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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의 특별하지 않은 박물관 이야기39

박물관의 소리: 박물관에서 시끄러울 수 있는 권리 어린이박물관 조성을 시작하면서 관장님은 이런 비전을 던지셨다. ‘뛰어노는 박물관’. 다소 혼란스러운 반응이 이어졌다. 내부에서는 ‘다른 멋진 비전도 많을 텐데, 아니 그것보다도 박물관에서 뛰는 것이 맞나?’ 같은 말들이 오고 갔다. 그러고 보면 박물관이라는 곳은 ‘뛴다’라는 단어와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곳이다. 하나 덧붙여 ‘시끄럽다’라는 단어와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것은 박물관 안만 들여다보아도 몸으로 체감한다. 박물관 넓은 공간에는 유물이 유리장 안에 모셔져 있다. 유리 안에 들어가지 않는 유물에는 가까이 갈 수 없도록 펜스가 쳐져 있다. 어떨 때는 너무 적막해서 또각또각하는 구두 소리마저도 시끄러울 때가 있다. 여기서는 ‘유물’, 그리고 ‘유물을 감상하는 사람들’만이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 같다. .. 2024. 9. 6.
박물관의 언어 ‘물건’을 대상으로 하지만, 실은 박물관은 글로 가득 찬 공간이다. 패널부터 네임텍, 도록에 이르기까지 박물관은 여러 방법을 통해 사람들에게 이 ‘물건’들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려주려 한다. 요새는 이 방법이라는 것이 영상이나 디지털 기기로도 확장되고는 있지만, 글에 의한 설명은 박물관이 생겨난 이래 지금까지도 여전히 기본적으로 사용된다.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이 효과적인가를 떠나, 만드는 시간이나 예산의 측면을 고려한다면 글이라는 것은 박물관이 존재하는 한, 계속해서 사용될 것이다. 제작의 수월성을 말하긴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박물관의 글을 쓰기는 어렵다. 사람들이 읽기 쉽게 쓰는 것이 어렵다라는 차원의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박물관이 갖는 힘, 그리고 여기서 파생된 박물관의 글이 갖는 .. 2024. 9. 1.
서울올림픽이 우리에게 남긴 것 내년도 전시에 대한 회의가 시작되었다. 여러 가지 주제가 나왔지만, 그 중 하나는 서울올림픽이었다. 어차피 나는 보조 역할이니까 하며 다소 방관자적인 입장으로 회의에 참여한 나에게 과장님이 말씀하셨다. “서울올림픽, 이건 누가 하지.” “○○ 선생, 자네가 할 수도 있어.” 그 말에 나는 서울올림픽에 대해 떠올려보았다. ‘서울올림픽? 올림픽 주경기장이랑 굴렁쇠 소년 말고 또 뭐가 있지?’라고. 서울올림픽 30주년 전시 주제를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종종 받는다. 그 중 하나는 시의성이다. 생각보다 시의성이라는 것은 중요하다. 예컨대 ○○에 대한 몇 주년, 이런 것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쉽기도 하고 전시하기 위한 당위성을 얻는다. 최근 일어나는 일에 대한 시의성 있는 전시도 필요하다... 2024. 7. 6.
이 시대의 대표 이미지는 무엇이냐는 질문: 서울과 전차 글쓰기에서도 문장의 처음이 고민이 되듯, 전시에서도 처음이 고민된다. 여기서 처음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포함된다. 이를테면 전시 프롤로그. 전시장의 색, 전시 파사드 등과 같은 것.관람객이 전시장에 와서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것이기에, 어떻게 하면 첫 인상을 좋게 보일까라는 점이 학예사가 하게 되는 고민이다. 특히 전시 파사드는 단순히 전시장 입구라는 것에서 벗어나, 일종의 포스터 같은 성격을 띤다는 점에서 신경을 계속 쓰는 존재다.어떤 이미지를 대표 이미지로 보여줄 것인가는 결국 이 전시 주제가 무엇인지를 함축하는 일일 터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특히나 상설전시에서 파사드는 너무 과하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을 유인해야 하고, 주제도 은근슬쩍 보여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난이도가 있다고 할.. 2024. 4. 28.
모던걸과 모던보이, 경성 사람 “○○ 선생님. 이번 전시 준비는 어때요?” ○○ 선생님은 한창 로비에서 열릴 작은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작은 전시이지만, 한 달 만에 전시를 준비해야 하기에 그 압박감은 큰 전시를 준비할 때 못지않다. 사실은 상황이 뻔히 그려지지만, 어떠냐고 묻는 것은 일종의 인사치례다. 인사에 대한 답은 공식처럼 돌아온다. “자료도 없고 힘들어요. 특히 시대가 일제 강점기라 신문 기사 밖에 없네요.” 이 시대를 전시해봤으면 누구나 알 고통이기에, 공감을 듬뿍 담아 고개를 끄떡인다. “알죠. 자료가 얼마 없으니 있는 걸로 할 수 밖에요. 힘내세요!” 이 시대를 전시한다는 것 전시를 준비할 때, 제일 고민이 많이 되는 시대는 일제강점기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생각보다 시각 자료가 없다는 것도 큰 이유다... 2024. 4. 7.
한양 사람들로 보는 한양(3): 준비하다가 엎어진 상설전 개편 그동안 ‘사람으로 바라보기’에 대해 이야기 했지만, 이것은 나만이 그랬던 것이 아니라 우리 박물관에서는 여러 번 시도되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유만주의 한양’이라는 전시라든지, ‘명동 이야기’같은 전시가 그러했다. 뭐, 굳이 제목을 들지 않더라도 우리의 전시는 거의 그러했다. 여타의 박물관도 그렇겠지만, 늘 ‘다른 곳과 어떻게 차이를 줄까’라는 점이 고민이었고, 이것이 그 고민의 해결법 중 하나였던 것이다. 타 박물관과 어떤 차이점을 둘 것인가 내가 1년간 준비했다가 엎어진 상설전시 개편도 그러했다. ‘한양 사람들의 이야기로 한양의 공간을 보여주자’, 이것을 국립중앙박물관의 조선실과의 차이점으로 만들자는 것이 개편 방향이었다. 물론 이것은 본래의 상설전시도 기본적으로 가진 고민이었을 것이다. 통사 성격인.. 2024.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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