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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378

창녕 비봉리 유적이 똥덩어리를 출토한 그날 (편집자주) 코프럴라이트coprolite, 곧 분석糞石 똥덩이 대변 이야기 나온 김에 한국 고고학에서는 그 신기원을 이룩한 데가 창녕 비봉리 유적이라, 당시 이 소식을 전한 2005년 내 기사를 전재한다. 한반도 최고(最古) 동물그림 발견(종합)2005-06-17 23:00최초 신석기시대 배설물(糞石)도 출토창녕 부곡 비봉리 신석기시대 유적서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한반도에서 지금껏 확인된 그림 중에서 가장 오래된 유물이 확인됐다.또 한반도 최초로 처음으로 배설물 덩이인 분석(糞石)와 칼 모양 목기(검형목기)와 다른 목기(木器)가 같은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밝혀졌다.국립김해박물관(관장 김정완)은 경남 창녕군 의뢰로 2004년 11월 30일 이후 창녕군 부곡면 비봉리에서 확인된 신석기시대 저.. 2025. 9. 21.
"누군가는 그럽디다, 만리장성이라고" 북악산의 유홍준 유홍준 씨가 문화재청장으로 재임하던 시절이니 노무현 정부 때 일화다. (지금 찾아보니 2006년 일이라 나온다.) 당시 청와대 주변을 시민 국민 품으로 돌려준다는 풍조가 만연한 때라, 이 흐름을 본격화한 이는 실은 김영삼이었다. 문민정부를 표방한 YS가 대통령 취임 직후 취한 일련하는 개방 움직임은 지금은 당연하게 보이지만 그 하나하나 뜯어보면 혁명을 방불했으니 청와대 앞길을 개방한 이는 그였다. 그런 흐름이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계속됐으니 그가 취한 저 흐름 연장성에 위치하는 조치가 북악 일대 개방이었다. 그를 뒤이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추가 개방 움직임이 있었으니 암튼 노무현 정부 시절 그 화룡점정은 북악 일대 한양도성 일대 구간 개방이었다. 이 개방을 유홍준은 그 자신이 주도한 업적처럼 선전했으나 실.. 2025. 9. 14.
전남 나주에서 출현한 2,000년 전 유리 슬래그 전북 장수군에서 아마도 유리로 곡옥을 만들어냈을 법한 이른바 곡옥 거푸집이 출토한 일과 관련해 한반도 고대 유리 관련 엇비슷한 자료들을 검출하려 하다 보니, 2008년에 다름 아닌 내가 작성 배포한 아래 기사가 보이는데 문제는 나로선 이 기사가 전연 기억에 남지 않으니, 영혼이 없이 썼나 보다. 이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대략 2천 년 전,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 땅에서는 유리를 자체 제작하는 시스템이 있었을 여실히 보여주는 유리 슬래그, 곧, 유리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발생한 찌꺼기가 발견됐다는 것이니, 당시 기사 전문은 다음과 같다. 나주 조개무지서 유리 工房 흔적 입력 2008.03.18. 오후 3:16 수정 2008.03.18. 오후 6:11 1-2세기 생활유적..점뼈도 발견 (서울=연합뉴스) .. 2025. 9. 5.
20년 전 내 기사를 반성하며 보정한다, 유홍준의 경우 나는 연합뉴스 문화부 기자로 봉직하며 문화재와 학술을 전담하던 시절인 2006년 3월 1일, 그날 오전 9시 52분에 송고한 다음과 같은 기사를 내 이름으로 썼다. ‘현금부자’ 유홍준 문화재청장 예금 보유액만 가족 총합 15여억원…“집사람이 통장 압수”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말발과 글발이 세다는 미술사학자 출신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돈발'도 셌다. 28일 공개된 공직자 '정기재산변동사항 공개목록'에 의하면 유 청장은 예금 보유액만 본인 3억2천400만원을 비롯해 배우자 10억900만원, 장남(8천900만원)과 차남(6천400만원)을 합쳐 총액 14억8천600만원을 기록했다. 유 청장은 또 본인 소유 서울 강남구 논현동 단독주택(6억8천200만원)과 배우자 명의로 경기 구리시 아천동 단독주택.. 2025. 7. 21.
연해주 솔빈강에서 상념한 왕서방들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 인근 체르냐치노 라는 곳 일대 광활한 평원을 관통하는 솔빈강을 배경으로 박은 한 장면이라 촬영 시점은 2006년 7월 21일이라 나오는데 내 착오가 아닌지, 그 이듬해 아닌가 모르겠다. 암튼 대략 20년가량 시간이 흘렀다. 당시 이 인근에서는 정석배 교수가 이끄는 한국전통문화학교 조사단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소재 극동대학교랑 말갈 유적을 발굴조사할 무렵이라저때가 내가 두 번째 방문이었는지, 첫번째 방문인지 기억에 없다. 아마 첫 번째였지 않나 싶다. 이 일대는 온통 광활한 평지였으니, 그 옛날에는 밭농사를 지었음이 확실하거니와, 그 첫 번째 방문 때는 온통 묵정 잡목밭이었지만 그 이듬해에 갔을 적에는 이미 상당한 개간이 이뤄져서 내가 놀랬거니와저 사진 뒤편을 보면 개간한 흔적이 .. 2025. 7. 20.
책에 묻혀 지낸 나날들, 그것이 키운 건 오만방자였다 현역 기자 시절 한 단면이라 상기해 둔다. 탑재 시점을 보니 11년 전 오늘 2014년 7월 19일이라, 종로 수송동 연합뉴스 편집국 문화부 내 자리다. 이미 현역 기자로는 고참급에 속해 당시 차장이었던 나는 문화부에서 크게 두 가지 분야를 전담했으니 문화재와 학술이 그것이다. 저 중에 문제는 학술. 이게 참말로 골이 아파서, 그것이 커버하는 범위가 실은 아주 묘해서 안 걸리는 데가 없다. 저 학술을 담당하면 출판 또한 겸하게 되는데, 이른바 학술서적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은 덮어놓고 학술 담당이라출판사에서 소개해 달라는 책이 쏟아져 들어온다. 하지만 문화재를 하면서, 기타 학술 관련 움직임도 커버하면서 학술 출판까지 한 사람이 한다? 솔까 불가능하다.그 많은 책을 어찌 소화한단 말인가? 결국 선별을 할.. 2025.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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