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111

조선후기 일상사 최대 보고 「이재난고」 완간(2003) 2003.12.14 11:00:24 조선후기 일상사 최대 보고 「이재난고」 완간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현존하는 조선시대 일기류 중 규모나 기록 분량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최대·최다로 꼽히는 황윤석(黃胤錫. 1729~1791)의 친필유고 「이재난고」 전 57권이 완간됐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관장 문옥표)은 황윤석이 10살 때 시작해 사망하기 이틀 전까지 장장 54년에 걸쳐 쓴 매일매일의 일상사 기록인 「이재난고」 원고 전체를 정자체로 풀어쓰고, 표점을 찍어 총 9권으로 출판했다고 14일 말했다. 이로써 한자별 원문 총분량 530만 자, 200자 원고지 2만6천500장 분량에 달하는 「이재난고」는 저자 황윤석 사망 이후 무려 200여 년 만에 처음으로 활자화됐다. 이번 활자본 「이재난고」.. 2021. 5. 5.
백제삼부작, 어쩌다 세트가 된 발굴시리즈 이걸 애초 계획한 건 아니다. 풍납토성으로 신고하고 나서 무령왕릉을 준비하다 보니 공교롭게도 백제 삼부작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풍납토성은 한성도읍기를 증언하는 곳이며 무령왕릉은 웅진도읍기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사비도읍기가 남았다. 사비도읍기는 무엇으로 할까 고민 중이다. 언뜻 부여 왕흥사지가 어떨까 하지만, 이건 이미 발굴조사단인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이상하게 김을 빼 버렸다. 한데 드라마성이 심대하게 부족해 내가 언젠간 손을 대어보리라는 생각도 했다. 이 외에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왕궁리 유적 발굴이 있지만 이건 주무대가 부여가 아니라 걸린다. 내침 김에 익산까지 4부작으로???? 하고 싶은 건 천지빼까리요 인생은 유한하며 몸뚱아리는 달랑 하나에 불알도 아직까진 꼴랑 두 개라 마음 먹은 대로 .. 2021. 5. 4.
지진아 고맙다! 첨성대 꼭대기랑 속내 2017년 4월 25일 나는 바가지 뒤집어 쓰고 아시바 사다리 타고는 첨성대 만데이로 올랐다. 마천루 시대 저 정도 높이가 무에 대수겠냐만 비단 마천루가 주변에 없다 해도 10미터가 얼마나 아찔한지는 올라본 사람만이 안다. 다보탑이던가? 그 역시 같은 신세일 적에 아시바 힘을 빌려 올라서는 사방을 조망한 적 있으니 비슷한 느낌이었다. 직전 경주를 지진이 엄습했다. 진도 6이 넘는 강진으로 기억하거니와 첨성대 역시 공연하는 걸그룹처럼 흔들렸으니 이럴 적마다, 아니 더 정확히는 이런 일만 터지기를 기다리는 문화재안전진단팀은 존재감을 각인하고자 아시바를 꺼내거니와 그런 소식을 접하고는 그래 이때 아니면 내 언제 첨성대 날망 올라 사해를 조망하며 그 속내를 헤집으리오 하는 심정으로 냅다 현장으로 달려 上山을 결.. 2021. 4. 30.
발굴 10년 맞는 용인 할미산성 2011.12.13.~2012.02.24. 용인 할미산성 1차 발굴조사. 내년이면 10주년. 사진은 2012.2.22. 자문회의 날. *** 난 없는 사진을 수녕이가 10년만에 까발린다. 2021. 4. 28.
김유신 관련 졸고 「方士로서의 김유신」 『신라사학보』 11, 2007 「월경과 폭무, 두 키워드로 본 모략가 김유신」 『백산학보』 70, 2004 「김유신의 흥무대왕 추봉시기」 『신라사학보』 6, 2006 「김유신의 入山修道와 그의 龍華香徒」 『한국고대사탐구』 13, 2013 말이 졸고지, 하나하나 주옥이요 불후다. 도둑놈들만 득시글..방사 김유신 각주로 병가 김유신을 예고했더니 누가 나꿔채가고 흥무대왕 추봉은 신라사학회 발표만 하고 공간은 안한 사이 어떤 놈이 역비에다 쏙 빼먹고..날강도가 날뛰는 세상 *** 나도 번번히 몰라 정리해 둔다. 2021. 4. 12.
기자들이여 집결하라! 한국일보 특종이 유발한 송산리 졸속 전주곡 한국일보 허영환 기자의 특종 보도다. 71년 7월 8일자다. 이 보도로 송산리는 범벅을 이룬다. 특종은 다른 기자들에겐 죽음이었다. 다들 박살이 났다. 이 보도를 보고 문화재 담당 기자들이 송산리로 집결한다. 졸속발굴의 전주곡은 이렇게 굉음을 내며 서서히 선로를 달리는 기관차로 돌변해갔다. 이때만 해도 이 무덤이 무령왕릉일 줄은 하늘도 모르고 땅도 몰랐다. (2016. 4. 10) 2021. 4. 10.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37) 중앙언론과 지역언론, 그 좁힐 수 없는 간극 한 분야의 소위 전문기자 급으로 오래 일하다 보면 어느 시점엔 전화 한두 통만으로도 각지의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대강 파악하기 마련이다. 소위 길목이라는 게 있어 이쪽만 체크하면 대략 어느 현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가 있다. 언론이라는 시각에서 볼 때 문화재 현장 소식 중에 발굴 소식만큼 따끈따끈하고 잘 먹히는 기사도 드물다. 그 모든 것은 새롭기 때문이며, 이것이야말로 말 그대로 news 아니겠는가? 서울 혹은 이를 중심으로 하는 수도권에서 일어나는 발굴소식이야 어차피 중앙 몫이라 소위 ‘나와바리(영역)’ 다툼 문제가 그다지 발생하지 않지만, 그 외 지방 발굴 소식은 사정이 좀 달라 여러 모로 언론계 내부에서도 충돌을 일으키고 만다. 이는 같은 회사 내부에서도 늘 부닥치는 문제라, 그것.. 2021. 3. 20.
《공주고60년사》에서 찾은 가루베 지온 이거 찾는다고 삼층짜리 서재를 통째로 뒤졌다. 1999년 혹은 2000년 무렵 공주고 앞 어느 헌책방 갔더니 꽂혔더라. 이 서점에서는 이외에도 해방 직후 학산 이인영이 손보기 한우근 등 제자 다섯명인가를 데리고 만든 국사개론인지 하는 책도 구득하는 행운을 누렸다. 이 희귀본을 누가 내다 놨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저 공주고 60년사는 나로서는 좀 독특한 인연이 있다. 가루베 지온[輕部慈恩]이란 인물이 있다. 식민지시대에 공주고보 한문 국어교사로 재직하며 공주 일대 고분 천여기를 도굴한 자다. 그에 대한 관심은 공주 지역 역사고고학도들이 주목하던 터였다. 당시 공주박물관장 서오선 공주대 교수 윤용혁 이남석 등이 그런 움직임을 보였다. 그에 더해 최석영이 가루베에 대한 글을 쓰고 있었다. 나 역시 그 즈음 .. 2021. 3. 17.
도판 작업을 해준 두 처자를 기억하며 YS 가라사대 머리는 빌릴 수 있다 했다. 내가 만들지 못하면 맹글라 달라면 댄다. 처자들이 이 오빠 책에 쓸 도판이라며 잇쇼껭메이 작업 중이다. 무령왕릉 각종 수치 보면 이상한 현상이 일어난다. 내가 일찍이 16년전에 지적했다. (2016. 3. 12) *** 해직되자마자 할 일도 없고 해서 책이나 쓰자 해서 이내 만들어낸 것이 2016년 도서출판 메디치미디어에서 낸《직설 무령왕릉》이었으니 그에 소요할 도판은 여러 사람 도움을 받았으니 특히 저 사진은 그네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포착한 것이라 김해경 선생 건대 연구실이었다. 왼편이 해경, 오른쪽이 불교문화재연구소 김선 선생이다. 저네들한테 진 신세를 저 책에서 나는 다음과 같이 적기했다. 건국대 김해경 선생과 불교문화재연구소 김선 선생은 나로서는 전연 문.. 2021. 3. 12.
[오지랖 편력기] 돌궐 한국문화사 애호가라면 굳이 흉노를 들먹이지 않더래도 북방 유목민족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다. 사진은 돈유쿡 비문이다. 돌궐제국 시대, 그 정치를 주름잡으면서 당에 대한 군사외교를 총괄한 명재상 무덤에 세운 비문이다. 이 비문을 나로서는 90년대 말인지 2000년대 초에 알게 되었다. 튀르크어학 전공자던가 이용성 박사가 돈유쿡 비문을 포함한 이 돌궐제국시대 대표 금석문 4종에 대한 터키 학자 역주를 완역 출간한 책자를 접하고는 그를 통해 나는 돈유쿡 비문의 존재를 알았다. 이후 나는 이 비문 실물 한번 보았으면 원이 없겠다는 막연한 꿈을 품었다. 이런 꿈이 실로 우연찮게 풀렸거니와, 마침 국립중앙박물관 고고부에서 장기간 몽골 조사를 벌이는 중이었다. 나는 개중 두 번인가 그쪽 초청을 받고는 몽골을 다녀왔.. 2021. 3. 10.
[오지랖 편력기] 켈트 나는 오지랍대마왕이라, 하나에 꽂히면 한동안은 그에 헤매곤 한다. 물론 그 관심이 오래 지속한 일은 드문 편이라, 이런 편력을 하도 자주 하다보니, 오늘 포스팅한 논어 한 구절이 말하는 공자와 흡사해 박학하기는 한데 막상 들여다보면 제대로 아는 게 없다. 켈트문화 역시 내가 잠시 편력한 대상이었으니, 가뜩이나 그리스 로마문화 중심으로 유럽 문명사를 설명하는 압도적 흐름에서 그에 대한 반발 혹은 저항으로 관심을 잠시간 쏟은 적 있다. 언제였더라? 작금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곤혹을 당하는 모철민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이 국립중앙도서관장으로 재임하던 시절이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문화부 차관에 발탁되었거니와 그 임명 통보를 받은 장소가 스웨덴 예테보리였고 그 자리에 내가 같이 있었다. 그 전날인가 다음날인가 나는.. 2021. 3. 10.
문화재로 재발견한 신라 문무왕 수중릉 대왕암 수위 조절하느라 무척이나 애를 먹은 기고문이 나왔다. 올해가 문무왕 수중릉 발굴 오십주년이라 해서 신동아 의뢰로 관련 글을 초해봤다. 동아일보에서 일하다가 이 잡지로 파견나간 권재현 기자가 좋은 자리를 주선했다. 1967년 5월 16일 한국일보는 문무왕 수중릉인 대왕암을 발견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그 직후 다른 신문도 같은 보도를 했지만, 엄밀히 이는 발견이 아니라 '재발견'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써의 재발견인가? 지금의 대왕암이 문무왕 수중능이라는 사실은 적어도 우리에게 주어진 자료에 의하는 한, 고려시대 이래 죽 그랬다. 나는 문화재로서의 재발견이라고 본다. 수중릉은 자연히 주어진 그 무엇이 아니다. 그에다가 문화재라는 가치를 주입하고, 그럼으로써 그것은 소위 발견 직후인 1967년 7월 국가.. 2021. 2. 21.
내가 만난 재일 역사학도 이진희 내가 이 친필 수필집을 저자한테 직접 증정받기는 2009년 2월 23일 그 출판기념회서다. 에세이스트 오문자씨는 재일교포 2세 남편이 저 유명한 역사학자 이진희 선생이다. 이 만남이 있은지 3년 뒤인 2012년 4월, 이 선생은 불귀하는 객이 되었다. 이 부부를 만나 나눈 대화는 아래와 같이 기사화했다. 재일사학자 이진희씨 부부 2009-02-26 16:53 부인 오문자씨 자전 에세이 '아버지, 죄송합니다' 출간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두어 시간가량 계속된 조촐한 '출판기념회'에서 올해 여든 살인 남편은 줄담배를 피워 댔다. 부부가 함께 선 기념사진을 찍자는 요청에 남편은 8살 아래인 부인을 가리키면서 "오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이 사람이니까 이 사람만 찍으면 된다"고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2021. 2. 16.
長安을 추억하며 너무나 여유가 없는 현지답사였다. 느긋하고 싶었다. 한 고조 유방 무덤 정상에서는 툭진 옷 걸치고는 하염없이 지는 해를 감상만 하고 싶었다. 그가 죽은 지 2천200년 동안 해는 줄기차게 졌으리라. 그보다 대략 30년 정도 앞서 간 시황제는 말 뼉다귀 몇 개 남겼다. 다음달 말에 나는 다시 서안을 간다. 오지 말라 해도 다시 간다. (2018. 2. 8) *** 그러고 보니 3년전 오늘 나는 장안長安을 휘저으며 병마용갱이며 한 황제릉을 휘젖고 다녔나 보다. 언제 그런 날이 다시 올란지는 모르겠다. 불과 3년전인데 30년전 같은 이 꿀꿀한 기분은 뭔가? 2021. 2. 8.
1995년 쿠웨이트 바닷물도 짰다 1995년 여름 나는 쿠웨이트 출장을 갔다. 이듬해 애틀랜타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남자핸드볼 아시아선수권대회 취재차 십박십일 일정이었다고 기억한다. 놀란 점 세 가지. 첫째, 아라비아 사막이 진짜 모래다. 둘째, 쿠웨이트 바닷물도 짜다. 셋째, 섭씨 오십도 사막 더위 삼십도 서울 더위 견주면 좆도 아니더라. (2014. .2. 2) *** 당시만 해도 출입기자들이 제비뽑기를 해서 이른바 풀 pool 기자로 해외취재를 가던 시절이다. 제반 출장 경비는 해당 협회서 부담했으니 당시 나는 체육부 기자로 핸드볼 담당이었다. 저 아시아선수권대회서 우승을 해야 한국은 이듬해 애틀랜타올림픽 본선에 나갈 수 있었지만 일방적 편파판정에 한국은 홈팀 쿠웨이트에 분패하면서 올림픽 본성 무대를 밟지 못했다. 당시 한국은 윤경.. 2021. 2. 3.
기자가 찾은 자료를 도둑질한 어떤 놈 기자로서 어떤 시리즈를 하고 난 더러운 느낌 중 하나가 그걸 인용 표시도 없이 베껴먹는 이른바 직업적 학문종사자가 그리 많다는 점이다. 일전에 안중근 특집을 하고 그 와중에 안중근 유족 동향과 관련한 중대한 문서를 발굴해 공개한 적이 있는데 그 직후에 나온 그 어떤 저명한 한국 근현대사가가 지가 그 문서 발굴한 것처럼 해서 버젓이 논문과 책에 써먹는 꼴을 보며 구토가 났다. 이러지는 맙시다. (2014. 1. 31) *** 저에서 말한 안중근 유족 동향과 관련한 중대한 문서가 바로 아래 기사에서 인용한 쇼와(昭和) 14년(1939) 10월 17일 조선동촉부에서 작성한 '재(在) 상해 조선인 만선시찰단 선내(鮮內.조선 내부) 시찰 정황'이라는 일본 외무성 경찰사 자료다. 이에서 소개한 이 자료를 문제의 어.. 2021. 1. 31.
발굴현장은 일찍 가라, 2005년 비봉리의 경우 나는 주최 측이 공개를 예고한 시간보다 발굴현장에는 일찍 가는 버릇이 있다. 대략 한 시간 정도 먼저 간다. 그래야 느긋하게 이것저것 제대로 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혼자서 현장을 빙 둘러 보고, 출토 유물도 대강 훑어본다. 그러고서 느긋하게 조사원들이나 조사 책임자들한테 궁금한 사항을 물어보곤 한다. 또 이렇게 일찍 가야 이런저런 다른 정보까지 얻을 일이 많다. 발굴현장도 엄연히 인적 교유의 장이라는 사실을 나는 잊지 않으려 했다. 현장에서는 취재 수첩을 꺼내지 않는다. 인터뷰 대상자가 아무리 관록이 있다 해도, 취재 수첩 꺼내들고 메모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긴장하거나 소위 ‘접대용 멘트’를 하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내 말이 잘못 전달되지 않을까, 이 말을 하면 여파는 없을까 하는 각종 경.. 2021. 1. 20.
2015년 충주 호암동 통나무 목관묘 현장에서 충주 발굴현장…통나무 목관 쓴 초기철기시대 지역수장 2015-01-19 14:43 사방 조망하는 곳에 묘자리·청동기 다량 부장 (충주=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전날 내린 눈이 채 녹지 않은 발굴현장은 온통 진흙이었다. 겨울바람이 거센 가운데 취재진과 취재차량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충주시가 전국체전 개최를 위해 종합스포츠타운 건설을 추진 중인 호암동 628-5 일원 발굴현장은 인근에 달천이라는 강이 흐르면서 형성한 충적지대가 드넓게 펼쳐졌다. 이런 곳에서 한국고고학계에서는 오랜만에 낭보를 들려줄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중원문화재연구원(원장 강경숙)이 지난해부터 이곳을 발굴조사한 결과 기원전 3세기 이래 기원전후에 이르는 이른바 초기철기시대 무덤 3곳 중 1호 고분이라고 .. 2021. 1. 19.
2003년 공주 수촌리고분 발굴현장 2003년 11월 28일 공주 수촌리 고분 발굴현장이다. 그해 고고학계는 수촌리가 독패獨覇한 한 해였다. 그 며칠 뒤 수촌리 발굴소식은 마침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이 보도로 나는 그해 연말 우리 공장에서 가장 큰 상도 받기도 했으니, 이래저래 겁대가리 없이 오기가 공활한 가을하늘 죽창으로 찌르듯한 시절이다. 당시만 해도 디지털카메라 초창기라, 촬영한 것들을 살피니 모조리 장당 크기가 450K다. 이걸 아무리 이리저리 늘캐도 1메가 남짓하니, 2000년대 어간에 촬영한 사진들이 다른 이도 거의 이런 사태가 빚어지지 않을까 한다. (2018. 1. 9) 2021. 1. 13.
무령왕릉 발굴 30주년 특별전에 즈음해 모은 사진들 무령왕릉은 발견 발굴이 1971년이니 그 30주년은 2001년이었다. 당시 국립공주박물관이 발굴단인 국립문화재연구소와 관련 특별전과 학술대회를 준비했다. 학술대회는 공주문예회관에서 열렸다. 이 행사를 미친 듯이 준비한 이가 당시 공주박물관 학예사 정상기였다. 이 특별전은 나로서도 잊지못할 인연이 있다. 정상기만큼이나 열성적으로 이때를 준비한 것이 바로 나였기 때문이다. 그 턱별전을 준비하는 정상기의 고민 중 가장 큰 것이 발굴당시를 증언하는 생생한 사진이었다. 당시 발굴은 무덤내부 사진을 찍기는 했지만 발굴단에서 촬영한 사진은 단 한장도 건지지 못했다. 당시 내부 촬영을 맡은 이가 문화재연구실 학예사보 지건길. 한데 이 양반이 아사히펜탁스 사진기 조작을 잘못하는 바람에 신나게 찍은 사진은 단 한장도 건지.. 2021. 1. 10.
광화문 현판 관련 문화재위 심의(2012) 광화문 현판 글씨, 문화재위원회 합동분과 심의 선정 문화재위원회 합동분과(위원장 노중국/사적, 건축, 동산, 근대문화재분과)는 27일 오후 2시부터 국립고궁박물관 강당(서울 종로 효자로)에서 광화문 현판 글씨 선정을 위한 회의를 열어 광화문 현판을 경복궁 고종 중건 당시의 임태영(任泰瑛) 한자 현판인 ‘光化門’으로 하기로 심의하였다. (2012. 12. 28) *** 이게 당시 문화재청 발표 전문이다. 문화재 바깥에서 볼 적에야 여러 생각이 있을 순 있지만 문화재 복원원칙에서 한글 간판은 지원자격이 없다. 따라서 이 건은 문화재위 심의 안건에 부칠 필요조차 없는 사안이었다. 실제 회의 결과서도 얼이 빠진 위원 딱 한 명만 한글로 바꿔야 한다는 데 표를 던졌을 뿐이다. 덧붙이건대 광화문 현판을 한자를 달자.. 2020. 12.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