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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납토성20

풍납토성과 이형구 풍납토성이 있기까지 이 사람 이름을 뺄 수 없다. 선문대 이형구 선생이다. 며칠 전에도 열정적인 발표를 했다. 툭하면 화형식을 당했고, 툭하면 발굴현장에 갇혀 오도가도 못했다. 세 시간 컨테이너박스에 감금 당하기도 했다. 나는 잘 빠져 나와 그 박스 근처를 어슬렁이면서 담배를 피웠다. 안다. 이 양반 모시기 힘든 거 누구나 안다. 성정은 참으로 지랄맞아, 요즘은 연세 들어가며 더 그런 증세가 농후하다. 하지만 이런 미친 사람이 있어 풍납토성이 있다. 그의 미침에 비하면 내 그 미침은 새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 언제인가 풍납토성에 그의 흉상이 제막할 그날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내 세대가 아니면 후세는 하리라. 그것은 단순한 흉상이 아니요, 어떤 미친 놈의 흉상이라 내가 만약 그때까지 살아있으면 그리 쓸.. 2020. 12. 5.
한강 때문에 왕성王城일 수 없다던 풍납토성 1987년인가 89년인가 최몽룡 권오영 이름으로 풍납토성 논문 한 편이 나왔다. 요점은 풍납은 왕성이 될수 없단 거였다. 이유는 걸핏하면 홍수가 나는 데다가 왕성을 건설할 순 없단 거였다. 나는 이 논리를 납득할 수 없었다. 풍납이 왕성이건 아니건 백제시대에 무수한 사람들이 살았다. 졸저에서 이리 말했다. 왕성이 아니라고 하자. 왕성 아닌 도시라 해서 그걸 미쳤다고 강가에 건설하는가? 왕성이냐 아니냐가 문제는 아니다. 그건 부차적이다. 한데 이 논문이 이후 주구장창 인용됐다. 이 논문은 나중에 권선생한테 들으니 권선생이 거의 다 썼다. 요샌 틈만 나면 권선생은 내가 잘못 봤다는 고백을 한다. 자설을 폐기했음을 고백하는 사람 난 거의 보질 못했다. (2017. 11. 26) *** The Han River.. 2020. 11. 29.
고고학 조사방식을 다시 생각한다, 풍납토성의 경우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발굴한 풍납토성 미래마을지구 백제 창고다. 이것을 죽 그어 그대로 따라 나가면 인접 지역 한신대박물관이 발굴한 경당지구에서 확인한 창고건물지로 닿는다. 금을 그어보면 그리 나온다. 이리되면 수백미터 창고 건물지가 완성된다. 한신대박물관 창고 건물지에서는 그 유명한 시유도기 20여점인가가 나왔다. 이른바 장독대다. 무엇이 발굴인가? 나는 저 대옹을 그대로 박아두었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조사를 명분으로 다 걷어냈다. 이것이 발굴인가? 파괴다. 훗날 이곳을 박물관으로 만들 일이 있다면 짜가 말고 그 실물 그대로 현장에 도로 갖다놓아야 한다고 본다. (2017. 11. 28) *** 3년이 지난 지금에는 생각이 바뀐 대목이 있다. 다만 고민하던 당시 흔적이라 해서 그대로 전재한다. 2020. 11. 28.
Excavation of Pungnaptoseong Fortress back to 2008 All photos were taken on Nov. 27th, 2008. Back in 2008, archaeologists disvovered 1,500 year old storage jars at Mirae-maeul Village district inside Pungnaptoseong Fortress. Located in the south of Seoul, the fortress is believed to have been the royal palace of the Baekje kingdom while the kingdom had its capital at Hanseong (present-day Seoul). In AD 475 Baekje had to move the capital to prese.. 2020. 10. 7.
문화재 보존을 앞세운 소개주의는 또 다른 폭력이다 풍납토성 보존대책은 실은 예산 지원을 줄여야 한다. 매년 토지보상비로만 350억원을 쏟아붇는다. 우리나라 문화재 보수관리비가 대략 연간 2천억원이다. 개중 순수 토지매입비는 더 준다. 그런 전체 예산 규모에서 무려 350억원을 풍납동 한군데 쏟아붓는다. 이는 특혜 중의 특혜다. 왜 이리 되었는가? 소개 疏開 evacation 정책 때문이다. 돈을 퍼부어 토지를 매입하고 주민을 몰아내야 한다는 발상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풍납동 전체를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매입해야 한다는 박원순 시장의 발상은 근간이 오류다. (2015. 10. 6) *** 나 역시 이 업계 초창기엔 소개주의疏開主義였다고 기억한다. 문화재 보존을 위해서는 국가가 해당 토지를 다 매입하는 일이 최선이라 생각한 듯 하다. 하지만 이는 해당 문화.. 2020. 10. 7.
삼표산업은 풍납토성을 놓아줄 때다 www.yna.co.kr/view/AKR20200901069400004?section=culture/scholarship 풍납토성 복원사업 송파구, 삼표에 "레미콘공장 철수" 소송 | 연합뉴스 풍납토성 복원사업 송파구, 삼표에 "레미콘공장 철수" 소송, 김계연기자, 정치뉴스 (송고시간 2020-09-01 10:41) www.yna.co.kr 풍납토성 삼표레미콘공장이 두고두고 골치다. 저네들이라고 왜 사정이 없기야 하겠는가? 그럼에도 이번 사태에 대처하는 방식을 보면, 이 소송 끝나고 나면 저 소송으로 맞서고, 저 소송이 끝나고 나면 이 소송으로 맞서는 그런 방식을 택하는데, 것도 이제는 점점 궁지로 몰리는 형국이다. 내가 알기로는 저 공장 수용과 그를 위한 제반 과정은 모든 법적 분쟁을 마무리했다. 이제.. 2020. 9. 1.
방 뒤지다 튀어나온 과거, 풍납토성 발굴현장 파괴와 이달의 기자상 방을 뒤지다 보면 별의별난 것들이 튀어나와 시간여행을 하기도 한다. 아들놈 방을 정리하던 마느래가 찾아서 저걸 던지면서 하는 말이.. 풍납토성 하면 이가 갈린다. 였다. 저 사태에 내가 함몰해서 온사방에서 협박이 들어오던 시절..뱃속엔 아들놈이 있었고, 그 협박 견디다 못해 집사람은 친정으로 피신했다. (2016. 5. 17) *** 풍납토성 경당지구 무단 파괴사건 보도로 나는 그 무렵 한국기자협회가 주관 시행하는 이달의기자상을 탔다. 그 상패다. 보니 상패를 받은 날이 2000년 6월 26일이다. 꼭 20년 전이다. 그때 지 엄마 뱃속에 있던 놈이 대학생이 되었다. 2020. 5. 17.
'서울 풍납동 토성' vs. '서울 몽촌토성' 문화재 지정 명칭을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 논란이 끊이지 아니했고, 그런 논쟁을 거쳐 적지 않은 개변이 이뤄져 오늘에 이른다. 그 논쟁과 노력을 내가 폄훼하고는 생각은 없다. 오죽이나 골치 아픈 문제인가? 그제 내가 '풍납토성' 검색어 문제를 거론했거니와, 오늘은 그 연장에서 이 풍납토성과 각기 북남에 위치하면서 세트를 이루는 한성백제시대 주요 도성 중 하나인 몽촌토성 문제를 거론하고져 한다. 몽촌토성은 현재 대한민국 사적 제297호이거니와, 그 소재지는 서울 송파구 방이2동 88-3번지 일대다. 서울올림픽공원 안에 위치한다. 한데 그 지정 명칭은 '서울 몽촌토성夢村土城'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풍납토성 공식 명칭이 '서울 풍납동 토성'이라면, 또 그것이 나름 원칙을 준수한 것이라면, 당연히 이 몽촌토.. 2020. 3. 29.
"문화재보호법은 개발촉진법", 풍납토성 성벽 짜개서 보여준다 풍납레미콘공장 부지 역사공원화…토성벽·해자 등 복원송고시간 2020-03-19 09:18송파구, 풍납동 토성 복원·정비사업 실행계획 나는 극렬한 현장박물관주의자다. 박물관 자체를 반대할 생각은 없지만, 현장박물관이라 해서 유적 밀집지역을 피해 그 인근 어딘가 유적이 확인되지 않는 공터에다가 박물관을 짓는 짓거리를 경멸한다는 말 여러번 했다. 기왕 지을 것 같으면, 유적이 밀집한 바로 그 심장부에다가 지어야 한다고 했다. 그 일환으로 풍납토성은 성벽을 짜개서 그대로 보여주여야 한다고 했다. 그대로 짜개고, 그 짜갠 곳으로 사람을 지나다니게 하면서 그 성벽의 실체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문화재위원입네, 고고학 전문가입네 하는 이들한테 번번히 벽에 막히곤 했다. 이 친구들은 외국 가서는.. 2020. 3. 19.
'풍납토성'이 없는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노느니 염불하는 심정으로 심심풀이 땅콩으로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을 들어가봤다. 지정문화재 관련 정보는 다 제공한다 보면 된다. 지방지정문화재까지 커버하는 것으로 안다. 어떤 문화재를 검색해 보까 잠시간 머뭇하다가 그래도 '풍납토성'이 한때 내가 미쳐 날뛰던 곳이라 그걸 두들긴다. 오잉? '풍납토성'이라는 키워드를 두들겼는데 결과는 저렇다. 검색결과가 없다니????풍납토성이 사라라졌나? 지정해제됐나? 그 유명한 풍납토성이? 대가리를 굴린다. 그래 우리 공무원들 심성을 고려해서 다른 키워드를 넣어본다. 지금의 풍납토성은 이전에는 경기도 광주군 구천면 '풍납리토성'이라는 공식 이름을 얻었으므로, 풍납리토성이라는 키워드를 넣어봤다. 역시나 엄따!!! 대체 우째된 일인가? 할 수 없이 다 빼고 '풍납'이라고 .. 2020. 3. 9.
홍수라는 고고학자, 폭우가 노출한 고대 석관 '폭우·강풍 덕에' 伊 남부서 고대로마시대 추정 석관 드러나송고시간 | 2019-11-17 22:48 요새 이탈리아가 기상재해로 말이 아닌 모양인데, 폭우에 베네치아가 쑥대밭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더니만, 이번에는 새로운 고고학 발굴소식도 보탠다. 우리 공장 로마특파원 전언에 의하면, 폭우를 동반한 강풍에 각종 피해가 속출하는 이태리 남부, 그러니깐 수도 로마를 기준으로 그 남동쪽으로 약 600㎞가량 떨어진 남부 풀리아주 항구 도시 포르토 체사레오 해안가에서 오래된 석관이 최근 노출되었다는 것인데, 그 주변에서는 두개골을 비롯한 인골까지 발견되었나 보다. 폭우에 노출된 석관이 어느 시대에 속하는지 고고학도들이 조사 중이라는데 고대 로마제국 시대에 속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도 나온 모양이다. 땅속 깊이.. 2019. 11. 18.
《풍납토성 그 이후》 풍납토성 글 쓴다고 13년 전에 낸 내 책을 참고 중이다. 지금 쓰면 저리 쓰지는 않을 것이다. 그때는 그만큼 내가 격정적이었고 나 아니면 풍납토성 없어진다는 착각에 살았다. 특히나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 대목이 많음을 고백한다. 저걸 내고는 적절한 시점에 《풍납토성 그 이후》(가제)라는 제목으로 이 책 이후에 전개된 풍납토성 사태를 정리하고 싶었다. 이 책이 나름 의미가 있다면 풍납토성 사태 한복판에서 그것을 직접 대면한 자의 증언이기에 비록 그 증언이 나 중심의 편파적일 수밖에 없는 숙명은 있을지언정 당시의 사태를 나름대로는 절절히 기록하고자 했으며, 그에 더불어 풍납토성 일지를 나름으로는 일목으로 요연하게 정리하고자 한 데 있을 것이다. 특히 20세기 이래 풍납토성 역사는 그간 단편을 면치 못했는데 .. 2019. 10. 20.
2015년 10월의 풍납토성 학술대회 단상 October 7, 2015 at 8:07 AM 글인데, 그 이틀전인 5일 오후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풍납토성의 성격 규명을 위한 학술세미나 '에서 있었던 일 중 단상 하나를 정리한 것이다. 이 학술대회는 도시사학회·백제학회·중국고중세학회·중부고고학회·한국고고학회·한국고대사학회·한국상고사학회가 주최·주관하고, 문화재청·서울시청·송파구청이 후원한 자리였다. 대회 개요는 아래 첨부하거니와, 이에서 나는 토론자로 참석했다. 90년대 들어 풍납토성이 한창 발굴되고 이곳이 한성도읍기 왕성임이 확실해지는 성과가 쏟아질 때도 왜 항용 홍수 범람 위기에 노출되는 한강변에 왕성을 쌓았느냐는 반론 혹은 의문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이 논리를 제공한 이가 실은 최몽룡 당시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와 당.. 2019. 10. 7.
1925년 을축년대홍수 이전 풍납토성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 유리건판 사진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 이전 풍납토성을 담았다는 점에서 중대한 의의를 지닌다. 더불어 1910년대 이 산하가 어떤 몰골인지를 엿보는데도 중요하다. 아차산에서 한강 너머 풍납토성을 바라본 장면이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천둥벌거숭이 민둥산 붉은산이다. 이런 환경에서 도굴은 일상화한다. 봐! 도굴하기 지기잖아? 2019. 9. 17.
소위 지식인사회의 3대 새빨간 거짓말 우리 학자들이 논문이나 책에서 매우 자주 쓰는 말로 세 가지가 있다. 첫째가 "오류가 있을 수 있으므로 동학同學들의 많은 지도편달(혹은 질정)을 바란다"는 것이요, 둘째가 "이번 논고論考에서는 다루지 못한 문제는 별도의 자리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며, 셋째가 "좀더 많은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학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적어도 우리 고고학계나 역사학계에서 이 말을 말 그대로 받아들였다가는 낭패보기 십상이다. 편달, 즉 채찍질을 바란다고 해놓고선 자기 학설이나 주장을 비판하는 '동학'에게는 발끈하다 못해 서로 사이가 틀어지기 일쑤이고, 약속한 '별도의 논고'는 (죽을 때까지-인용자 보완) 도통 나올 기미가 없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런데 "좀더 많은 검토가 필요하다"는 말은 그동안 자기가 .. 2019. 9. 11.
Excavation of Pungnaptoseong Fortress, 2011 Excavation of Pungnaptoseong Fortress by the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Seoul, Nov. 11th, 2011 國立文化財硏究所 漢城 風納土城 東壁 切開調査, 2011年11月 16日 당시 이 발굴 현장에는 느닷없이 가는 바람에 사진기가 없어 폰카로 이렇게 남긴 것이 나로서는 유일하다. 그것을 보정하여 게재한다.사진 속 밀집모자 옆이 오늘날의 풍납토성을 있게 한 주인공 이형구 선문대 교수다. 발굴지점은 동벽 중에서도 이른바 태양열주택지구라 해서 풍납동 아산병원과 가까운 지점이다. 그 발굴지점을 대략 표시하면 아래와 같다. 성벽 절개조사는 이것이 두번째다. 1999년 첫번째 절개조사지점은 대략 다음과 같다. 같.. 2019. 6. 10.
기요노 겐지(淸野謙次)의 풍납토성 탐방기(1926) 이 탐방기는 내가 발굴해 일찍이 연합뉴스를 통해 전문을 공개했으니, 아마도 이곳저곳에서 검색이 될 것이다. 이 탐방기는 1925년 을축년대홍수(乙丑年大洪水) 직후 현장을 탐방한 증언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이를 보면, 세키노 다다시(關野貞)는 분명 풍납토성이 백제 왕성일 가능성을 지목했으며, 두번째로, 이미 당시에 기와가 출토됐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상하게도 조선총독부에서는 이 풍납토성에 대한 이렇다 할 만한 조치라고는 1927년 고적(古跡)으로 지정한 것 말고는 없다. 그것도 당시 현존하는 성벽 구간만 지정했으니, 이것이 대한민국 사적으로 자동 빵으로 재지정되면서, 역시 성벽만 지정되고 말았다. 1967년 이곳을 발굴한 김원룡은 이곳이 매우 중대한 의미를 지닌 곳임을 직감했지만, .. 2019. 2. 1.
몽촌토성 북문지 일원 발굴조사 학술자문회의 자료집(2018.11. 한성백제박물관 백제학연구소) 서울 몽촌토성을 연차발굴 중인 한성백제박물관 백제학연구소가 2018년 그 발굴조사 성과를 정리한 약보고서 원문이다. 이에 대한 요약 정리는 아래 기사를 클릭하라 몽촌토성서 회전교차로·포장도로·대형 집수지 발견 2018. 11. 15.
풍납토성, 무령왕릉, 그리고 권오영 여러 번 이곳저곳에서 말했듯이, 나한테 《직설 무령왕릉》은 해직이 준 선물이었다. 나는 2015년 11월28일, 연합뉴스에서 해직되었거니와, 졸저는 이듬해 4월 30일자로 찍혀 도서출판 메디치미디어에서 나왔다. 해직을 축복으로 여긴 나는 이때다 싶어, 기간 미룬 일이나 이참에 마침표를 찍자 해서, 나아가 뭐 이래저래 소일거리 삼아 옛날 원고를 뒤척이며, 이 참에 그 옛날에 사산死産한 무령왕릉 원고 정리에 들어가기로 했으니, 그리하여 마침내 저 졸저가 나왔다. 남들 생각보다 일이 훨씬 빨리 진행된 까닭은 실은 그 원고가 2001년에 이미 완성을 본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15년이 흘러버렸으니, 손볼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었거니와, 무엇보다 그 사이에 무령왕릉을 둘러싼 무수한 변동이 있었다. 지금.. 2018. 9. 29.
Cultural Heritage Vandalism, the Tragedy of Pungnaptoseong Fortress 2000년 5월 13일은 주말인 토요일이었다. 휴무일인 이날 나는 풍납토성과 송파경찰서에서 온 종일을 보냈다. 그날 오전 9시쯤, 풍납토성 한복판쯤에 위치한 경당연립주택 아파트 재개발 예정지 발굴현장에서 발굴현장 무단 파괴라는 초유의 사태가 터졌기 때문이었다. 저 사진은 당시 발굴현상 참상을 전하는 연합뉴스 보도사진이다. 내 입사 동기로 지금은 언론계를 떠나 뉴질랜드에 정착한 양현택 군 작품이다. 그는 이날 내 연락을 받고 현장에 출동해 저 사진을 찍어 발행한 것이다. 보다시피 발굴현장은 포크레인 자국이 선명하다. 포크레인을 동원한 아파트 재건축 조합장이 이날 오전 8시30분쯤인가 현장에 들이닥쳐 당시 지상에 노출된 유구 중에서도 9호 구덩이라는 대형 유구 하나를 작살냈다. 오른쪽 사진 귀퉁이에 일부 노.. 2018. 3.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