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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세기27

언니를 제끼고 김춘추를 차지한 문희, 그 발설자는? 오늘 《화랑세기》 강연에서도 나는 예의 김유신 김춘추 축국 경기와 그에 따른 김유신의 옷찢어발리기와 이후 전개된 야합 행각을 이야기했다. 보희寶姬는 월경 중이었으므로 김춘추와 맺어질 수 없었다. 그래서 행운은 그 동생 문희文姬한테 돌아갔다. 강연에서 이야기했다. 이 얘기가 어떻게 전해졌겠는가? 난 이들 네 년놈 중에 한 명의 발설자가 있다고 했다. 이들 중에 까발리는 사람이 없었으면 이 이야기는 결코 후세에 전해질 수 없다. 그러면서 나는 《화랑세기》를 꺼내들었다. 발설자는 누구냐? 문희였다. 《화랑세기》에서 이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그 출처가 《문명황후사기文明皇后私記》라 했다. 문명文明이 누구인가? 바로 문희다. 사기私記가 무엇인가? 사사로운 기록이란 뜻이다. 그러니 《문명황후사기》는 문명에 의한 회고록.. 2020. 5. 23.
폭설이 돌려세운 의성 탑리오층석탑 2012년 12월 7일, 누군가 운전하는 차에 룰루랄라 불알 휘날리며 경북 의성 톨게이트에 들어섰다. 싸대기 직전 변비 투성이 같은 날이었다. 의성군청에 들어섰다. 이땐 영미는 아직 코흘리개 시절이라, 훗날 대한민국을 들었다놨다 하는 그 시절이 아녔다. 그날 나의 기념비적인 발표가 예정됐다. 따신 실내에 들어서고 발표를 좀 듣다보니 졸음이 쏟아졌다. 보다시피 내 주옥같은 발표 말곤 들을 발표가 없었다. 뭘 하며 소일할까 잔머리 굴리다가 탑리오층석탑이나 댕기오자 하곤 길을 나섰다. 내 차를 몰고간 건 아니기에 지인 차를 빌렸다. 어찌 됐냐고? 가는 길에 폭설이 쏟아졌다. 나설 때 날리던 눈발이 가다 보니 이리 순식간에 변했다. 돌릴 수밖에 없었다. 갈땐 유유했으나 중간에 돌아선 길은 엉검엉검이었다. 기어서.. 2019. 12. 7.
화랑세기 없이는 나올 수 없는 발상, 용춘과 비형랑 October 3, 2013 글인데, 오타 등을 바로잡는 수준에서 교정한다. 신라사 중고기 왕실 관련 인물로 용춘龍春이라는 사람이 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의하면, 이 사람은 신라 제25대 진지왕眞智王의 아들이요,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아버지다. 그의 행적에서 그가 화랑, 혹은 화랑이 이끄는 무리 일원이라는 언급은 단 한 군데도 없다. 용춘과 관련되는 인물로 오직 《삼국유사》에만 보이는 비형鼻荊이라는 인물이 있다. '도화녀 비형랑桃花女鼻荊郞' 이야기 주인공 중 마지막에 등장하는 인물로서, 그는 폐위된 뒤에 죽은 혼령이 된 진지왕이 도화녀라는 얼짱 여자와 관계해 낳은 '귀신 아들'로서, 주특기는 공공기술자을 이끄는 우두머리라는 점이다. 이런 그가 화랑 혹은 그가 이끄는 무리와 관계있다는 언급은 그 .. 2019. 10. 3.
돈 많은 과부 만나 출세한 화랑 문노 문노文弩는 아버지가 신라 재상을 지낸 비조부比助夫라는 사람이고, 엄마는 대가야 문화공주文華公主라, 그런대로 괜찮은 혈통이랄 수 있지만, 신라로 넘어와서는 빌빌 쌌다. 비조부 아들이라 하지만, 서자인데다, 대가야는 신라에 대들다 쫄딱 망하는 바람에, 그 대접이 순수하게 나라 전체를 몽땅 받친 금관가야랑 달랐다. 이런 한계를 스스로 절감한 때문인지, 문노 본인도 출세에는 전연 관심이 없이 오로지 칼잡이로 일생을 소일하니, 칼잡이로 소문이 나니, 쫄개들이 수하로 몰려들었으니, 개중에는 사다함이란 어린 친구도 있었다. 거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런 칼잽이 성향 무인들이 그렇듯이, 문노 역시 의협심 하나로 똘똘 뭉친 사람이라, 그에게도 오야붕이 있었으니, 세종世宗이라는 사람이 바로 그의 주군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2019. 10. 3.
결코 백제 무왕의 정비일 수 없는 신라 선화공주 익산 미륵사 서탑 해체과정에서 이 석탑 조성 내력을 기록한 백제 무왕시대 석탑 봉영사리기奉迎舍利記가 발견되기는 2009년 1월 14일이다. 그것이 발견되기 이전부터 나는 결코, 때려죽여도 선화공주는 백제 무왕의 정비가 아니라고 단언했다. 후궁이라고 주장했다.봉영사리기 출현과 더불어 내 예언은 어찌 되었는가? 내 말이 맞았다. 무왕 정비는 선화공주 아닌 걸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근거로 이리 주장했던가? 나는 아다시피 《화랑세기》를 신라인 김대문이 남긴 것으로 보는 이른바 화랑세기 진본론자다. 그 화랑세기와 세트가 되는 남당 박창화 유품으로 사진으로 제시하는 족도族圖가 있다. 겉장에는 상장돈장上章敦牂이라 쓴 글자를 표제처럼 삼는 이 족도는 화랑세기 등장 인물들간에 얼키고설킨 혈연 관계를 사진으로.. 2019. 8. 13.
욕망의 변주곡 (5)《화랑세기》와 찰주본기刹柱本記, 용수龍樹와 용춘龍春 아래 원고는 2010년 11월 6일 가브리엘관 109호에서 한국고대사탐구학회가 '필사본 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주제로 개최한 그해 추계학술대회에 '욕망의 변주곡, 《화랑세기》'라는 제목을 발표한 글이며, 그해 이 학회 기관지인 《한국고대사탐구》 제6집에는 '‘世紀의 발견’, 『花郞世紀』'라는 제목으로 투고됐다. 이번에 순차로 연재하는 글은 개중에서도 학회 발표문을 토대로 하되, 오타를 바로잡거나 한자어를 한글병용으로 하는 수준에서 손봤음을 밝힌다. 4. 《화랑세기》와 찰주본기刹柱本記, 용수龍樹와 용춘龍春 황룡사 찰주본기를 오로지, 혹은 그것을 주요한 전거로 삼은 직업적 학문종사자의 글은 많다. 나아가 찰주본기가 말하는 황룡사 목탑 창건에 대한 연기緣起와 창건 과정 또한 《삼국유사》가 저록한 그것은 비록.. 2019. 8. 11.
욕망의 변주곡 (4) 남색男色과 파천황의 마복자摩腹子 아래 원고는 2010년 11월 6일 가브리엘관 109호에서 한국고대사탐구학회가 '필사본 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주제로 개최한 그해 추계학술대회에 '욕망의 변주곡, 《화랑세기》'라는 제목을 발표한 글이며, 그해 이 학회 기관지인 《한국고대사탐구》 제6집에는 '‘世紀의 발견’, 『花郞世紀』'라는 제목으로 투고됐다. 이번에 순차로 연재하는 글은 개중에서도 학회 발표문을 토대로 하되, 오타를 바로잡거나 한자어를 한글병용으로 하는 수준에서 손봤음을 밝힌다. 앞선 연재 글들은 '욕망의 변주곡'이라는 키워드로 검색 바란다. 3. 남색男色과 파천황의 마복자摩腹子 MBC에서 《화랑세기》를 주된 텍스트로 삼아 《선덕여왕》을 제작한다고 하고, 그러면서 내가 회원으로 몸담은 신라사학회로 드라마 제작진이 ‘학술자문’이 들어왔.. 2019. 8. 8.
화랑세기 나머지를 쏟아부은 '상장돈장, 또 하나의 화랑세기' 의성조문국박물관과 한국고대사탐구회가 기획한 《의성지역 고분조사 50년과 조문국의 지배세력》 학술대회 성과를 단행본으로 정리한 것이다. 이 학술대회는 같은 제목으로 2012년 12월 7일, 의성군청에서 개최되었고, 나는 그 자리에서 '상장돈장, 또 하나의 화랑세기'를 발표했다. 단행본은 2013년 2월, 경인문화사 간이다. 이에 수록된 발표문 세부목차는 실은 내가 2001년 구상하고 집필하다 중단한 《화랑세기 또 하나의 신라2》에 수록할 가장 중요한 줄기들을 모조리 쑤셔박다시피 했다. 제1장 '전세이왕前世二王의 교敎'는 영일 냉수리비문에 '전세이왕의 교'를 토대로 진이마촌 관련 판결이 나온 점을 근거로, 신라에는 이미 상고기에 왕대별 敎를 집성한 실록이 있었으며, 따라서 진흥왕시대 국사 편찬은 그런 실록의.. 2019. 7. 6.
화랑, 그 설치와 폐지와 부활의 변주곡 1. 신라의 독특한 제도인 화랑花郞은 진흥왕 때 창설되었으니 이 화랑은 그가 이끄는 일군의 군사적 성격이 강한 집단의 우두머리를 지칭하거니와 2. 그를 일러 화랑花郞이라 하기도 하고 풍월주風月主라고도 하며, 국선國仙이라고도 했으니, 이 차이가 무엇인지 애매했거니와 그럼에도 종교 성향으로 보건대 풍월주와 국선은 말할 것도 없이 그가 도교 오두미교 천사도 계통임을 명칭으로써 안다. 3. 한데 이런 화랑은 전신이 있어 남자인 화랑에 대비되어 여성이라 그를 원화原花라 했다. 이 원화가 두 명이었는데 질투가 심해 서로 머리 끄댕이 잡고 쌈박질하다가 한쪽이 다른 한쪽을 청부 살인하고는 시멘트에 묻어버렸다. 4. 이 사건이 폭로되어 이에 열받은 진흥왕이 여자는 안되겠다 해서 남자로 하자 해서 그를 세우고는 이름하기를.. 2019. 4. 7.
본남편이 내어준 기생 아내, 그와 이룬 사랑에 정실부인이 되고 《화랑세기》가 공개되자, 그것이 후대 누군가가 조작해 낸 역사서라고 하면서, 그 근거 중 하나로 그에 드러나는 성(姓) 풍속이 파천황을 방불하는 점을 들었거니와, 신라가 아무리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사회였다고 해도, 이 정도일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뭐 그에 대해서는 내가 하도 많은 말을 해 놓았기에 중언부언할 필요를 느끼지는 못하나, 이 한 마디는 해야겠다. 웃기는 소리들 그만 하고 자빠지세요. 저가 모르면 툭하면 파천황이라는 말을 갖다 붙인다. 아래는 조선 전기 때 사람 용재(慵齋) 성현(成俔·1439~1504)의 불후한 야담필기류인 《용재총화(慵齋叢話)》 제5권에 보이는 대중례(待重來)라는 기생 이야기다. 김 사문(金斯文, 사문은 유학자 존칭)이 영남에 사신(使臣)으로 내려가 경주(慶州)에 도착하니,.. 2019. 2. 20.
화랑세기 비사 - 신라시대의 분방한 성문화 *** 아래는 대한남성과학회 간행 기관지인 《건강한 성 행복한 삶》 2017년 15권 1호(간행일 2017-07-21) '성칼럼 : 화랑세기 비사 - 신라시대의 분방한 성문화'라는 제목으로 실린 기고문으로 아래서 원문 PDF를 제공한다. 내가 이곳에 전재하는 원고는 이 학회 제출본이라, 혹 최종 간행본의 그것과 차이가 있을 수도 있음을 밝혀둔다. http://www.andrology.or.kr/pdf/2017_01/01.pdf 화랑세기 비사 - 신라시대의 분방한 성문화 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역사전문 언론인 “어머니와 아들이 간음한 흉노보단 낫다” “아내를 얻을 때 같은 성씨를 취하지 않음은 구별을 두터이 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노(魯)나라 공작이 오(吳)에 장가들고, 진(晉)나라 후작이 성이.. 2019. 1. 7.
미실을 간병하다 병을 얻은 설원랑 화랑세기 7세 풍월주 설원공전 한 대목은 그와 그의 베아트리체 미실의 '이상한' 죽음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설원)공은 건원(建元) 14년(549)에 나서 건복(建福) 23년(606) 7월에 卒했다. 그때 미실궁주가 이상한 병에 걸려 여러 달 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공이 밤낮으로 옆에서 모셨다. 미실의 병을 자신이 대신하겠다고 밤에는 반드시 기도하였다. 마침내 그 병을 대신하였다. 미실이 일어나 슬퍼하며 자신의 속옷을 함께 넣어 장사를 지내며, ‘나 또한 오래지 않아 그대를 따라 하늘에 갈 것이다’고 하니 그때 나이 58세였다. 당시 58세는 장수까지는 아니라 해도, 그런대로 천수天壽를 누렸다 할 만하다. 그럼에도 이 대목이 허심하지 아니하게 보이는 까닭은 혹 돌림병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사기도 하는 .. 2018. 12. 6.
김춘추의 여인들(3) 고타소 이 고타소(古陀炤)는 앞서 여러 번 다루었고, 그것이 등장하는 맥락이나 사건은 이곳 내 블로그에서 '고타소' 혹은 그의 남편 '품석'으로 검색하면 되거니와, 혹 그것들이 모두 필요하신 분들은 참고바란다. 고타소란 이름은 내 조사가 철저한지 아닌지는 자신이 없거니와, 일단 내 추산대로라면 《삼국사기》 권 제41 열전 제1 김유신上에 보이거니와, 그것이 등장하는 맥락은 다음과 같다. 선덕대왕 11년 임인(642)에 백제가 대량주(大梁州)를 격파했을 때, 춘추공(春秋公)의 딸 고타소랑(古陀炤娘)이 남편 품석(品釋)을 따라 죽었다. 춘추가 이를 한스럽게 여겨 고구려에 청병함으로써 백제에 대한 원한을 갚으려 하자 왕이 허락했다. 이것이 삼국시대 말기, 삼국 관계에서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니는 대량주, 곧 지금의 .. 2018. 10. 8.
풍납토성, 무령왕릉, 그리고 권오영 여러 번 이곳저곳에서 말했듯이, 나한테 《직설 무령왕릉》은 해직이 준 선물이었다. 나는 2015년 11월28일, 연합뉴스에서 해직되었거니와, 졸저는 이듬해 4월 30일자로 찍혀 도서출판 메디치미디어에서 나왔다. 해직을 축복으로 여긴 나는 이때다 싶어, 기간 미룬 일이나 이참에 마침표를 찍자 해서, 나아가 뭐 이래저래 소일거리 삼아 옛날 원고를 뒤척이며, 이 참에 그 옛날에 사산死産한 무령왕릉 원고 정리에 들어가기로 했으니, 그리하여 마침내 저 졸저가 나왔다. 남들 생각보다 일이 훨씬 빨리 진행된 까닭은 실은 그 원고가 2001년에 이미 완성을 본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15년이 흘러버렸으니, 손볼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었거니와, 무엇보다 그 사이에 무령왕릉을 둘러싼 무수한 변동이 있었다. 지금.. 2018. 9. 29.
욕망의 변주곡, 《화랑세기》(3) 여왕의 눈물겨운 종자투쟁 아래 원고는 2010년 11월 6일 가브리엘관 109호에서 한국고대사탐구학회가 '필사본 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주제로 개최한 그해 추계학술대회에 '욕망의 변주곡, 《화랑세기》'라는 제목을 발표한 글이며, 그해 이 학회 기관지인 《한국고대사탐구》 제6집에는 '‘世紀의 발견’, 『花郞世紀』'라는 제목으로 투고됐다. 이번에 순차로 연재하는 글은 개중에서도 학회 발표문을 토대로 하되, 오타를 바로잡거나 한자어를 한글병용으로 하는 수준에서 손봤음을 밝힌다. 농촌 출신인 나에게 종묘(種苗)라는 말은 익숙하다. 곡물 종자라는 뜻이다. 이 種苗가 좋아야 곡물 소출이 좋을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물론 종자(種子) 혹은 種苗가 좋다 해서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더불어 우리는 사람을 지칭해서도 種子를 운운.. 2018. 8. 31.
남자들을 전전한 13세기 가마쿠라시대 천황의 어느 후궁 2014-08-26 16:59고후가쿠사인 니조의 자전적 이야기 《도와즈가타리》 완역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성장해서는 아버지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이렇게 자식을 잃었으니 슬픔을 하소연할 데도 없다. 익숙해지면 익숙해질수록 연인과 헤어지는 아침에는 그의 여운을 그리워하며 잠자리에서 눈물을 흘리고, 기다리는 저녁에는 밤이 깊어감을 알리는 종소리에 울음소리를 죽이고, 기다리고 기다려 만난 다음에는 또 세상에 소문이 나는 것은 아닌가 괴로워한다." 13세기 가마쿠라시대 유력 가문에서 태어나 네 살 이후 궁정에서 자라기 시작해 14세 때는 천황 자리에서 물러난 상황(上皇) 고후가쿠사인(後深草院)의 후궁이 되어 아들을 낳은 여인 니조(二條·1258~1306년 이후 사망)... 2018. 8. 26.
현좌충신 양장용졸, 김대문의 이데올로기와 김부식의 이데올로기 "이는 마치 무엇과 같은가 하니, 20세기에 활발히 출간되고 있는 우리나라 각 교사校史라든가 지방지를 보면 빠짐없이 들어가 있는 항목이 '우리 학교(혹은 고장)를 빛낸 인물들'이라는 곳인데, 이것만 보면 우리는 마치 그 학교, 그 고장 출신자 전체가 모두 독립투사이며 의병장이며 뛰어난 학자인 줄 착각하게 되는 착시현상에 견줄 수 있다. 하지만 특정 집단 전체와 그 집단을 구성하는 구성원 하나하나가 그 학교, 그 고장을 빛냋 인물이 될 수는 결코 없다. 개중에는 일제에 빌붙어 나라와 동포를 팔아먹은 놈이 있는가 하면 협잡꾼도 있을 것이고 천하의 난봉꾼도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설혹 김대문(金大問)이 현좌충신(賢佐忠臣) 양장용졸(良將勇卒)은 모두 화랑도 출신이라는 말을 했다고 해서 《화랑세기》가 그런 인물.. 2018. 8. 15.
욕망의 변주곡, 《화랑세기》(1) ‘怪物(괴물)’의 출현 아래 원고는 2010년 11월 6일 가브리엘관 109호에서 한국고대사탐구학회가 '필사본 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주제로 개최한 그해 추계학술대회에 '욕망의 변주곡, 《화랑세기》'라는 제목을 발표한 글이며, 그해 이 학회 기관지인 《한국고대사탐구》 제6집에는 '‘世紀의 발견’, 『花郞世紀』'라는 제목으로 투고됐다. 이번에 순차로 연재하는 글은 개중에서도 학회 발표문을 토대로 하되, 오타를 바로잡거나 한자어를 한글병용으로 하는 수준에서 손봤음을 밝힌다. 1. ‘괴물怪物’의 출현 역사는 두 개의 축을 갖는다. 둘 중 하나만 무너져도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소설’이 된다. 그것이 바로 시간과 공간이다. 역사는 시간과 공간을 축으로 인간과 자연이 얽어내는 파노라마다. 시간 혹은 공간을 무시한 역사 구축은 이미 .. 2018. 8. 14.
궁주宮主 원주院主 전주殿主 《화랑세기》가 공개되었을 무렵, 저들 용어가 다시금 세간, 엄밀히는 고대사학계에 오르내렸다. 이들 용어는 《화랑세기》 곳곳에 등장하는 까닭이다. 이들은 실은 고려사를 무대로 하는 곳에 빈출한다. 《삼국사기》에는 단 한 번도 보이지 않고, 《삼국유사》에는 딱 두 군데만 등장하는 것으로 안다. 나아가 《해동고승전》에도 한군데 보이거니와, 그 등장 맥락이 《삼국유사》의 그것과 같다고 기억한다. 그런 까닭에 《화랑세기》 출현 이전에는 이것이 고려시대 봉작인데, 시대를 거꾸러 거슬러 올라가 신라시대에 붙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제법 많았다. 그런 의심이 이런 용어로 넘쳐나는 《화랑세기》가 출현하면서, 텍스트 자체가 위작이라는 의심으로 번지기도 했다. 내 기억에 이들이 대표하는 용어 문제로 가장 많은 심혈을 기울여 .. 2018. 8. 12.
김대문(金大問) 생몰년 미상. 신라인. 성덕왕 3년(704)에 한산주 도독에 임명되었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화랑 집단 우두머리인 풍월주를 배출했다. 아버지 오기는 27세 풍월주이며, 할아버지 예원은 20세, 증조부 보리는 12세, 고조부 이화랑은 4세, 5대조 위화랑은 초대 풍월주였다. 삼국사기 권 제46(열전 제6) 김대문 열전 : 김대문(金大問)은 본래 신라의 귀문(貴門)의 자제로서 성덕왕 3년(704)에 한산주 도독이 되었으며 전기 몇 권을 지었다. 그가 쓴 고승전(高僧傳), 화랑세기(花郞世記), 악본(樂本), 한산기(漢山記)가 아직도 남아 있다. 삼국사기 권제1(신라본기 제1) 남해차차웅 : 남해 차차웅(南解次次雄)이 왕위에 올랐다. 해동고승전 권 제1 법운(法雲) 전 : (진흥왕) 37년(576)에는 처음으로.. 2018. 3. 19.
世紀(세기) 혹은 世記(세기) 혹은 세가(世家), 그리고 화랑세기(花郎世記) 실을 의미하는 糸(실 사)가 그 글자 의미를 한정하는 부수로 들어가 있는 데서 엿보듯이 '紀'라는 말은 본래 그물 주둥이를 오므려 조는 '벼리'를 의미한다. 이 벼리를 꽉 조으면, 전체를 갈무리한다. 이 글자는 아울러 記와 같은 발음, 같은 뜻으로 기록하는 일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기색은(史記》에서 '本紀(본기)'라는 말을 설명하기를 "紀者, 記也. 本其事而記之", 다시 말해, 이 경우 紀는 기록한다는 뜻이다. 그 사실에 바탕을 두고 그것을 기록하는 까닭에 본기라 부른다고 한 것이 그 증거다. 소위 말하는 기전체(紀傳體) 역사서에서 재위한 왕 순서를 따라 일어난 주요한 일들을 요약한 부분을 본기라고 한 까닭은 그것이 기전체 전체 역사서에서 벼리, 곧 가장 중요한 축이기 때문이다. 이런 紀를 응용한 말 .. 2018. 3.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