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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47

[학술대회] 용인 건지산 봉수의 문화유산적 가치와 활용방안 처음 건지산 봉수 발견했을 때 벅차오르던 감정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당시 발견 경위와 발굴조사까지의 과정, 그리고 문화유산적 가치와 의미에 대해서 담당자가 제일 잘 알기 때문에 직접 발표를 맡기로 한 것이었는데, 불과 며칠 사이에 다른 기관소속이 되어 발표자로 참여한다는 것이 아직 어색합니다. 그렇지만 건지산 봉수가 꼭 국가 사적이 되길 바라는 마음은 이전과 다르지 않습니다. 학술대회에 많은 분들의 참석과 관심부탁드립니다. 2024. 7. 22.
지자체 학예연구사에게 전공이란 오늘 용인 건지산 봉수 건물지 발굴조사 현장 자문이 있었다. 다행히 봉수군이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지가 잘 나왔다. 용인 석성산 봉수는 작년에 국가 사적이 되었고, 이 건지산 봉수는 앞으로 국가 사적 지정 신청을 위한 학술대회가 계획되어 있다. 봉수에 대한 나의 관심과 열정을 좋게 보셨는지, 오늘 어떤 분에게 전공을 봉수로 바꿨냐는 질문을 받았다. 아니라고 했지만, 생각해 보니 지자체 학예연구사에게 전공은 별로 의미가 없다.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유산까지 폭넓은 유적과 유물을 알아야 하고, 그 일을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물론 전공 분야는 일하는데 있어서 어느 정도 도움이 되지만 전공보다 훨씬 다양한 분야의 유물과 유적을 알아야만 한다. 다행히 나는 시대를 가리지 않고 모든 유적과 .. 2024. 6. 25.
조선후기 도성 방어를 위한 경기남부 요충지 용인 석성산성 용인 석성산성은 용인시의 진산鎭山인 석성산에 위치하며, 보개산성寶蓋山城으로 불리기도 한다.  ‘석성산’이 문헌에서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1633년의 류성룡의 『서애집西厓集』으로 1656년 『대동여지지大同與地誌』가 ‘보개산’으로 기록한 것에 비해 더 이른 시기다.  이를 통해 보았을 때‘석성산’이라는 명칭은 17세기 초에 처음으로 등장하여 사용되었으며, 17세기 초부터 18세기 초반까지의 관찬지리서에서는 보개산으로 지칭되는 것으로 볼 때, ‘석성산’은 속칭俗稱의 개념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석성산성이 조선후기에 도성을 방어하는 경기남부의 요충지였다는 것은 여러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서애 류성룡의 다음과 같은 주장을 살필 수 있다. 사도도체찰사四道都體察使 류성룡柳成龍.. 2024. 6. 16.
2012년 용인 서봉사지 도굴미수 사건 낮에 오랜만에 서봉사지 정비공사 현장에 다녀왔는데, 12년간 추진한 발굴조사, 학술대회 등의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중에 하나가 '서봉사지 도굴미수 사건'이다.    2012년, 3년차 초짜 학예연구사 시절 그동안 용인시 문화재 관련해서 이렇다 할 정비사업이 없던 상황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곳이 광교산 아래 서봉사지였다.이전에도 지표조사를 통해 서봉사 절터에 대해 인지되어 왔으나 종합정비계획이 세워져 있지 않았으므로,  당시에 종합정비계획 수립 용역을 추진 중이었다. 2012년 5월 18일 오후 4시 무렵, 서봉사지 종합정비계획 중간보고회에 앞서 사전 점검차 서봉사지에 출장갔다가,전에 보지 못한 장면을 보고 깜짝 놀랐다. 현오국사탑비로부터 북쪽으로 약 40m 떨어.. 2024. 4. 25.
[용인 석성산성]성벽을 눈앞에 두고도 성벽인줄 몰랐다. 사진 파일을 보니, 2012년 11월 20일이었다. 당시 석성산 정상에 있다는 “석성산 봉수”를 찾아 처음으로 석성산에 올랐던 것 같다. 정상석이 있는 곳을 보니 유물이 돌아다니고, 잘 다듬은 석재로 쌓은 석축이 보여서 사진을 찍었드랬다. 사진을 보면 이미 성돌을 빼서 벤치 지지대로 쓰거나, 나무 뿌리 주변에 둘러 놓는 등 훼손이 많이 됐었다. 그렇지만 암반을 따라 성벽 라인이 살아 있었다. 초짜 학예사였던 당시에는 이 석재들과 석렬이 성벽인줄 몰랐다. 나의 목적은 오로지 봉수였으니, 성벽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이후에 이곳은 데크로 덮어 버려서 깔끔한 정상이 되었지만, 더이상 이 아래 성벽을 볼 수가 없다. (나중에 데크 교체 공사가 이뤄진다면, 그때나 볼 수 있을 것 같다.) 나중에 성벽이라는.. 2024. 4. 24.
[photo]용인 석성산 봉수 유적(발굴부터 정비까지) 물론 이전에도 간단한 지표조사, 관방유적 조사, 종합정비계획 등이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발굴조사를 추진한 것은 2017년이었다. 아래 사진은 2017년, 긴급발굴조사를 신청하고 문화재청 담당자의 현지조사날이었다. 아침에 갑자기 쏟아진 눈때문에 정상에서 눈폭탄을 맞으면서, 발굴조사 필요성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순식간에 내린 눈의 양이 적지 않았고, 급경사 산길을 내려가다가 차가 미끄러져서 정말이지 죽을 뻔했다. 다행히 이런 나를 가상하게 생각해줬는지 긴급발굴조사 사업으로 1억원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당시 문화재청의 긴급발굴조사 지원사업에 의한 발굴조사 성과가 좋아서, 이후에 건물지까지 발굴 예산을 확보할 수 있었다. 2020년 11월 13일 경기도 기념물 제227호로 지정되었다. 이후 봉수.. 2024.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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