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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납토성23

풍납토성 경당지구 한성백제 우물 경당지구 206호 유구라고 명명한 데서 발견된 한성백제시대 우물이다. 한 변이 11m인 방형 평면으로 토대를 만들고 그 가운데 우물을 만든 구조다. 우물은 깊이 3m, 바닥 쪽에는 각진나무로 방형 틀을 만들고 자갈을 채워 바탕을 만들었다. 그 위로 판판한 나무를 서로 맞추어서 4단 나무틀을 만들었다. 그 나무틀 위로 납작하게 깬돌을 이용하여 모를 죽여 쌓아올려 위로 올라가면서 둥근 원형을 이룬다. 우물은 단면구조로 보면 전형적인 천원지방天圓地方이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가 났다는 천문우주론을 실현했다. 나무틀 아래는 215점 토기를 5단으로 차곡차곡 쌓았으며 그 위로 돌을 채웠다. 우물 안 토기는 모두 입·목 부문을 일부러 깨뜨린 흔적이 확인됐으니, 이는 훼기毁器 혹은 파기破器라는 동아시아 제사의식과 .. 2021. 7. 17.
백제삼부작, 어쩌다 세트가 된 발굴시리즈 이걸 애초 계획한 건 아니다. 풍납토성으로 신고하고 나서 무령왕릉을 준비하다 보니 공교롭게도 백제 삼부작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풍납토성은 한성도읍기를 증언하는 곳이며 무령왕릉은 웅진도읍기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사비도읍기가 남았다. 사비도읍기는 무엇으로 할까 고민 중이다. 언뜻 부여 왕흥사지가 어떨까 하지만, 이건 이미 발굴조사단인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이상하게 김을 빼 버렸다. 한데 드라마성이 심대하게 부족해 내가 언젠간 손을 대어보리라는 생각도 했다. 이 외에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왕궁리 유적 발굴이 있지만 이건 주무대가 부여가 아니라 걸린다. 내침 김에 익산까지 4부작으로???? 하고 싶은 건 천지빼까리요 인생은 유한하며 몸뚱아리는 달랑 하나에 불알도 아직까진 꼴랑 두 개라 마음 먹은 대로 .. 2021. 5. 4.
뒤늦게 풍납토성 배경으로 찍은 사진 언제쯤인가? 2001년 졸저 《풍납토성 500년 백제를 깨우다》(김영사) 발간 직후일 것이다. 미디어오늘인지 날 취재하고는 풍납토성을 배경으로 한 사진 있음 달라 했다. 한데 그때까지 정작 내가 이곳을 배경으로 찍은 내 사진이 단 한 장도 없더라. 이후에는 더러 일부러 그런 사진을 찍었다. 한데 이후 그런 사진을 요청한 데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사진은 2008년 5월 7일 경당지구를 한신대박물관이 재발굴하고, 그에서 다시 44호 건물지를 재노출했을 적이다. 이 건물지는 아직 그 성격이 오리무중이다. 그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가 없다. 혹자는 종묘 혹은 그에 비견하는 신전 건축물로 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추단일 뿐이다. 바닥은 숯을 깔아, 시멘트처럼 단단히 쿵쿵 소리가 났다. 그 인접 지점 토지.. 2020. 12. 5.
풍납토성과 이형구 풍납토성이 있기까지 이 사람 이름을 뺄 수 없다. 선문대 이형구 선생이다. 며칠 전에도 열정적인 발표를 했다. 툭하면 화형식을 당했고, 툭하면 발굴현장에 갇혀 오도가도 못했다. 세 시간 컨테이너박스에 감금 당하기도 했다. 나는 잘 빠져 나와 그 박스 근처를 어슬렁이면서 담배를 피웠다. 안다. 이 양반 모시기 힘든 거 누구나 안다. 성정은 참으로 지랄맞아, 요즘은 연세 들어가며 더 그런 증세가 농후하다. 하지만 이런 미친 사람이 있어 풍납토성이 있다. 그의 미침에 비하면 내 그 미침은 새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 언제인가 풍납토성에 그의 흉상이 제막할 그날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내 세대가 아니면 후세는 하리라. 그것은 단순한 흉상이 아니요, 어떤 미친 놈의 흉상이라 내가 만약 그때까지 살아있으면 그리 쓸.. 2020. 12. 5.
한강 때문에 왕성王城일 수 없다던 풍납토성 1987년인가 89년인가 최몽룡 권오영 이름으로 풍납토성 논문 한 편이 나왔다. 요점은 풍납은 왕성이 될수 없단 거였다. 이유는 걸핏하면 홍수가 나는 데다가 왕성을 건설할 순 없단 거였다. 나는 이 논리를 납득할 수 없었다. 풍납이 왕성이건 아니건 백제시대에 무수한 사람들이 살았다. 졸저에서 이리 말했다. 왕성이 아니라고 하자. 왕성 아닌 도시라 해서 그걸 미쳤다고 강가에 건설하는가? 왕성이냐 아니냐가 문제는 아니다. 그건 부차적이다. 한데 이 논문이 이후 주구장창 인용됐다. 이 논문은 나중에 권선생한테 들으니 권선생이 거의 다 썼다. 요샌 틈만 나면 권선생은 내가 잘못 봤다는 고백을 한다. 자설을 폐기했음을 고백하는 사람 난 거의 보질 못했다. (2017. 11. 26) *** The Han River.. 2020. 11. 29.
고고학 조사방식을 다시 생각한다, 풍납토성의 경우 국립문화재연구소가 발굴한 풍납토성 미래마을지구 백제 창고다. 이것을 죽 그어 그대로 따라 나가면 인접 지역 한신대박물관이 발굴한 경당지구에서 확인한 창고건물지로 닿는다. 금을 그어보면 그리 나온다. 이리되면 수백미터 창고 건물지가 완성된다. 한신대박물관 창고 건물지에서는 그 유명한 시유도기 20여점인가가 나왔다. 이른바 장독대다. 무엇이 발굴인가? 나는 저 대옹을 그대로 박아두었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조사를 명분으로 다 걷어냈다. 이것이 발굴인가? 파괴다. 훗날 이곳을 박물관으로 만들 일이 있다면 짜가 말고 그 실물 그대로 현장에 도로 갖다놓아야 한다고 본다. (2017. 11. 28) *** 3년이 지난 지금에는 생각이 바뀐 대목이 있다. 다만 고민하던 당시 흔적이라 해서 그대로 전재한다. 2020.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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