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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381

풍납토성 배경으로 뒤늦게 담아본 내 전신 사진 언제쯤인가?2001년 2월 졸저 《풍납토성 500년 백제를 깨우다》(김영사)를 발간한 직후 일일 것이다. 미디어오늘인지 기자협회보인지 아무튼 언론 관련 전문 매체에서 저 풍납토성 사태와 관련한 내 행적과 내 생각을 취재하고선 풍납토성을 배경으로 한 사진이 있으면 달라 했다. 그 기사에 녹여 써먹겠다는 생각이었다. 한데 그렇게도 풍납토성에 미쳐 날뛴 나였지만, 그때까지 정작 내가 이곳을 배경으로 찍은 내 사진이 단 한 장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이후에는 저런 현장마다 더러 일부러 내가 들어간 사진을 남기기도 했다. 불행하게도 이후 그런 사진을 요청한 데가 단 한 군데도 없었으니 그런 사진으로 써먹은 것이 없다. 앞 첨부 사진은 2008년 5월 7일, 풍납토성 경당지구를 한신대박물관이 재발굴하고, 그에서 다.. 2025. 12. 5.
2016년 10월 17일 삼성퇴에서 내 꿈이 뭘까?모르겠다.그 꿈을 꾸기엔 좃또버그나 빌 게이츠를 보면 너무 늦은 듯 하기만 하고,함에도 그 모르는 꿈을 위해 질긴 끈을 여직 놓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다.좃또버그가 페이스북 창립을 꿈꾸며 세계 제패로 나갈 그 나이에, 나는 지긋지긋핫 가난 탈출이 꿈이었던 듯 하고, 그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무렵엔 문화재라는 요물과 조우해 그 길을 향해 맹렬히 돌진한 듯 하다.내가 언젠가 한 말이거니와가장 무능한 기자가 정년까지 기자질 하는 기자다.다른 일을 할 줄 모르기에,더 속된 말로는 기자랍시고 제대로 기자질도 할 줄 모르기에 기자질한다.이건 내가 한창 기자질할 때 한 말이니 나는 한점 후회도 없다. *** 해직 생활을 하던 2016년 10월 17일 삼성퇴에서 나는 저리 적었다. 떠날 때를 놓쳤기에 더 .. 2025. 10. 19.
[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단 한 사람도 탐구하지 않은 탑塔 2007년 부여 왕흥사지에서 당시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그 목탑 터를 발굴하고선 이 탑 내지는 사찰 자체를 백제 위덕왕 시대에 세웠다는 근거 자료를 확보했을 때였다. 다른 무엇보다 그 목탑 사리공에서 그것을 밝혀주는 사리장엄구가 드러나고, 그 심초석 주변으로는 고고학에서는 지진구 혹은 진단구라 치부한 부처를 위한 공양품이 잔뜩 나왔으니, 발굴 직후 나는 그 의미를 분석한 논문을 곧바로 써서 투고했으니 그것이 바로 다음이다. 김태식, 부여 왕흥사지 昌王銘 사리구에 관한 고찰 : 舍利函 銘文을 중심으로 《한국문화사학회》 28, 2007 저것이 왕흥사지 사리장엄에 대한 국내 첫 분석논문으로 기록되는데, 문제는 저걸 탐구하면서, 특히 심초석 주변 유물들이 지진구 진단구가 아님을 나는 역설하면서 이참에 도대.. 2025. 10. 19.
창녕 비봉리 유적이 똥덩어리를 출토한 그날 (편집자주) 코프럴라이트coprolite, 곧 분석糞石 똥덩이 대변 이야기 나온 김에 한국 고고학에서는 그 신기원을 이룩한 데가 창녕 비봉리 유적이라, 당시 이 소식을 전한 2005년 내 기사를 전재한다. 한반도 최고(最古) 동물그림 발견(종합)2005-06-17 23:00최초 신석기시대 배설물(糞石)도 출토창녕 부곡 비봉리 신석기시대 유적서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한반도에서 지금껏 확인된 그림 중에서 가장 오래된 유물이 확인됐다.또 한반도 최초로 처음으로 배설물 덩이인 분석(糞石)와 칼 모양 목기(검형목기)와 다른 목기(木器)가 같은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밝혀졌다.국립김해박물관(관장 김정완)은 경남 창녕군 의뢰로 2004년 11월 30일 이후 창녕군 부곡면 비봉리에서 확인된 신석기시대 저.. 2025. 9. 21.
"누군가는 그럽디다, 만리장성이라고" 북악산의 유홍준 유홍준 씨가 문화재청장으로 재임하던 시절이니 노무현 정부 때 일화다. (지금 찾아보니 2006년 일이라 나온다.) 당시 청와대 주변을 시민 국민 품으로 돌려준다는 풍조가 만연한 때라, 이 흐름을 본격화한 이는 실은 김영삼이었다. 문민정부를 표방한 YS가 대통령 취임 직후 취한 일련하는 개방 움직임은 지금은 당연하게 보이지만 그 하나하나 뜯어보면 혁명을 방불했으니 청와대 앞길을 개방한 이는 그였다. 그런 흐름이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계속됐으니 그가 취한 저 흐름 연장성에 위치하는 조치가 북악 일대 개방이었다. 그를 뒤이은 문재인 정부에서도 추가 개방 움직임이 있었으니 암튼 노무현 정부 시절 그 화룡점정은 북악 일대 한양도성 일대 구간 개방이었다. 이 개방을 유홍준은 그 자신이 주도한 업적처럼 선전했으나 실.. 2025. 9. 14.
전남 나주에서 출현한 2,000년 전 유리 슬래그 전북 장수군에서 아마도 유리로 곡옥을 만들어냈을 법한 이른바 곡옥 거푸집이 출토한 일과 관련해 한반도 고대 유리 관련 엇비슷한 자료들을 검출하려 하다 보니, 2008년에 다름 아닌 내가 작성 배포한 아래 기사가 보이는데 문제는 나로선 이 기사가 전연 기억에 남지 않으니, 영혼이 없이 썼나 보다. 이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대략 2천 년 전,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 땅에서는 유리를 자체 제작하는 시스템이 있었을 여실히 보여주는 유리 슬래그, 곧, 유리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발생한 찌꺼기가 발견됐다는 것이니, 당시 기사 전문은 다음과 같다. 나주 조개무지서 유리 工房 흔적 입력 2008.03.18. 오후 3:16 수정 2008.03.18. 오후 6:11 1-2세기 생활유적..점뼈도 발견 (서울=연합뉴스) .. 2025.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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