담.. 2023. 5. 10.
이규보 선생을 개무시한 오주 선생 이규경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라는 책을 편찬하여 한국 역사에 불후의 이름을 남긴 오주五洲 이규경李圭景(1788~1856)이라는 분이 있었다. '책에 미친 바보' 이덕무李德懋(1741~1793)의 손자로 그 스스로도 책에는 일가견이 있었던 사람인데, 뜻밖에 우리 고문헌에는 다소 어두웠던 것 같다. 《오주연문장전산고》 중에 "석교釋敎·범서梵書·불경佛經에 대한 변증설辨證說"이란 글이 있는데, 거기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논한 대목을 보면...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우리나라 해인사海印寺에 소장되어 있는 《팔만대장경》 또한 변증하지 않을 수 없다. 해인사는 경상도慶尙道 합천군陜川郡 가야산伽倻山에 있는 신라시대 고찰古刹이다. 경판經板은 해인사 보안당普眼堂 남쪽과 북쪽 두 각閣에 저장되어 있는데, 모두 15칸[間.. 2023. 4. 23.
토실土室을 허문 이규보, 왜? 이규보가 요즘 태어났다면 온수매트나 에어컨을 쓰지 않고 더우면 더운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지냈을까? 뜬금없이 그런 생각이 든다. 그 왜, 저 유명한 가 전집 권21에 있지 않던가. 10월 초하루에 이자李子(이규보 본인)가 밖에서 돌아오니, 아이들이 흙을 파서 집을 만들었는데, 그 모양이 무덤과 같았다. 이자는 뭔지 모르는 체하며 말하기를, “무엇 때문에 집안에다 무덤을 만들었느냐?” 하니, 아이들이 말하기를, “이것은 무덤이 아니라 토실土室입니다.” 하기에, “어째서 이런 것을 만들었느냐?” 하였더니, “겨울에 화초나 과일을 저장하기에 좋고, 또 길쌈하는 부인들에게 편리하니, 아무리 추울 때라도 온화한 봄날씨와 같아서 손이 얼어터지지 않으므로 참 좋습니다.” 라고 하였다. 이를 보면 고려시대 관료계층의 .. 2023. 4. 15.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