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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납토성25

풍납토성이 왕성이라는 증거가 어딨냐 삿대질하던 者들의 과거 1996년 이래 풍납토성이 잇따라 발굴되기 시작하면서 그것이 한성도읍기 백제 왕성임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속속 제출되었지만, 풍납토성 발굴 이전 절대 무변한 왕성으로 간주된 몽촌토성을 지지하던 고고학도나 역사학도는 풍납토성을 향해 반문하기를 "풍납토성이 왕성이라는 증거가 뭐냐" 고 했더랬다. 한데 그때 내가 참말로 신기하고 의아했던 점이 그런 말을 하는 자들이 그간 제시한 몽촌토성이 왕성이라는 근거는 코딱지 만큼도 없다는 것이었다. 지들이 몽촌토성이 왕성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내세운 것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왕성이라는 근거가 없음에도 그렇다고 윽박을 질러놓고서도 그보다 왕성임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몽촌에 견주어서는 하늘 땅만큼이나 많은 풍납토성에 대해서는 감히 어떻게 그런 억지를 부렸는지 10여년이 흐른 .. 2022. 1. 12.
풍납토성 옆 사선아파트 차타고 지나가다가 보고 놀라서 찍은 아파트 사진입니다. 마치 칼로 단면을 싸악 자른 듯이 사선으로 잘려 있습니다. 청룡열차 같기도 하고요. 미끄럼틀 같기도 하고요. 왜 이렇게 아파트를 지었는지 궁금해 나중에 선생님께 여쭤보니 ‘앙각’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앙각? 앙각 (仰角, angle of elevation) 올려다 보는 각이라고 하여 앙각이라고 함. 시준선이 수평보다 위쪽에 있는 [+]각. 이라고 합니다. (출처 : 건축용어대사전) 이렇게 앙각 기준이 적용되어 아파트를 지은 이유는 바로 풍납토성 문화재가 바로 아파트 옆에 있기 때문입니다. 찾아보니 현행법상 문화재 보호구역 내에 들어서는 건축물은 경계 지표면에서 문화재 높이를 기준으로 높이가 제한되는데, 그 앙각이 27도 이내라고 합니다. 「문화재보호.. 2021. 9. 4.
풍납토성 경당지구 한성백제 우물 경당지구 206호 유구라고 명명한 데서 발견된 한성백제시대 우물이다. 한 변이 11m인 방형 평면으로 토대를 만들고 그 가운데 우물을 만든 구조다. 우물은 깊이 3m, 바닥 쪽에는 각진나무로 방형 틀을 만들고 자갈을 채워 바탕을 만들었다. 그 위로 판판한 나무를 서로 맞추어서 4단 나무틀을 만들었다. 그 나무틀 위로 납작하게 깬돌을 이용하여 모를 죽여 쌓아올려 위로 올라가면서 둥근 원형을 이룬다. 우물은 단면구조로 보면 전형적인 천원지방天圓地方이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가 났다는 천문우주론을 실현했다. 나무틀 아래는 215점 토기를 5단으로 차곡차곡 쌓았으며 그 위로 돌을 채웠다. 우물 안 토기는 모두 입·목 부문을 일부러 깨뜨린 흔적이 확인됐으니, 이는 훼기毁器 혹은 파기破器라는 동아시아 제사의식과 .. 2021. 7. 17.
백제삼부작, 어쩌다 세트가 된 발굴시리즈 이걸 애초 계획한 건 아니다. 풍납토성으로 신고하고 나서 무령왕릉을 준비하다 보니 공교롭게도 백제 삼부작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풍납토성은 한성도읍기를 증언하는 곳이며 무령왕릉은 웅진도읍기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사비도읍기가 남았다. 사비도읍기는 무엇으로 할까 고민 중이다. 언뜻 부여 왕흥사지가 어떨까 하지만, 이건 이미 발굴조사단인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이상하게 김을 빼 버렸다. 한데 드라마성이 심대하게 부족해 내가 언젠간 손을 대어보리라는 생각도 했다. 이 외에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왕궁리 유적 발굴이 있지만 이건 주무대가 부여가 아니라 걸린다. 내침 김에 익산까지 4부작으로???? 하고 싶은 건 천지빼까리요 인생은 유한하며 몸뚱아리는 달랑 하나에 불알도 아직까진 꼴랑 두 개라 마음 먹은 대로 .. 2021. 5. 4.
뒤늦게 풍납토성 배경으로 찍은 사진 언제쯤인가? 2001년 졸저 《풍납토성 500년 백제를 깨우다》(김영사) 발간 직후일 것이다. 미디어오늘인지 날 취재하고는 풍납토성을 배경으로 한 사진 있음 달라 했다. 한데 그때까지 정작 내가 이곳을 배경으로 찍은 내 사진이 단 한 장도 없더라. 이후에는 더러 일부러 그런 사진을 찍었다. 한데 이후 그런 사진을 요청한 데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사진은 2008년 5월 7일 경당지구를 한신대박물관이 재발굴하고, 그에서 다시 44호 건물지를 재노출했을 적이다. 이 건물지는 아직 그 성격이 오리무중이다. 그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없다. 혹자는 종묘 혹은 그에 비견하는 신전 건축물로 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추단일 뿐이다. 바닥은 숯을 깔아, 시멘트처럼 단단히 쿵쿵 소리가 났다. 그 인접 지점 토지.. 2020. 12. 5.
풍납토성과 이형구 풍납토성이 있기까지 이 사람 이름을 뺄 수 없다. 선문대 이형구 선생이다. 며칠 전에도 열정적인 발표를 했다. 툭하면 화형식을 당했고, 툭하면 발굴현장에 갇혀 오도가도 못했다. 세 시간 컨테이너박스에 감금 당하기도 했다. 나는 잘 빠져 나와 그 박스 근처를 어슬렁이면서 담배를 피웠다. 안다. 이 양반 모시기 힘든 거 누구나 안다. 성정은 참으로 지랄맞아, 요즘은 연세 들어가며 더 그런 증세가 농후하다. 하지만 이런 미친 사람이 있어 풍납토성이 있다. 그의 미침에 비하면 내 그 미침은 새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 언제인가 풍납토성에 그의 흉상이 제막할 그날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내 세대가 아니면 후세는 하리라. 그것은 단순한 흉상이 아니요, 어떤 미친 놈의 흉상이라 내가 만약 그때까지 살아있으면 그리 쓸.. 2020.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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