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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는 배우의 두 가지 길, 그리고 연구자의 길 나이 들어가는 왕년의 명배우들 중 시선을 사로 잡는 두가지 부류가 있다. 하나는 아예 대중과 접촉을 끊어버리는 것이다.잘 나갔던 여배우 중에 이런 경우가 있는 듯 한데, 관객들에게는 젊었을 적 이 배우가 가장 눈부신 시절의 기억만 남는다. 두 번째는 그야말로 말년에 이르기까지 활발하게 활동하면서나이가 들어가는데 순응하고 그 안에서 자기 역할을 찾는 것이다. 얼굴에 생기는 주름도 이 사람들 한테는 좋은 분장이다. 나이가 들어가는 데서 역할을 찾다 보니 당연히 젊음을 뽐내는 배우들과는 경쟁할 일도 없다. 곧이 노배우로서 활동한다면 이러한 길일 것이다. 반면 나이에 저항하면서 젊었을 때의 역할을 고수하는 것은 "현명한 나이들며 늙어가는 법"일까. 이것은 학계도 마찬가지인데, 나이 들어가며 자기 위치를 끊임없이.. 2026. 6. 5.
유종원 아버지가 쓴 묘지 주인공 당나라 관료 무덤 서안서 발굴 2023년 3월부터 섬서성고고연구원은 서안 동쪽 외곽 패하灞河 동안 무장촌务庄村에서 한·당·명·청 시대에 걸친 무덤 760여 기를 발굴했다. 개중 M8호라는 이름을 붙인 무덤은 사파묘도斜坡墓道에다가 세 개 천정天井을 갖추고 무덤방은 하나인 단실토동묘单室土洞墓다.묘지墓志에 따르면 무덤 주인공 범응范凝은 당나라 시대 장안현위长安县尉를 역임하고 대력大历 10년 3월 임인壬寅에 죽어 만년현万年县 패릉원灞陵原에 묻혔다. 묘지에는 범응의 가문 배경과 관직 생활뿐 아니라 "재물을 경시하면서도 기개를 중시했고, 사교성이 좋았으며, 사소한 예정에 연연하지 않았다[轻财重气、善与人交、不拘小节]"는 그의 성품까지 묘사해 관직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이런 범응의 묘지 글은 쓴 장안현주부长安县主簿.. 2026. 6. 5.
오키노 섬 출토 고분 시대 금도금 갑주편, 인덕릉 부장품과 상통 (6/4 요미우리신문) 후쿠오카 현福岡県 무나카타 시宗像市 세계유산 오키노섬沖ノ島에서 금도금이 된 고분 시대 갑주甲冑 조각이 발견되었다고 이 섬을 신역神域으로 삼는 무나카타타이샤宗像大社가 후쿠오카 현과 함께 3일 발표했다.대산 고분大山古墳(인덕천황릉仁徳天皇陵, 사카이시堺市) 부장품과 공통된 최고 격식을 지닌 유물로, 야마토 왕권의 국가적 제사장인 오키노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뒷받침하는 자료다.메이지 이후에 섬 밖으로 반출되었다가 2010년에 저 대사大社로 반납된 자료를 조사한 결과, 가로 세로 각각 수 센티미터인 단갑短甲 15점, 주편冑片 4점 등 총 21점 갑주편甲冑片이 확인되었다. 전체는 녹슬었지만, 철판에 쌓인 동판의 금도금(금동장金銅装)이 일부 남아 있었다. 1970년 오키노섬 발굴 조사에서 출.. 2026. 6. 4.
벼농사 과대망상이 반달돌칼 신화의 배양토다 "특히 청동기시대에 많이 쓰여졌는데, 지금까지 드러난 한국 청동기시대의 집자리(住居址) 유적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반달돌칼이 나왔으며 그것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대표적인 유물에 속한다. 한국에서 이처럼 반달칼이 많이 확인되는 사실은 당시 사람들의 생산활동에서 농업의 비중이 컸다는 것을 말하여 준다." "반달돌칼은 농경의 도구임이 분명하나 농경의 시작과의 관계는 명확하지가 않다. 반달칼 사용 이전인 황해도 지탑리 지층에서 탄화된 조와 함께 곰배괭이가 발견되어 반달칼 이전으로 농경이 소급될 가능성을 시사해주고 있다. 게다가 반달칼은 수확의 도구이지 재배하는 도구는 아니라는 점에서 반달칼과 농경의 관계는 아직 불분명하다. 다만 삼각형돌칼이 남한지역과 일본의 도작(稻作) 증거라는 것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2026. 6. 4.
동남아와 농경, 반달돌칼을 질식케 하는 두 악령 나는 저 반달돌칼을 보고선 그 쓰임새로 곡물 수확을 생각한 그 원인 제공자를 찾아서는 단두대에 세우고선 추궁하고 싶다.네 머리는 도대체 어떤 돌대가리기에 저처럼 기발한 생각을 하게 되었냐고 그 동기를 캐보았음 한다.어디 동남아 관광 갔다가 대나무 모자 뒤집어 쓴 이모작 삼모작 농부들이 벼 이삭 꼬다리 톡탁톡탁 따는 도구를 보니 어랏? 반달돌칼 비슷하네 하고선 본국 돌아와선 반달돌칼은 벼 이삭 따는 낫이다! 이렇게 농담 삼아 쓴 글이 어느새 저리 군림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거니와그리 되니 이른바 농경으로 밥 먹고 산다는 고고학도들한테 저 농담은 구세주였으니 오호 농경 수확도구? 그 좋네 하고선 맞장구 치기에 이르렀으니 저에 대한 모든 기술을 맡은 자들이 첫째 고고학도요 둘째 농경으로 먹고 산다는 자들이라는.. 2026. 6. 4.
반달돌칼을 왜 의심해야는가? 첫째 출토량이 많다.어느 정도로?졸라 많다.하도 많아서 박물관마다 없는 데가 없고 너무 많아서 아예 꾸러미 다발로 전시한다.둘째 왜 출토지점은 거의 예외없이 집터인가?약간 정신 나간 놈 빼고는 거의가 다 일반 주거지, 것도 방구석에서만 발견된다.셋째 왜 이 돌칼은 어김없이 가락바퀴 같은 직조 도구와 함께 나오는가?제대로 맥락 갖추어 발굴되는 돌칼은 어김없이 가락바퀴랑 같이 나온다.나를 키운 건 오할이 호기심이요 나머지 오할이 의문이다.다 좋다.그래 솔까 저걸로 벼 같은 곡물을 따는데 낫으로 썼을 수도 있다.하지만 이쑤시개를 귀쑤시개로 쓴다한들 그것을 귀쑤시개라 할 수는 없다.왜 저런 의문들이 중요한가? [반달돌칼] 두만강 골짜기서 무슨 곡물을 땄단 말인가?https://historylibrary.net/.. 2026.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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