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384 지금 돌아보면 열라 웃기던 그 시절[1] 무령왕을 드리운 이케다 온池田温 요샌 맛탱이가 완전히 갔지만, 한때 중국사가 일본 동양사학 독무대였던 적이 있다. 그래 기라성을 방불하는 중국사 대가는 모조리 일본에서 나왔다. 그만큼 한때 일본의 중국사는 지구촌을 흔들었다.그렇지 않다고 바락바락 우길 사람 없지는 않겠지만 [주로 일본 유학도들이 길길이 아니라고 날뛰며 대들 것이다], 더는 일본 동양사가 세계를 호령하는 시대는 아니다. 이미 주도권은 중국 본토배기들과 미국 쪽으로 완전히 넘어가서 일본 동양사학은 빌빌 싼다.지전온池田温, 이케다 온이라는 사람이 있다. 1931년 생으로 동경대 박사학위를 취득하고선 동경대 교수로 일본 동양사 2세대쯤으로 맹활약하다 2023년에 갔으니, 나는 이 지전온을 일본 동양사 호황 시대 막차로 본다. 중국 고대사가 주전공이요 주로 문서학에서 일가를 이.. 2026. 6. 13. 연구자의 길, 기자의 길, 센 놈들만 골라 조졌다 전업적 연구자로 통칭하는 사람들한테서도 언론 혹은 기자는 불가근불가원이라 이 복잡미묘한 길항 관계는 저런 업계서는 누구나 경험한다.나는 현역 기자 시절 그 최전선에 서며 매일매일 실은 그들과 협력하며 또 사투했다.맡은 분야가 하필 학술이라 학술이란 무엇인가?글자 그대로는 학계 동향이라 할 수 있으니 그 동향에는 모름지기 그네가 논문 형태로 쏟아내는 연구성과가 절대하는 비중을 차지한다.물론 항하사 모래 같은 저 광대무변하는 모든 학술을 어찌 혼자 감당한단 말인가?내가 말하는 저 학술은 보통 인문사회과학이라 보면 대과과 없고 자연과학 분야로 넘어가면 그쪽 담당 혹은 전문기자 몫이다.그렇다면 복잡미묘한 관계는 왜 발생하는가?첫째 관점은 차이가 있어 중요하다 보는 지점이 다를 수 있다.둘째 이 취사 선택 과정에.. 2026. 6. 10. 그 자체가 한국문화재사, 지건길 전 국립중앙박물관장 회고록 출간 용안 뵌지 오래라 요새도 김흥국처럼 콧수염 질구고 댕기시는지 모르겠다.영감님 각중에 카톡 주시어 대뜸 주소를 여쭙는데 책 나왔구나 싶었거니와 보통 이런 때는 어느 출판사냐 여쭙고 구입해서 읽어보겠다 하겠지만 노년에 이른 영감님 틀림없이 붓글씨로 적어 보내시고 싶어할 듯해서 주소를 적어드렸더니 방금 남영동으로 입고한다.보니 회고록이라 1943년생, 올해로 만 여든셋이시라 더는 늦추면 안 될 듯 하셔서 힘을 내신 모양이다.저 연배 이젠 워낙 고령이시라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하고 또 쓰러지기도 하는 소식이 들려오니 안타깝기만 하거니와그래도 강녕하신듯 이런 회고록까지 내어주시니 지금보단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회고록은 빛을 발할 수 있으리라 본다.목차와 관심 있을 만한 몇 대목 훑어보니 크게 두 부로 나누어 전반부.. 2026. 6. 9. 풍납토성 배경으로 뒤늦게 담아본 내 전신 사진 언제쯤인가?2001년 2월 졸저 《풍납토성 500년 백제를 깨우다》(김영사)를 발간한 직후 일일 것이다. 미디어오늘인지 기자협회보인지 아무튼 언론 관련 전문 매체에서 저 풍납토성 사태와 관련한 내 행적과 내 생각을 취재하고선 풍납토성을 배경으로 한 사진이 있으면 달라 했다. 그 기사에 녹여 써먹겠다는 생각이었다. 한데 그렇게도 풍납토성에 미쳐 날뛴 나였지만, 그때까지 정작 내가 이곳을 배경으로 찍은 내 사진이 단 한 장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이후에는 저런 현장마다 더러 일부러 내가 들어간 사진을 남기기도 했다. 불행하게도 이후 그런 사진을 요청한 데가 단 한 군데도 없었으니 그런 사진으로 써먹은 것이 없다. 앞 첨부 사진은 2008년 5월 7일, 풍납토성 경당지구를 한신대박물관이 재발굴하고, 그에서 다.. 2025. 12. 5. 2016년 10월 17일 삼성퇴에서 내 꿈이 뭘까?모르겠다.그 꿈을 꾸기엔 좃또버그나 빌 게이츠를 보면 너무 늦은 듯 하기만 하고,함에도 그 모르는 꿈을 위해 질긴 끈을 여직 놓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다.좃또버그가 페이스북 창립을 꿈꾸며 세계 제패로 나갈 그 나이에, 나는 지긋지긋핫 가난 탈출이 꿈이었던 듯 하고, 그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무렵엔 문화재라는 요물과 조우해 그 길을 향해 맹렬히 돌진한 듯 하다.내가 언젠가 한 말이거니와가장 무능한 기자가 정년까지 기자질 하는 기자다.다른 일을 할 줄 모르기에,더 속된 말로는 기자랍시고 제대로 기자질도 할 줄 모르기에 기자질한다.이건 내가 한창 기자질할 때 한 말이니 나는 한점 후회도 없다. *** 해직 생활을 하던 2016년 10월 17일 삼성퇴에서 나는 저리 적었다. 떠날 때를 놓쳤기에 더 .. 2025. 10. 19.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단 한 사람도 탐구하지 않은 탑塔 2007년 부여 왕흥사지에서 당시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그 목탑 터를 발굴하고선 이 탑 내지는 사찰 자체를 백제 위덕왕 시대에 세웠다는 근거 자료를 확보했을 때였다. 다른 무엇보다 그 목탑 사리공에서 그것을 밝혀주는 사리장엄구가 드러나고, 그 심초석 주변으로는 고고학에서는 지진구 혹은 진단구라 치부한 부처를 위한 공양품이 잔뜩 나왔으니, 발굴 직후 나는 그 의미를 분석한 논문을 곧바로 써서 투고했으니 그것이 바로 다음이다. 김태식, 부여 왕흥사지 昌王銘 사리구에 관한 고찰 : 舍利函 銘文을 중심으로 《한국문화사학회》 28, 2007 저것이 왕흥사지 사리장엄에 대한 국내 첫 분석논문으로 기록되는데, 문제는 저걸 탐구하면서, 특히 심초석 주변 유물들이 지진구 진단구가 아님을 나는 역설하면서 이참에 도대.. 2025. 10. 19. 이전 1 2 3 4 ··· 64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